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이름에 담긴 의미
경애는 멀찍이 서서 그 난장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술이 확 깨버렸다. 대체 저게 뭣들 하는 짓인지.
다짜고짜 남자에게 달려든 춘희가 그의 멱살을 붙들고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한다. 춘희를 뿌리친 남자가 도망가려고 하면 태준이 막아서고 있었다.
‘신 서방은 여기 대체 왜 있는 거야? 그리고 저 남자는 대체 누구고? 춘희는 또 왜 저래?’
궁금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하지만 궁금증을 해소하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저 난장판을 빨리 수습하는 것.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경애는 장바구니를 든 채 낑낑거리며 세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야 춘희야. 너 대체 왜 이래?”
춘희를 말리기 위해 손을 뻗는 때였다. 무작위로 뻗어진 춘희의 손에 남자가 쓰고 있던 모자가 휙 벗겨졌다.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드러나고 남자의 얼굴이 완전히 드러났다. 눈이 마주쳤다.
“……!”
경애는 놀라 춘희를 말리려던 걸 멈추고 말았다. 경애의 양손에서 장바구니가 힘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얼굴이 완전히 드러난 남자는 경애의 얼굴을 보고 돌처럼 굳어버렸다. 남자가 저항을 멈추자 제압하려던 태준과 춘희도 하던 걸 멈추었다.
경애가 남자를 향해 한걸음 다가섰다.
가까이에서 보자 누구인지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너…….”
경애의 반응에 춘희와 태준이 의아한 얼굴로 경애를 쳐다보았다.
경애는 숨 쉬는 것도 잊고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윤석주?”
그새 몰라보게 변해 버린 남자, 석주를.
*
경애의 국밥집.
경애와 석주는 테이블을 하나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춘희는 떨떠름한 얼굴로 물을 서빙하면서 석주를 흘긋거렸다. 석주는 춘희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점잖은 태도로 물을 마셨다.
경애는 그런 석주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히.
물 서빙을 마친 춘희는 경애와 석주가 마주 본 테이블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맞은편에는 태준이 앉아 두 사람 쪽을 응시 중이었다.
“누굴까?”
춘희가 태준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글쎄요.”
경애가 석주를 알아보자마자 누구냐고 물었던 두 사람이다. 하지만 경애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너 잠깐 나 좀 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석주를 끌고 가게로 들어올 뿐이었다.
춘희와 태준에게 저항했던 것이 무색하게 석주는 얌전히 경애의 손에 이끌려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에 단둘이 두기엔 꺼림칙했기에 춘희도 태준도 가게를 뜨지 않고 있었다.
“혹시 말이야. 선혜 아빠 되는 사람일까?”
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은 곧 긍정.
그렇게 생각할 법한 게, 경애가 부른 남자의 성이 선혜와 같았다.
무엇보다도 뿜어내는 분위기가 비슷했다. 비스듬히 내린 시선, 굳게 다물린 입술. 그 외에 짓는 표정이라던가 하는 행동에서 자연히 선혜가 떠오를 정도였다.
미루어 짐작하기로는 선혜는 물론이거니와 경애와도 연락이 끊긴 것 같았는데.
이제 와서 찾아온 이유가 뭘까?
태준은 낡은 석주의 차림새를 가만히 응시하였다. 가게를 두 개나 운영하고 있는 경애와 대기업 계열사에 취직한 선혜의 상황을 떠올리는데 물을 한잔 비운 석주가 눈을 들어 경애를 보았다.
곧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작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춘희와 태준은 귀를 기울였다.
“오랜만이다, 경애야.”
“경애야?”
무심하게 건네진 인사를 비딱하게 쳐내는 경애. 경애의 날카로운 반응에 무언가를 알아차린 석주가 말을 고쳤다.
“……경애 누나.”
춘희와 태준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은 석주와 경애의 대화에 더욱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
.
.
“요즘 누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긴 했었는데. 나이 먹고 스토커 짓이라도 하는 거야?”
석주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빤히 경애를 보고 있던 그의 고개가 스르륵, 아래로 떨어졌다.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
“…….”
“사과할게.”
경애의 눈이 석주의 차림새를 슥 훑었다.
처음에 석주를 보고 많이 놀랐다. 기억 속에 있는 석주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 탓도 있지만 풍채가 꽤 좋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의 석주는 그때에 비하면 많이 마른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의사로 보이지는 않았다.
낡은 옷차림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먼지들. 가게를 오가는 인부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
석주가 물었다.
“잘 지냈지.”
“그래. 그래 보이더라.”
다행이라는 듯, 석주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경애가 입을 열었다.
“너 병원 문 닫았다는 소식은 들어 알고 있었는데.”
경애가 혀를 짧게 찼다.
“꼴이 말이 아니네.”
석주의 입이 일자로 다물려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경애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안녕하시고?”
석주가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돌아가셨어.”
생각지 못했던 소식에 경애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머릿속에 나이가 들었음에도 정정하고 눈빛이 형형하던 석주의 어머니, 명희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허락 못 해!’
바락바락 소리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분이 돌아가셨다니.
별로 좋은 감정이 남아 있는 상대는 아니었지만 통쾌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경애는 조용히 속으로 명희의 명복을 짧게나마 빌어주었다.
하지만 감상에 젖은 것도 잠시뿐.
경애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결혼했었다는 얘기는 들었어.”
경애의 말에 컵에 물을 따르던 석주가 하던 걸 멈추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병원이야 간판이 내려갔으니 알 수 있다 치더라도, 결혼 소식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둘 다 애가 있는 상황이었기에 식도 치르지 않고 혼인 신고를 한 뒤 조용히 합가했었으니까.
“누구한테?”
“선혜한테.”
선혜. 그 이름에 석주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선혜? 선혜가? 아니, 선혜한테 어떻게…….”
답지 않게 잔뜩 동요하는 석주와는 달리 경애는 차분했다.
“미혼모 센터에서 마주쳤었거든. 그 뒤로 내가 거둬서 같이 몇 년 살다가 독립해서 나가긴 했지만 지금도 나랑 연락하면서 지내고 있어.”
석주의 눈이 흔들렸다.
“너 병원 망했다는 얘기도 하고, 결혼했다는 얘기도 하는데.”
“…….”
“왜 갑자기 애를 배서 센터에 오게 되었는지는 죽어도 얘기를 안 해주더라고.”
만약 석주를 만난다면 묻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아무리 사고를 쳤기로서니, 애가 센터에 몸을 의탁할 이유는 없잖아. 네가 있는데.”
입이 마르는지 석주는 컵을 들어 입을 축였다. 그런 그의 손이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도대체 선혜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석주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눈꺼풀이 닫히고 올라가는 동안 과거의 긴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경애가 선혜를 맡기고 떠난 뒤 한참 동안 방황하던 때부터 시작하여, 어머니의 설득을 이기지 못해 결혼을 하고, 그러다 의료사고가 크게 대두되어 병원이 부도가 나고, 어머니의 독단적인 결정에 반박하다 지쳐 결국엔 선혜를 억지로 약혼시키기에 이르러, 마지막으로는 선혜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뱄다는 폭탄 발언을 던지고 짐을 싸 들고 떠난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자신을 탓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죄인처럼 석주의 고개가 아래로 떨구어졌다.
굳게 닫혀 있던 석주의 입술이 힘없이 열렸다.
“내가 선혜한테 몹쓸 짓을 했어.”
그렇게 경애와 태준, 그리고 춘희까지 석주의 입을 통해 과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막연하게나마 짐작했었던.
한편으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이 석주의 입에서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
.
.
석주는 포장하지 않았다.
핑계나 변명도 대지 않았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서술되는 소설처럼, 주관을 섞지 않고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춘희는 경악했고, 태준의 얼굴은 굳어갔으며,
경애는.
“…….”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렇게 된 거야.”
석주의 말이 끝난 뒤 찾아온 침묵은 겨울이 이르게 찾아오기라도 한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차갑게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서 아무도 말 한마디, 탄식 하나 흘려보내지 못했다.
그 침묵을 깬 건 의자가 바닥을 미는 쇳소리였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춘희가 움찔 어깨를 떨었고 태준은 자리에서 일어난 경애의 뒷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꾹 쥔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석주가 막 고개를 들어 경애를 보려 할 때였다. 경애가 물병을 손으로 쥐더니만 뚜껑을 열고, 그대로 석주에게 휘둘렀다.
물컵과는 비교도 안 될 물의 양에 철썩거리는 소리가 커다랗게 났다. 쫄딱 젖은 석주의 고개는 맞은 쪽의 반대편으로 돌아가 있기까지 했다.
경애의 손에서 물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맥없이 떨어진 물병에 고여 있던 물이 흘러나와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이루었다.
“네가.”
잔뜩 격앙된 경애의 목소리는.
“네가 그러고도 아빠야……?”
떨리고 있었다.
“네가 어떻게, 아빠라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식을, 자기 자식을 돈 몇 푼에 팔아넘기듯이 그렇게……!”
믿기 힘든 진실을 경애는 완전히 입에 담을 수조차 없었다.
“내가 너한테 선혜 맡길 때 네가 뭐라 그랬니.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 아빠로서 책임을 다 하겠다고. 그러니까 걱정 말라고! 그런데 어떻게 이런……!”
화를 이기지 못하고 소리치는 경애를 바라보는 석주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무어라 말을 하려던 그는 결국 말을 꺼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여버리고 말았다.
“나가.”
“…….”
“당장 나가라고!”
석주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금 모자를 눌러 쓴 그가 돌아서기 전에 작게 말했다.
“……미안.”
그러고는 가게를 나섰다.
석주가 가게를 나간 뒤 경애는 제 가슴을 붙잡고 그대로 무너져 주저 앉았다.
“어머, 사장님!”
놀란 춘희와 태준이 다가와 경애를 붙잡았다. 경애는 주먹으로 제 가슴을 탕탕 치고 있었다.
“내가 나쁜 년이야, 내가…….”
바닥에 고인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눈물이 경애의 얼굴을 흠뻑 적시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선혜야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너무너무 미안해…….”
경애의 한 맺힌 흐느낌은 꽤 오래도록 가게를 채웠다.
*
석주가 나간 뒤 경애는 혼자 소주 두 병을 깠다.
자작하며 술을 들이켜는 경애의 곁을 춘희와 태준은 경애가 취할 때까지 지켜주었다.
춘희의 안내에 따라 고주망태가 된 경애를 업어서 집에다가 데려다 주고 내려오는 언덕길.
“나 참. 뭐 그딴 부모 같지도 않은…….”
춘희는 헛웃음을 치다 이를 갈았다.
“아니, 우리 사장님 그딴 식으로 버리고, 자기 자식까지 팔아 넘긴 작자가 왜 이제 와서 가게 근처에 얼쩡거리는 건데?”
“모르죠, 저야.”
“모르긴 뭘 몰라. 뻔하지. 아까 그 아저씨 꼬라지 못 봤어? 돈 보고 붙은 거지, 뭐.”
춘희가 혀를 끌끌 차다가 눈을 형형하게 빛냈다.
“진짜 다시 한번 나타나기만 해 봐라. 내가 아주 요절을 내버릴 테니까.”
굳은 다짐을 세우던 춘희를 흘긋거리던 태준이 물었다.
“댁이 어디세요? 모셔다 드릴게요.”
“무슨 소리야? 내가 그쪽 저 아래까지 데려다 주는 길이었는데?”
태준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춘희가 말했다.
“사장님 혼자 저렇게 둘 순 없잖아. 내가 같이 있다가 내일 일어나시면 해장국이라도 끓여드려야지.”
일개 직원과 사장으로는 보이지 않는 돈독한 충심이었다. 아까 석주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떠올리면 한편으로는 듬직하기도 했다.
“집이 어느 쪽이야. 이쪽? 저쪽?”
큰길에 다다라 춘희가 묻자 태준은 고개를 돌려 춘희가 말한 ‘저쪽’을 지그시 응시하였다. 그쪽은 자신의 집이 있는 쪽이었다. 그리고 ‘이쪽’은.
“이쪽이요.”
선혜의 집이 있는 곳.
춘희의 손 인사를 받으며 태준은 택시에 올라 탔다. 야경이 스쳐지나가는 차창 밖을 태준은 가만히 응시하였다.
‘도망쳤어요.’
‘…….’
‘도망쳐 온 거예요, 나.’
바라보는 건 창밖 풍경인데 떠오르는 건 선혜다.
‘애 이름은 왜 수호예요?’
수호의 이름에 대해 물었을 때 선혜는 이렇게 대답했었지.
‘나는…….’
‘…….’
‘지켜주고 싶었거든요.’
그게 무슨 뜻인지 의아했었는데. 이젠 알겠다.
선혜의 아버지란 사람이 고해성사 보듯 털어놓은 옛이야기와 술 취해 토해 내던 경애의 이야기가 퍼즐처럼 맞춰진 덕분이다.
돈 때문에 자신을 팔아넘기듯 약혼시킨 아버지. 돈 때문에 자신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던 엄마.
그런 자신의 부모님과 다르게 아이를 책임지겠다는 그 굳은 의지가 아이의 이름으로 발현된 거였다니.
“아저씨.”
생각을 마친 태준이 기사를 불렀다.
“조금만 빨리 가 주세요.”
태준의 요청에 따라 택시가 빠르게 선혜의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