소설리스트

다시 만난 애 아빠-75화 (75/109)
  • #75. 저마다의 계획

    석주는 소금 핍박을 받은 그날로부터 매일같이 국밥집을 들렀다. 그때마다 경애가 질색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경애는 석주를 가만 놔 두지 않았다.

    오늘로, 가게 앞을 매일 같이 찾아온 석주가 경애에게 소금을 맞는 것도 벌써 사흘째다.

    춘희는 요 며칠간 일상이 되어버린 창밖 풍경을 가만히 응시했다.

    “말려야 하는 거 아냐?”

    주방에서 설거지를 마무리 지은 김씨 아주머니가 넌지시 말했지만 춘희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할 뿐이다.

    “뭐 하러.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일 있나.”

    김씨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건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폭력 같은데.

    김씨 아주머니는 어느덧 말없이 춘희와 함께 창밖 풍경을 지켜보았다. 팝콘만 없다 뿐이지, 영화를 관람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두 여자의 눈이 어느 순간 동시에 커졌다.

    “어어?”

    매번 당하기만 하던 석주가 경애의 손목을 움켜 잡은 것이다.

    사흘 만의 첫 저항이었다.

    .

    .

    .

    경애는 눈을 부릅뜨고 제 손목을 움켜 잡은 석주를 노려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잠깐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승자는 경애였다. 경애의 손목을 풀어주며 자의로 패자가 된 석주는 다시금 소금을 고스란히 맞았다. 하도 맞아서 이젠 따가운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한계에 다다랐는지, 석주가 결국 울컥하며 소리쳤다.

    “아, 진짜라니까! 믿어 달라고, 쫌!”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속으로 코웃음을 친 경애 또한 석주를 향해 소리쳤다.

    “CCTV 보니까 가게 근처 얼쩡거린 수상한 놈은 너 밖에 없더만! 왜 자꾸 와서 헛소리야?”

    “헛소리 아니야! 내가 봤다니까!”

    “그래. 말이나 해 봐라. 대체 어떻게 생긴 놈이 나 쫓아다니는지 좀 알게.”

    “그건……!”

    석주는 남자의 생김새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버벅거리다가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를 쓸어넘길 뿐이다. 그러더니 원망스럽게 경애를 쏘아보고는 성큼성큼 멀어졌다.

    “나 참. 어따 대고 성질이야?”

    경애가 기가 찬 얼굴로 중얼거리고는 돌아섰다.

    이제 한 줌밖에 남지 않은 소금 봉지를 식탁에 척 하니 내려놓자 춘희가 아깝다는 얼굴로 혀를 끌끌 찼다.

    “소금 아까워 죽겠네. 그냥 찬물을 확 끼얹어 버리시지.”

    경애는 대꾸 없이 팔짱을 가슴 앞에 끼며 유리 밖을 바라보았다. 가다가 잠시 멈춰 서서 이쪽을 응시하는 석주와 눈이 마주쳤다. 석주는 팽하니 고개를 돌려 멀어졌다. 그 모습을 보던 경애가 기가 막혀 헛웃음을 쳤다.

    “나이만 먹고 성질만 더러워져선.”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는데 춘희가 경애를 힐끔거리다 물었다.

    “이러다 미운 정 드는 거 아닌가 몰라요?”

    농담인데 돌아오는 시선이 살벌하다. 금세 꼬리를 내린 춘희는 괜히 머리를 매만지다 잡일을 하러 슬그머니 사라졌다.

    “미운 정은 무슨.”

    씹어뱉듯 낮게 읊조린 경애는 여전히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슬쩍 가게 문을 나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CCTV 사정거리 밖으로 가게를 한 바퀴 돌았지만 이전에 저의 팔을 붙들어준 남자와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석주가 찾아온 이후로 계속 이어진 행보였다.

    그럼 그렇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경애는 가게 주위를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석주가 사라진 쪽을 노려보며 이를 부득 갈았다.

    ‘또 오기만 해 봐, 아주.’

    그때는 소금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콧김을 흥 내뿜은 경애는 가게로 몸을 돌렸다.

    *

    그런데 각오를 단단히 다진 것이 무색하게도 석주는 그날 이후로 며칠째 두문불출했다.

    처음에는 드디어 안 오는가 싶었는데 구박을 받으면서도 꾸준히 찾아오던 사람이 갑자기 안 보이자 괜히 찜찜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던 어느 날.

    오늘도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경애의 옆구리를 춘희가 쿡 찔렀다. 경애가 답지 않게 화들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춘희의 입꼬리가 의미심장하게 올라가는 걸 본 경애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봐. 미운 정 들었다니까?”

    경애가 노려보아도 춘희는 키득거릴 뿐이었다.

    “미운 정이 들기는 개뿔.”

    “개뿔이란 말 갖다 붙이는 말은 다 참말입디다.”

    경애는 실랑이하는 걸 관두고 입을 다물었다.

    잡생각을 떨치고자 행주를 들고 깨끗한 책상을 닦고 의자를 정리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창밖의 휑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왜 갑자기 안 오지?’

    사람 다 보는 길거리에서 소금을 맞는 수치를 견디면서도 계속 찾아왔던 석주였다. 그런데 갑자기 발걸음을 뚝 끊었다. 억울한 얼굴로 소리치고 돌아선 그날 이후부터 말이다.

    이렇게 쉽게 물러날 것 같진 않아 보였는데. 왜 갑자기 잠적했을까.

    그 속을 짐작할 수조차 없어 상당히 찜찜했다.

    자꾸만 떠오르는 석주에 대한 생각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결국 테이블 닦던 걸 그만 두고 행주를 내려놓는 때였다.

    딸랑.

    입구에 달린 종이 울리는 맑은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경애는 문가를 휙 돌아보았다.

    작업복을 입은 인부들 셋이 가게로 들어오고 있었다.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어 빤히 쳐다보던 경애는 그들이 전에 석주와 같이 회식을 하러 왔던 인부들임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일전의 일을 의식한 건지 인부들이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하며 자리에 앉았다.

    경애와 마찬가지로 눈썰미가 좋아 인부들을 알아본 춘희도 달갑지 않은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분위기가 점차 싸늘해지자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인부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쳐다들 보지 마세요. 소장 없이 우리끼리 온 거니까.”

    그들의 말대로 추가로 더 오는 인원이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목요일. 회식을 할 만한 날도 아니었다.

    표정을 푼 경애가 주문을 받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갔다.

    국밥 세 개에 소주 한 병을 시키면서 그들은 연신 경애를 힐끔거렸다. 시선이 불쾌했지만 손님이어서 경애가 내색하지 않는 때였다.

    “혹시, 윤 씨 소식 아는 것 좀 있으세요?”

    아까 웃으며 말했던 인부가 경애에게 물었다. 주문을 받고 돌아서던 경애가 멈칫 섰다.

    “그 인간 안부를 나한테 왜 물어요?”

    “아니, 뭐. 안 보이니까 궁금해서요. 잘 지내나 해서.”

    경애의 미간이 가만히 좁아졌다. 눈 속에 어린 작은 의구심을 파악한 다른 인부가 대뜸 말했다.

    “윤 씨, 잘렸거든요.”

    “잘려요?”

    경애가 자기도 모르게 반문하자 인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소장한테 소리 지르고 바로 다음 날 잘렸어요.”

    잠깐 멍해졌다. 어렴풋이 그럴지도 모른다 짐작을 하긴 했지만 설마 진짜 잘렸을 줄이야.

    씩씩거리며 소리치던 석주의 모습과 사흘 전 저에게 억울한 얼굴로 소리친 석주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인부들은 저들끼리 떠들어댔다.

    “소장 놈도 진짜 진상이야. 지가 잘못해 놓고 애먼 사람을 잘라, 왜.”

    “내 말이. 하여간 윤 씨도 참 안됐어.”

    “그러게 말이야. 열심히 잘 해 주던 사람인데. 그렇게 성실한 사람을 또 어디서 찾냐고.”

    인부들 사이에서 나오는 석주에 대한 긍정적인 평을 듣고 있던 경애는 더 주문할 것 없느냐고 묻고는 돌아섰다.

    “어디 아픈 것 같았는데 걱정이네.”

    순간 들린 말에 멈칫했다. 뒤에서 두런두런 석주의 몸 상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나 경애는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두 귀가 멀쩡했기에 자꾸만 말이 들려왔다. 결국 경애는 바람이라도 쐴 겸 가게 밖으로 나왔다. 타이밍 좋게도 선혜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응. 선혜야.”

    - 엄마 뭐 해?

    “뭐 하긴. 일하지 뭐. 왜 전화 했어?”

    - 조만간 반찬 받으러 가게 갈까 싶어서.

    “뭘 와. 엄마가 갖다 주면 되는데.”

    - 태준 씨가 셋이서 엄마 가게 한번 가자고도 했거든. 엄마가 해 준 국밥 먹고 싶대.

    태준을 언급하는 선혜의 목소리에 순간 화색이 돌았다. 경애는 자기도 모르게 웃었고 그 소리는 고스란히 전화기 너머로 흘러 들어갔다.

    - 갑자기 왜 웃어?

    “엄마 보러 오는 게 아니라, 네 신랑 밥 먹여 주러 오는 거지, 너?”

    - 그런 거 아니거든?

    “지지배. 그냥 맞다고 해. 다 티나니까.”

    - 아니라니까.

    부정하는 목소리 끝이 조금씩 작아진다. 행복해 보이는 선혜의 모습에 덩달아 기쁘다가도 한편으로는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공짜로는 안 줄 테니까 조만간 가게 일 도우러 와. 슬슬 바빠지니까.”

    날이 점점 추워짐에 따듯한 국밥을 찾는 손님들이 갈수록 늘어갔다. 직원을 한 명 더 뽑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 정도로.

    - 알겠어.

    “그래. 잘 쉬고.”

    - 응. 엄마. 엄마도.

    순간 멀리서, ‘할머니 안녕히 주무세요.’ 하는 수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애는 흐뭇한 할머니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밤 바람이 제법 찼다. 어깨를 문지르던 경애는 가게로 들어가려다가 멈칫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낌새가 느껴져서가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버릇처럼.

    “…….”

    석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음을 놓아야 하는데.

    ‘어디 아픈 것 같았는데 걱정이네.’

    걱정 섞인 그 말이 떠올라 마냥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다시 가게로 들어가려는 때였다.

    식사를 다 했는지 인부들이 나오고 있었다. 경애에게 인사를 꾸벅한 그들이 앞을 돌아보더니만 눈을 크게 떴다.

    “어! 윤 씨 아냐?”

    한 인부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한 곳을 응시했다. 경애는 순간 뒤를 돌아보았다.

    설마 그 윤 씨가 그 윤 씨일까 했는데. 경애가 바라다본 곳의 반대편에서 석주가 걸어오고 있었다. 인부들을 보고 주춤 발걸음을 멈춰 선다.

    “맞네, 윤 씨! 잘 지냈어?”

    다들 반갑게 석주에게 다가가 알은체를 했다. 석주는 뜻밖의 재회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가 경계 서린 눈으로 인부들 뒤를 흘끔거렸다.

    “소장 빼고 우리끼리 왔어. 걱정하지 마.”

    “그래요. 다행이네요.”

    말을 마친 석주가 경애를 바라다보았다. 둘 사이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에 눈치를 보던 인부들이 인사를 하고 하나둘 멀어졌다.

    인부들이 멀어지고 둘만이 남았다. 경애가 톡 쏘듯이 물었다.

    “왜 또 왔어?”

    석주는 물끄러미 경애를 보기만 했다. 다소 애틋한 시선에 경애는 마음이 심히 불편했다. 인부들이 석주의 건강을 걱정하는 말을 하는 걸 들어서인지, 못 본 며칠 사이 더 여윈 것 같기도 했다.

    왜 또 왔냐고 괜히 물었다 싶었다. 그냥 무시하고 들어가야 했는데. 후회를 발판삼아 바로 실행에 옮기는 때였다.

    “나, 누나한테 부탁이 있어서 왔어.”

    간절한 음성이 발목을 잡았다. 경애는 비딱하게 석주를 돌아보았다.

    “부탁?”

    할 말에 이어서 부탁이라니.

    “응.”

    대체 뭐길래 저렇게 애틋하게 쳐다보는 건지.

    경애는 자기도 모르게 열리는 석주의 입술을 집중하여 쳐다보았다.

    *

    경애와 통화를 마친 선혜는 침실에서 나왔다.

    거실에서는 태준과 수호가 태블릿 PC를 빨려들어갈 기세로 쳐다보고 있었다.

    뭘 보고 있길래 저렇게 홀딱 빠졌나 싶어 두 사람 옆에 다가가 앉은 선혜의 눈에, 태블릿 한가득 터지는 불꽃놀이가 비쳤다.

    불꽃놀이가 사그라든 밤하늘에 놀이동산 타이틀이 반짝이며 솟아올랐다. 조만간 놀러갈 놀이동산 홍보 영상이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영상이었지만 선혜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그거 또 봐요?”

    도대체 몇 번을 보는 건지. 저번 주말 보기 시작한 영상을 둘이 만날 때마다 최소 두 번씩은 돌려보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끝난 영상을 다시 재생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질리지도 않나. 선혜는 신기하다는 얼굴로 옆에 앉은 두 남자를 쳐다보았다.

    수호는 어려서 그렇다 치더라도 태준은 왜 저렇게 영상에 빠져 있는 건지. 다 커서 새삼 동심이 고개를 들었나 싶지만 저번에 수호와 놀아줄 때와는 다르게 사뭇 진지한 표정이기도 해서 의문이 갈수록 커졌다.

    순간 이쪽을 돌아보던 태준과 눈이 마주쳤다. 의미심장하게 씩 미소짓는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때였다.

    “장모님이 뭐라세요?”

    “조만간 오래요.”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태준에게 이번엔 선혜가 물었다.

    “근데 가족 모임에서는 보통 뭐 해요?”

    태준의 가족 모임이 벌써 내일모레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별거 안 해요. 그냥 밥 먹고 차 마시고, 애들은 애들끼리 놀고.”

    수호가 문득 물었다.

    “장세빈도 와요?”

    갑작스러운 세빈의 언급에 순간 태준이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수호는 그렇구나 하며 다시 영상을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영상이 아닌 수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던 태준이 물었다.

    “세빈이랑은 유치원에서 잘 지내?”

    태준의 질문에 수호는 유치원에서의 세빈을 떠올렸다.

    가끔 멍하니 딴생각을 하긴 했지만 세빈과의 관계는 크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여전히 친구로서 잘 지내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수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태준이 안심한 얼굴을 했다.

    선혜가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았으나 태준은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고개를 한번 저었다. 뭔가를 진득하게 캐묻는 성격이 아닌지라 선혜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

    오피스텔로 돌아가는 길.

    태준은 수호와 봤던 영상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수호와 본 게 열댓 번, 혼자서 집에서 본 게 한 스무 번쯤 된다.

    눈부시게 화려한 페스티벌. 아름다운 조명과 로맨틱한 분위기. 무엇보다도 페스티벌의 절정인 불꽃놀이.

    프러포즈 고민을 하던 와중 본 영상은 태준에게 영감을 훅 불어넣어 주었다.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다.

    사실 고민이 많았다. 화려한 프러포즈를 하고 싶은데 사람들의 이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선혜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화려하면서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진 않는 방법. 그 방법을 강구하던 태준에게 놀이동산 페스티벌은 절호의 기회였다.

    불꽃놀이를 바라보며 넋을 잃은 선혜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고 소란한 와중 선혜에게만 들리게 달콤한 말을 속삭여줄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해 줄지는 아직 미정이었다.

    기왕 하는 프러포즈, 늦은 만큼 찐한 감동을 주고 싶은데.

    무슨 말이 좋을까.

    고민하는 와중 라디오에서 신청곡 하나가 흘러나왔다.

    가수 이소라의 청혼이었다.

    - 말 할― 거예요―. 이제 우―리― 결혼해요―.

    처음부터 직설적이고 꾸밈없이 담백한 노랫말이 귀를 사로잡았다.

    태준은 핸들을 두드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때마침 지금 자신의 마음을 제일 잘 대변할 수 있는 가사가 나오고 있었다.

    “그―럼 늦은 저―녁 헤―어지며 아쉬워하는―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노래를 부르는 태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노래가 태준의 상상에 낭만을 더했다.

    상상이 아름다운 현실로 거듭나려면 계획에 차질이 없어야 했다.

    반드시 완벽한 프러포즈를 하고 말리라.

    굳은 결심을 한 태준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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