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 (98/148)
  • * * *

    메르디에스 성에서 동쪽으로 가다 보면 완만한 구릉이 연이어 나타나는 ‘시에테’라는 지역이 있었다.

    이곳이 ‘7’을 의미하는 ‘시에테’라 불리는 것은 이 지역의 구릉들이 마치 숫자 7을 그리는 것처럼 이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유력자가 이 구릉에 별장을 지은 이후로 시에테는 휴양지로 명성을 날렸다. 완만하게 이어진 구릉들 사이로 드문드문 지어진 별장은 구릉에 교묘하게 가려 귀족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지켜 주었다.

    그중에서도 7의 왼쪽 꼭짓점에 자리한 이름 모를 귀족의 별장에 며칠 전부터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도착했어.”

    로브의 모자를 깊게 눌러쓴 여자가 별장의 정문에서 말을 멈춰 세웠다. 모자 아래로 드러난 얼굴의 윤곽이 마치 조각처럼 아름다운 여자였다.

    “이곳은 사유지입니다.”

    정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여자를 막아서며 말했다.

    “알아.”

    여자가 깊게 눌러쓴 로브의 모자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모자 속에 숨겨져 있던 여자의 반짝이는 옅은 금발과 맑은 하늘처럼 새파란 눈동자가 드러났다.

    “여긴 내 집이니까.”

    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병사들이 바닥에 무릎을 대고 정중한 인사를 올렸다.

    “공녀 저하를 뵈옵니다.”

    “됐어. 그런 인사는 성에 돌아가서 받기로 하지.”

    아리아드네는 한쪽 눈가를 작게 찡그린 채 그대로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도록 교묘하게 설계된 별장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별장에 들어선 아리아드네가 기사에게 가죽장갑을 벗어 건네주며 물었다. 그러나 답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우리도 지금 막 도착했어.”

    달로아가 2층 난간에서 손을 흔들더니 계단으로 뛰어 내려왔다. 일주일 만의 재회였다.

    소르체를 떠난 아리아드네 일행은 흰 뱀의 숲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메르디에스 측 병력과 합류했다. 목적지는 시에테의 메르디에스 별장이었다.

    부쩍 늘어난 인원 탓에 눈에 띌 것을 염려하여 일행은 셋으로 나눠서 움직이기로 했다. 아리아드네와 유진과 조셉이 한 팀, 리뮈르 남매와 시안이 한 팀, 신시아와 알버트, 그리고 리카르도가 한 팀이 되어 움직였다.

    가장 먼저 시에테에 도착한 것은 최단 경로를 택했던 리뮈르 남매와 시안이었다.

    “신시아와 리카르도, 알버트만 도착하면 끝인가?”

    신시아 일행이 택한 경로가 가장 길었으니 마지막에 도착하는 것이 당연했다.

    “금일 오후에 귀환 예정이라고 했으니 곧 도착할 겁니다.”

    아리아드네의 장갑을 받아 들던 기사가 대답했다.

    “그래, 도착하는 대로 나한테 좀 들르라고 해.”

    공손한 태도로 시중을 들던 기사가 짧게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우선 씻으시겠습니까?”

    “그러지.”

    “2층에 방을 준비했으니―”

    “아니, 본채에는 신시아와 알버트, 조셉이 있을 곳만 준비하면 돼. 나와 내 손님들은 별채에 머물 거야.”

    기사가 아리아드네의 의향을 살피려는 듯 잠깐 말을 멈추었다. 시에테의 메르디에스 별장에는 본채와 별채, 각 건물에 딸린 사용인 숙소와 두 개의 마구간이 있었다. 메르디에스의 별장이니 어느 곳도 모자람이 없지만 별채가 본채와 같을 수는 없었다.

    “별채는 준비가 부족한 터라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휴양 온 것도 아닌데 유난스럽게 굴 필요 없어. 내 짐은 별채에 갖다 두도록 해.”

    아리아드네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준비된 욕실로 들어갔다. 이곳 시에테의 별장에도 카이엔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이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가까이 두는 사람은 최대한 줄이는 것이 좋았다. 별채에 머무를 사람들의 면면이 그러하니 경비나 호위도 따로 필요 없을 테고.

    간단하게 씻고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기사가 다가왔다.

    “상단주님 일행이 도착했습니다.”

    “그래? 지금 어디 있어?”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젖은 머리카락의 물기만 제거하고 실내용 드레스로 갈아입은 아리아드네가 응접실 문을 열었다. 응접실에는 일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제일 늦은 모양이네. 많이 기다렸어?”

    “아닙니다. 저희도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아리아드네가 응접실에 들어서자 신시아, 알버트, 리카르도가 차례대로 인사를 했다. 인사를 받은 아리아드네가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다들 오느라 고생 많았어. 여긴 신시아도 처음이지?”

    “네.”

    시에테에 메르디에스 별장이 있다는 것은 신시아도 전혀 몰랐던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메르디에스의 거처가 몇 개가 더 있든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내게만 알려 주시는 거랬어.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찻잔을 들어 뜨거운 물을 한 차례 넘긴 아리아드네가 일행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모인 김에 할 이야기가 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소리들이 뚝 멎었다.

    “신시아, 지금 우리 상황은 전시나 마찬가지야. 동의하지?”

    “네, 물론입니다.”

    아리아드네의 물음에 신시아는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이곳에서 나가고 들어오는 모든 정보는 내가 직접 관리해. 내 승인 없이는 종이쪽지 하나도 반출할 수 없어.”

    전시 상황에서 정보의 통제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었다. 하나씩 차근차근 걸러 내다 보면 무엇이 걸려도 걸리기 마련이었다.

    “우리도?”

    달로아가 손가락으로 자신과 달미에르를 차례대로 가리키며 되물었다. 달로아, 달미에르, 시안은 연합 세력인 리뮈르와 소르체의 대표나 마찬가지였다.

    “이러는 게 불편하거나 불쾌하다면 다른 거처를 마련해 줄 테니 당분간 거기에서 지내는 방법도 있어.”

    하지만 예외를 둔다면 새는 구멍을 찾지 못할 우려가 있었다.

    “아니, 나는 뭐 딱히 불만은 아닌데……. 미에르 넌?”

    “굳이 따로 머무르는 쪽이 더 불편할 것 같아. 겨울이 끝나기 전에 리뮈르에 연락할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다행히도 리뮈르 남매는 외부 연락에 관심이 없었다.

    “저는 정기 보고만 하게 해 주시면 괜찮습니다.”

    리카르도의 의향이야 어떻든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

    시안은 자신도 대답해야 하느냐는 듯 눈동자만 또록또록 굴리고 있었다. 저쪽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신시아?”

    “물론입니다, 아리아드네 님. 말씀하신 대로 보안 등급을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약간 놀란 얼굴을 한 신시아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다들 협조해 줘서 고마워. 오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만 푹 쉬어.”

    종일 신경을 세우고 있으려니 머리가 아팠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리아드네가 응접실을 벗어나려 걸음을 옮기다 물을 것이 생각난 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 신시아. 추수제 전에 메르디에스에 다른 일은 없었어?”

    “네. 추수제를 예년보다 큰 규모로 준비했다는 것과 추수제를 앞두고 반 호수의 물을 빼느라 대규모의 인력이 동원된 것 정도가―”

    “뭐, 반 호수의 물을 빼?”

    아리아드네가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이 되물었다.

    “네, 성주님께서 호수 밑바닥에 귀찮은 것이 있다고 물을 빼고 모조리 뒤엎으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반 호수의 바닥에는 모라의 신전이 있었다. 그곳을 조심하라 말씀드렸더니 아예 호수를 뒤엎었을 줄이야.

    “아버지도 참……. 그래서 호수의 물은 다 뺐고?”

    아리아드네는 황당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레너드의 발상은 아리아드네조차도 따라가지 못할 때가 있었다.

    “네, 제가 보고를 받았을 때 이미 호수 밑바닥이 드러났다고 했으니까요. 필요하시면 그 시기 자료를 전부 취합해서 올릴까요?”

    “지금 말하는 반 호수가 메로우가 나타났던 거기인 거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유진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반 호수에서 메로우와 마주했던 것이 벌써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다. 불과 반년 전의 일인데.

    “맞아.”

    “그 호수 밑바닥에 모라의 신전이 있을 테고.”

    “그렇지.”

    “당신 아버지 덕에 호수의 물은 죄 말라 버렸고.”

    유진의 회색 눈동자가 어떤 의도를 품고 서늘하게 빛났다. 아리아드네는 유진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그걸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할 수 있겠어?”

    싱긋 웃음을 지은 아리아드네가 유진의 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유진은 그것에 화답하듯 아리아드네의 머리카락을 살짝 그러쥔 채 입을 맞추었다.

    “어려울 것 없지. 내가 누구인지 잊었어?”

    남자의 오만한 목소리가 자신만만하게 울려 퍼졌다.

    * * *

    쿠르, 쿠르르르, 좁은 통로로 들이친 물이 레너드와 커티스가 서 있는 자리로 쏟아져 내렸다.

    ―그럼 생존을 비네. 살아야 행복이니 뭐니 그딴 잡소리도 계속할 거 아닌가.

    칼이 남기고 간 그 재수 없는 말이 레너드의 귓가에 딱 달라붙어서 도무지 떨어지질 않았다.

    ‘내 운도 여기서 끝인가.’

    레너드는 물이 거세게 쏟아지는 통로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저 지경이니 왔던 길로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차근차근 차오른 얼음장 같은 물이 허벅지를 지나 가슴까지 닿았을 때 레너드는 생각했다.

    ‘아, 내 사인이 익사인 줄 알았더니 동사로구나.’

    죽는다고 생각하니 새삼 후회되는 일들이 많았다. 촉촉해진 눈으로 커티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레너드가 입을 열었다.

    “커티스, 그동안 내가 자네한테 잘못한 일이 적지 않지?”

    “모르시는 줄 알았습니다.”

    저렇게 툭툭 내뱉는 얄미운 소리조차도 그리울 것 같았다.

    “알지, 내가 왜 모르겠나?”

    “…….”

    알면 대체 왜 그랬냐는 표정이었다. 커티스 저 친구는 칼만 잘 쓰지, 사회성이 영 부족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자네처럼 칼로 자른 듯이 사는 게 아니야. 잘못인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그런 것도 있는 법이지.”

    “…….”

    커티스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레너드는 대화 상대를 잘못 골랐나 싶다가도 이곳에 사람이라고는 저와 커티스밖에 없음을 깨닫고는 꾸역꾸역 대화를 이어 나갔다.

    “왜 죽기 전에 다들 회개하고 그러잖나.”

    “죽고 싶으십니까?”

    “그럼 세상에 안 죽고 싶은 사람도 있……. 으응?”

    레너드가 자기 말에 취해 고개를 주억이다가 어딘가 잘못된 걸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성주님.”

    그를 부른 커티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위쪽을 가리켰다.

    “대체 저기 뭐가 있다고―”

    이런 순간에도 표정 하나 안 바뀌는 커티스가 불만스럽다는 듯이 투덜대던 레너드가 고개를 젖혀 위를 바라보았다.

    “아씨, 깜짝이야.”

    예상치 못한 광경에 깜짝 놀란 레너드가 눈을 깜박였다. 뻥 뚫린 구멍 사이로 따닥따닥 고개를 들이민 시커먼 사내들이 보였다.

    “흐어어어엉―”

    “단장님, 단장님! 저희가 왔습니다.”

    “성주님! 무사하신 거죠?”

    눈물범벅이 된 메르디에스 기사들이 훌쩍이며 그들을 부르고 있었다. 감동적인 재회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재회의 감동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런데 쟤네는 왜 널 먼저 찾아? 쟤네 먹이고 입히는 게 누군데!”

    눈을 세모꼴로 세우고 불평을 쏟아 내는 레너드 때문이었다.

    “대체 왜 단장부터 찾아? 기사단의 주인인 날 먼저 찾아야지!”

    “…….”

    커티스가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지 그랬냐는 표정으로 레너드를 빤히 바라보았다.

    “진짜, 나나 되니까 자네 데리고 있는 거지.”

    레너드가 한숨을 내쉬며 일장 연설을 시작하려던 순간이었다.

    “단장님, 제가 구해 드리겠습니다!”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던 기사 하나가 겉옷을 주섬주섬 벗으며 아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단장님은 내가 구할 거야!”

    그러자 곁에 있던 다른 기사가 질세라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 꼴을 지켜보던 레너드는 저절로 성질이 뻗쳤다.

    아무리 커티스가 메르디에스 기사단의 영웅이자 우상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제 앞에서 커티스를 먼저 구하겠다고 싸울 수가 있단 말인가.

    “저것들이 진짜!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구해도 나를 먼저 구해야지! 어?”

    레너드가 바락바락 화를 내자 앞다투어 겉옷을 벗던 기사들이 반성하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그래. 원래 응급 상황에서는 약자부터 구해야 하는 거잖아.”

    “성주님은 누가 뭐래도 우리 기사단 최약체니까.”

    하지만 기사들의 진심 어린 반성은 레너드의 화를 더욱 돋을 뿐이었다.

    “방금 최약체 어쩌고 그 말한 거 누구야? 윌리엄, 너냐? 조지, 네가 말했어? 어?”

    레너드의 추궁에 기사들이 슬금슬금 물러나며 딴청을 피웠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커티스가 한숨을 내쉬며 기사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들까지 괜히 고생할 필요 없으니 밧줄과 몸을 띄울 만한 것이나 찾아서 던져라.”

    레너드의 눈치만 보고 있던 기사들은 그 말이 구원이라도 되는 양 화색이 돌았다.

    “아,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얼른 찾아올게요!”

    구멍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있던 기사들은 동태 파악을 위한 인원 몇만 남고 후다닥 사라졌다.

    “아무튼 혼자만 멋있는 척이야. 그러니까 저것들이 자네만 보면 눈이 돌아가지.”

    조금 전까지 바락바락 화를 내던 레너드가 피식 웃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쏟아지는 물줄기 소리 사이로 기사들이 커티스가 말한 물건을 구하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기사들이 굵은 밧줄이며 산짐승의 내장에 공기를 채워 묶은 것들을 던져 주었다.

    밧줄을 단단히 몸에 묶은 뒤, 공기를 넣은 내장을 품에 안으니 자연스레 수면 위로 둥둥 떠올랐다. 물이 높이 차오를수록 지면에 점점 가까워졌다.

    그렇게 둘을 끌어 올린 기사들은 또다시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정말, 두 분이 어떻게 되신 줄 알고…….”

    “그런데 내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고 왔어?”

    레너드가 지겹게 우는 기사들을 성의 없이 달래며 물었다. 레너드와 커티스를 구하러 나타난 기사들은 이번 작전에 투입되었던 자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 메르디에스 기사들을 이곳으로 보냈다는 말이었다.

    “저희도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는 성주님과 관련된 일인 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면?”

    “상단주님께 보우 강 상류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기사단 일부와 연락이 끊겼으니 수색하라는 명을 받고 도착했던 것인데…….”

    “신시아에게서?”

    레너드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추수제가 되어도 나와 커티스가 돌아오지 않으니 캐롤린이 신시아를 움직인 건가?’

    흐음, 레너드는 턱을 쓰다듬으며 계속 이야기를 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했다. 레너드의 재촉에 기사는 설명을 이어 갔다.

    “그런데 와 보니 협곡에는 리카서스 병사들이 빼곡히 깔려 있지 뭡니까. 그들 눈을 피해 간신히 살아남은 우리 기사들을 몇 구했는데…….”

    “성주님과 단장님의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해서, 저희는 두 분께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두 분 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이 갔다.

    “고생했어. 살아남은 자들이 리카서스 손에 떨어지지 않은 건 모두 자네들 덕이야.”

    레너드가 기사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기사들이 추가로 도착한 덕에 생존자들이라도 구할 수 있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추수제 전에 돌아가려던 것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이젠 그만 성으로 돌아가지.”

    젖은 옷을 털며 레너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에 돌아온 아리아드네가 자신이 사라졌단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을 듯싶었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 아버지는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레너드를 따라 주춤거리며 일어난 기사들이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성주님……. 메르디에스 성으로는 돌아가실 수 없습니다.”

    옷에 남은 물기를 짜던 레너드가 고개를 휙 돌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 집에 왜 내가 못 돌아가?”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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