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백 밤
그 말에 아이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태준은 그런 아이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추며 또박또박 말했다.
“내가 수호 아빠라고. 수호 아빠.”
수호 아빠. 그 호칭이 그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입으로 자꾸만 되새김질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참견 해도 되지, 얘들아? 수호 아빠니까.”
태준의 폭탄 선언에 얼이 빠져 있던 아이들이 하나 둘 차츰 정신을 되찾았다.
“윤수호…… 아빠요?”
“윤수호 아빠 없는데.”
애들이 저들끼리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한 말이 가슴에 콱 박혀들었다.
“없긴 뭐가 없어! 여깄는데!”
욱해서 가슴을 탕 치며 소리치자 애들이 어깨를 움츠렸다.
태준이 아이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하여튼 너네 한 번만 더 우리 아들 괴롭혀 봐. 어? 진짜 혼날 줄 알아.”
“……네.”
아이들이 마지못한 얼굴로 작게 대답했다.
“얼른 수호한테 사과 해.”
쭈뼛대던 아이들이 하나 둘 수호에게 다가와 사과를 건넸다.
“윤수호 미안.”
“미안해.”
“미안.”
그다지 진정성 없는 사과에 태준의 눈썹이 꿈틀거리는데 아이들이 그런 태준의 눈치를 보더니 쏜살같이 내빼버렸다.
태준은 어이 없는 얼굴로 닫힌 탈의실 문을 쳐다보다가 혀를 쯧쯧 찼다.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린 태준이 손에 들린 수영복에 묻은 쓰레기를 탁탁 털며 돌아섰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자신을 보고 있는 수호와 눈이 마주쳤다.
수호의 눈을 들여다보는 태준의 머릿속에 짧은 상상이 스쳐지나갔다.
‘아저씨가 진짜 우리 아빠예요?’
‘응. 내가 네 아빠야, 수호야.’
감동으로 촉촉해지는 수호의 눈. 그런 수호를 보며 동시에 울컥하는 자신.
‘아빠…….’
‘아들…….’
상상은 분홍빛 배경을 뒤로한 눈물의 포옹으로 마무리져졌다.
상상이 곧 현실화 될 생각에 괜히 가슴이 울렁이는 찰나였다.
수호가 손을 내밀었다. 태준이 자기도 모르게 그 손을 잡기 위해 손을 뻗는 때였다.
“제 수영복 주세요.”
수호의 야무진 말에 태준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촉촉하기는커녕 건조하기 짝이 없는 수호의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
“제 수영복, 달라고요.”
태준이 제 손에 들린 수영복을 얼떨떨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이 수호가 태준의 손에 들린 수영복을 홱 가져갔다. 가방에 수영복을 쑤셔 넣은 수호는 고개 들어 태준을 보았다.
감동한 기색은커녕 바라보는 시선은 뾰족하기만 했다.
오히려 전보다 날이 더 서 있는 느낌.
그 시선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태준이 움찔하는 사이 수호는 가방을 어깨에 매고 걸어갔다. 그리고 탈의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허망한 얼굴로 탈의실 문을 응시하고 있던 태준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수, 수호야!”
그리고 허둥지둥 수호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
.
.
어린애가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벌써 저만큼이나 멀어져 있었다.
급한 마음에 빠르게 쫓아가던 태준의 머릿속에 문득 읽었던 책의 글귀 하나가 떠올랐다.
자, 침착하고.
아이들은 톤 높고 발랄한 목소리에 호감을 느낀다고 했지.
태준은 큼큼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수호야-.”
흡사 염소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목소리였다. 제 귀에도 이상하게 들려 이게 맞나 싶었지만 애가 달아 깊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수호야-. 윤수호-.”
한번 더 간드러진 목소리로 수호를 불러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효과가 있는 건지 빠르게 걸어가던 수호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태준의 눈이 반짝 빛났다.
옳거니.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해.
배움에 대한 보람이 뿌듯하게 차올라, 의기양양한 얼굴로 수호를 향해 몇 걸음 다가가는 찰나였다.
세 걸음 정도를 남겨두었을 무렵. 별안간 수호가 뒤를 홱 돌아보았다.
돌아보는 기세 만큼이나 눈빛이 흉흉해서 태준은 자기도 모르게 흠칫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목소리를 내려는데.
“수호…….”
“그렇게 이상한 목소리로 부르지 마세요.”
단호한 수호의 말에 태준의 입이 조개처럼 딱 다물어졌다.
안 먹히네.
머릿속에 떠오른 글귀에 빨간 빗금을 긋고 다른 방도를 떠올리는 때였다.
“앞으로 제 일에 끼어들지도 마시고요.”
이 말에는 좀 억울해졌다.
“야. 내가 그런 걸 보고 어떻게 모르는 척해.”
“아저씨가 뭔데요?”
“나? 아까 말했잖아. 내가…….”
“아저씨가 왜 아빠예요?”
급작스러운 질문에 머릿속이 일시 정지했다.
“아저씨가 왜요?”
왜냐니. ‘왜’냐는 물음에 퍼뜩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야…….”
“우리 엄마랑 사귀니까?”
수호의 말에 태준이 눈을 홉떴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태준이 당황하는 사이 수호가 비스듬했던 몸을 틀어 태준을 마주보며 섰다.
수호가 태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엄마랑 사귄다고 아저씨가 제 아빠가 되는 거 아녜요.”
태준이 그 말에 반박하기도 전에 수호가 말했다.
“그리고 저는 아저씨 같은 아빠는 싫어요.”
쿵. 그 말에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왜……?”
어째서?
“아저씨 나 이용했잖아요.”
태준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우리 엄마랑 사귀려고 나 이용하고, 이번에는 엄마랑 결혼하고 싶어서 나 이용하려는 거 잖아요.”
선혜와 가까워질 구실을 갖기 위해 초반에 수호에게 접근한 건 맞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닌데.
“수호야, 그런 거 아니야.”
나는 그저 아들인 너와 가까워지고 싶을 뿐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너의 가족이 되고 싶을 뿐인데.
비스듬히 깔린 시선 속에 수호와 벌려진 거리가 들어온다.
너와의 거리는 단 세 걸음. 그 뿐인데, 그 거리가 왜 이렇게 아득하게 멀게 느껴지는 건지.
오해를 하는 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이런 건, 책에서 나오지 않았는데.
땀이 차는 손바닥으로 주먹을 쥐는 때였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수호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숨을 고르던 아이가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아저씨가, 제일 나빠요.”
태준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수호가 작게 씨근덕거리다가 돌아섰다.
그런 수호의 뒤를 쫓아가려 태준이 걸음을 내디디려는 찰나였다.
태준은 익숙한 인형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건 수호도 마찬가지.
수호는 돌아섰을 뿐 단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그 자리에 돌처럼 굳었다.
한참 뒤에야 입술을 달싹이는 수호.
“……엄마.”
멀지 않은 곳에는 선혜가 서 있었다.
“…….”
낮게 가라앉은 표정.
다 들은 얼굴이었다.
.
.
.
다 들었다.
태준이 이상한 목소리로 수호를 부르는 것을 듣고 소리를 따라갔다가 전부 다.
두 사람의 대화는 길지 않았지만 상황을 파악하는 데 무리는 없었다.
태준이 수호에게 자신이 아빠라는 사실을 밝혔지만, 수호는 그 사실을 믿지 않고, 그것도 모자라 태준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수호가 자신과 태준이 만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사실 또한.
“…….”
머릿속이 복잡하다.
무슨 반응을 어떻게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
누굴 먼저 챙겨야 할지도 모르겠고.
수호를 챙기자니 수호의 말에 상처받은 태준이 걸리고, 태준을 챙기자니 그 모습을 보고 상처받을 수호가 신경 쓰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깊은 고민에서 쉬이 헤어나오지 못하는 찰나였다.
꼬로록.
난데 없이 들려온 배곯는 소리에 선혜가 눈을 깜박였다.
소리의 주인공인 수호가 덥석 제 배를 움켜쥐고 귀를 붉혔다.
선혜가 그 모습을 보고 헛웃음을 치는 때였다.
꼬르륵.
이번에는 조금 더 큰 소리가 났다.
수호를 건너다 보면 미치겠다는 얼굴로 제 배를 보고 한 손으로 배를 어루만지는 태준이 있었다.
선혜가 수호와 태준을 번갈아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누가 부자지간 아니랄까 봐.’
못 산다, 진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죠, 우리.”
선혜는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수호도 태준도 놀란 얼굴이었다. 뒤에서 쫓아오는 기척이 없자 선혜가 뒤를 돌아보았다.
“얼른 와, 수호야.”
수호에게 손을 내민 선혜가 태준과 눈을 맞췄다.
“태준 씨도요.”
그리고 다시 돌아섰다.
수호와 태준이 망설이다 동시에 서로를 보았다. 수호는 태준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팩 돌리고 선혜를 향해 달려가 손을 덥석 잡았다. 태준은 그런 두 사람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
잠시 후.
셋은 근처 돈가스 전문점으로 향했다.
선혜는 둥근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고 태준과 수호는 말없이 그 뒤를 따라와 착석했다.
“나는 생선가스. 둘은요?”
빠르게 메뉴를 고른 선혜가 둘을 쳐다보았다. 태준과 수호도 벽에 붙은 메뉴판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고구마 치즈 돈…….”
“저는 고구마 치즈 돈…….”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둘. 수호가 찡그린 얼굴로 돌아보고 태준은 그저 헛기침을 하며 입을 다물 뿐이다.
“너 먹어. 나는 다른 거 먹을게.”
결국 태준이 수호에게 메뉴를 양보했다.
그리하여 고른 메뉴는 생선가스 하나와 고구마 치즈 돈가스 하나, 돈가스 김치 나베. 선혜는 거기에 공기밥을 한 개 더 추가했다.
주문을 받은 직원이 물러나고 세 사람이 앉은 테이블 위에는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컵에 물을 따라 한 모금 마신 선혜가 물었다.
“둘이 수영장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선혜의 질문에 태준이 수호를 힐끔 보았다. 보아하니 수호의 눈치를 보느라 말을 하지 않을 것 같다. 선혜의 시선이 불퉁한 얼굴로 앉아 있는 수호에게 향했지만 수호는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수호를 보고 있던 태준이 입술을 달싹였다.
“저기.”
수호와 선혜가 동시에 태준을 돌아보았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태준이 머쓱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로 향하는 태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던 선혜가 수호를 바라보았다.
“수호야.”
부르는 소리에 수호가 고개를 들었다.
“아저씨랑 수영장에서 무슨 일 있었어?”
수호가 입을 열었다.
“아니.”
“아무 일도 없었는데 아저씨한테 그렇게 화를 내?”
선혜가 덧붙였다.
“우리 수호가 그냥 화를 내지는 않잖아.”
“…….”
“아저씨가 수호한테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거야?”
잘못. 그 단어를 속으로 뇌까린 수호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괴롭힘당한 자신을 구해준 게 잘못은 아니었다.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태준에게 부린 게 쓸데없는 투정임을 수호도 알고 있었다.
엄마에게도 그렇게 투정 부려본 적이 없는 수호였다. 물론 할머니인 경애에게도.
그런데 왜 그 아저씨한테는 감정 조절을 못하고 그렇게 바락바락 대들어 버렸는지. 처음 있는 일이었다.
“…….”
선혜는 더는 묻지 않고 수호의 표정 변화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는 새에 화장실에 갔던 태준이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수호가 태준을 곁눈질 하다가 슬쩍 태준의 반대편으로 엉덩이를 밀었다. 그 모습을 본 태준은 쓰게 웃을 뿐이다. 지켜보는 이가 다 짠한 광경이었다.
곧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셋이서 처음 하는 가족 식사였지만 안타깝게도 서먹한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
식사를 마쳤을 무렵.
수호가 잠시 화장실을 가느라 자리를 비운 때에 선혜가 태준에게 물었다.
“수호한테 아빠라고 말 한 거예요?”
태준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갑자기 왜요?”
“그게…… 어쩌다 보니.”
상황이 그랬다.
원래는 수호를 괴롭힘에서 구해줌과 동시에 아이의 마음을 열 생각이었는데, 아저씨가 뭔데 끼어드냐는 발칙한 말에 욱하여 그렇게 되었다.
“제가 너무 성급히 말한 것 같아요.”
선혜는 잠시 고민하다 입술을 뗐다.
“태준 씨 마음 이해해요.”
이해한다는 말에 태준이 눈을 들어 선혜를 보았다.
“근데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아요. 애가 날이 서 있어서요.”
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아까 생각이 났다. 무섭게 쏘아붙이던 수호를 떠올리자 다시 어깨가 축 처졌다.
“수호가 내가 자신을 이용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던데.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이따가 잘 이야기 해봐요.”
이따가?
“진심은 통하는 법이래요.”
선혜의 말에 태준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 때였다.
수호가 화장실에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선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어디가?”
“화장실.”
다른 데도 아니고 화장실이라 하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수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지못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화장실로 향하는 선혜의 모습을 태준이 눈으로 좇았다.
문득, 선혜가 뒤를 돌아보았다. 수호가 이쪽을 보고 있지 않음을 확인한 선혜가 태준을 향해 살짝 웃었다. 그 미소에 담긴 뜻을 알아챈 태준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태준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수호를 응시했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하는데 수호가 핸드폰을 꺼내 게임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준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수호야.”
“왜요.”
수호가 핸드폰을 응시한 채로 대답했다.
“아저씨 너 이용하려고 하는 거 아냐.”
수호는 말이 없었다. 태준은 고해성사라도 하듯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수호 너랑 잘 지내보고 싶어서 그래.”
“엄마 때문이잖아요.”
“아니라니…….”
태준이 말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아니라고 해봤자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진심은 통한다고 하지만 거짓 섞인 진심이 통할 리 없었다.
“그래. 맞아.”
순순히 수긍하는 말에 게임을 하던 수호의 손이 멈췄다. 천천히 자신을 돌아보는 수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태준이 말했다.
“처음엔 그랬어. 근데.”
진심이 담긴 눈빛은 단단했다.
“지금은 아냐.”
진심이 조금이라도 통한 걸까. 수호는 어느새 게임이 아닌 태준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수호 너랑 잘 지내고 싶어.”
태준이 멀지 않은 과거를 회상했다.
“전처럼 너랑 수영도 같이 하고 싶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놀러도 가고 싶어.”
아쉬움을 담은 눈이 애틋하게 물들었다.
“그동안 못 해준 게 많아서, 해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스스로도 아빠로서 부족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네 존재조차 눈치채지 못한 못난 아빠인걸.
하지만 그래도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들아.
“나한테 기회를 주지 않을래?”
수호가 물었다.
“기회를 어떻게 주는데요?”
“별거 없어.”
태준이 말했다.
“밀어내지만 않으면 돼.”
더없이 소박한 바람이었다.
“아저씨가, 잘할게.”
말을 마친 태준은 수호의 투명한 눈동자를 응시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수호는 한동안 태준의 눈을 보다가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아저씨가 싫으면요?”
“그땐……. 아저씨가 깔끔하게 물러날게.”
태준이 말했다.
“너랑, 엄마. 둘 다한테서.”
수호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손가락이 게임 시작 버튼을 채 누르지 못하고 흔들렸다.
버튼을 누를 듯 말 듯 하던 손가락이 이내 완전히 떨어졌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수호가 태준을 휙 돌아보았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골똘한 표정을 잠시 짓던 수호가 입을 열었다.
“백 밤이 지나도 내가 아저씨 싫다고 하면.”
수호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땐 딴말 없기예요.”
백 밤. 백 일.
세 달 남짓한 시간을 되새김질하던 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럴게.”
“자. 약속.”
수호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태준은 그 작은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천천히 얽으며 생각했다.
네가 나에게 긴 시간을 주었는지, 짧은 시간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호의 눈을 바라보며 태준은 새끼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최선을 다해야지. 후회가 남지 않도록.
태준이 수호를 보며 싱긋 웃었다. 잘생긴 그 얼굴을 보며 수호는 새침한 얼굴을 했다.
그러면서도 굳이 새끼손가락을 풀지 않았다.
‘밀어내지만 않으면 돼.’
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밀어내지 않는 게 어려운 일인가.
선심 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