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만난 애 아빠-66화 (66/109)
  • #66. 재회

    선혜는 수호의 침대 위에서 수호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자고 있는 수호의 몸 위를 다독거리는 손길이 잠잠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침실에 누워 있다가 영 잠이 안 와 이곳으로 온 선혜였다. 새삼 혼자 자는 게 무서워서 말이다. 수호와 함께 있으니 무서움이 줄었지만 잠은 영 오지 않았다.

    문득 선혜는 눈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열두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문단속을 단단히 하라며 집을 나선 태준은 아직 소식이 없었다.

    범인을 잡은 걸까? 아니면……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걱정되는 마음에 수호를 두드리는 손길이 멈췄을 때였다. 때마침 핸드폰이 침대 옆 협탁 위에서 진동했다.

    태준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혹시라도 진동 소리에 수호가 깰까 싶어 선혜는 손을 뻗어 얼른 핸드폰을 가져갔다.

    수호의 방을 나온 선혜는 소리 없이 문을 닫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여보세요?”

    - 나, 현관문 앞인데.

    선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현관문을 돌아보았다.

    “우리 집이요?”

    - 네. 문 좀 열어줄래요?

    선혜는 천천히 현관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고 빼꼼히 고개를 내밀자 말한 대로 현관 앞에 서 있는 태준이 있었다. 선혜가 문을 당겨 열어 틈을 벌리자 태준이 귀에 대고 있던 핸드폰을 내리고 문 안으로 들어왔다.

    선혜는 눈을 깜빡이며 현관으로 들어온 태준을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잘 해결됐어요.”

    “범인…… 잡은 거예요?”

    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제 걱정 안 해도 돼요.”

    “태준 씨가 잡은 거예요?”

    태준은 석주를 향해 달려들던 춘희를 떠올리며 말했다.

    “음…… 잡는 걸 보조한 정도?”

    태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태준을 살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는 거죠?”

    “네. 걱정 마요.”

    “다행이다.”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범인을 빨리 잡은 것도, 잡는 과정에서 태준이 다치지 않고 무사한 것도.

    별거 아닌 사람이었나 보지. 선혜는 안도한 얼굴로 긴 숨을 내뱉다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근데 뭐 하는 사람이었대요?”

    “그냥, 뭐.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아버지가 스토킹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 충격을 받을 것이어서 태준은 숨기기로 했다.

    아마 앞으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미안하다며 돌아서는 그 얼굴에는 죄책감이 가득했으니까.

    선혜는 의심 않고 태준의 말을 믿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태준을 향해 물었다.

    “그 말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전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했으면 될 텐데 굳이 여기까지 온 저의를 물었다.

    태준이 잔잔히 미소지으며 고개를 젓더니 입을 열었다.

    “아뇨.”

    그럼?

    “여기서 자고 가려고 왔죠.”

    선혜의 눈이 커다래졌다. 선혜의 반응을 살피던 태준이 손을 뻗었다.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는가 싶더니 선혜의 어깨를 감싸고 품에 안았다.

    “그런 일 겪었는데 혼자 두고 갈 줄 알았어요?”

    커다란 손이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도닥였다. 위로하는 듯한 손길이었다.

    “많이 무서웠죠.”

    선혜는 습관적으로 괜찮다고 하려다가 말을 바꾸었다.

    “조금.”

    태준이 못 말리겠다는 듯이 웃으며 힘주어 선혜를 끌어안았다.

    “괜찮아요, 이제. 내가 있잖아.”

    태준의 품에 안겨 있는 동안 선혜의 얼굴에 서려 있던 두려움과 긴장이 점차 사라졌다. 그의 품에 더욱 파고드는데 문득 태준이 선혜를 품에서 떼어냈다.

    태준은 선혜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무언가를 생각하듯 진중하게 깊어진 눈빛으로 말이다. 괜히 무안하여 선혜가 물었다.

    “무슨 생각 해요?”

    “그냥…… 너무 예쁘다는 생각?”

    참 이상한 일이다. 그가 말하는 예쁘다는 말은 참 특별했다. 가슴이 기분 좋게 뛴다. 다른 사람이 말할 때는 별 느낌이 없는데 그가 말하면 유난히 부끄럽고 수줍었다.

    슬쩍 눈을 피하는데 그가 얼굴을 고쳐 잡아 들어 올렸다. 저절로 눈이 마주쳤다.

    현관의 센서 등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태준이 입술을 내리고 선혜는 눈을 감는, 바로 그때.

    “거기서 뭐 하세요?”

    느닷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둘은 화들짝 놀라며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반짝 켜진 센서 등 아래 잔뜩 당황한 선혜와 태준의 얼굴을, 수호가 현관문 너머에서 응시하고 있었다.

    “아, 그게, 그러니까…….”

    “수호, 잠옷으로 갈아입을까?”

    당황하여 말을 더듬고, 대답 대신 말을 돌리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수호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새침한 눈이 엄마 아빠를 오갔지만 수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애초부터 궁금하여 물은 게 아니었으니까.

    그냥, 잠깐 되살아난 질투에 방해꾼 심보가 고개를 들었을 뿐이었다.

    *

    태준은 팔을 접어 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옆에서 잠든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수호가 있었고 그 옆에는 선혜가 있었다.

    수호를 보며 태준은 소리 없이 웃고 말았다.

    왜 왔냐고 그래서 여기서 자고 간다 했더니 대뜸 셋이 자자며 수호가 끼어들었다. 아닌 척 굴었지만 작은 얼굴에는 질투가 완연했다. 전에는 난감하기만 한 아이의 질투였는데 이제는 귀엽게만 보인다.

    질투를 하면서도 저에게 등 돌리지 않기 때문인지도.

    수호는 태준을 향해 돌아누워 그의 품 안에서 자고 있었다.

    셋이 한 침대에서 나란히 자는 것. 언젠가 태준이 꿈꾸었던 행복한 상상은 어느덧 현실이 되어 있었다.

    기쁘고 뿌듯하여 이 행복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베개에 머리를 누인 태준은 두 사람 위로 이불을 고쳐 덮어주었다.

    선혜가 그랬다.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마음을 담아, 수호의 이름을 지었다고.

    태준도 속으로 맹세하였다.

    자신 또한 두 사람을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평생을.

    그 다짐을 마음속으로 깊이 새기며 태준은 눈을 감았다.

    ***

    그날 이후로 수상한 남자의 모습은 선혜의 근처에서 보이지 않았다. 잠깐 흔들렸던 일상은 그렇게 다시 원상 복귀가 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상견례 날짜가 잡혔다. 다음 주 주말이었다. 이번 주 주말로 잡으려 했으나 경애의 몸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소식에 일주일 미뤄진 터다.

    그렇게 찾아온 금요일. 선혜는 점심을 먹고 찾아온 쉬는 시간에 휴게실에서 경애와 통화 중이었다.

    “어디가 얼마나 아픈데 그래, 엄마?”

    선혜가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경애를 닦달했다.

    - 그냥 얼마 전에 과음을 했더니 술병이 났어. 별거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니 술을 대체 얼마나 마셨길래. 엄마 술 잘 하지도 않으면서.”

    - 가끔 마시고 그럴 때도 있는 거지. 에휴. 나이 먹으니까 술도 안 받는다, 얘.

    경애가 살짝 장난을 섞어 말했다. 어색하게 떠 있는 경애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선혜가 물었다.

    “엄마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 ……일은, 무슨. 너야말로 요새 별일 없지?

    “……응.”

    모녀는 서로가 서로에게 걱정 끼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물론 둘 다 까맣게 그 사실을 몰랐지만.

    -엄마 바빠서 가 볼게.

    “응. 아픈데 너무 무리하지 말고.”

    -그래. 끊는다.

    경애와의 통화가 끝난 후 선혜는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고개를 들다 정수기 앞에서 율무차를 홀짝거리는 형주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옆에는 성균이 있었고 그 옆에는 태준이 서 있었다.

    “선혜 씨 무지하게 효녀네.”

    형주가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효녀는요.”

    “아주 엄마에 대한 애정이 뚝뚝 떨어지던데, 뭐. 날 추워지는데 어머니한테 보약 한 첩 지어드리지 그래요? 내가 잘 아는 한의원이 하나 있는데 추천 좀 해 줄까?”

    형주의 말에 선혜는 솔깃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형주가 핸드폰을 꺼내 들어 한 가게를 소개해주었다. 한의원을 소개하느라 여념이 없던 형주는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태준이 율무차를 마시며 무섭게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제야 형주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큼큼 헛기침을 한 뒤 선혜에게 떨어졌다.

    “놀래라. 간 떨어지겠다.”

    형주와 성균이 두 사람의 교제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선혜는 의아한 얼굴로 형주를 바라보았다.

    형주가 떨어지자 태준이 눈에서 힘을 풀었다. 형주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남자 질투가 더 무섭다더니.”

    선혜는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휴게실에는 태준과 선혜, 그리고 형주와 성균밖에 없었다.

    성균이 미어캣처럼 경계하는 선혜에게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과장님이랑 저는 알고 있어요. 두 분 만나시는 거.”

    “아아, 네.”

    선혜는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형형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태준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자리 비켜줄까?”

    “그럼 감사하고요.”

    형주가 슬쩍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태준이 답했다.

    형주는 장난스럽게 눈을 흘기다 웃어버렸고 성균은 앞장서서 휴게실을 나섰다. 선혜가 멀어지는 성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그 앞으로 태준이 막아섰다.

    “아주 대놓고 쳐다보십니다?”

    “놀라서 그렇죠. 언제부터 안 거예요?”

    “진작부터 눈치채고 계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선혜가 걱정스럽게 바라보자 태준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요. 저 두 사람은 내가 보증하니까.”

    태준이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게다가 얼마 안 있으면 회사 사람들 다 알 텐데요, 뭐.”

    선혜는 곧바로 그 말뜻을 이해했다. 상견례가 끝나고 식까지 올리게 되면 두 사람의 관계가 회사에 밝혀질 건 자명했다.

    어차피 알게 될 사실이라 생각하니 긴장이 조금 풀어졌다.

    “저기, 선혜 씨. 나 오늘은 수호 데리러 가기 힘들 것 같은데.”

    선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어요. 기획부 회식이 있다면서요.”

    미안한 얼굴로 웃는 태준에게 선혜가 말했다.

    “잘 다녀와요. 술 너무 먹지 말고.”

    술병이 난 경애를 떠올리며 말하자 태준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 한 번 웃은 선혜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이만 가 볼게요.”

    그런데 돌아서는 선혜를 태준이 붙들었다. 어찌할 새도 없이 얼굴이 잡히고 입술이 잠깐 겹쳐졌다 떨어졌다. 선혜가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이따 연락할게요.”

    선혜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황급히 휴게실을 나섰다.

    종종 걸음으로 멀어지는 선혜의 뒷모습을 보던 태준은 웃으며 제 입술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아쉽네.”

    늘 회사에서 만나거나 회사 밖이어도 둘 사이에는 수호가 끼어 있는 상황.

    때문에 스킨십이 쉽지 않았다.

    혈기 왕성한 스물일곱.

    애가 닳은 건 당연지사.

    ‘다음 달에 연차 맞춰보자고 해야겠다.’

    평일에 데이트 좀 하게.

    태준은 기분 좋은 얼굴로 휴게실을 나섰다.

    *

    칼같이 퇴근한 선혜는 수호를 데리고 경애의 가게로 가고 있었다. 때마침 수호가 할머니 가게의 국밥이 먹고 싶다고 말한 터라 밥을 먹으러 가는 중이었다.

    도착하자 손님들로 꽉 채워진 가게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불타는 금요일을 맞이하여 회식을 하러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경애는 그 사이에서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안색이 나빠보였는데 웃으며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고 계산을 하고 있었다.

    아프면 좀 쉬지. 왜 쉬지도 않고.

    속상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이 경애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수호가 엄마 가게 국밥이 먹고 싶다고 그래서.”

    “아이고. 우리 강아지 그랬어? 할머니는 안 보고 싶었어?”

    “할머니도 보고 싶었어요.”

    수호의 말에 경애의 얼굴이 단번에 환해졌다.

    “자리 하나 남거든? 가서 앉아 있어. 국밥 두 그릇 금방 내줄 테니까.”

    “사장님! 여기 주문이요!”

    “네, 가요!”

    손님에게 대답을 한 경애가 얼른 가라며 손짓했다. 선혜와 수호는 빈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았다. 선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픈 낯으로 일하는 경애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뭔가 결심한 얼굴로 수호에게 말했다.

    “수호야. 밥 다 먹고 네가 할머니 모시고 저기 방 안에 좀 들어가 있어.”

    “엄마는?”

    “엄마는 할머니 일손 좀 도와드리다 가려고. 알았지?”

    “응.”

    자신이 권하는 것보다 수호가 권하는 게 더 효과가 클 터였다.

    *

    선혜의 예상대로 수호가 애교 섞어 권하자 경애는 마지못해 방으로 들어갔다. 선혜는 춘희에게 건네 받은 앞치마를 두르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돌돌 말아 단정히 묶은 뒤 본격적으로 가게 일을 돕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등장한 미인 종업원에게 남자들의 시선이 쏠리는 건 당연지사.

    남자들은 선혜를 보며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춘희가 한산해진 틈을 타 짓궂게 선혜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수호 아빠 보면 눈 뒤집어지겠다.”

    선혜는 휴게실에서 눈을 부라리던 태준을 떠올리며 웃고 말았다.

    “아유. 우리 선혜 이렇게 웃는 거 처음 본다. 그 남자가 그렇게 좋아?”

    평소 같았으면 반사적으로 부정했을 텐데. 선혜는 부정하지 못했다.

    “좋은 사람이에요.”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첫눈에 애까지 만들었어?”

    선혜는 민망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언니한테만 살짝 말해 봐. 응? 막 보자마자 ‘저 사람이 내 운명이다!’ 싶었어?”

    “몰라요.”

    선혜는 화제를 돌렸다.

    “근데 우리 엄마는 왜 술을 그렇게 마셨대요? 무슨 일 있었어요?”

    “그냥 나랑 한 잔 걸친다는 게 좀 과해졌어. 방어가 제철이라 아주 살이 탱탱해서 그런지 술이 아주 술술 들어가더라고.”

    춘희도 선한 거짓말을 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편이었다. 선혜는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춘희는 선혜의 옆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느낀 선혜가 돌아보자 퍼뜩 입을 열었다.

    “사장님도 편찮으시고 오늘은 가게 문 일찍 닫을까 하는데 어때?”

    “네. 좋아요.”

    선혜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시간대가 지나가자 손님들이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손님이 둘 뿐이라서 슬슬 마무리를 지으려는 때였다.

    딸랑. 가게 문에 달린 풍경이 흔들렸다. 선혜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어서오세요.”

    가게로 발을 들이던 나이 지긋한 남자가 선혜를 보고 입을 헤 벌렸다.

    “춘희 씨. 이 예쁜 아가씨는 누구야?”

    남자가 누군지 알아본 춘희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번에 경애에게 추근대던 근처 건설현장의 소장이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보아하니 일하는 인부들을 끌고 회식을 하러 온 모양이었다. 이미 1차를 마치고 왔는지 술에 취한 듯 눈빛이 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혜를 뜯어본 그는 곧장 경애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히야. 우리 사장님 따님이신가 보네?”

    춘희가 작게 투덜거렸다.

    “가게 마감하려던 참인데.”

    “마감? 저기 손님들 버젓이 있는데 무슨 마감이야?”

    소장이 하는 말에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무는 사이 그가 인부들을 끌고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말릴 새도 없었다.

    춘희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고 첫눈에 소장의 낌새가 이상함을 눈치챈 선혜도 그다지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여기 육사시미 큰 거 네 개랑 국밥 네 개, 내장탕 네 개 주쇼. 소주도 네 병 주시고.”

    국밥 개수로 보아하니 여덟 명 같은데. 자리에 앉은 건 일곱 명뿐이었다.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소장이 비어 있는 자리를 보고는 뒤를 보며 소리쳤다.

    “어이, 윤 씨! 안 앉고 거기 서서 뭐 해!”

    춘희는 소장의 시선을 따라갔다가 얼굴을 굳히고 말았다.

    “어……어!”

    춘희는 자기도 모르게 삿대질을 하다가 뒤늦게 선혜의 존재를 알아채고는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늦었다.

    “……?”

    선혜는 의아한 얼굴로 춘희를 잠시 돌아보다가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 앞에 서 있는 누군가를 본 순간 눈을 커다랗게 뜬 채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

    “……!”

    그곳에는 석주가 서 있었다.

    이전에 본 적 있는 남루한 차림새.

    전에 주차장에서 본 남자와 같은 옷차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