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만난 애 아빠-51화 (51/109)

#51. 아빠가 간다.

몇 시간 전.

태준이 회사로 돌아가고 난 뒤 선혜는 짧게 배웅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왔다. 느릿한 손길로 태준의 흔적을 하나하나 치운 뒤 병실 간이 테이블 앞에 앉아 그가 주고 간 커피를 아쉬운 얼굴로 홀짝거리는 때였다.

“엄마.”

부르는 소리에 선혜는 고개를 돌렸다.

“엄마는 다른 애가 먹던 수저로 뭐 먹을 수 있어?”

갑자기 이런 걸 왜 묻나 싶었지만, 답을 요구하는 빤한 눈빛에 선혜는 곧장 답을 내어놓았다.

“당연히 어렵겠지. 찝찝하니까.”

“그럼 내가 먹던 건?”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답이 나왔다.

“네가 먹던 건 상관없지.”

“왜?”

“왜긴. 수호 너는 엄마 아들이잖아. 자식 먹던 수저가 뭐가 더럽겠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을 마친 선혜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근데 갑자기 그런 걸 왜 물어?”

“……그냥.”

뜸을 들이다 하는 대답에 선혜가 고개를 기울여 수호를 빤히 쳐다보았다.

수호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옆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마침 로봇이 있었다. 손을 뻗어 로봇을 잡아다가 제 무릎 위에 올려놓은 수호의 눈빛이 심란했다.

괜히 로봇의 팔을 휘적휘적 움직이는 수호의 모습을 아리송한 얼굴로 바라보던 선혜가 무언가를 물으려는 찰나였다.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고 의사를 비롯한 의료진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인상 좋은 의사가 활짝 웃으며 전한 소식은 수호의 퇴원 소식이었다.

*

경애가 병실에 들른 것은 느지막한 저녁 무렵이었다. 선혜가 퇴원 준비하는 것을 돕던 경애는 벽에 걸린 시계와 닫힌 병실 문을 계속 연달아 쳐다보았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새. 아직 아홉 시도 되지 않은 시각임에도 잠이 든 수호를 흘끔 쳐다본 경애가 속삭이듯 선혜에게 물었다.

“신 서방은 오늘 좀 늦네?”

짐 정리를 어느 정도 끝내 놓은 선혜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에는 못 온대.”

눈을 동그랗게 뜬 경애가 선혜의 옆에 다가와 앉으며 물었다.

“아니, 왜?”

“부서 회식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아까 점심에 들렀다 갔어.”

“진짜?”

반문하는 목소리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병실 구석에 곱게 싸여 있는 반찬통을 바라보는 눈에도 아쉬움이 묻어나 있었다.

“신 서방 주려고 싸 왔는데.”

“내일 갖다 주던가 하지, 뭐.”

눈을 가늘게 뜨고 선혜의 얼굴을 쳐다보던 경애가 물었다.

“너, 벌써 신 서방 집 오가고 그러나 보다?”

속이 뜨끔한 선혜가 물을 마시다가 콜록거렸다. 얼굴이 빨개져서 잠든 수호의 눈치를 보는 모양새를 가만히 지켜보던 경애가 피식 웃었다.

“애 눈치 보이고 어쩌고 하더니만. 할 거 다 하고 있었네, 이놈의 기집애.”

“딱 한 번 갔거든? 비가 와서 옷이 젖는 바람에 옷 말리러.”

경애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허이고, 그러셔?”

“진짜거든?”

미심쩍게 바라보는 경애에게 톡 쏘아붙인 선혜가 시선을 피하며 물을 홀짝거렸다.

“벌써 둘째 들어선 거 아냐?”

풉. 결국, 선혜는 물을 뿜고 말았다.

“엄마, 좀!”

언성을 높이던 선혜는 반사적으로 수호 쪽을 휙 돌아보았다. 다행히 수호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안도의 숨을 내쉬던 선혜가 경애를 앙칼지게 노려보았다.

“애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경애가 목을 빼고 수호 쪽을 보다가 키득키득 웃었다.

선혜는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런 선혜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경애가 문득 물었다.

“그래서. 신 서방이랑은 언제쯤 합칠 예정이야?”

“……결혼 말하는 거야?”

“그래. 아직 얘기 없어?”

“그런 얘기하기엔 아직 좀.”

“뭐가 아직이야?”

보채는 투로 성화를 부리는 경애다. 선혜는 수호 쪽을 힐끔거리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수호한테 태준 씨가 아빠라는 사실을 얘기해야 하는데…….”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고 선혜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경애가 이해 안 된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냥 확 말해 버려. 뭐가 문제야? 애가 싫어하는 이유가 질투라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원래 아들은 아빠 질투하고 그러는 거라더라. 딸이 엄마 질투하는 것처럼. 시간 지나면 다 흐려질 감정에 왜 그렇게 매달려?”

“사실은 엄마.”

선혜가 씁쓸한 얼굴로 경애를 돌아보았다.

“태준 씨가 어쩌다가, 수호한테 자기가 아빠라는 사실을 밝힌 적이 있대.”

경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근데 수호가 그러더라고.”

오래지 않은 과거를 회상하며 선혜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가 왜 자기 아빠냐고. 아저씨 같은 아빠는 싫다고.”

그때 수호와 태준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 말을 듣는 태준도, 그리고 수호도 상처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애 마음이 태준 씨한테 풀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야.”

“그래도 전보다는 많이 좋아진 거 아냐?”

“아직은 완전히 풀렸다는 확신이 안 들어. 괜히 섣불리 말했다가 또 둘 다 상처받으면 어떡해.”

수호에게도, 태준에게도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둘 다 선혜에게는 너무 소중한 사람이었으니까.

선혜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경애는 생각에 빠진 얼굴로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가족끼리 완전히 상처를 주고받지 않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경애의 물음에 선혜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경애를 바라보았다.

“남이랑은 몰라도 가족들끼리는 원래 서로 자잘한 상처를 주고받고 살아.”

경애는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

“남이면 그냥 모른 척하고 살면 돼. 손절이든 절연이든 하면 끝이거든. 하지만 가족은,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 사과하고 용서하면서 더욱 돈독해질 수 있는 거야. 가족이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거지.”

선혜는 들었고 경애는 말했다.

“수호가 신 서방을 계속 엄마랑 사귀는 아저씨라고만 알고 있으면 오히려 애 마음이 풀어지는 데 장애물이 될 수도 있어. 어찌 됐든 남이니까. 하지만 아빠라는 걸 알게 된다면.”

“…….”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는 경애의 눈에는 확신의 빛이 어려 있었다.

“오히려 애 마음을 여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엄마는 생각해.”

경애가 선혜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덮고는 타이르듯 살며시 두드렸다.

“그러니까 신 서방이랑 잘 얘기해 봐.”

“……알았어.”

선혜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수호를 보았을 때, 허리 아래까지 내려와 있는 이불이 눈에 들어왔다.

이불을 덮어 주기 위해 일어선 선혜가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침대 곁에 서서 이불에 손을 뻗으려던 선혜는 그대로 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

“…….”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수호가 눈을 뜨고 있었다.

천장을 바라보던 수호의 눈이 천천히 선혜에게로 향했다.

선혜가 떨리는 입술을 달싹였다.

“수호, 안 자고 있었어?”

사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수호가, 다 들었다는 사실을.

“응, 엄마.”

그리고 예상보다 차분한 아이의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수호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는 걸.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때였다.

“엄마.”

수호가 불렀다.

그리고 묻기를.

“태준 아저씨가…… 진짜 우리 아빠야?”

아이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진실을 말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왜 그 모든 순간이 부질없다 느껴지는 건지.

선혜는 체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이의 눈을 바라보면서.

“응.”

‘근데 아까 그 아저씨는 누구야?’

오래전, 답하지 못했던 질문.

메아리처럼 가슴 속에서만 맴돌던 그 질문의 답을.

“네 아빠야, 수호야.”

드디어 했다.

*

경애는 수호와 선혜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아무래도 모자 사이에 깊은 이야기가 오갈 듯싶은데 자신이 없는 게 더 나을 것 같았으니까.

선혜가 드디어 말했다, 수호에게.

그 모습을 보며 자기가 다 후련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과거가 생각이 났다.

우연한 석주와의 재회. 선혜를 석주에게 소개시켜 주던 그 순간. 준비되지 않은 상황과 막연한 믿음에 기대었던 폭로가 얼마나 무모한지, 경애도 모르지 않는다.

다만 선혜에게 말하라 설득한 것은, 그때와 상황이 비슷하면서도 다르기 때문이었다.

태준은 석주와 달리 소심하지 않고 적극적이었고, 두려움 또한 적었다.

그러니 수호에게 상처 주는 아버지가 되지는 않으리라.

석주와는 다르게 말이다.

걱정을 애써 털어내고 가뿐하게 걸어가는 때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병원 입구로 향하던 경애의 발걸음이 어느 순간 우뚝 멈췄다. 바로 뒤를 돌아보려다가 경애는 몇 걸음 더 걸어갔다. 그러다 부지불식간에 휙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누군가가 시야에 포착되었다.

병원 모퉁이에 숨어드는 검은 그림자.

경애는 서둘러 발걸음을 그쪽으로 옮겼다. 거의 뛰다시피 다가갔을 때 묵직한 철문이 쿵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근처에는 비상구가 하나 있었다. 저기다 싶어 다가가 닫힌 철문을 활짝 열자 타다닥 빠르게 내려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경애가 쫓아가기도 전에 사라지는 발소리.

경애는 잠깐이나마 봤던 어두운 실루엣을 떠올렸다.

모자를 쓴, 남루하지 않은 남자.

전과 달리 등골이 쎄한 느낌.

좋지 않은 느낌에 경애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구야, 대체.’

경애는 찝찝하여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눈치껏 자리를 비켜준 경애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선혜와 수호의 사이에는 침묵만이 맴돌았다.

수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선혜 또한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무거운 분위기를 깬 건, 선혜였다.

“엄마가 미안해, 수호야.”

수호가 고개를 돌려 선혜를 바라보았다.

“뭐가 미안한데?”

선혜도 수호를 마주 보았다.

“진작 말 해줬어야 했는데 말 못 해줘서.”

수호는 말이 없었고 선혜는 고개를 숙이고는 맞잡은 두 손을 꼼지락거렸다.

“엄마가 미안.”

“안 미안해도 돼.”

수호의 말에 선혜가 고개를 들어 수호를 쳐다보았다.

“엄마가 밉지 않아?”

“엄마가 왜 미워?”

아연한 얼굴로 쳐다보는 선혜에게 수호가 말했다.

“안 미워, 하나도.”

선혜는 입을 꾹 다물었고 수호는 무릎을 세워 끌어안고 무릎 위에 턱을 기댔다. 그런 수호의 앞에는 로봇이 있었다.

뻗어진 수호의 손끝이 로봇의 얼굴을 툭 건드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혜가 조심스러운 투로 물었다.

“그럼…… 아빠는?”

수호는 살짝 미간을 좁힐 뿐 말이 없었다. 심란한 얼굴로 빤히 로봇만 쳐다볼 뿐이다. 그게 태준이라도 되는 양.

“아빠가…… 아직도 싫어?”

“……몰라.”

가슴이 괜히 쿵 했다. 역시 너무 섣불리 알게 한 탓일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수호를 뚫어지게 보는 때였다.

“엄마, 나 졸려.”

문득 수호가 말했다.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덧 잘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다. 선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수호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고는 자신도 침대 옆 소파에 길게 누웠다.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던 선혜의 입 밖으로 한숨이 새어 나오는 때였다.

지잉-. 고요함 속에서 핸드폰이 홀로 진동하였다. 꺼내 확인해 보니 모르는 새에 태준에게서는 메시지가 여러 개가 와 있었다.

[1차는 한우집. 분위기로 봐서는 술 엄청나게 먹을 듯요.]

[2차는 노래방. 한 부장님 너무 음치야…… 귀가 괴로워…….]

[3차도 간대요. 탈주하고 싶다.]

여러 개를 보내도 도통 답이 없자 마무리는 잘 자라는 밤 인사였다.

[잘 자요, 선혜 씨. 좋은 꿈 꾸고.]

선혜는 오래도록 그 메시지를 응시했다.

수호가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는 해야겠는데. 차마 손가락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고.

저번에 태준이 자신이 아버지라고 밝혔을 때 같이 상의하고 얘기하자고 나름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자신이 저버렸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몰려왔다.

답장을 못 하고 끙끙거리던 선혜는 결국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할 말을 정리한 뒤 내일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선혜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질끈 감았다.

잠이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긴 병간호에 지친 탓일까. 의외로 선혜는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

수호는 새벽녘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깨도 날이 어둡다는 사실에 어린 마음에 놀라는 중이었다. 일곱 살 인생을 통틀어 이렇게 잠을 설치기는 또 처음이었다.

수호는 곤히 잠든 선혜를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벽에 기대어 한참을 앉아 있다가 무언가 생각 난 얼굴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어젯밤 태준에게서 온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잘 자, 수호야. 아프지 말고, 좋은 꿈 꾸고.]

수호는 메시지를 천천히 손으로 올려보았다. 스크롤이 올라가자 과거에 태준과 자신이 주고받았던 메시지들이 뜬다.

매번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메시지에는 정성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자신의 답은 ‘네.’뿐. 그 한 글자를 넣는데도 성의라고는 없었다. 매번 귀찮은 얼굴로 손가락을 움직였을 뿐.

수호는 아이답지 않게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아까 저녁 무렵 엄마와 했던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엄마가 밉지 않아?’

‘엄마가 왜 미워?’

엄마가 미울 리 없다.

‘그럼…… 아빠는?’

‘아빠가…… 아직도 싫어?’

모른다며 애매한 대답을 내어놓았던 그때와 달리 수호의 눈이 가만히 떨려왔다.

문득, 수영장 앞에서 태준에게 쏘아붙였던 때가 떠올랐다.

‘아저씨가 왜 아빠예요?’

자신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서 구해준 태준에게 고맙다고 하기는커녕 화를 냈었다.

그때 했던 말들이 하나하나 가시가 되어 박혀 들었다.

‘저는 아저씨 같은 아빠는 싫어요.’

마치 부메랑처럼.

‘아저씨가, 제일 나빠요.’

되돌아온다. 계속해서.

그렇게 못되게 말했는데도 태준은 뭐라고 했더라.

‘나한테 기회를 주지 않을래?’

기회를 달라고 했었다.

‘아저씨가, 잘할게.’

잘 해주겠다고.

그리고 또.

‘그동안 못 해준 게 많아서, 해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수호의 맑은 두 눈에 눈물이 고이는가 싶더니 뺨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

한 방울, 두 방울.

계속해서 떨어지는 눈물이 뺨을 적시고, 옷을 적시고, 이불을 적시고, 아이의 마음을 적신다.

손으로 훔쳐내도 끝이 없었다. 한참을 훌쩍거리던 수호가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혜가 잠에서 깨어난 건 그 무렵이었다.

울고 있는 수호를 보자마자 잠이 홱 달아나 몸을 벌떡 일으키는 때였다.

- 어, 수호야. 웬일로 아저씨한테 전화를 다 했네?

술에 취하여 고양된 태준의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있잖아요, 아저씨.”

흐느낌을 삼킨 수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저씨, 우리 아빠예요?”

선혜는 할 말을 잃은 얼굴로 태준과 전화를 하고 있는 수호를 지켜보았다.

이윽고, 전화기 너머로 태준이 말하기를.

- 수호야. 잠깐 기다릴래?

너무나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기를.

- 아빠가, 지금 갈게.

태준의 입에서 나오는 ‘아빠.’ 소리에 수호의 얼굴이 울먹거리더니만 흐느낌이 엉엉 터져 나왔다. 선혜가 달려가 수호를 품에 안아주고, 간호사들이 놀란 얼굴로 뛰어왔다.

*

한편. 택시를 타고 오는 태준의 눈에서도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기사가 당황한 얼굴로 태준을 힐끔거리다 물었다.

“손님, 왜 우세요……?”

“아, 그게, 그러니까…….”

태준은 울면서 웃었다.

“너무 기뻐서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태준은 처음으로 깨닫는다.

드디어 말했다.

아빠, 라고.

드디어.

창밖 새벽달이 떠오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태준이 조바심을 안고 뛰었다.

수호야 기다려라.

‘아빠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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