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만난 애 아빠-34화 (34/109)

#34. 뒤늦은 깨달음

한편 같은 시각.

수호는 경애와 근처 돈가스집에서 단둘이 외식을 하고 있었다.

돈가스는 수호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그래서 당연히 좋아라 할 줄 알았는데 어딘지 모르게 시무룩해 보이는 수호였다. 아까 수영장 앞에서부터 줄곧 이 상태다.

수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경애가 물었다.

“우리 수호, 오늘 수영장에서 무슨 일 있었어?”

시무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젓는 성숙한 모습에 어쩐지 가슴이 아리다.

저런 건 꼭 자기 엄마를 닮았다니까. 선혜도 그랬다. 아빠 없는 애라고 놀림을 받고 집에 돌아와도 그 어린 나이에 묵묵하게 아무 일도 없었던 척을 하곤 했었다.

“친구들이랑 싸우기라도 했니?”

경애가 걱정스러운 투로 묻자 수호가 대답했다.

“아뇨.”

“그럼?”

수호가 잘린 돈가스를 포크로 뒤적거리다가 못내 입을 열었다.

“그 아저씨가 수영장에 안 왔어요.”

“그 아저씨?”

“네.”

대체 누구? 의아해하지만 잠시뿐.

누군지 감이 온 경애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혹시 신태준, 그 아저씨 말하는 거니?”

수호가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연락도 없이 태준이 수영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강습이 끝나고 나서도 하염없이 기다렸는데도 말이다.

지금껏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서운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해서 자꾸만 기운이 빠졌다. 좋아하는 음식인 돈가스가 무슨 맛인지도 모를 만큼.

경애가 이채가 서린 눈으로 돈가스를 포크로 찔러대는 수호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쩐지. 수호랑 왜 그렇게 친한가 했더니 수영장에서도 연이 닿아 있었구나.

혈육은 어쩔 수 없이 끌린다더니.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경애가 입을 열었다.

“수호야.”

고개를 들어 저를 쳐다보는 수호에게 경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아저씨가 수호 아빠가 되어주면 어떨 것 같아?”

수호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태준 아저씨가 아빠가 되어주면 어떨 것 같으냐고.

아빠와 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아저씨와 함께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아저씨가 목말을 태워주고, 같이 축구도 하고, 놀이동산도 가고.

또 엄마 몰래 컵라면도 같이 먹고.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던 태준의 모습이 떠오르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아저씨인데.

왜 이렇게…….

“수호야?”

수호가 한참 동안 대답을 하지 않자 경애가 수호를 불렀다.

수호는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고 경애를 마주 보며 대답했다.

“좋을 것 같아요.”

경애의 얼굴에 화색이 돌려는 그 순간.

“근데 제가 이런 말 했다는 거 엄마한테는 비밀이에요.”

경애가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엄마가 속상해할 것 같아서요.”

“엄마가?”

“네.”

일 년 전쯤 일이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아빠 없는 애라고 놀렸던 날, 수호는 집으로 돌아가 선혜에게 따지듯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 나는 왜 아빠가 없어? 우리 아빠는 어디 있어?’

늘 차분하기만 했던 엄마가 당황하는 얼굴을 그때 처음 보았었다.

엄마는 말없이 수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대답해 달라며 칭얼거리는 수호를 그저 안은 채 도닥이기만 했다.

그리고 그날 밤.

흐느끼는 소리에 수호는 잠에서 깼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방을 나섰다가 안방 문틈이 벌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 사이로 방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수호야 미안해. 엄마가 미안…….’

난생처음 봤던 엄마의 우는 얼굴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홀로 너무나 처절하게 슬퍼해서 더욱 그러했다.

그 이후로 아빠에 대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았다. 엄마가 우는 모습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한편 경애는 수호의 대답에 할 말을 잃은 얼굴이었다.

“알았죠?”

수호는 그런 경애를 향해 살짝 웃어 보이고는 돈가스를 입에 밀어 넣었다.

경애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수호를 보았다.

엄마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갸륵하여 정말이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문득 선혜의 어린 시절이 그 위로 겹쳤다.

아빠에 대해 엄마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던 어린 시절의 선혜.

너도 그랬니, 선혜야.

가슴이 짠해져 눈시울이 시큰거렸지만, 경애는 애써 감정을 다스렸다.

“우리 수호가 효자네.”

칭찬하는 그 말에 수호가 귀를 살짝 붉히며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수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경애는 생각했다.

얼른 수호에게 아빠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

“당신 아들.”

선혜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잠시 쉬었던 매미들이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공원에 놀러 나온 아이 둘이 까르륵 웃으며 그들이 앉아 있던 벤치 앞을 지나쳐 멀어진다.

마치 멈추었던 시간이 도로 흐르기라도 하는 느낌.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태준의 표정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다.

넋이 반쯤은 나간 듯한 얼굴.

충격과 놀라움, 당혹감이 한데 뒤엉켜 있는 모습이었다.

이 얼굴을 마주하는 게 그렇게나 두려워서 그리 망설였건만.

막상 보니 덤덤하기만 하다. 오히려 저런 반응을 보일만도 하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둔한 남자는 지금껏 의심조차 못 한 모양이니까.

태준이 입술을 달싹였다. 말을 하려고 여러 번 시도하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지는 못했다.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선혜는 그런 태준을 내버려 두고 어질러져 있는 물건들을 정리해서 봉투에 담았다.

“수호가…… 내 아들, 이라고요?”

가까스로 입술을 뗀 태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선혜는 봉투를 태준에게 건네며 말했다.

“네.”

담백하게 대꾸한 뒤 선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을 한 번 더 말해 주었음에도 선혜를 멀거니 올려다보는 태준의 표정은 그대로다.

같이 안 가냐고 물으려다가 선혜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혼자 있게 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홀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

“먼저 갈게요.”

돌아서서 걸어가던 선혜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다음에 봐요.”

인사를 마친 선혜가 조금씩 멀어졌다.

태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은 채 멀어지는 선혜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경애와 수호는 식사를 마치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왔다.

새 수영복과 수모, 그리고 수경을 산 수호는 행복한 얼굴이었다. 경애는 그 모습을 보고 뿌듯하게 웃었다.

수호를 데리고 현관에 들어서는 때였다.

현관에 아무렇게나 벗겨져 있는 선혜의 구두를 본 수호가 반색했다.

“어? 엄마 왔나 보다. 엄마!”

그래도 엄마가 제일인지 수호는 금세 엄마를 찾아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경애는 비슷한 모양새로 벗어진 두 사람의 신발을 정리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얘기는 잘했나.”

기대와 걱정이 반반 섞인 얼굴로 경애는 수호를 따라 침실로 향했다.

침실 문을 열자 누워 있는 선혜와 그 옆에 앉아 조잘조잘 사 온 물건들을 내보이는 수호가 있었다. 선혜는 다소 지친 얼굴로 누워 있으면서도 그런 수호에게 웃어주고 있었다. 뒤늦게 선혜가 경애를 쳐다보았다.

“안 그래도 수호 수영복 새로 사 줄까 했는데. 고마워 엄마.”

“고맙긴.”

경애가 쑥스러운 듯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선혜를 빤히 쳐다보았다.

할 말도 많아 보이고 궁금한 것도 많아 보이는 그 얼굴에 선혜는 할머니와 할 말이 있다며 수호를 부드럽게 물렸다.

수호가 나가자마자 경애가 선혜의 옆에 털썩 앉더니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어떻게 됐니?”

선혜가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그 잠깐 사이도 못 기다리고 경애가 재촉했다.

“응? 지지배야. 말을 좀 해 봐, 얘기했어? 응?”

“얘기했어.”

경애의 눈과 입이 동시에 벌어진다. 경애가 선혜의 손을 덥석 움켜잡더니 호들갑을 떨어댔다.

“아유. 잘했다! 잘했다, 내 새끼!”

너무 좋아 눈물이라도 흘릴 판이다. 선혜는 그런 엄마가 귀여워 웃고 말았다.

“뭐라디? 응? 당장 합치자지? 응?”

“아니.”

“……응?”

고공 승천하던 경애의 광대가 설핏 굳었다. 순식간에 미간을 찡그린 경애가 선혜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책임 안 진다고 했어?”

“아니. 그냥…….”

선혜가 다소 바보 같았던 태준의 표정을 떠올리며 피식거렸다.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더라고.”

“뭐어?”

경애가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오만상을 찌푸리자 선혜의 얼굴에 웃음기가 더 진해졌다. 선혜가 애교를 부리듯 경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래도 엄마.”

생각을 마친 뒤 그 사람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하길 잘한 것 같아.”

경애가 그런 선혜를 말 못 할 눈으로 내려보다가 손을 들어 어깨를 감싸 안아주었다.

다정한 손길이 어깨를 도닥였다.

“그 남자는 다를 거야.”

경애가 하는 그 말에 괜히 가슴이 먹먹해졌다.

선혜는 두 팔을 뻗어 경애의 허리를 안았다. 평소 같으면 징그럽다며 떨쳐냈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선혜를 마주 안아주었다.

선혜는 경애의 품에서 슬며시 눈을 감았다.

편안한 얼굴이었다.

*

빠앙-! 클랙슨 소리에 태준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뒤늦게 파란 불로 바뀐 신호가 눈에 들어오고 바로 뒤에서 기다리던 차가 차선을 변경하여 옆을 지나갔다.

“운전 좀 똑바로 해요!”

서슬 퍼런 타박에 태준은 차가 지나간 자리에다가 대고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그러다가 뒤늦게 액셀을 밟아 차를 출발시켰다. 사실 도로에서 민폐를 끼치는 게 지금 처음이 아니었다. 지금껏 몇 번을 그랬다. 사고가 안 난 게 다행이랄까.

그렇게 겨우겨우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온 태준은 침대 위로 풀썩 엎드렸다. 그러다 시야에 들어오는 붕대 감긴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까 선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수호, 태준 씨 당신 아들이거든요.’

‘당신 아들.’

……아들이라니.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자꾸만 머릿속이 멍해진다.

갑자기 들이닥친 현실에 머릿속은 렉이라도 걸린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수호의 얼굴을 떠올려 보려고 해도 좀처럼 잘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의문 한 가닥이 슬며시 솟아올랐다.

근데 수호 걔.

여섯 살 아닌가? 세빈이랑 동갑이잖아.

가능한가 싶어 시기를 대충 계산해 봤지만, 그 해를 넘겨서 태어날 리 없었다. 혹시 몰라 인터넷으로 알아봐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뭔가 잘못 짚었다는 소린데.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마자 태준은 곧장 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바로 받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신호음은 금방 끝이 났다.

- 어, 태준이 네가 웬일로 전화를 다 해?

“물어볼 게 있어서.”

- 뭔데? 빨리 물어봐. 나 곧 촬영 들어가니까.

태준이 마른 침을 삼킨 뒤 물었다.

“누나. 세빈이…… 여섯 살 아니야?”

잠깐의 침묵이 태준을 긴장하게 했다.

- 뭐어?

곧이어 목소리를 높인 태연이 기가 막힌다는 듯 반문했다.

“맞잖아. 걔 1월 1일에 태어난 거로 아는데.”

-나 참……. 하긴. 헷갈릴 만도 하지.

혼잣말을 중얼거린 태연이 곧 대답했다.

-1월 1일이 아니라 12월 31일생이야.

태준이 허무하게 핸드폰을 내려뜨렸다.

아직 통화가 끝나지 않은 핸드폰에서는 계속해서 태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너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그런 소리 세빈이 앞에서 하지 마라? 애 서운해해. 알았어?

“…….”

- 여보세요? 신태준?

태준이 대답이 없자 태연이 여러 번 불러보지만, 태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태준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일곱 살이라니.

잘못 알고 있던 사실 하나가 걷히자 또렷한 진실이 마주해온다.

선혜와 니스에서 만났던 게 2월 말쯤. 그렇다면 늦어도 그해 겨울에는 수호가 태어났을 것이었다.

‘그럼 맞잖아.’

“하…….”

삼키지 못한 탄식이 손바닥 사이로 흘러나왔다.

- 이 자식이. 자기가 전화해 놓고. 매너 없게.

태연의 중얼거림과 함께 통화가 끊어졌다.

태준이 다시금 복잡해지는 머리를 쥐고 끙끙거리는 때였다.

띠링- 메시지가 오는 맑은 음이 그의 정신을 깨워주었다.

태준은 핸드폰을 가져가 확인했다.

순간 그의 얼굴 위로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아저씨 오늘 왜 수영장 안 왔어요?]

발신인은 다름 아닌 수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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