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만난 애 아빠-9화 (9/109)

#9. 이상하게

선혜는 다소 지친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털썩 앉아 푹신한 등받이에 몸을 깊게 묻었다. 입 밖으로 한숨이 길게 새어 나왔다.

아까 마주했던 태준의 얼굴과 말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윤선혜 씨가 그렇게 나 버리고 간 날 이후에, 나 미친놈처럼 당신 찾아다녔어요.’

‘버림받고 배신당한 느낌에 기분 뭣 같기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정신 차리면 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고.’

‘게다가 나, 당신 만나고 나서 다른 여자 만난 적 없습니다. 단 한 번도.’

찾아다녔다고. 보고 싶었다고.

다른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고. 한 번도.

정말 바보 같다. 이름도 속인 데다 고작 하룻밤을 보낸 여자가 뭐가 아쉽다고. 왜 그런 미련을 떨었는지.

별로 잘해준 기억도 없는데. 만나기만 하면 경계하고 쏘아붙이기만 했던 여자가 뭐 그리 좋다고.

그러고 보니 그 당시에 태준에게 다정히 말했던 적이 손에 꼽는다.

그는 곤란한 상황에서 그녀를 구해주고, 그녀를 걱정하여 보디가드도 자처하고, 비를 맞는 그녀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그녀가 추울까 자신의 점퍼를 어깨 위에 덮어주기도 했었는데.

힘들었던 그때 당시 유일하게 빛과 같은 순간이었다. 빛나고 따스했던.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니스에서의 마무리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쪽지로 남겨놓고 돌아온 숙소 앞에서 선혜는 재민을 마주쳤다.

어떻게 알았는지 선혜를 쫓아온 재민은 독기가 잔뜩 서린 채로 손을 휘둘렀다.

‘이 미친년이, 도망을 쳐? 내가 못 찾을 줄 알았냐?’

그에게 뺨을 거세게 얻어맞은 선혜는 머리채를 잡혀 그대로 끌려가듯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결혼식까지 잘 지켜보라는 재민의 엄포에 가족들은 눈에 불을 켜고 선혜가 어디도 못 가게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의 이상을 느낀 선혜는 고은의 방에서 테스트기를 훔쳤다. 그리고 아기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과 태준의 아기가.

처음에는 암담했지만 곧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혜는 즉각 계획을 세운 뒤 실행에 옮겼다.

그리하여 며칠 뒤 다시 마련된 상견례 자리.

‘나 애 가졌어요. 당신 애 말고, 다른 남자 애.’

두 줄이 선명하게 뜬 테스트기를 보여주며 폭탄선언을 했다.

상견례 자리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미쳐 날뛰는 재민을 직원들이 끌고 가기에 이르렀고, 자연스레 파혼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길로 돌아와 짐을 쌌다.

‘오늘부로 나갈 테니까 딸 하나 없는 셈 치고 사세요.’

자신을 물건처럼 팔아넘기려 했던 가족들에게 싸늘하게 일갈하고.

‘너, 내가 잘사는지 두고 볼 거야.’

‘너나 잘해.’

저주처럼 뇌까리는 고은에게 차갑게 내뱉은 뒤 그 집을 나섰다.

그래서 선혜는 미혼모센터에 입소하여 출산을 준비했다.

엄마인 경애에게 연락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아버지와 헤어진 후 떠난 엄마와 연락이 끊어진 지는 오래였으니까.

혼자 잘 해보자 싶었다. 엄마가 해낸 일이니 자신도 할 수 있다 여기면서.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미혼모 센터에서 경애를 만나게 되었다.

미혼모 센터에 무료로 물품을 지급해주던 경애는 선혜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외면하리라 생각했다. 독하게 뒤도 안 돌아보던 그때처럼.

하지만 엄마인 경애는 선혜를 붙들고 오열했다.

‘아이고, 선혜야, 우리 딸…… 네가 왜 여기 있어. 너라도 그 집에서 잘 살았어야지. 네가 왜…….’

그렇게 눈물겨운 상봉을 마친 뒤 선혜는 센터를 나와 경애와 함께 살게 되었다.

모든 게 처음이라 힘들었던 그 시기에 경애는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못 본새 서울의 유명한 식당 체인점 사장이 된 그녀는 경제적인 지원과 정서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으며 선혜와 수호를 보살펴주었다.

그런 엄마한테 얼마 전에 상처를 준 것이 생각나자 선혜의 얼굴이 숙연하게 가라앉았다.

잠시 고민하던 선혜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막 경애에게 전화를 걸려는 그 찰나.

삑삑삑삑.

도어록 번호 눌리는 소리가 들려와 선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번호키를 아는 사람은 자신과 수호를 제외하면 단 한 사람.

“집에 있었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들어와 말을 거는 경애에게 선혜는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팔을 뻗어 경애의 품에 안겼다.

경애는 갑작스러운 선혜의 행동에 놀라 몸을 굳혔다.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마주 안아주는 경애의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했다. 못된 소리나 하는 딸인데 언제나 이렇게 받아주는 엄마의 모습에 새삼 눈물이 났다.

“엄마. 며칠 전엔 내가 미안해.”

“……알긴 알아?”

“응. 미안해. 정말 미안.”

선혜는 경애의 품에 파고들며 안겼다.

“다 커서 애도 있는 애가.”

경애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선혜를 품어주었다.

애 엄마이기 전에 선혜는 한 명의 여성이었고 누군가의 딸이었다. 지금만큼은 애 엄마가 아니라 어리광부리는 딸의 모습이었다.

“엄마도 미안해. 너무 몰아붙여서. 그냥 엄마는 너 코피 쏟고 그러는 거 보니까 속상해서…….”

오히려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엄마의 모습에 괜히 가슴이 찡했다.

가장 힘들 때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던 엄마.

그런 엄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선혜는 잠시 고민했다.

엄마가 원하는 건 단 두 가지.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거나, 회사에 입사하여 지금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

전자는 불가능할지언정 후자는 선혜가 마음만 먹으면 실행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 회사 들어갈게, 엄마.”

경애가 놀라 선혜를 품에서 떼어내 쳐다보았다.

“정말?”

“응.”

“아유. 생각 잘했다. 아이고, 그래. 들어가면 편할 거야. 아유. 잘 생각했다. 잘했다.”

이렇게 사소한 걸로도 웃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인데 왜 그렇게 속을 썩였는지.

선혜는 경애의 웃는 얼굴을 보며 취업 준비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그 결심이 새로운 무언가의 시작이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채.

*

“자, 우리 출판사 웹소설 계열사인 레어미디어 기획부로 들어가게 될 거야.”

현성 출판사 본사 이사장실. 태준은 응접용 소파에 앉아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를 쳐다보았다. 레어미디어 기획부 업무 관련 서류였다.

“아버지 얄짤없으신 거 알지? 주임으로 들어가서 차근차근 순서 밟을 거야. 그래도 너 우리 아버지 자식인 거 다 아니까 가서 아버지랑 내 얼굴에 먹칠하지 않도록 잘 해봐.”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잘 해내리라는 것을 태석은 잘 알고 있었다. 6년 전 니스에 다녀온 후 미친놈처럼 방황하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음을 먹고는 미국에 가서 경영 공부를 착실하게 마치고 온 태준이었다.

태석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태준을 보더니 물었다.

“회사 가기 어지간히도 싫은가 보다?”

“그럼 좋겠어?”

“얼씨구. 잘해, 인마. 가서 괜히 사고 치지 말고.”

“걱정 마셔.”

서류를 종이봉투에 넣어 챙긴 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석도 자리에서 따라 일어났다.

단순히 배웅이라고 생각했는데 준비하고 있던 비서가 따라붙었다.

“형은 어디 가?”

“아아. 레어미디어 신입사원 면접이 있어서.”

“그걸 형이 간다고? 대표 따로 있잖아.”

제법 규모가 큰 계열사이기에 레어미디어는 본사에서 떨어진 곳에 건물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탄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에 내리고 태석이 태준에게 선뜻 제안했다.

“같이 갈래? 다닐 회사 미리 견학이라도 할 겸.”

“됐어. 앞으로 질리도록 갈 회사 뭐하러. 그리고 세빈이 데리러 가야 돼.”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며 태준이 말하자 태석이 농담 삼아 말했다.

“너 나중에 애 생겨도 잘 챙기겠다, 야. 나중에 시간 나면 우리 아들들도 좀 부탁하자?”

“둘은 힘들거든.”

태석의 농담에 작게 대꾸한 태준이 곧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들어가, 형.”

“그래. 나중에 보자.”

태석이 비서가 연 뒷좌석에 올라타는 걸 본 태준도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태준은 차를 몰아 세빈의 유치원으로 향했다.

부디, 오늘도 선혜를 만나기를 고대하면서.

*

하지만 태준은 선혜 대신 선혜와 똑 닮은 아주머니를 마주치게 되었다. 선혜가 면접을 보러 가서 부재중인 터라 경애가 선혜 대신 수호를 데리러 온 터였다.

태준은 자기도 모르게 수호를 데리고 가는 경애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했고 태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경애도 얼결에 허리를 숙여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수호를 데리고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가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오늘이 마지막인데.”

다음 주 월요일부터 입사인지라, 오늘로 세빈의 보모 노릇도 마지막이었다.

그나저나―.

“선혜 씨 어머니신가 보네.”

아주 똑 닮은 외양을 가진 모녀라고 생각하며 태준을 구두 끝에 걸리는 돌을 툭 쳤다.

선혜를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태산 같았다. 이젠 회사 다니느라 못 오는데.

만일 온다고 하더라도 의심 많은 누나에게 댈 핑곗거리가 여의치 않았다. 누나 성격에 선혜의 존재를 알면 득달같이 달려들게 뻔하니.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하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때였다.

“외삼촌!”

멀리서 세빈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든 태준은 애써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세빈을 안아 들고 돌아섰다. 미련이 담긴 시선이 선혜와 마주쳤던 유치원 앞에 잠시 머물다 떨어졌다.

고민에 대한 답이 좀처럼 나오지 않아서 태준의 입가에 쓴 미소가 길게 머물렀다.

*

한편, 운전석에 올라탄 경애는 차창 너머로 세빈을 안아 드는 태준을 쳐다보고 있었다. 혼자 안전벨트를 맨 수호가 경애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할머니. 안 가?”

“어? 어어. 가야지.”

경애가 기어를 넣고 차를 출발시켰다. 세빈을 데리고 걸어가는 태준의 옆을 경애가 모는 차가 스쳐 지나갔다.

경애가 힐끔 태준을 쳐다보고는 수호에게 물었다.

“근데 아까 그 아저씨, 저 애 아빠래?”

“아니. 외삼촌이라던데.”

“외삼촌……?”

“응. 왜 그래, 할머니?”

“저 아저씨, 혹시 늬 엄마랑 아는 사이래?”

수호는 태준을 만나고 돌아왔을 때 선혜의 대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아니.”

“그래?”

“응.”

너무 넘겨짚었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미심쩍다.

아무리, 아무리 봐도.

“……기분 탓인가.”

수호랑, 닮은 것 같은데. 그것도 아주 많이.

경애는 피어오르는 의미심장한 느낌에 혓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레어미디어 면접실.

“이사님. 여기 물.”

“아. 고마워.”

태석은 비서가 가져온 생수통을 받아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면접이 벌써 한 시간째 이어지고 있었다. 중간 채용이라고 하더니만 그 수가 제법 많았다.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받은 답변을 토대로 사람을 평가하고.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얼마 남지 않은 쉬는 시간을 힐끔 바라보았다.

“오 분 뒤에 다음 팀 들어오라고 해.”

“예. 이사님.”

충직한 비서가 고개를 깍듯하게 숙이고 물러났다.

“호오. 앤틱?”

누군가의 이력서를 훑어보던 레어미디어 대표가 감탄을 자아냈다.

태석은 기시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앤틱?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그게 누구였죠?”

“아, 있잖습니까. 웹소설 표지 일러스트레이터. 엄청 잘나가는.”

“아아. 그 능력 좋다고 명성이 자자한?”

“네. 세상에. 어떻게 여기 이력서를 넣었지? 외주만 받아도 넉넉하게 먹고살 텐데?”

이해가 안 된다며 대표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태석이 물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아무렴요. 웬만한 작가들이 다 앤틱이 표지 디자인해 주기를 바란다고요. 감각도 좋고 손도 빠른 데다가 성실하기까지 하거든요.”

“호. 그런 사람이 우리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온다고요?”

“그러니까요. 햐. 근데 생긴 것 좀 봐라. 입사하면 회사가 제법 시끄러워지겠는데요?”

대표가 그렇게 말하며 이력서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태석이 장난스레 휘파람을 불었다. 사진 속 얼굴은 눈에 확 들어오는 미인이었다.

“세상 혼자 사시네.”

“하하. 우리 이사님이 그런 말씀 하실 입장은 아니시지 않습니까?”

“우리 대표님 아부는 거기까지 하시고. 자, 다음 팀 들어오라고 하죠.”

문에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고개를 숙이더니 문을 열고 사람들을 불렀다. 그러자 사인 일조로 구성된 면접 팀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중에 눈에 띄는 한 여성이 있었다.

힐을 신어 더욱 훤칠한 키. 비율은 연예인 저리 가라고 차분한 얼굴에 그린듯한 미소가 인상적인 여자였다.

저 사람이 앤틱이구나.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태석이 물잔을 들어 넘기며 흥미롭게 여자를 쳐다보았다.

“자, 자기 소개해 보시죠.”

레어미디어 대표가 손짓하며 말했다.

여자의 자기소개는 깔끔했다. 겸손도 적절했고 당당함도 과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상에 부합하는 부분을 정확히 어필했다. 옆에 앉은 레어미디어 대표가 흡족하게 웃는 소리가 태석에게까지 들릴 정도였다.

“근데. 외주로도 먹고살 만할 텐데 왜 굳이 우리 회사 신입사원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겁니까?”

태석이 제법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선혜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프리랜서라는 게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 보니 불안하더라고요. 그 때문에 무리해서 일을 하다 보니까 몸도 많이 상하고 신경도 많이 예민해져서요. 보다 안정적으로 오래 일하고 싶은 마음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면접관들이 납득이 간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레어미디어 대표가 이력서를 확인하다가 별안간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애가 있네요?”

다들 그 말에 술렁였다. 태석도 놀란 얼굴로 이력서를 훑어보았다.

눈여겨보지 않았던 가족관계가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네. 아들 하나 있습니다.”

남편은 없었다.

“……미혼모.”

면접관 중 한 명이 탄식하듯 한 말에도 선혜는 당당한 얼굴이었다.

“네. 맞습니다. 미혼모.”

선혜를 바라보는 태석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전혀 움츠러들지 않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윤선혜 씨가 출근하면, 아이는 누가 돌보죠?”

“어머니가 도와주시기로 하셨어요. 유치원에서도 한 시간 정도는 맡아줄 수 있다고 확인받은 바 있고요.”

“회식과 야근은 특별히 빼 드려야겠네요.”

태석의 농담 섞은 말에 면접관들이 그의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마지막 포부에 대해 말하라고 했을 때 선혜가 살짝 미소 띤 얼굴로 태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짧지만 진심 섞인 말이었다.

태석 또한 아이 둘을 키우고 있기에 그 말에 담긴 책임감이 느껴졌다. 마음에 들었다.

태석은 턱을 쓸며 선혜를 보다가 나가보라고 손짓했고 면접자들이 동시에 일어나 인사를 마친 뒤 면접장을 나섰다.

태석이 미소 띤 얼굴로 선혜의 이력서를 쳐다보고 있자 레어미디어 대표가 장난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이사님. 무지하게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태석은 그저 피식 웃었다.

“그러게요. 이상하게 마음에 드네.”

왜일까. 좋은 인재를 발견했다는 흡족함 만이 가득하다고 생각했는데 묘한 기분이었다.

그때까지도 태석은 알지 못했다.

자신이 면접 본 그 여자가 6년 전 막냇동생 태준이 애타게 찾던 여자라는 사실을.

그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불과 몇 달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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