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만난 애 아빠-67화 (67/109)
  • #67. 내 아들, 내 딸

    회식 1차가 마무리 지어질 무렵. 태준은 바람을 쐬러 나가자는 형주의 제안에 성균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 옆 구석진 곳으로 간 형주와 성균은 습관처럼 담배를 빼 물었다.

    태준은 그저 벽에 기대어 선 채로 그런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담배에 닿는 태준의 시선을 느낀 형주가 장난스럽게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내밀었다.

    “하나 줄까?”

    “안 핀다니까요. 금연한 지가 언젠데.”

    “진짜 독하다 독해. 골초까지는 아니었어도 신 주임 꽤 폈잖아.”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거라고들 말한다. 그만큼 금연은 어려운 법임을 형주 또한 몇 번 시도해 보았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태준이 더 대단해 보였다.

    성균이 태준을 지그시 바라보다 물었다.

    “금연한 거, 혹시 윤선혜 씨 때문이에요?”

    “네.”

    성균이 잠시 할 말을 잃은 듯이 태준을 바라보다가 웃었다. 그가 태준의 옆에 등을 기대고 서더니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대단하네. 난 못했는데.”

    선혜가 담배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성균 또한 금연 시도를 해 보았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씁쓸하게 웃던 그가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근데 신 주임, 나 이거 궁금해서 묻는 건데.”

    형주가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혜 씨랑 결혼까지 할 생각인 거야?”

    “당연하죠. 상견례 날짜도 잡았는데요.”

    형주와 성균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형주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부모님이 허락을 하셨어?”

    “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형주가 이윽고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다 물었다.

    “괜찮겠어? 선혜 씨랑 결혼해도.”

    “안 괜찮을 게 있나요?”

    “아니. 홑몸도 아니고 애가 있어서 하는 말이야. 남의 애 가진 여자랑 결혼한다는 게 난 좀 걱정이 돼서. 남의 애를 키우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진심 어린 조언과 충고였지만 태준에게는 불필요한 말들이었다.

    여느 때처럼 웃으며 넘기려던 태준은 잠시 고민했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얼굴을 하는 형주와 씁쓸해하면서도 염려의 눈빛을 하는 성균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결심이 굳어졌다.

    입사 때부터 지금까지 허울 없이 지낸 동료들. 회장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껍데기보다는 신태준이라는 사람을 봐 준 사람들이다.

    그러니 말해도 되겠지.

    “그런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과장님.”

    태준이 입을 열었다.

    “선혜 씨 아들, 제 아들이라서요.”

    “어……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어버버거리는 형주와 성균. 둘을 똑바로 응시하며 태준이 빙긋 웃었다.

    “선혜 씨 아들, 내 아들이라고요. 제 친아들.”

    형주와 성균이 동시에 담배를 떨어뜨렸다.

    잠깐의 침묵 뒤.

    “뭐어?!”

    놀란 두 사람의 입에서 터지는 경악.

    태준은 입이 떡 벌어진 두 사람을 보며 그저 웃을 뿐이었다.

    *

    형주와 성균, 그리고 태준은 회식을 탈출하여 셋 만의 자리를 만들었다.

    두 사람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태준을 보고 있었다.

    “아니, 진짜야? 선혜 씨 아들이 신 주임 아들이라는 거?”

    “네.”

    벌써 몇 번이나 똑같은 대답을 하는지.

    “애가 몇 살인데?”

    “일곱 살이요.”

    “일곱 살?!”

    형주와 성균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아니, 대체 언제…….”

    “전에 여행 가서 만난 적 있다고 했었잖아요. 그때 생겼더라고요.”

    “근데 여태껏 책임 안 지고 뭐 했는데?”

    성균이 꽤 날카롭게 바라보며 물었다. 태준은 난감한 얼굴로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그게, 그때는 서로 이름도 연락처도 제대로 몰라서. 다음날 일어나니까 선혜 씨가 없어지기도 했고요.”

    이름도 연락처도 서로 몰랐다는 말에 형주와 성균은 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선혜의 경계 많은 성격을 떠올리고는 납득한 얼굴을 했다.

    그만큼 화려한 외모의 소유자니 길을 걸어가기만 해도 사내놈들이 열댓 명은 달라붙었을 터. 이름을 속인 건 귀찮은 일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찾아보기라도 하지 그랬어. 신 주임네 집안, 사람 써서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당연히 찾아봤죠. 그런데 결국엔 못 찾았었어요.”

    “근데 그렇게 헤어진 뒤에 회사에서 다시 만난 거야? 몇 년 만에?”

    “네.”

    “와. 진짜. 두 사람 운명이네, 운명.”

    “그러게요.”

    성균도 순순히 인정하고 말았다. 여행지에서 만나 애까지 만든 것도 모자라, 같은 회사에 입사까지 해서 재회한 인연이라니.

    “다들 알면 난리 나겠는데?”

    형주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둘이서 사귀는 줄만 알고들 있지 설마 애가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조차 못 했을 텐데 말이야.”

    형주의 말에서 무언가를 눈치챈 태준이 눈썹 한쪽을 들어 올렸다.

    “회사 사람들이 알고 있어요?”

    형주는 아차 싶었지만, 결혼까지 할 마당에 뭐 어떠랴 싶어 입을 열었다.

    “응. 다 눈치챘다는데? 으이그, 그러게 티 좀 작작 내지 그랬어.”

    “누가 그래요?”

    “어? 김지민 대리가.”

    “김 대리?”

    태준은 지민과 선혜가 같은 디자인팀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크게 관심을 두고 있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지민이 자신에게 호감을 표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불평 불만이 많아 투덜거리는 성격도.

    ‘설마.’

    김지민. 그 사람일까? 선혜를 괴롭힌다는 팀원이.

    태준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수호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형주와 성균에게 양해를 구한 태준은 가게를 나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 아빠. 할머니 가게로 와요. 빨리요.

    할머니라면 경애를 말하는 것일 터.

    의아해하던 태준이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 네.

    수호가 빠르게 덧붙였다.

    - 엄마가 위험해요.

    위험하다니.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데 전화기 너머로 누군가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통화가 뚝 끊어졌다. 다시 전화를 걸지만 휴대폰이 꺼져 있다는 알림만 들릴 뿐.

    태준은 서둘러 가게 안으로 들어가 짐을 챙겼다.

    둘이서 짠을 하고 술을 들이켜려던 형주와 성균이 놀란 얼굴로 태준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신 주임?”

    “일이 생겨서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해요.”

    주섬주섬 짐을 챙겨 뛰어나가는 태준의 뒤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

    선혜는 왁자지껄한 테이블에 계속 술을 나르고 있었다. 국밥과 사시미를 다 먹은 지 오래였지만 그들은 자리를 뜰 생각이 없어 보였다.

    “술 먹고 싶으면 술집이나 갈 것이지…….”

    춘희가 들리지 않게 작게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그러면서도 걱정스럽게 선혜의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선혜와 눈이 마주치자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엄마가 술 마신 거, 아버지 때문이에요?”

    이미 들킨 마당에 계속 거짓말할 배짱 같은 건 춘희에게 없었다.

    “그게…… 사실 요새 가게 주위에서 맴돌더라고. 잡고 보니까 세상에 늬 아버지지 뭐니.”

    “가게 주위를 맴돌다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선혜가 미간을 좁히며 따져 물었다. 춘희가 체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장님이 요 며칠 누가 쳐다보는 것 같다고 계속 그러셨었거든. 나도 느꼈었고.”

    경애가 쉬러 들어간 방을 선혜가 다소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자 춘희가 달래듯 말했다.

    “사장님 성격 알잖아, 선혜야. 너한테 걱정 끼치기 싫어서 말씀 안 하신 걸 거야.”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한숨을 내쉬는 선혜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다가 굳었다.

    며칠 전 집에서 태준이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음…… 잡는 걸 보조한 정도?’

    그게 아버지라면, 태준이 아버지인 석주를 봤다는 얘기인데.

    “…….”

    달갑지 않은 사실에 선혜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선혜의 옆에서는 춘희가 그런 선혜를 보고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여기! 소주 한 병 더 줘!”

    춘희가 퍼뜩 몸을 움직였다. 소장이 그런 춘희를 아니꼽게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주머니 말고! 거기 거 이쁜 아가씨가 좀 가져와 봐!”

    “아니, 술을 누가 가져다주든 무슨 상관이에요? 그리고 여기가 무슨 술집인 줄 아시……!”

    선혜가 다다다 뱉어내는 춘희의 팔을 붙들었다.

    “제가 다녀올게요.”

    “선혜야.”

    “잘 쳐 낼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까지도 선혜에게 술을 따라보라 몇 번 권했던 소장이었지만 그때마다 선혜는 야무지게 쳐냈다.

    선혜는 손에 소주병을 들고 걸어갔다. 석주를 쳐다보지 않으려 애쓰면서 테이블에 소주를 내려놓았다.

    “소주 여기 있습니다.”

    예의상 말했다. 아무리 진상 짓을 하더라도 엄마 가게의 손님인데 함부로 굴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말을 마치고 돌아서는 때였다.

    갑자기 손이 붙들렸다. 선혜는 굳은 얼굴로 소장을 돌아보았다.

    “어이, 아가씨.”

    소장이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여기 앉아서 한잔해.”

    술에 잔뜩 취했는지 눈이 잔뜩 흐려져 있었다.

    “이거 놓으시죠. 그리고 여기, 그런 술집 아닙니다.”

    “에이. 딱딱하게 굴지 말고. 내가 딸 같아서 예뻐해 주려고 그래. 사양 말고 앉아, 응?”

    딸을 저렇게 음흉하게 바라보는 아버지도 있던가. 선혜는 기가 막혔다.

    춘희에게 도움을 구할까 돌아보았지만 잠깐 화장실을 가느라 자리를 비운 상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리던 선혜는 이쪽을 바라보는 석주와 순간 눈이 마주쳤다.

    “…….”

    석주는 술잔을 든 채 굳어 소장이 잡은 선혜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바라보기만 할 뿐, 하지 말라는 말도, 다가와 구해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선혜의 눈을 마주하자 피하기까지.

    ‘누구야, 윤 씨. 이 아가씨랑 아는 사이야?’

    ‘……아뇨. 아닙니다.’

    재회하자마자 모르는 척을 했던 사람인데 그러고도 남지.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외면하는 모습에 순간 옛날 일이 떠올랐다.

    차 안에서 저를 덮치려던 재민에게서 겨우 벗어나 집으로 돌아온 그날, 자기를 보자마자 황급히 고개를 돌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때와 변함없이 똑같이 무책임한 모습에 명치에서부터 무언가가 끓어 올랐다.

    이런 경험을 다시 할 줄은 몰랐는데.

    선혜는 화를 내리누르며 흘러내린 앞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겼다.

    “이거, 놓으시라고요.”

    “와, 방금 뭐야? 또 해봐, 아가씨. 그 머리 넘기는 거, 응?”

    “이거 놓으라고 했…….”

    그때였다.

    “그 손.”

    탁. 술잔이 식탁과 세게 부딪히며 나는 소리에 소장이 돌아보았다.

    “……놔요.”

    나선 건 다름 아닌 석주였다. 선혜도, 소장도, 다른 인부들도 놀라 석주를 쳐다보았다.

    “놓으라고 하지 않습니까.”

    화를 억눌러서인지, 두려워서인지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소장이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윤 씨가 뭔데 놓으라 마라야?”

    석주는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석주를 바라보던 소장이 파핫, 웃음을 터트리며 석주를 향해 삿대질했다.

    “이야. 이거 아까는 모른다고 하더니. 둘이 뭐 특별한 사이라도 되나 봐?”

    소장의 도발적인 말에도 석주는 입을 꾹 다문 상태였다. 소장이 조롱하듯 선혜의 손을 붙든 채 흔들었다.

    “안 놓으면 어쩔 건데. 안 놓으면 어쩔 건데? 엉?”

    더 이상 참지 못한 선혜가 손에 힘을 주는 그때.

    “어어! 저 미친놈이, 기어이!”

    춘희가 화장실에서 나오더니 기겁을 하며 소리쳤고.

    “……?”

    그와 동시에 한숨 잔 경애가 방에서 나오며 그 광경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그 뒤를 따라 문밖을 나온 수호도 마찬가지.

    “엄마?”

    들려오는 수호의 목소리에 선혜가 놀라 돌아보았다. 자식 앞에서 몹쓸 꼴을 보였다는 사실에 얼굴이 상기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뿌리쳐야 한다는 생각에 손에 힘을 바짝 주는 때였다.

    석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의자가 끌리는 소리에 선혜가 놀라 그쪽을 돌아봤다.

    부들부들 떨리던 석주의 입술이 열리고 고함이 터져나왔다.

    “내 딸이야!”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가게에 울려 퍼졌다.

    뒤늦게 석주를 발견한 경애가 눈을 홉떴다.

    그러는 동안 석주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소장을 노려보았다.

    “그 애가, 내 딸이라고!”

    그가 벗어둔 모자를 식탁에 집어 던지며 울부짖었다.

    “그러니까 내 딸한테서 당장 손 떼, 이 x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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