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8화 (118/148)

7. Ephphatha

“미안해.”

황금빛으로 물든 오후, 아리아드네를 꽉 안은 그가 잔뜩 쉰 낮은 목소리로 사과의 말을 건넸다.

“너무 늦어서, 너무 많이 기다리게 해서.”

늘 혼자 그를 기다리던 오후가,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어 제 속내를 꾹꾹 눌러 담던 그 시간들이 그로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미안해.”

그의 목소리가 귀를 타고 흘러들어 올 때마다 뻥 뚫린 구멍이 서서히 차올랐다.

“오는 길이 너무 멀어서 오지 못할 줄 알았어. 그런데도 오지 않을 수가 없어서.”

오랜 시간 헤맨 사람처럼 고단한 얼굴을 한 그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아리아드네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괜찮아. 전부 괜찮아.”

아리아드네는 손을 들어 닳고 닳은 노인의 것처럼 지친 그의 눈가를 쓸어내렸다.

“이렇게 돌아왔으니까.”

위로하는 듯한 아리아드네의 손길에 유진이 천천히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를 감싼 공기가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유진의 새까만 머리카락이 금빛 공기에 녹아들 듯 느릿하게 흔들렸다. 내리깐 그의 속눈썹이 눈가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그때, 깃털처럼 가벼운 무언가가 그의 속눈썹 위로 내려앉았다. 천천히 눈을 뜬 그가 그것을 떼어 내 확인했다. 찢어진 천 조각이었다.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던 천 조각이 내려앉은 모양이었다.

“바람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공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멈춘 것 같던 시간이 흐르고 바람이 불더니 와글와글 번잡한 소음들이 귓가를 때렸다. 한순간에 이곳은 다시 전장의 한복판이 되었다.

유진의 회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는가 싶더니 그가 아리아드네를 껴안은 채로 훌쩍 날아올랐다.

아리아드네는 유진의 품에 안긴 채로 퍼억! 압축된 공기가 터지는 듯한 굉음을 들었다. 무거운 갑옷으로 중무장한 병사들은 마치 찢어진 천 조각처럼 공중을 날아다녔다.

무력이 뛰어난 사람과 책략이 뛰어난 사람 중에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단연 후자였다. 한 사람의 무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비범한 전략을 상대할 순 없었다. 그것이 전쟁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그 상식을 뒤엎는 존재가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물러서지 마라! 메르디에스 공녀만 잡으면 된다!”

후방을 급습한 케이루스 병사들은 유진의 무력에 속수무책으로 밀리면서도 끈질기게 버텼다. 오히려 반쯤 얼이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것은 남부 연합 세력들이었다.

“정신 차려! 여기까지 와서 공을 다 빼앗길 셈이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겨운 듯 하품을 쩍쩍 내뱉던 시녀가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일갈했다.

“푸른 뱀의 이름으로!”

일갈한 시녀가 발로 땅을 세게 구르며 고함을 지르자, 시중인의 복장을 하고 있던 다른 여자들이 마찬가지로 땅을 세게 구르며 복창했다.

“푸른 뱀의 이름으로!”

그와 동시에 시녀나 하녀로 위장하고 있던 여자들이 무기를 꺼내 들며 케이루스의 병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소르체가 우리를 수호할 것이다!”

시종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시녀의 얼굴은 삽시간에 냉혹한 지휘관의 것이 되었다. 케이루스의 병사 하나가 그 시녀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시녀는 순식간에 제 치마를 풀어내 병사의 머리 위로 던졌다. 시야가 가려진 병사가 주춤하며 망설이던 그 순간이었다.

서걱! 병사의 시야를 가린 치마가 둘로 찢어지더니 그 너머에서 조금 전 그 시녀가 빙긋 웃고 있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제 몸만 한 커다란 도를 윙윙 휘둘렀다.

“뭐, 저런 괴물이…….”

문득, 섬뜩한 감각에 병사는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파앗! 피 분수가 솟아올랐다. 어깨에서 시작된 상처는 옆구리에서 끝이 났다. 병사는 그제야 제 상체가 두 동강 났음을 알았다.

“소르체의 살라, 널 죽인 자의 이름이다.”

‘살라’라고 자신을 소개한 시녀는 짧게 자른 빳빳한 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병사의 시체를 밟고 뛰어올랐다.

“포로는 필요 없다. 우리의 목표는 오로지 적의 목숨뿐이다.”

‘푸른 손’의 살라, 그녀는 접촉을 통해 물리적 상처를 치유하는 소르체의 백자(白者)인 동시에 소르체에서 손꼽히는 무장이었다. 살라의 직속 부대는 그녀의 이명(異名)을 딴 푸른 뱀 군단이었다.

촤아아앗!

뒤늦게 지휘관이 누구인지 알아차린 케이루스의 병사들이 살라를 노렸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살라의 몸에 닿기도 전에 시안의 검에 모조리 가로막혔다.

단일 무력만 놓고 봤을 때, 유진 다음가는 실력자는 단연 소르체의 수호자 시안이었다.

“메르디에스 공녀에겐 저분이 있으니 살라 님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시안이 걱정 말라는 듯 검은 눈동자를 깜박이며 말했다.

“아니, 지켜야 할 대상이 바뀐 것 같은데…….”

메르디에스의 원군 요청에 소르체의 주력 부대인 푸른 뱀 군단이 출정한 이유의 절반쯤은 소르체의 수호자 시안 때문이었다. 시안이 아리아드네와 동행 중이니 소르체로서도 구색만 맞춘 부대가 아닌 주력 부대를 보내온 것이었다.

푸른 뱀 군단의 제일 큰 임무는 소르체의 수호자 시안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보호 대상이 되레 자신을 지켜 주겠노라 나서고 있으니.

하지만 살라는 굳이 시안을 말리지 않았다. 검술 실력으로만 따지면 자신보다도 시안이 한 수 위인 데다가 장수로서도 아까운 전력을 써먹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수호자님의 보호를 받아야 할 정도로 약해 빠진 것은 아니라서.”

시안의 어깨를 밟고 날아오른 살라가 병사 서넛을 한꺼번에 내리쳤다. 살라의 묵직한 도에 얻어맞은 병사들은 낙엽처럼 쓰러졌다.

유진 하나만으로도 버거웠는데, 메르디에스 측에는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분명 후방에는, 후방에는…….”

케이루스의 지휘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들이 후방 진지를 급습한 데는 충분한 사전 정보가 있었다.

물새 협곡 최전선에서 하루 거리에 자리 잡은 후방 진지는 전장이라기보다 연회장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키는 병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대부분의 인력은 메르디에스 공녀나 리뮈르의 공녀, 공자와 같은 귀인들을 시중들기 위한 것이었다.

메르디에스 공녀 아리아드네는 전장의 한복판에서도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했다. 그 수준이 좀 과하긴 했으나 높은 분들이 함께하는 전장에서는 아예 없는 일도 아니었다.

그들은 며칠이나 면밀히 후방 진지의 구성원들을 살펴본 끝에 승리를 확신하고 급습을 결정했다. 그런데 대체 왜…….

“후방에는 여자들밖에 없었는데, 그치?”

어느새 그의 뒤에는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시녀가 다가와 한 뼘이나 될 법한 짧은 검을 자신의 목덜미에 겨누고 있었다. 시녀의 손에 들린 단도는 암살자들이나 쓸 법한 암기 같은 형태였다.

“그런데 그게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왜 못 했을까.”

살라가 그의 목에 겨눈 칼을 꾹 눌렀다. 목에서는 피가 방울방울 새어 나와 뚝뚝 떨어졌다.

남자 시중인이 많았다면 자신들도 시중인으로 변장한 병력은 아닐까,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은 아닐까, 고민하고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방 진지에는 아리아드네와 그 친우 자격으로 머무르는 여자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들을 위한 시중인들도 순 여자들뿐이었다.

어쩌다 검술이나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여자들이 있긴 해도 그것은 소수에 불과했다. 시녀나 하녀 중에 한둘쯤 뛰어난 실력자가 있다 해도 충분히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이 많은 여자들이 전부 위장한 병력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네놈들 세상이 반쪽이라는 거다.”

살라가 지휘관의 목을 겨누고 있던 검을 버리고 맨손으로 그의 목을 꺾었다. 털썩, 살라의 손에 목이 꺾인 남자는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살라가 푸른 뱀 군단이 장악한 전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삶과 죽음의 조율사라는 소르체의 명성대로, 그곳의 기사들은 기본적으로 독과 암기에 능했다. 전투에서 가벼운 상처를 입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지만 소르체의 독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가벼운 상처에도 적들은 픽픽 쓰러지거나 거품을 물고 경련했다. 그제야 시중인으로 위장한 자들의 정체를 짐작한 적들이 하얗게 질린 채 주춤했다. 기세에서 밀리면 싸움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전장을 휘휘 둘러보던 살라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난 포로 같은 거 잡는 취미 없는데, 여기 대장은 내가 아니라서. 메르디에스 공녀께서 살려 두라니 살려야지. 자, 내가 셋까지 세는 동안 무기 안 버리면 내 손에 죽는 거다.”

그녀는 손가락을 세 개 펴더니 후우, 하고 숨을 깊게 내쉰 후 붉은 입술을 열었다.

“셋.”

툭, 툭, 투두둑, 챙챙. 쨍그랑!

케이루스의 병사들이 서둘러 손에 든 무기를 마구잡이로 집어 던지며 무릎을 꿇었다. 무기들이 난잡하게 섞여 떨어지는 통에 날붙이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끈질기게 버티며 아리아드네를 잡으려던 조금 전의 기세는 눈곱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 이런 너무 천천히 셌나?”

살라가 제 손과 무릎 꿇은 병사들을 번갈아 보며 아쉽다는 표정을 짓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만하면 첫 임무는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 같은데요.”

그러자 유진의 품에 안겨 있던 아리아드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수고하셨어요, 살라 군단장님.”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유진이 제 품에서 아리아드네를 내려 주며 물었다.

“……지금 이게 일부러 적의 기습을 유도한 거였어?”

“아, 겨우 이런 것들을 잡자고 푼 미끼가 아니었는데…….”

사로잡힌 케이루스 병사들을 한차례 훑어본 아리아드네가 아쉽다는 듯 작게 혀를 찼다.

아리아드네가 이번 작전을 짜며 기대한 것은 리카서스 측 병력을 잡는 것이었다. 케이루스와 리카서스의 동맹을 깨기 위해서는 리카서스를 지휘하고 있는 칼에게 닿을 연락책이 필요했다.

이번 기습에 동원된 케이루스의 병력은 자그마치 1만이었다. 그중 대부분을 포로로 잡았으니 적지 않은 성과였다. 하지만 정작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한 터라 이것이 썩 만족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다.

“나도 없는 때에 또 이렇게 위험한 일을…….”

유진이 눈가를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걱정이나 염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렇게 하느냐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내가 시작한 싸움인데 나만 안전한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 없어.”

그래, 이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사랑에 빠진 여자는. 언제 어디서나 가장 위험한 곳으로 훌쩍 뛰어드는 것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사람.

“그러니까 내가 걱정되면 앞으로도 당신이 내 옆에 붙어 있어.”

그 말을 하는 그의 연인은 언제나처럼 오연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사랑에 빠졌던 그 얼굴이었다. 그러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랑이란 더 절실한 쪽이 약자가 되는 법이니까.

“그래.”

유진은 천천히 허리를 숙여 그녀의 눈가에 가볍게 키스를 하며 대답했다. 반사적으로 살짝 감겼던 푸른 눈이 그의 대답에 반색하며 활짝 열렸다.

“정말?”

“정말.”

그의 대답에 아리아드네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난 내가 당신 없이도 잘 버티고 있는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었어.”

손바닥에 고인 봄 햇살이 금빛으로 반짝이던 순간, 그가 곧 나타날 것임을 직감했다. 그를 기다리는 몇 초가 끔찍하리만치 길었다.

눈을 떼면 반짝이는 금빛이 사라지고, 그마저 떠날까 봐 눈조차 깜빡일 수 없었다. 그제야 실감했다. 그를 기다리는 내내 자신이 어떤 상태였는지.

“당신과 얼굴을 마주한 순간, 나 그런 생각을 했어.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황금을 녹인 강에 잠겨 떠오르지 않아도 좋다고.”

아리아드네는 여전히 유진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황금빛 공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끝을 잡은 유진이 어딘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에겐 이게 보여?”

아리아드네는 유진의 주위를 떠도는 황금빛을 응시한 채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주위를 떠도는 금빛이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정도는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랭스턴 공국의 엘바에서도 사라졌던 그의 등장을 눈치챈 것도 자신뿐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자신만이 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아마도.”

“언제부터?”

언제부터였을까. 이전 삶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당신과 다시 만난 순간부터.”

내 시간을 돌려준 당신과 다시 만나게 되어서.

“나는 당신을 볼 수 있게 되었나 봐.”

유진의 회색빛 눈동자가 눈꺼풀 아래로 사라졌다 나타났다. 그가 일그러진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잔뜩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랬어. 그랬던 거였어. 우리가 다시 만나서.”

그가 아르체의 신전에서 찾은 기억은 레오의 것만이 아니었다.

“나 당신을 사랑했어.”

그는 레오의 유해가 품고 있는 기억 속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르체의 신전을 찾았던 또 다른 ‘유진’을 보았다.

[메르디에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성 상티모니아의 방문자님.]

‘유진’의 기억 속에서 아리아드네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절절한 사랑이나 애정 따위는 한 줌도 느껴지지 않는 담백한 시선이었다.

[메르디에스의 성물인 무량의 돌이 보고 싶으시다고요? 이쪽에서 요구하는 성채만 지불하신다면 어려울 것 없는 일이죠. 무량의 돌을 보여 드리는 대신 제 결혼식에 참석해 주시겠어요?]

그럼에도 자신은 그녀에게 제 영혼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말아서.

“당신이 나를 봐 주지 않아도, 나는, 나는 당신을 사랑했어.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을, 사랑했어.”

[신의 이름으로 무한한 축복과 영원한 행복을 기원합니다.]

[이렇듯 과분한 축하를 받을 줄은 몰랐는데……. 방문자님의 축복까지 받았으니 정말 행복해야겠네요.]

그렇게 그녀를 사랑하고야 말았다. 자신이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도 모르고.

“미안해. 너무 늦게 당신을 알아봐서.”

아리아드네는 그에게 더 일찍 사랑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했지만.

“아니, 나는―”

그때의 자신이 바란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유진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눈앞의 그녀를 단단히 껴안았다. 가슴께가 마치 불로 지지는 것처럼 뜨거웠다.

쿵쿵, 제 심장이 맹렬히 뛰는 소리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동시에 그 소리가 지나치게 감미로워 독이라 해도 기꺼이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를 왕으로 만든 건 아리아드네일지 몰라도, 내가 다른 가문을 없앨 수 있도록 도운 건 그대이지 않나? 그대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이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 테니.]

그녀가 모든 것을 알게 된 뒤에도 자신을 여전히 사랑할지, 그것은 조금도 자신할 수 없었다.

“나는, 나는…….”

온몸이 뜨거워 더는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한 그때, 그의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어, 왜…….”

아리아드네는 자신을 묵직하게 누르는 유진의 무게에 놀라 당황했다가.

“유진!”

콰당, 그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함께 쓰러지고 말았다.

“의원, 지금 당장 의원을 불러!”

아리아드네가 쓰러진 유진을 안은 채로 다급하게 의원을 찾았다. 쌕쌕,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절한 유진의 몸이 마치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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