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만난 애 아빠-62화 (62/109)

#62. 수호홀릭

고급 중식당의 한 룸. 태준과 선혜 그리고 수호는 나란히 앉아 시연과 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각에 다다르자 선혜는 수호의 차림새를 한 번 더 점검했다. 살짝 비뚤어진 나비넥타이를 한번 매만져 주고, 재킷에 묻은 자잘한 먼지들을 손으로 털어주었다.

“엄마, 나 진짜 괜찮아?”

선혜가 미소 지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근데 사람들이 왜 자꾸 쳐다봐?”

아파트를 나서고, 중식당에 들어서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킨 수호였다.

그럴밖에. 이렇게 차려입은 꼬마 신사를 보는 건 이례적인 일일 터였다.

“우리 수호가 너무너무 멋있어서 그래.”

“진짜?”

“응. 진짜.”

선혜의 말을 마냥 신뢰할 수 없는지 반대편에 앉아 있는 태준을 돌아보는 수호.

턱을 괴고 수호를 한참 바라보고 있던 태준은 그런 수호에게 엄지를 척하니 들어 올렸다. 아빠의 동의에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지 표정이 조금 풀어지는 수호다.

수호는 문득 벽에 걸린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각은 열두 시 반. 지금은 오 분 전.

태준을 힐끔 쳐다본 수호가 슬쩍 의자에서 내려서자 선혜가 물었다.

“어디 가게?”

“화장실.”

“엄마랑 같이 갈까?”

“아냐. 혼자 갈 수 있어. 오면서 화장실 어딘지 봤거든.”

“그래도.”

선혜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태준이 끼어들었다.

“얼른 다녀와야 해?”

수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룸을 나섰다. 걱정스럽게 문을 기웃거리던 선혜는 손을 잡아 오는 태준의 손길에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긴장했나 봐요? 손에 땀 찬 것 좀 봐.”

땀이 찼다는 말에 손을 빼려 했지만, 태준은 오히려 깍지까지 꼈다. 민망함과 안도가 동시에 들었다.

“조금요.”

자신과는 달리 여유로워 보이는 태준의 모습을 보며 선혜가 물었다.

“태준 씨는 긴장 안 돼요?”

“음. 조금?”

아닌 것 같은데.

선혜는 빤히 태준의 얼굴을 응시했고 태준은 피식 웃으며 선혜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슬쩍 선혜 쪽으로 상체를 기울인 태준이 작게 속삭였다.

“오늘 너무 예뻐요.”

예쁘다는 말에 선혜의 얼굴이 빨개졌다.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태준의 눈빛이 너무 달고 따듯했다. 말릴 새도 없이 태준의 얼굴이 다가왔다.

더한 것도 한 적 있으면서 괜히 가슴이 꽉 조여들었다. 입술로 다가오는 입술을 바라보며 그의 손을 꼭 잡는데 살짝 비껴간 입술이 닿은 곳은 뺨이었다.

“입술에 하면 번질 것 같아서.”

기대와 달라 맥이 빠져버렸다. 태준이 얄미워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데 그가 피식 웃었다. 새침하게 그를 노려보며 입술이 닿은 뺨을 손등으로 내리누르는 때였다.

똑똑.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태준이 선혜를 향해 기울였던 몸을 떼고 손을 놓아주었다.

선혜는 자세를 바로잡고 긴장 어린 얼굴로 문 쪽을 바라보았다.

마른 침이 꿀꺽 넘어가고 곧 문이 열렸다.

열린 문 너머에는 안내를 맡은 식당 직원과 나란히 서 있는 시연과 현철이 있었다.

선혜와 태준은 두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준과 가벼운 눈짓으로 인사를 주고받은 시연과 현철의 눈동자가 선혜를 향했다.

맞잡은 선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선혜는 허리를 숙여 시연과 현철에게 인사했고 시연과 현철도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받았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가 피어오르는 와중 시연과 현철이 다가와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시연이 선혜와 태준 사이의 빈자리를 보며 물었다.

“애는?”

“잠깐 화장실 갔어요.”

태준이 웃으며 대답한 뒤 정식으로 선혜를 부모님께 소개했다.

“여기는 저랑 만나고 있는 윤선혜 씨에요.”

“안녕하세요. 윤선혜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

신사적인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네는 현철과는 달리, 시연은 선혜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마주했던 태연과 닮은 눈빛이었다.

하나하나 뜯어보는 눈빛. 선혜는 긴장으로 두 손을 꽉 쥔 채 그 눈빛을 견디고 있었다.

한편 태준은 셋의 눈치를 보며 테이블 밑에서 몰래 핸드폰을 꺼냈다. 메시지 창을 켜서 미리 복사해 두었던 메시지를 붙여넣기 한 뒤 수호에게 보냈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태준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런 태준의 눈이 비장하게 빛나고 있었다.

*

중식당 화장실.

수호는 세면대 앞에 서 있었다. 아이 혼자 화장실에서 뭐 하나 싶어 오고 가는 직원들과 손님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빙 전후로 손을 씻느라 화장실을 두 번째 드나드는 직원 하나가 수호에게 물었다.

“너 여기서 뭐 하니? 누구 기다려?”

“아빠요.”

“아빠?”

보아하니 꼬치꼬치 이것저것 캐묻게 생겼다. 수호는 고민하다가 닫혀 있는 화장실 칸 하나를 손가락으로 척하니 가리켰다.

“아빠 저기서 볼일 보고 계시거든요.”

“아…… 그렇구나.”

어색한 표정을 지은 직원이 문 쪽을 힐끔거리다가 화장실을 나갔다. 수호는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연락은 언제 오는 거야.”

툴툴거리며 바라본 메시지 창에는 어젯밤 태준과 주고받은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약속 시각 오 분 전에 화장실 핑계 대고 잠깐 나가 있어. 그리고 아빠가 연락하면, 그때 들어와.]

[왜요?]

[원래 주인공은 늦게 나타나는 법이거든.]

아리송한 내용으로 끝나 있는 메시지. 뭔가 깊은 뜻이 숨어 있겠거니 하며 수호는 더 묻지 않고 넘긴 뒤 태준이 하라는 대로 했다.

그나저나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려 했다. 배가 고파왔기 때문에. 짜증이 조금씩 치밀어 아니 꼽게 메시지 창을 바라보는데, 띠링-. 태준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와라. 오버.]

“이게 뭐람.”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린 수호는 서둘러 화장실을 나섰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룸으로 거침없이 나아가기 시작했다.

*

자리에 앉은 시연은 뚫어지게 선혜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색하지 않고 있었지만, 시연은 선혜를 보고 꽤 놀라고 있었다. 그건 소문으로만 들었던 선혜의 얼굴을 처음 보는 현철도 마찬가지.

소문이 빙산의 일각으로 느껴졌다. 그만큼 화려하고 독보적인 외모였다. 나이가 서른이라고 했는데 태준과 비슷한 또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애 엄마로는 더더욱 보이지 않았고.

현철과 같은 생각을 하며 뚫어지게 선혜를 바라보던 시연이 찬찬히 입을 열었다.

“태준이한테 어제 얘기는 들었어요.”

도무지 믿기지 않는 현실을 내뱉는 혀가 뻣뻣했다.

“태준이 아이를, 낳아서 길렀다고요.”

“네.”

“여자 혼자 힘들었겠네.”

옆에 있던 현철이 나직하게 말했다.

선혜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힘들었지만 괜찮았어요.”

너무 포장하지 말고, 자신답게. 조금은 솔직하게.

그러면서도 혹여나 어른들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시연은 물을 마시면서도 선혜를 살피고 있었다. 선혜가 느낀 것처럼 시연은 선혜를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차분한 느낌. 누군가의 등골을 빼먹을 정도로 못돼 보이는 관상은 아니었으나 다소 음울해 보이는 인상이 마음에 걸렸다.

가정환경이 별로인가? 그런 생각이 들며 탐탁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려는 때였다.

드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무심결에 뒤를 돌아본 시연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

의자 등받이를 손으로 붙든 시연의 몸이 저절로 반쯤 돌아갔다. 입이 반쯤 벌어졌다.

문 앞에는 어릴 적 태준과 똑같이 생긴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시연이 못내 아쉬워했던 그때 그 모습을 빼다 박은 모습으로.

왁스를 발라 넘긴 머리에 턱시도 차림. 체크 무늬가 자잘하게 들어간 멜빵에, 무엇보다 목에서 달랑거리는 빨간 나비넥타이가 시선을 잡아끈다.

놀라기는 현철도 마찬가지. 때마침 물을 한 모금 먹고 있던 그는 사레가 걸려 콜록거리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낯선 두 사람을 차례로 번갈아 보던 수호는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넸다.

어렸던 태준과 목소리까지 비슷함에 시연과 현철은 두 번 놀라고 말았다. 시연은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입가를 가리기까지 했다.

잔뜩 동요하는 두 사람과 달리 수호는 차분한 얼굴로 척척 걸어와 자리에 앉았다. 수호의 동선을 따라 시연과 현철의 눈동자도 움직이고 있었다.

수호의 옆에서는 태준이 시연과 현철의 반응을 살피며 슬쩍 미소 짓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수호를 두 사람에게 소개했다.

“여기는 윤수호.”

미소가 짙어진 얼굴로 덧붙였다.

“우리 아들이에요.”

*

시연의 시선은 이제 선혜가 아니라 수호에게 못 박혀 있었다.

시킨 코스 요리가 테이블에 나오고 반쯤 비워져 가는 이 순간까지 지독할 정도로 집요했다. 시연이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으려다 떨어뜨린 음식을 현철이 몇 번이나 주워주었는지 모른다.

신기했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신기하고 신기했다.

씨도둑질은 못 한다고 하고, 피는 못 속인다는 옛말이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똑 닮을 수가 있을까.

다 커서 애교나 귀염성이 퇴색된 자식들을 보면 가끔 어린 그 시절로 한 번쯤은 돌아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겨나곤 했다. 지금보다 손이 더 가긴 해도 그때의 순진함과 귀염성이 그리울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바람을 실현한 존재가 눈앞에 있었다.

문득 수호가 고개 들어 시연을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는 사실 하나로 시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잠깐 시연을 스친 시선은 시연의 앞에 놓인 칠리새우에 머물러 있었다. 뒤늦게 수호의 시선을 따라간 시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줄까?”

“네.”

시연이 손을 내밀자 수호가 야무지게 앞접시를 내밀었다. 손끝만 닿은 아이의 따듯함에 시연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칠리새우를 넘치도록 앞접시에 담아준 시연이 수호에게 접시를 내밀었다. 접시를 받아들며 수호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기도 하지.

시연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손주는 생김새뿐만 아니라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어른들을 채근하지 않는 조숙함도, 식사 예절도, 그냥, 손짓 하나, 눈짓 하나 전부다. 성격은 엄마 쪽을 닮았는지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가 닮아 있었다.

“가정교육을 참 잘 시켰나 봐요.”

음식을 먹던 선혜가 눈을 들어 시연을 보았다. 아까와는 다르게 시연이 웃음 띤 얼굴로 선혜를 보고 있었다.

“애가 예의도 바르고 참 착해.”

황망함에 선혜가 어찌할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시연은 추억에 젖은 눈으로 수호를 보며 옛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태준이는 저 나이 때 밥 먹으면 입에 다 묻혀서 휴지로 입 닦아주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식탐도 얼마나 셌는지 아주 형 것도 누나 것도 다 제 것이라고 우기고…….”

“엄마도 참, 언제 적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민망해진 태준이 시연의 말을 가로막았다. 현철이 웃고, 선혜 또한 귓불을 밝히며 제 눈치를 보는 태준을 보며 웃음 지었다.

식사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식탁 위에 내려앉았다. 시연도 현철도 수호를 보며 연신 웃고 있었다. 그냥 밥만 먹고 있을 뿐인데 잘 먹는 모습이 참 예쁘다면서.

낯선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울 법한데도 수호는 싫은 내색 한번 없었다. 평소였으면 저렇게 낯선 사람들 앞에서 밥을 잘 먹지도 못했을 텐데.

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 지어지고 디저트가 나왔다. 시연과 현철은 자신의 디저트마저 수호에게 양보해 주었고 수호는 넙죽 받아먹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시연과 현철에게 각각 한 번씩 건네면서.

조금 서툰 예의에 어른들이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

식사는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에서 끝이 났다. 룸을 나서는 시연과 현철의 얼굴 위엔 아쉬움이 한가득하였다. 주차된 차로 향하는 시연의 발걸음이 평소보다 훨씬 느렸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차로 다가간 시연과 현철에게 선혜가 다소곳하게 인사를 건넸다. 어느덧 풀어진 얼굴로 현철이 고개를 끄덕였고 시연은 아까와는 다른 눈으로 선혜를 빤히 쳐다보았다.

“안녕히 가세요.”

수호가 명랑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자 현철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조수석에 타려던 시연은 멈칫했다.

문 너머로 수호를 빤히 쳐다보던 시연이 차로 들어가기는커녕 밖으로 나오자 현철이 얼떨떨한 얼굴로 뒷걸음질을 쳤다.

시연은 현철을 지나고 선혜를 지나서 수호 앞에 섰다. 무릎을 굽히고 앉아 수호와 눈을 마주친 시연이 가방 속 지갑을 뒤적거려 수표 한 장을 꺼냈다. 일곱 살짜리에게 주는 용돈치고 큰 액수였다.

“수호야. 이걸로 맛있는 거 사 먹어.”

수표에 적힌 액수를 보고 선혜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말리려는 선혜를 태준이 손을 잡으며 막았다.

수호는 수표를 잡고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그러더니 수줍게 웃으며 덧붙이기를.

“할머니.”

할머니. 그 호칭을 처음 들은 것도 아닌데 가슴 속에서 뭔가 팡 터져나갔다.

시연은 수호의 뺨을 조심스럽게 손바닥으로 어루만지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호에게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던 시연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선혜의 앞이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 긴장하며 쳐다보는데 손이 잡혔다. 시연의 주름진 손이 선혜의 손을 다정하게 움켜잡고 있었다.

선혜의 손은 거칠었다.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일까지 하느라 손이 고울 리 없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까칠함에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시연이 선혜를 바라보았다.

“혼자 애 키우느라고 고생 많았다.”

말을 놓았지만 무례하다기보다는 친밀함이 더욱 느껴졌다.

“너무 잘 키웠어. 기특해. 너무너무.”

시연을 바라보는 선혜의 눈이 떨려왔다.

“다음에는 태준이랑 수호 데리고 본가에 놀러와. 가족들이랑 한 달에 한 번씩 다 같이 모여서 식사하는 자리가 있거든. 가족들하고 인사도 하고 그러자.”

목이 메어와 선혜가 가까스로 대답했다.

“네, 어머니.”

시연은 한참을 선혜의 손을 잡고 있다가 놓아주었다.

차를 타기 직전 시연이 말했다.

“상견례 날은 알아서 잡고. 시간 맞출 테니까.”

곧 현철과 시연을 태운 차가 멀어졌다. 선혜는 차가 사라질 때까지 자리에 서 있다가 시연이 잡아준 손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따듯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아니, 기대도 안 했던 호의에 가슴이 자꾸만 벅차올랐다.

“거봐요. 내가 말했죠?”

옆에서 태준이 말했다.

“다 괜찮을 거라고.”

선혜가 태준을 향해 환하게 미소짓는 때였다.

“엄마, 근데 이걸로 돈가스 몇 번 먹을 수 있어?”

수호가 수표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선혜와 태준은 소리 내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화창한 가을 햇살이 세 사람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

한편.

“그거, 진짜 다 사려고?”

현철이 운전을 하면서 걱정스럽게 옆을 힐끗거렸다. 시연은 핸드폰으로 아동복 쇼핑몰에 들어가 눈에 띄는 대로 장바구니에 쓸어 담고 있었다. 죄다 정장과 구두, 넥타이, 멜빵 등이었다.

“몇 번 입지도 못할 거…….”

“한눈팔지 말고 운전에 집중하시죠. 회장님.”

시연의 말에 현철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재차 물었다.

“애 옷 사이즈는 알고?”

거침없이 주문 버튼을 누르며 시연이 말했다.

“척 보면 알죠. 아까 마주 앉으면서 키도 대충 봤는데.”

“허허허…….”

열정적인 시연의 모습에 현철은 그저 헛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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