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귀별 숲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던 아리아드네와 그 일행이 다시 나타난 것은 닷새가 지난 뒤였다. 죽었을 거라 생각한 아리아드네 일행이 되돌아오자 성 상티모니아 기사들을 상대로 분전(奮戰)하고 있던 페렌트 기사들의 사기가 크게 올라갔다. 아리아드네 일행이 합류하자, 전세는 단박에 역전되었다.
아그네스 교황이 죽고, 성녀마저 자신들의 편이 아님을 깨달은 성 상티모니아는 사기를 잃고 끝없이 밀려났다. 페렌트 왕궁에서 급파한 병력이 귀별 숲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모든 전투가 끝난 다음이었다. 페렌트 측의 사망자는 단 한 명이었는데, 아리아드네가 사라진 틈에 지휘관이랍시고 날뛰다 죽은 레비에 후작이 그 주인공이었다.
지원군을 조직해 달려온 이는 메르디에스 기사단장 출신이자 후에 왕궁 기사단장이 되는 커티스 리스벨로, 그는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딸과 재회했다. 커티스 리스벨은 딸을 만난 기쁨에 페렌트 왕궁에 도착할 때까지 눈물을 멈추지 못했는데, 이것은 ‘피도 눈물도 없을 것’이라는 그의 기존 평판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귀별 숲의 전투는 프레모 대륙의 정세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이 땅에 남은 신의 잔재에 더는 매달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의 망령에서 벗어난 인간들은 새롭게 그들의 역사를 쌓아 올렸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땅을 지배하던 신들의 망령이 사라지자, 그곳에서 신학이 자랐다는 점이다.
초기 신학자인 리베라는 ‘눈앞의 기이한 현상을 믿는 것은 그릇됨에 현혹된 것이며, 실체가 없는 존재를 탐구하는 것만이 진정한 의미의 구도이다. 나는 신을 믿는다. 내가 믿는 신은 성물을 만들고, 권속을 가진 옛 지배자가 아닌, 내가 알지 못하는 관념을 설명해 줄 불확실한 실체이다. 나는 신을 찾기 위해 오늘도 고뇌한다.’라고 신의 개념을 설명한다.
아리아드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시작된 신학은 그녀의 대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신학자 중에는 아리아드네를 새로운 시대의 신이라 칭하는 자들마저 있었는데, 그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페렌트의 48대 왕인 크리스티안이 들었다는 별의 그릇이 내린 예언으로부터 기인한다.
‘네 죽음이 그토록 고대하던 이 땅의 진정한 왕을 잉태하리니, 홀로 우뚝하게 선 왕은 우리의 오랜 염원을 이루리라.’
그들은 그 예언이 이 땅에서 신의 망령을 몰아내고 인간의 역사를 세우게 되는 아리아드네의 출현을 말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 해석을 지지하는 이들은 귀별 숲 전투를 평한 아리아드네의 발언을 그 근거로 삼는다.
아리아드네는 페렌트 왕궁으로 귀환한 다음, 귀별 숲에서의 전투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처음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 땅을 떠난 신들이 남긴 망령이 내 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모든 전투가 끝난 뒤에야 나는 깨달았다.
그곳에는 언젠가 재림하리란 신도, 신이 내린 축복도, 신의 형벌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를 막아선 이들은 신의 힘을 탐내고 그것에 현혹된 인간들이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신의 망령을 자처한 것은 인간의 탐욕이었다. 낡은 신전에서는 스스로의 욕망에 휘둘리고, 타인의 욕망에 희생당한 사람들만이 서로를 상처 입히고 있었다.
인간이 신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도, 그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스스로의 욕망과 싸우다가 패배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 고대하는 우뚝하게 선 왕은, 헛된 욕망과 싸워 이기는 순간 도래할 것이다.’
크리스티안이 들은 예언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아직 학자마다 그 해석이 분분하나, 인간들의 역사를 연 이가 아리아드네라는 것에서만큼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인간들의 역사, 그 시작에 메르디에스 왕조를 연 아리아드네가 있었고, 페렌트의 진정한 전성기라 불리는 후기 페렌트는 메르디에스 왕조와 함께 그 막이 열렸다. 그런 의미에서 아리아드네는 새로운 시대를 연 왕이라 평할 만하다.
세상에는 일정한 범주의 물건을 두루 지칭하는 보통 명사가 유일무이한 고유 명사처럼 쓰이는 일들이 있다.
‘책’이라는 명사가 보통 명사로 쓰이면 서적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책>이라는 고유 명사로 쓰일 때는 인류 최초의 역사서를 지칭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마찬가지로 ‘왕’이라는 단어는 한 나라의 수장을 가리키는 말이나, 그것이 <왕>이라는 고유 명사로 쓰일 때는 메르디에스 왕조를 연 아리아드네를 가리키는 말이 된다.
그것은 신화의 시대의 그림자를 지우고, 인간의 역사를 연 왕에 대한 예우이자 경외에서 비롯된 칭호일 것이다.
-발트 저, 메르디에스 왕조사 중에서.』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왕비’로 죽고, ‘왕’으로 살아간 아리아드네 메르디에스의 삶과 사랑에 관한 기록이다.
<더 퀸(The Queen)>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