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3화 (113/148)
  • * * *

    성 상티모니아의 교황 아그네스는 제 손에 들린 편지를 천천히 읽어 내리다 종내에는 픽 웃고 말았다.

    “케이루스의 외팔이가 몸이 달았군. 제 근간까지 팔아먹으려 하다니.”

    아그네스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노인이 그 말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는 성 상티모니아의 최고 의결 기구인 멘술라의 의장 바실리오 추기경이었다.

    “왜 보여 주랴?”

    아그네스가 던진 편지가 바실리오의 발치에 툭 떨어졌다. 바실리오는 아그네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힐긋대며 발치에 떨어진 편지를 주웠다.

    편지를 읽어 내리는 바실리오의 눈동자가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너무 떨어서 손에 든 편지가 마구잡이로 구겨질 정도였다. 늘 침착하던 노인의 눈이 기이한 열망으로 번들거렸다.

    “성, 성하, 이것은 둘도 없는 기회입니다.”

    아그네스가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새까만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비죽이 실소를 흘렸다.

    “그래서 그대는 페렌트의 내전에 뛰어들잔 말인가?”

    퍽 자애로운 얼굴을 한 아그네스가 바실리오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말했다.

    “신의 말씀을 받드는 자들이 어찌 이토록 탐욕스러운지. 오래도록 눈독 들여 온 성물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성도들의 피를 흘리는 것쯤이야 아무래도 좋다는 거군.”

    그제야 자신이 한 말이 무엇인지 깨달은 듯 바실리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더듬거리며 아무 말이나 쏟아 냈다.

    “그, 그것이 아니오라……. 성 상티모니아는 성도들이 사는 땅의 질서와 평화를 위해 힘쓸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전쟁이 일어나면 죄 없는 사람들이 피를 흘리기 마련이니, 페렌트 왕가의 수호는 우리의 의무이기도…….”

    바실리오는 제법 길게 이런저런 말들을 줄줄이 늘어놓았으나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불과했다.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그네스가 손등 위로 턱을 괴며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주절주절 쓸데없는 변명이 길기도 하지. 조금 전 그대의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이건 둘도 없는 기회라고.”

    아그네스의 나직한 목소리가 바실리오 위로 묵직하게 떨어졌다. 그는 제 손에서 우그러진 편지를 힘없이 떨어트렸다.

    아그네스는 힘없이 쪼그라든 노인을 내려다보며 부러 눈썹을 아래로 늘어트렸다.

    “조금 실망이야. 나는 그대만은 그래도 제법 세간에서 말하는 성직자답다고 여겼는데…….”

    바실리오가 움찔 몸을 굳혔지만, 아그네스의 나긋한 목소리는 멈추지 않고 그를 향해 쏟아졌다.

    “이래서야 그대도 루이제 랭스턴, 그 늙은 사자와 다를 것이 없지 않나.”

    성 상티모니아의 인간들은 하나같이 성물을 향한 집착이 대단했다. 신을 섬기는 건지, 성물을 섬기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성물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 몇 정도는 아주 우습게 알았다. 그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이들조차 드물었다. 하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파들파들 떠는 바실리오 정도면 그래도 양심이 있는 축이었다.

    “그래서가 아닙니다. 케이루스의 성물인 별의 그릇은 모라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가져서는 안 되는 물건입니다.”

    바실리오는 티끌 같은 양심을 보호하고자 그럴듯한 변명을 찾아 둘러댔다. 하지만 이번에도 헛소리였다.

    “나는 인간이 아니라더냐? 그것이 인간이 가져서는 안 되는 물건이라면 나도 마찬가지겠지.”

    자리에서 일어난 아그네스가 창 쪽으로 걸음을 옮겨 밖을 내다보았다. 종일 내린 눈으로 세상은 온통 하얀색이었다.

    “하긴, 나야 인간이라 할 수 없으니.”

    20년 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그녀는 인간이 아니었다. 루이제 랭스턴, 그 여자만 아니었다면…….

    “루이제 랭스턴은 아직도 내게 할 말이 없다던가?”

    “그렇습니다.”

    마침내 심문 같은 문답에서 벗어났건만 이번 화제 역시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한때 살리바의 안주인으로 군림했던 루이제는 가혹한 고문으로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오래 버티는군. 아직도 제 아들이 저를 구해 줄 거라 믿는 건가.”

    그중에서도 루이제가 가장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은 아그네스의 조롱과 멸시였다. 평생을 남들 위에서 군림하며 살아온 루이제에게는 죽는 것만도 못한 나날이 이어졌다.

    바실리오는 살리바의 안주인이었던 루이제가 비참하게 망가져 가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하는 것이 못내 괴로웠다.

    “그렇게 안타깝나?”

    부지불식간에 가까이 다가온 아그네스가 바실리오의 턱을 움켜쥔 채로 요사스럽게 웃었다.

    “바실리오, 네 주인은 이미 뒈졌고 네 안주인도 곧 뒈질 거야.”

    전대 교황을 향한 언사라기엔 지나치게 거칠었다. 하지만 바실리오는 잠자코 눈을 내려 깐 채로 아그네스의 처분을 기다릴 뿐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 내기 전까지 그 여자는 결코 죽어서는 안 돼. 네 안주인의 처지가 그토록 안타까우면 그 여자의 입을 열게 해. 그럼 편히 죽여 줄 테니. 알았나?”

    아그네스의 붉은 눈이 대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를 응시했다. 저 눈과 마주하고 있을 때면 마치 영혼까지 속박당하는 느낌이었다.

    “……알겠습니다.”

    힘겹게 대답을 마친 바실리오가 몸을 숙여 인사한 뒤 뒷걸음질로 그곳을 벗어났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서야 그는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바실리오의 머릿속은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신을 모시는 사제로서 응당 지켜야 할 사명과 낮은 자를 헤아려야 하는 수행자로서의 양심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하지만 양심은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었고, 사명은 성 상티모니아 전체를 위한 것이었다.

    ‘다소의 희생이 있더라도 별의 그릇은 성 상티모니아의 보호 아래 있어야…….’

    바실리오에겐 수행자로서의 개인보다 신에게 봉사하는 사제로서의 사명이 더 중요했다. 그가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순간이었다.

    흰 대리석 기둥 뒤쪽에서 황금을 뽑아낸 듯한 금발이 빼꼼 나타났다가 휙 사라졌다.

    “베아트리스 님, 여기서 무얼 하고 계십니까?”

    바실리오의 물음에 기둥 뒤에 숨어 있던 베아트리스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 그냥…….”

    고개를 숙인 베아트리스가 발끝을 세워 대리석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그럴 때마다 새까만 밤의 장막 속에서도 찬란히 빛나는 금빛 머리칼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금발을 지닌 이야 별처럼 많지만, 베아트리스 같은 금발은 드물었다. 순도 높은 황금에서 뽑아낸 실처럼 아름다운 머리카락이었다.

    베아트리스의 황금 같은 머리카락을 볼 때면 자연히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온통 황금빛으로 빛나는 청년의 얼굴을 한 성 상티모니아 최고의 성물 카푸트.

    황금의 색을 가졌다는 것도 그러하지만, 베아트리스는 모체인 아그네스보다도 카푸트와 닮은 데가 있었다. 베아트리스가 카푸트와 기이할 정도로 강력한 친화력을 타고난 것도 그래서일까.

    성 상티모니아 내에서 성녀 베아트리스를 부르는 다른 이름은 바로 살아 있는 성물이었다. 한데 그토록 위대한 존재가 바라는 것은 한 줌의 애정에 불과했다.

    “베아트리스 님, 성하를 뵈러 오셨으면 들어가시지 않고요?”

    바실리오가 아그네스를 입에 담자 그제야 고개를 든 베아트리스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머니 기분은 어때?”

    베아트리스가 어머니라 부르는 이는 피의 교황이라 불리는 아그네스였다. 그녀는 세간에서 말하는 ‘어머니’라는 존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바실리오는 잠시 망설이다가 가장 무난한 대답을 꺼내 놓았다.

    “성하께서는 평소 같으십니다.”

    고개를 숙인 채 발끝으로 바닥을 두어 번 두드린 베아트리스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냥, 내 방으로 돌아갈래. 피곤하실 텐데 방해하고 싶지 않아.”

    애정을 바라는 베아트리스는 아그네스와의 관계에서 언제나 약자였다. 어머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떻게 해야 사랑받을 수 있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잔뜩 기가 죽은 베아트리스가 안쓰러웠는지 바실리오가 주름진 손을 내밀었다.

    “그럼 제가 처소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바실리오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눈이 잔뜩 내린 겨울은 노인에게는 위험한 계절이었다. 베아트리스의 염려에 바실리오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그럴 정도는 아닙니다.”

    바실리오가 소매를 걷어 제법 굵직한 제 팔뚝을 내밀어 보였다. 황금빛 눈동자를 깜박이던 베아트리스가 고민이 끝났는지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럼 좋아.”

    노인과 소녀는 정답게 손을 잡은 채로 살리바 대신전을 거닐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고요한 신전은 눈이 오는 날이면 더욱 적막해지곤 했다.

    타박타박 발걸음을 옮기는 베아트리스 위로 보름을 막 지난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바실리오는 달빛이 쏟아지는 설원을 가로지르는 베아트리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슴이 술렁이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성스럽고 경이로웠다.

    바실리오는 눈앞의 소녀가 신이 현신한 존재라 해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제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이 경외심을 무엇으로 설명한단 말인가.

    걸음이 느려진 바실리오가 의아했는지 베아트리스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바실리오, 왜…….”

    걸음을 멈춘 베아트리스가 바실리오를 돌아보았다. 늙은 추기경은 천천히 몸을 숙여 두 무릎과 양팔,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렸다. 가장 존귀한 존재에게 올리는 예였다. 그것은 신을 마주한 인간의 예이기도 했다.

    베아트리스는 한숨과 함께 새까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쓸쓸하고 외로웠다. 아무도 그녀를 같은 ‘인간’으로 대해 주지 않았다. 그녀는 성 상티모니아 유일의 성녀이자 살아 있는 성물이었으니까.

    사람들은 베아트리스를 전시 유리 안에 놓인 귀한 세공품처럼 다뤘다. 그녀를 경외하는 이들은 혼자만의 환상에 젖어 진짜 그녀를 보려 하지 않았다. 진짜 그녀와 마주해 준 건 유진이 처음이었다.

    평생토록 기다려 온 성물 카푸트의 주인.

    하지만 가족이 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유진은 훌쩍 떠나 버렸다.

    “기다렸는데…….”

    그녀의 눈에 보름을 지나 귀퉁이가 이지러진 달이 담겼다. 황금빛 눈동자에는 서러운 눈물이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또 보름이 지났어.”

    다음 보름이 되면 다시 연락하자 굳게 약속했지만, 다음 보름이 되어도, 그다음 보름이 되어도 베아트리스가 부르는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고 그대로 흩어져버렸다.

    “나 같은 건 다 잊었나 봐. 나는 언제나 기다리기만 해.”

    베아트리스의 눈동자에서 넘쳐흐른 눈물이 쉼 없이 흘러내렸다.

    “베아트리스 님…….”

    바실리오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댔지만, 베아트리스의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꾹꾹 눌러 온 서러움이 눈물을 타고 방울방울 흘렀다.

    “보름에 보자고 했는데, 벌써 보름이 몇 번이나 지났는데, 나만 기다렸나 봐. 귀찮아하는 줄도 모르고…….”

    좁디좁은 세계에서 그녀가 애정을 바란 대상은 많지 않았다. 어머니, 유진, 막 친구가 된 아리아드네 정도였다.

    하지만 아그네스는 필요할 때가 아니면 자신을 찾지 않았고, 아리아드네와 함께 떠난 유진은 자신 따윈 잊은 게 분명했다. 보름이 되면 다시 연락하자 해 놓고선.

    “이젠 혼자가 아닐 줄 알았는데, 내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데……. 내가 얼마나, 얼마나…….”

    베아트리스는 아직도 성물 카푸트와 처음 마주한 순간을 기억했다.

    그것을 처음 본 순간 알았다. 자신이 태어난 건 언젠가 이 땅에 나타날 성물 카푸트의 주인을 기다리기 위해서란 걸.

    아무런 의미 없는 생의 연속이었지만, 언젠가 나타날 제 반쪽을 기다리며 버텼다.

    살리바 대신전에 유진이 나타난 순간,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랜 기다림은 끝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기다림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베아트리스, 사랑하는 내 딸아. 잊지 말렴. 정말 널 사랑하는 것도, 네가 의지할 수 있는 것도 오직 나뿐이란 걸.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은 잊어버려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네 심장만 다 문드러져 버린단다.

    아그네스는 베아트리스의 황금 같은 머리카락을 쓸어 주며 그렇게 말하곤 했다. 희망은 네 심장을 좀먹는 벌레에 불과하다고.

    “어머니 말씀대로 정말 심장이, 뻥 뚫린 것 같아.”

    베아트리스는 심장이 자리한 가슴을 움켜쥐며 눈물을 쏟아 냈다.

    ―그러니까 아무도 사랑하지 말렴, 아무도 널 사랑하지 않으니까.

    어머니 말씀대로 자신은 어떻게 해도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인 걸까.

    ―널 사랑하는 것도, 네가 사랑하는 것도 나로 충분하잖니? 그렇지 않니? 베아트리스.

    평생 어머니만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걸까.

    “그, 건 너무 외로운데……. 나 이렇게 추운데…….”

    가끔 내키는 대로 던져 주는 아그네스의 애정은 베아트리스를 더욱 병들게 했다.

    “내 반쪽이, 뜯긴 것 같아. 나,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해?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해?”

    기다리면 유진이 오기는 오는 걸까. 베아트리스는 점점 희망을 잃어 갔다.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껏 기다린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도.

    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은 그를 홀로 기다렸던 그 시간보다도,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그를 기다리는 지금이 더 외롭고 쓸쓸했다.

    * * *

    12년 만에 메르디에스를 뒤덮은 눈이 멈춘 건 눈이 내리기 시작한 지 보름 뒤의 일이었다.

    눈이 그치고 해가 비치기 시작하자 도시를 뒤덮었던 눈이 빠르게 녹아내렸다. 채 녹지 못한 눈은 흙먼지와 뒤엉켜 거리를 굴러다녔다.

    아리아드네는 방에 불조차 켜지 않은 채 창틀에 앉아 우두커니 밖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혼자 있는 게 며칠만이더라. 사흘? 나흘?’

    기억이 흐릿했다.

    캐롤린이 죽고, 유진마저 메르디에스를 떠나자 사람들은 잠시도 아리아드네를 혼자 두지 않았다. 늘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아리아드네를 방 밖으로 끌어내거나, 돌아가며 그녀의 처소에 방문하곤 했다.

    봄이 되면 본격적으로 시작될 내전을 준비하느라 혼자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데도 그랬다.

    성인이 되며 물렸던 침방 하녀도 다시 배속되었다. 아리아드네가 잠이 든 순간에도 당번 하녀가 침실 곁방에서 그녀를 살폈다.

    사람들의 수선이 자신을 향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을 아니 말리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나흘 만에 얻어 낸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아리아드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두운 방에서 창밖을 내다볼 뿐이었다. 슬쩍 열린 창문 틈으로 눈을 치우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중에는 달로아 남매도 있었다. 눈에 익숙한 리뮈르 사람이니 이것저것 조언을 해 주러 잠시 나온 듯했다.

    “아니, 그게 아니지.”

    “로아, 여기는 리뮈르와는 여건이 달라.”

    달로아와 달미에르 사이에 의견이 갈렸는지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다투기 시작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풍경이었다. 둘은 늘 티격태격하면서도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쌍둥이라는 건 어떤 감각이야?

    언젠가 아리아드네가 그렇게 물었을 때.

    ―그냥 태어나니까 얘가 있었어. 그리고 지금껏 쭉 함께 있었고, 앞으로도 그렇겠지.

    ―그것이 너무 당연해서 서로의 부재는 상상할 수가 없다고 해야 할까요?

    ―흔히 이란성 쌍생아는 하나의 영혼을 나눠 가지고 태어난 존재라고 하잖아.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가끔 미에르가 나처럼 느껴질 때가 있긴 해.

    ―타인이되 타인이 아닌, 나이되 내가 아닌. 뭐라 설명하기는 어렵네요.

    달미에르의 마지막 설명에 달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만은 그 뜻을 이해한다는 듯.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소리 높여 싸울 때는 언제고 서로를 보며 피식 웃더니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아리아드네는 달로아 남매가 사라진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노을이 퍼지기 시작한 풍경을 응시했다. 붉게 물든 구름 위에 동그란 저녁달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 또 보름이 지났구나.’

    귀퉁이가 살짝 이지러진 달을 보고 있으려니 자연히 베아트리스가 떠올랐다. 베아트리스가 보내 온 반지로 연락이 닿은 것은 처음 한 번뿐이었다.

    ‘반지를 건네받은 릭센에서 얼굴을 본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보름과 해 질 녘이라는 조건을 맞추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기도 했고, 그동안 상황이 너무 긴박하게 돌아간 탓이었다. 지난 보름 중 하루는 리뮈르에 개기월식이 일어났던 밤이었고, 또 어느 보름은 소르체의 감옥에 갇힌 날이었다.

    성도 살리바에 남은 사촌 레이먼드를 통해 편지를 보내기도 했으나 베아트리스로부터 답장이 온 적은 없었다.

    ‘이번 보름에는 베아트리스와 연락이 닿았으려나.’

    아리아드네는 노을로 물든 풍경을 바라보며 어딘가에 있을 유진의 모습을 상상했다. 근사한 모습을 떠올리고 싶은데, 제 상상 속의 그는 어쩐지 괴로운 얼굴이었다.

    ‘실제 그는 이렇지 않았는데, 훨씬 더 멋진 사람이었는데……. 왜 이런 얼굴만 떠오르는지.’

    제 상상이 만들어 낸 허상이 아니라 진짜 ‘유진’을 보고 싶었다.

    한 번도 타인이 가진 무언가를 탐낸 적은 없었다. 무엇을 부럽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모든 것이 제 손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베아트리스가 가진 능력이 못 견디게 부러웠다.

    거리와 공간을 뛰어넘어 그에게 달려갈 수 있는 그 능력이 제게 있었다면, 그를 기다리는 이 시간이 조금 더 견딜 만했을 텐데.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

    아리아드네는 무릎에 고개를 묻는 것으로 그 모든 그리움을 눌러 담았다. 베아트리스의 능력이 부럽고, 의지할 반쪽이 있는 달로아가 부러웠다.

    자신을 살피는 주위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이 가끔 못 견디게 버거울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그가 더 그리워졌다.

    그가 없는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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