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화 (105/148)

* * *

“뭐, 뭐야?”

망루에서 경계를 서던 병사는 저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반 호수를 둘러싼 숲에서 새빨간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숲을 모조리 삼켜 버릴 듯한 불이었다.

“불! 불이야!”

병사의 고함 소리에 메르디에스 성은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소란스러워졌다.

“지금 당장 인질들을 확보해!”

수적으로는 열세지만 인질들이 그들의 수중에 있는 한 얼마간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인질들이 갇힌 방을 지키고 선 병사들이 허둥지둥 문을 열었다. 다행히도 인질의 수는 변함이 없었다. 인질들은 갑작스러운 소란에 당황한 듯 모두 고개를 숙인 채였다.

“인질들을 모두 중앙 홀로 모은다.”

상급자의 명령에 병사가 가장 가까이 있는 인질을 잡아당겼다. 병사의 거친 손길에 어깨 위에서 달랑이는 옅은 금발이 좌우로 흔들렸다.

‘인질 중에 짧게 자른 금발을 지닌 자가 있었던가?’

병사는 인질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당겨 얼굴을 확인했다. 고양이처럼 끝이 치켜 올라간 파란 눈동자가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눈에 띄는 미인이었다. 인질 중 이런 미인이 있었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 여자는 뭐야?”

병사의 물음에 ‘여자’의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다시 말해 봐. 뭐라고?”

섬세한 얼굴과는 달리 제법 허스키한 목소리였다. 갇힌 지 제법 되었으니 목이 쉬었대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이런 여자가 있었던가?”

병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여자’를 꼼꼼히 살폈다. ‘여자’는 꽉 움켜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자, 아니, 야.”

“뭐라고?”

이를 꽉 문 채로 웅얼거리니 뭐라 말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병사가 ‘여자’의 입에 귀를 가까이 붙인 그때였다.

“대체 누가 여자야!”

낮고 굵은 목소리가 병사의 귀에 내리꽂혔다.

“네놈 새끼는 눈을 장식으로 달고 다니냐?”

통렬한 질책과 함께 퍽퍽, 무자비한 주먹과 발길질이 그의 가슴팍에 날아와 꽂혔다.

“내가 여장하기 싫댔는데! 아무도 들은 척도 안 하고!”

리카르도가 울분에 찬 목소리로 괴성을 내지르며 케이루스 병사들을 북처럼 패고 다녔다.

“꼼, 꼼짝 마라. 그렇지 않으면…….”

그새 다른 인질을 잡아 목에 칼을 겨눈 한 병사가 리카르도에게 협박 비슷한 말을 꺼냈다.

“그렇지 않으면? 뭐?”

심기가 심히 불편한 리카르도가 한껏 비웃으며 서서히 다가갔다. 병사는 인질의 목에 겨눈 칼을 더욱 바짝 들이대며 뒤로 물러났다.

“인질의 목숨은―”

병사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이었다. 차르륵, 인질이 제 손에 감겨 있던 쇠사슬로 병사의 목을 거세게 감았다.

“커억, 크흑…….”

목이 졸린 병사는 발버둥을 치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었다.

“여기 인질이 어디 있다고 그래. 전부 네놈들 저승으로 데려다줄 사람들인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인질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병사들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인질이 아니라 인질로 위장한 기사들이었다.

절그럭, 툭툭, 손발을 감싸고 있던 수갑과 족쇄마저도 위장이었던 듯 묵직한 물건이 바닥 위로 떨어졌다.

“어, 어떻게…….”

바닥에 주저앉은 케이루스의 병사들은 제 목숨이 끝났음을 알았다. 하지만 이곳에 있던 인질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 *

찰박찰박, 물을 차고 달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어두운 통로에는 발목까지 찬 물이 흐르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시면 외부와 연결됩니다. 힘내십시오.”

알버트는 지친 인질들을 독려하며 바삐 걸음을 옮겼다.

인질들을 구출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수잔이었다. 메르디에스 성을 점령한 지휘관은 셀레나라는 여자였는데, 수잔이 그녀의 신임을 얻은 덕택에 일이 쉽게 진행되었다.

셀레나는 인질들을 쉽게 다루기 위해 가족들이 서로의 생사를 알지 못하도록 나누어 가뒀다.

그렇게 인질을 가둬 둔 방은 수십 개가 넘었다. 그중에는 글레나가 있던 곳처럼 비밀 통로와 연결되는 곳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곳도 있었다.

수잔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인질들을 비밀 통로와 연결된 방으로 이동시켰다. 심지어 인질들의 수갑과 족쇄를 풀어 준 것도 수잔이었다.

알버트의 임무는 방에서 빠져나온 인질들을 무사히 성 밖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인질들이 사라진 자리는 리카르도가 이끄는 기사들이 채웠다. 달로아 남매와 시안이 반 호수를 활활 불태우면 리카르도가 어수선해진 틈을 타 성에 남은 잔당을 처리할 터였다.

‘아가씨, 제발 그때까지만…….’

알버트는 캐롤린 생각만 하면 속이 새까맣게 타는 것 같았다. 그는 초조한 속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무사하신가요?”

그때, 누군가 알버트의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물었다. 놀란 알버트가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을 돌아보았다.

“성주님과 공녀께서는 무사하시냐고 물었습니다.”

글레나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에 알버트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물론입니다. 두 분 모두 무사하십니다. 곧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같이 구르던 기사단의 동료들이야 그렇지 않았지만, 성에 갇혔던 메르디에스 사람들은 알버트를 꺼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알버트가 캐롤린의 연인이라는 소문이 퍼진 탓이었다.

“그건 다행이군요.”

알버트의 곁을 스쳐 지나가던 글레나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휘청였다.

“린즈 부인!”

놀란 알버트가 서둘러 글레나를 부축하려 했으나 그녀는 불쾌하다는 듯 그의 손을 쳐 냈다.

“괜찮습니다. 경의 도움을 받을 정도는 아닙니다.”

알버트는 글레나의 거부에 입을 꾹 다물고 뒤로 물러났다.

“출구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곧 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

고개를 숙인 알버트가 글레나에게 거부당한 제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제이슨, 부인을 부축해 드려야 할 듯합니다.”

알버트는 곁에 있던 다른 기사에게 글레나를 부탁하고는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났다.

“부인, 제 팔을 잡으십시오.”

“……그럼 잠시만.”

또 거절하긴 뭣했는지 이번에는 글레나도 제이슨의 팔에 손을 올렸다. 제이슨의 부축을 받아 걸음을 옮기던 글레나가 말했다.

“신기한 일이네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성내로 들어왔는데 아무도 들키지 않았다는 게…….”

탈출하는 인질들을 호위하는 메르디에스 측 기사와 병사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거기다 인질로 위장해 성에 남은 기사들을 더하면 그 수는 갑절로 불어난다. 몰래 숨어들 만한 숫자가 아니었다.

“수잔이라는 하녀가 외부와 통하는 문을 열어 주었다고 합니다. 지금 저희도 그 문으로 빠져나갈 겁니다.”

제이슨은 제일 앞에서 일행을 이끄는 알버트를 힐끗 보며 대답했다. 선두의 알버트는 막다른 벽 앞에 멈춰 서 있었다.

“외부와 통하는 문이요?”

“네, 보물 창고로 위장된 곳이 있는데 그곳 문을 열면…….”

알버트는 막다른 벽을 힘들이지 않고 천천히 밀었다. 그러자 벽이 부드럽게 열리며 또 다른 통로가 나타났다. 제이슨이 벽이 열리며 새로이 나타난 통로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곳의 잠금장치가 풀어지는 구조랍니다.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요.”

사람들은 벽이 열리며 나타난 통로로 발을 디뎠다. 글레나는 제이슨을 따라 걸으며 말했다.

“하기야 오래된 성이고 증축된 곳이 많은지라 그런 것이 있대도 이상할 것은 없죠.”

메르디에스 성은 그 자체로 유물이나 다름없었다. 증축과 개보수를 반복한 메르디에스 성에는 수많은 비밀 통로가 존재했다.

그중 외부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있다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을 줄은 글레나도 미처 몰랐지만.

새롭게 나타난 통로로 조금 걷자 통로 끝에서 환한 빛이 쏟아졌다. 그리고 빛과 함께 작은 계단이 드러났다.

계단을 올라 도착한 곳은 사냥꾼들이나 쓸 법한 통나무집이었다. 그들이 빠져나온 곳은 성의 동쪽에 위치한 외진 숲속이었다.

통나무집 안팎으로 빽빽하게 둘러싼 병사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병사들은 인질들을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러니 혹시나 통로가 뒤늦게 발각된다 해도 인질들이 위험할 일은 없었다. 그때면 인질들은 이미 이곳에 없을 테니까.

드디어 탈출이었다. 안전이 보장되자 긴장이 풀린 사람들 사이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리에 주저앉는 사람도 있었다. 이 사람들이 마지막이었다. 이젠 성에 남은 인질은 없었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던 알버트와 글레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알버트가 글레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걸음을 막 떼려던 그때였다.

“성으로 돌아가시나요, 알버트 경?”

글레나는 예상했다는 얼굴로 물었다.

“네, 제 임무는 끝났으니까요.”

아리아드네가 알버트에게 내린 임무는 인질들을 무사히 구출하라는 것이었다. 알버트에게 맡겨진 임무는 이것으로 끝이었지만 그에게는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경께서 지켜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잊지 않으시길.”

“물론입니다. 그럼.”

그렇게 알버트가 다시 계단으로 내려가려던 순간이었다.

“저, 경…….”

또다시 누군가가 그를 붙잡았다. 속으로 한숨을 삼킨 알버트가 초조한 낯을 감추고는 고개를 돌렸다.

“네, 부인. 말씀하십시오.”

“저 이곳에 없는 사람은…….”

“가족분을 찾으십니까?”

알버트에게 말을 건 사람은 낯선 귀부인이었다. 그는 순순히 귀부인의 말을 받아 주었다.

추수제에 참석했다가 억류당한 귀족이었다. 그들의 불안을 달래 주는 건 메르디에스의 기사인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

하지만 부인은 그를 부르고도 좀처럼 말을 잇지 않았다. 알버트는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제가 식견이 좁아 부인께서 누구신지 알지 못합니다. 부인의 가문을 알려 주시면…….”

알버트의 요청에 맞은편의 부인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눈꺼풀 아래 가려졌던 짙은 보라색 눈동자가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는 레이놀즈 백작 부인입니다.”

“…….”

알버트의 손이 잘게 떨렸다. 아무리 귀족 사회에 무지한 그라지만 캐롤린의 생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바보는 아니었다.

어린 젖먹이 딸을 두고 이혼한 것도, 외롭게 자란 딸을 외면한 것도 저 부인의 잘못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구든 자신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법이니까.

하지만 알버트에게 레이놀즈 백작 부인은 캐롤린을 상처 입힌 사람에 불과했다.

“부군과 따님을 찾으십니까?”

깍듯한 것은 변함없지만 알버트의 어조는 저절로 딱딱해졌다.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레이놀즈 백작 부인은 당황한 듯 손을 내저었다.

“그게 아니라…….”

“제이슨, 레이놀즈 백작과 그 영애께서 갇혀 있던 방의 구출은 언제 끝났습니까?”

알버트는 레이놀즈 백작 부인과 더는 대화를 나누기 싫다는 듯, 그녀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곁에 있던 기사에게 물었다.

“레이놀즈 백작께선 한 시간 전, 레이놀즈 영애께서는 조금 전 이곳을 빠져나갔네.”

“부군과 따님께서는 부인보다 일찍 이곳을 빠져나갔다 하니 다른 기사들이 부군과 따님이 계신 곳으로 인도해 드릴 겁니다.”

“그렇군요.”

알버트는 고개를 까딱 숙이고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레이놀즈 백작 부인 마거릿은 자신의 이름을 듣고 예민하게 구는 기사의 태도에 한숨을 내쉬었다.

메르디에스 기사단의 기사단장 커티스 리스벨은 바로 그녀의 전 남편이었다. 그러니 메르디에스 기사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야 이상할 것도 없었다.

마거릿은 리스벨을 떠나온 뒤로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지독했던 사랑은 딱 그만큼 끔찍했다.

제 속으로 낳은 딸도 싫었다. 남부 귀족으로 살다 보면 가끔 캐롤린과 마주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일부러 더 싸늘하게 대했다.

상처받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던 캐롤린은 점점 무감해졌다. 그녀에게 상처만 남겼던 남자의 아이였다. 그 남자의 아이야 어떻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태도가 후회스러운 순간이 찾아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녀의 사랑스러운 딸 엘리의 성년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이었다.

마거릿의 눈에 닿는 곳에 있던 미성년일 때와는 달랐다. 성년이 된 귀족 자제의 사교는 부모가 참견하기 어려웠다.

남부 사교계의 중심은 단연 메르디에스였다. 가문의 힘만 해도 그런데 메르디에스의 공녀 아리아드네는 성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아리아드네는 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또래 귀족들을 모조리 쥐고 흔들었다.

그 아리아드네와 가장 절친한 이가 바로 캐롤린이었다. 캐롤린이 아직 마거릿을 원망하고 있다면 그녀의 딸을 향해 굴절된 증오를 쏟아 낼지도 몰랐다.

그러면 그녀의 여린 딸은 결코 무사하지 못하리라. 그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마거릿은 사랑하는 딸을 위해 자존심을 굽히기로 했다. 추수제를 일주일 정도 앞둔 어느 날, 그녀는 캐롤린을 찾아갔다.

―리스벨 영애.

천천히 고개를 돌린 캐롤린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잘 지냈나요? 좋아 보이는군요.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캐롤린은 마치 당황한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태연한 얼굴로 물었다. 마거릿은 곤란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영애에게 부탁이 있어서요.

―제게 말씀이신가요?

마거릿과 똑 닮은 보랏빛 눈동자가 무언가를 가늠하듯 가늘어졌다.

―제 딸이 곧 성년이 된답니다.

―제게 축하를 바라시나요?

캐롤린이 눈가를 우아하게 찌푸리며 물었다.

―그것을 부탁하려는 건 아니에요. 엘리가 성년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일들이 생길 테지요.

―…….

―리스벨 영애, 혹여 내게 서운한 게 있다면 내가 사과할게요. 그러니 엘리는 미워하지 말아 줘요. 그 아이가 잘못한 건 없잖아요?

―레이놀즈 백작 부인, 부인의 이런 행동이 영애를 더 우습게 만드는 것 아닐까요? 저에게 와서 이러실 정도로 따님이 부족한가요?

―엘리의 부족함을 걱정하는 게 아니랍니다. 어미의 부덕함을 걱정하는 거죠.

마거릿의 절절한 고백에 캐롤린은 픽, 비웃는 듯한 소리를 냈다.

―레이놀즈 영애의 어머니가 누구든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제 호의도 바라시지 말고, 제 악의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와는 아무 상관 없으니까요.

싸늘하게 사라지는 캐롤린을 보며 마거릿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찾아갔지만 캐롤린은 냉랭하기만 했다.

―대체 저를 얼마나 질 낮은 인간으로 생각하시는 거예요?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한 번만 더 이런 이유로 저를 찾아오시면 그 걱정을 현실로 만들어 드릴지도 모르니까.

협박 비슷한 말을 들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어두운 통로를 빠져나오는 동안 마거릿은 살아남았다는 안도와 함께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자신이 괜한 말을 해서 캐롤린을 들쑤신 건 아닐지, 정말 엘리에게 어떤 앙심이라도 품는 건 아닌지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캐롤린에게 확답을 받아 둬야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캐롤린은 털끝 하나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앞의 기사에게 캐롤린의 소재라도 물으려던 것이었는데…….

“레이놀즈 백작 부인, 가족분들이 기다리시는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알버트에게 떠밀린 기사가 마거릿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캐롤린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듯싶었다.

“아, 네. 부탁할게요.”

마거릿은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캐롤린 걘 대체 어디 있는 거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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