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의심의 시작
한바탕 운 태준은 겨우 진정이 되었다.
눈가와 코끝이 발긋해져 훌쩍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웃음이 샜다.
민망한 얼굴로 선혜를 흘끔거리던 그가 코끝을 괜히 매만지고는 물었다.
“근데 괜찮다면서 왜 못 일어나는 거래요?”
“잠든 것 같아요. 검사상으로는 별문제 없다고 하니까.”
태준의 손길이 안타까이 수호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러다 수호가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리자 얼른 손을 거두었다. 씁쓸한 미소가 입가에 지어지고 선혜는 그런 태준의 손등을 위로 삼아 도닥여주었다.
그때 태준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화면에 뜨는 발신인은 다름 아닌 ‘엄마’. 선혜의 눈이 깜빡이는 사이 태준은 아차 싶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어, 엄마.”
선혜의 시선이 커튼 너머 어른거리는 태준의 그림자로 향했다.
“어떡하지. 나 오늘 못 갈 것 같은데. 일이 생겨서. 그게…… 나중에 설명할게요. 지금은 좀. 아이참 엄마도…… 왜 그래요. 그런 거 아냐. 내가 사고를 치긴 뭘 쳐요.”
난감한 목소리.
무슨 소리인지 희미하여 들리지 않지만 까랑까랑한 목소리는 높아져 있었다. 전화를 끊은 뒤 나지막이 들리는 한숨은 그림자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뚝 그쳤다.
태준의 그림자가 잠시 제 머리를 매만지다가 커튼을 걷고 안으로 들어왔다. 다시 수호의 옆에 걸터앉는 그에게 선혜가 물었다.
“왜 그래요?”
“아, 그게. 한 달에 한 번씩 가족들끼리 모이거든요. 못 간다고 했더니 성화셔서.”
자신을 향해 애써 웃어보이는 태준을 선혜는 물끄러미 보았다. 잠시 수호를 응시하던 선혜가 태준에게 말했다.
“가 봐요.”
“아니에요. 괜찮…….”
하지만 태준이 말을 잇기도 전 다시 울리는 전화. 이번엔 ‘아버지’라는 문구가 뜬다. 태준이 난감한 얼굴로 이마를 문지르다가 수호를 내려다보았다.
선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 봐요. 진짜 괜찮으니까.”
태준이 미안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혼자 있어도 괜찮아요?”
“엄마한테 연락하면 돼요. 연락하면 바로 오실 거예요.”
태준의 전화가 다시금 울리기 시작하였다. 발신자는 ‘형’. 아마 다음에는 ‘누나’일 것이었다.
“아, 정말…….”
태준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머리를 헝클자 선혜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다니까.”
그래도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지 망설이는 태준에게 선혜는 웃어보였다.
그 얼굴이 정말로 괜찮아 보이는 데다가 계속하여 몸을 떠는 핸드폰 탓에 태준은 마지못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수호를 잠시 바라본 그가 커튼 쪽으로 다가가 섰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요.”
“네.”
나가려던 태준이 잠시 커튼을 잡은 채로 멈춰 섰다. 돌아보길래 왜 그러나 싶은 순간 다가온 그가 선혜를 품에 안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라 눈을 깜박이는 순간 그가 귓가에 속삭였다.
“무슨 일 없어도 연락하고.”
선혜가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감싸고는 살짝 웃었다.
“네.”
좁은 간격을 두고 떨어진 두 사람이 잠시 지그시 서로를 바라보는 때였다.
“윤수호님. 병실 배정되었…….”
커튼이 걷히고 놀란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선혜와 태준은 서로에게서 후다닥 떨어지고는 헛기침을 했다.
간호사가 새침한 눈으로 둘을 번갈아 보다가 하던 말을 이어 했다.
“윤수호님 소아과 병동에서 병실 배정됐다고 연락 왔거든요. 입원 준비해 주세요, 보호자분.”
“네, 선생님.”
커튼이 다시 닫히고 멀어지는 간호사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서도 둘은 여전히 민망한 얼굴이었다. 민망한 분위기를 깬 건 태준이었다.
“그럼 가 볼게요. 연락해요.”
손을 흔들고 멀어지는 태준을 커튼 너머로 오래도록 바라보던 선혜는 그의 모습이 응급실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커튼을 닫고 짐을 챙기기 위해 돌아섰다.
뒤늦게 잠든 수호의 눈치가 보였다. 여전히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보고 안심하는 얼굴을 하며 짐을 싸는데 이번에는 선혜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발신자는 ‘엄마’.
선혜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귀에 댔다.
“어, 엄마.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는데.”
*
바쁜 아침 시간이 지나가고, 반찬을 반찬통에 담다가 전화를 한 경애는 선혜의 말에 하던 걸 멈추고 눈을 깜박였다.
“왜. 무슨 일 있니?”
왜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 나 지금 병원이야.
“뭐?”
경애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반찬통에서 손을 뗀 경애가 부산스러운 손길로 귀와 어깨 사이에 끼어 있던 핸드폰을 손으로 붙들어 잡았다.
“병원이라니. 너 어디 아파?”
- 아니. 나 말고 수호가.
“뭐? 수호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부엌 주방 아줌마랑 수다를 떨고 있던 춘희가 그 말에 이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 열이 많이 나서 C 병원 응급실로 왔는데 지금 해열제 맞고 열 떨어졌어. 의사 선생님이 폐렴인 것 같대. 입원해야 한다고 해서 지금 병실로 가려고 준비 중이야.
하도 담담하게 말해서 현실감이 다 없을 정도다.
- 병실 가면 연락 줄게, 엄마.
그렇게 통화는 끊어졌다.
경애는 어이없는 얼굴로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춘희가 물어왔다.
“수호가 어디 아프대요?”
“그렇대.”
경애는 대답과 함께 탁한 한숨을 토해내듯이 뱉어내더니만 앞치마를 신경질적으로 벗었다. 앞치마를 테이블에 탁 내려치는 소리에 춘희가 놀라 움찔거리고 경애의 눈치를 보았다.
“춘희야. 잠깐 가게 좀 보고 있어. 나 잠깐 다녀올 테니까.”
“예. 다녀오세요.”
경애는 대충 손을 닦고는 가방을 챙겨 가게를 나섰다.
자신의 차에 올라탄 경애는 차분하고 덤덤했던 선혜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수호가 두 살 때 열병이 났을 때도 이랬다. 이미 병원 갈 거 다 가고 혼자 떨 거 다 떨고 뒤늦게 자신을 불렀었다.
진작에 자신을 불렀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호통을 쳤을 때 무겁게 떨어지던 고개. 가늘게 떨리던 어깨와 뒤늦게 흐르던 눈물. 애처로운 그 모습에 차마 더 타박하지 못하고 안아줬던 그 순간이 생생하다.
경애는 바로 차를 출발시키지 못하고 잠시 운전석에 몸을 기대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감긴 눈 너머로 비슷한 성격을 지닌 누군가가 떠오른다.
은근 소심하고 답답해서 할 말 제때 못했던 사람 하나가.
무슨 일이 생겼을 때도 혼자 해결을 보려고 아등바등했던 사람.
눈을 뜬 경애의 입 밖으로 탄식 같은 중얼거림이 새어나왔다.
“하여간 이런 건 지 아빠 닮았다니까.”
왜 석주 생각이 요즘 들어 자주 나는지 모르겠다 생각하며 경애는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했다.
*
경애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쯤, 선혜는 수호의 입원 수속을 얼추 다 마치고 짐을 정리 중이었다.
수호가 쓰게 된 병실은 1인실이었다.
넉넉한 수납 공간에 짐을 다 넣은 뒤 선혜는 병실에 놓인 소파에 앉았다. 경애는 안타까운 눈으로 잠든 수호를 내려다보았다. 입원 수속을 할 때 잠시 깼던 수호는 다시 까무룩 잠이 들어 있었다.
혹여라도 아이가 깰까 싶어 경애는 수호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다가와 선혜의 옆에 앉았다. 잠시 원망스레 선혜를 보았지만 경애는 타박하지 않았다. 아이가 아팠을 때 제일 놀랐을 게 선혜라는 걸 알기에.
말없이 앉아 있던 경애가 선혜에게 물었다.
“참, 신 서방은 연락했어?”
“응. 아까 잠깐 왔다 갔어.”
경애가 서운한 얼굴로 말했다.
“하여간 자식 키워봤자 하나 소용없다더니.”
“그런 거 아냐. 그냥 태준 씨한테 먼저 연락 와서 말한 거지.”
“그럼 만약 연락 안 왔으면 연락 안 하려고 했어? 나도, 신 서방도?”
“연락하려고 했어. 태준 씨든, 엄마든 내가 연락하기 전에 연락 온 거지.”
경애는 무어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잔소리를 하는 대신 선혜의 지친 옆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밥은 먹었어?”
뒤늦게 차려놓은 아침 상이 생각이 났다. 손도 못 대고 식어갈 밥상이 아까워 헛웃음이 났다.
“아니.”
“배고프겠다. 엄마가 나가서 뭣 좀 사 올게. 수호 죽만 사 오고 너 먹을 건 안 사왔다.”
앉은 지 얼마나 됐다고 경애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메뉴를 묻는 경애에게 ‘아무거나.’라고 대답했다가 제일 어려운 주문을 한다고 타박을 받았다.
선혜는 그저 웃었고 경애는 곧 지갑을 챙겨 병실을 나섰다.
닫힌 병실 문을 보던 선혜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호의 옆에 걸터앉았다. 수호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태준이 생각이 났다.
연락하라고 했었지, 참.
아차 싶은 마음에 핸드폰을 들어 태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입원 잘 했다고. 병실은 어디며,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그리고 오늘 달려와 줘서 고맙다고도 적어넣었다.
*
가회동 본가에서는 온 가족이 모여 식사 중이었다. 오늘은 태연의 남편인 장하산도 참여해 더욱 화기애애했다.
애교 많은 사위 노릇을 톡톡히 하는 하산은 해외 출장을 다녀온 경험담을 흥미롭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들 하산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이, 태준은 선혜의 메시지를 보고 안심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연락인데 한숨이야?”
맞은편에 있던 태석이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태준은 눈을 들어 태석을 힐끗 보고는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별 거 아냐.”
“별 거 아닌 얼굴이 아닌 것 같은데.”
태석이 의미심장하게 물어오자 태준의 얼굴이 비딱해졌다. 둘의 대화를 들은 하산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어. 처남 뭔가 수상한데?”
태준이 떨떠름한 얼굴로 하산을 힐끔거렸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태준을 보던 하산이 뭔가 알아챈 얼굴로 눈을 빛냈다. 태준이 알기로 하산은, 한 회사를 운영하는 만큼 눈치가 백 단이었다.
“처남 애인 생겼구나?”
태준은 차마 아니라고 대꾸하지 못했다.
현철이 안경을 손으로 추켜올리고는 물었다.
“너 저번에 꼬시려고 노력 중인 여자 있다면서. 어떻게 됐어?”
모두 태준의 대답을 기다렸다.
태준은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로 있다가 눈을 들어 현철을 보았다.
“만나고 있어요.”
태석은 재미있다는 듯이 눈을 빛냈고, 태연은 유치원 앞에서 만난 선혜와 수호를 떠올리며 미간을 좁혔다.
현철은 ‘역시, 내 아들.’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리다 시연에게 팔뚝을 맞았다. 시연은 떨떠름한 얼굴로 태준을 보며 물었다.
“뭐 하는 여잔데?”
태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나중에?”
그 말이 못내 미심쩍은지 시연이 빤히 쳐다보았다. 태준은 애써 그 시선을 무시하고 밥만 먹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더 캐내도 말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시연이 입을 비죽이며 투덜거렸다.
“어떤 여자길래 저러나 모르겠네.”
“냅 둬. 아직도 태준이가 어린앤 줄 알아?”
시연이 노려보자 현철이 입을 다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하산이 껄껄 웃었다.
“설마 우리 처남이 이상한 사람 만나겠어요? 애 딸린 사람만 아니면 됐죠, 뭘.”
하산의 말에 순간적으로 태석, 태준, 태연이 동시에 멈칫했다.
태석이 눈을 들어 태준을 보았다. 태연은 천천히 수저를 내려놓고 태준을 쳐다보았고.
그리고 태준은.
“뭐야. 처남, 왜 그렇게 웃어?”
그냥 웃을 뿐이었다.
*
수호가 정신을 차린 건 어슴푸레한 저녁 무렵이었다. 병원 창문 너머로 노을의 붉은 빛이 비스듬히 깔려 바닥을 물들였다.
모처럼 비가 그친 모습이었다.
창밖 풍경을 가만히 응시하던 수호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팔에 꽂힌 바늘을 보고 몸을 움찔거리던 수호는 마뜩잖게 수액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뜨끈한 이마를 한 번 짚고 주위를 둘러보다 침대 맞은편에 놓인 소파에 누워 있는 선혜를 발견했다.
곤히 잠든 선혜의 얼굴을 보는데 갈증이 찾아왔다. 열이 올랐다 내리는 과정에서 땀을 잔뜩 흘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마실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냉장고를 발견한 수호는 선혜를 부르려다 말았다. 살금살금 침대에서 내려와 냉장고로 향하는데 수액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간발의 거리 차로 냉장고에 팔이 닿지 않았다. 낑낑거리다 난처한 얼굴로 수액과 냉장고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는 때였다.
병실 문이 열렸다. 무언가 잘못이라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수호는 흠칫거리며 문 쪽을 쳐다보았고 문을 열고 들어온 태준과 눈이 마주쳤다.
태준이 수호에게 무어라 하려다가 잠든 선혜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선혜는 어찌나 곤히 잠들었는지 태준이 들어온 기척에도 깨지 못하고 있었다.
발소리를 죽인 태준이 수액을 슬며시 들어올렸다. 키가 커서 충분히 수액 걸이대가 되어준다. 다가온 태준이 냉장고를 열며 입모양으로 물었다.
‘물?’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
수호에게 물 한잔을 건넨 태준은 간호사에게 부탁하여 이동식 폴대를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이불과 베개도 여분을 하나씩 챙겨왔다. 선혜의 머리를 편하게 베개에 올려주고 이불을 덮어주는 손길이 섬세하기 짝이 없었다.
수호는 물을 홀짝이며 태준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표정이 나쁘지는 않았다.
“좀 괜찮아?”
침대에 걸터앉은 태준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수호는 물컵을 든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태준이 주섬주섬 쇼핑백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죽이랑, 음료수, 과자가 줄줄이 나오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수호의 눈이 커진 건, 태준이 마지막으로 로봇을 꺼냈을 때였다.
포장을 소리 없이 뜯어낸 태준이 로봇을 수호에게 건네주었다.
“병원에 있으면 심심할 텐데 가지고 놀아.”
수호는 로봇을 순순히 받아들었다. 로봇의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던 수호가 별안간 로봇을 내려놓고 태준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마음에 안 들어?”
수호는 대답도, 고갯짓도 않고 태준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래?”
태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술을 뗐다.
“있잖아요, 아저씨.”
“응.”
“혹시, 아까 병원에 오셨었어요?”
태준이 눈을 크게 뜨는 모습을 수호는 바라보았다.
이내 태준이 대답했다.
“응.”
대답 뒤로는 침묵이 찾아왔다. 생각에 잠긴 수호의 얼굴을 태준은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선혜가 뒤척이는 소리에 그쪽을 돌아보았다.
그새 내려간 이불을 꼼꼼히 덮어준 태준이 수호를 돌아보더니 입모양으로만 말했다.
‘갈게.’
안녕. 손을 흔들어 보인 태준이 이내 병실을 나섰다.
닫힌 문을 바라보며 태준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한참 동안 듣고 있던 수호는 이내 로봇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불 위로 놓인 아이의 손이 움찔거렸다. 응급실에 있을 때 태준이 울며 잡았던 손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불분명했던 목소리가 또렷하게 살아났다.
‘수호야, 아빠가 미안…… 바보같이 아픈 것도 모르고…… 미안해, 수호야…….’
수호의 눈동자가 혼란을 담고 가만히 떨려왔다.
‘꿈이 아니었어.’
작은 깨달음이 가슴 속 호수에 돌이 되어 떨어졌다.
넓게 퍼지는 파장 사이로 메아리처럼 울리는 태준의 목소리에서는 한 단어만이 걸러 들려왔다.
아빠.
수호에게 있어서는 낯설기만 한 단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