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E Halidoms
까만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것처럼 가득했다.
다시 사랑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래도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조금 더 뒤의 일일 줄 알았다.
언제부터 시작이었을까. 이미 품은 마음에 시작을 알아 무엇 하겠냐만 자꾸만 돌이켜 보게 되었다.
파혼을 하려면, 왕이 되려면, 그래서 유진이 필요했다. 그가 원하는 것을 주고 그에게서 필요한 것을 얻어 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계산 따위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얼굴이 또 왜 그래?”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유진이 재차 물어 왔다.
“왜, 내 얼굴이 어떤데?”
“몰라. 모르는 얼굴이야.”
나조차 낯선 얼굴이다. 사랑에 배신당하고, 배신당한 사랑에 복수하려 하면서도 다시 사랑을 꿈꾼다. 사랑이 나를 죽게 하였는데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다니…….
하지만 사랑에도 자격이 필요하다면 나는 아직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 * *
“그런데 너! 내가 가지 말라고 그랬을 때, 내가 그렇게 우는데 어떻게 쳐다보지도 않고 그렇게 냉정하게 가 버릴 수가 있어?”
마침내 울음을 그친 캐롤린이 겨우 진정하더니 서운함이 뚝뚝 묻어나는 말투로 불평했다.
“아, 그건 제가…….”
“너 떠나던 날도 그래. 끝까지 목소리 한 번 들려주지 않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뭐라 변명하려던 알버트는 캐롤린의 새초롬한 추궁에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그건 마음이 약해질까 봐 그랬어요. 떠나야 하는데 떠날 수 없게 될까 봐.”
캐롤린이 원하는 것이 제 변명이 아니라 서운하고 외로웠던 마음을 알아달라는 투정임을 알아서였다.
“이젠 어디에도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네.”
알버트의 품으로 파고든 캐롤린이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기대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알버트의 다친 팔이 눈에 선했다. 알버트만 나을 수 있다면 소르체의 가주를 찾아가 제 양팔이라도 떼어 주고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팔은 의원에게―”
그때였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서늘한 바람이 한바탕 휘몰아쳤다. 서늘한 바람을 몰고 들어온 것은 아리아드네였다.
“캐롤린.”
“……리아?”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 아리아드네가 의자에 거꾸로 걸터앉았다. 그녀는 의자 등받이에 이마를 기댄 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캐롤린이 아리아드네에게 다가가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던 찰나였다. 고개를 든 아리아드네가 알버트와 캐롤린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이야기는 좀 했어? 오해는 다 풀었고?”
아리아드네의 물음에 알버트가 수줍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버트에게 확인하듯이 몇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은 아리아드네가 주위를 물렸다. 의자에서 일어난 아리아드네가 창 쪽으로 다가섰다.
“캐롤린, 뒷정리는 내가 알아서 할게. 넌 알버트와 함께 메르디에스로 돌아가.”
아리아드네의 말에서 이상한 것을 느낀 캐롤린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넌? 리아, 넌 안 돌아가? 성주님이 기다리고 계실 텐데…….”
아리아드네가 메르디에스를 떠난 것은 엘바에서 실종된 알버트를 찾기 위해서였다. 알버트를 찾은 지금, 아리아드네가 메르디에스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했다.
캐롤린의 물음에 아리아드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새파란 눈동자가 단호한 빛을 띠고 있었다.
“난 안 가.”
내뱉는 한 자, 한 자가 마치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그러면?”
“우선 아버지께 연락을 좀 해야겠어. 엘바의 일도 그렇고, 일레체에서의 일도 말씀드려야 하니까.”
아리아드네가 건조한 투로 상황을 정리했다. 피곤함에 지친 듯도 했다. 그러니 메르디에스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아리아드네의 말을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저토록 피곤해하면서 대체 왜…….’
“너도 백작님께 미리 말씀드려. 이렇게 된 이상, 백작님께 모든 걸 숨기는 건 불가능해.”
“리아, 그게 아니고…….”
“지금 이 자리에서 알버트를 내 호위로 삼을 거야. 리스벨 백작께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할 분이 아니라는 건 잘 알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알버트가 호위로 임명되면 내 승인 없이는 그를 기사단에서 내보내지 못할 테니까.”
기사 단원을 관리하는 것은 단장인 커티스의 책임이었으나 메르디에스 직계를 호위하는 호위 기사의 처분은 전적으로 메르디에스의 영역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알버트의 신변을 보장해 주겠다는 아리아드네의 배려는 고마웠다.
하지만 지금 캐롤린이 혼란스러운 것은 아버지나 알버트 때문이 아니었다.
“아니, 네 말은 다 알겠어. 그런데 같이 돌아가지 않겠다면……. 리아, 넌 어디 가는 거야?”
캐롤린의 물음에 아리아드네가 미간을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릭센.”
“릭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명이었다.
“왕도에는 왜…….”
당황한 캐롤린이 마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카이엔을 정리해야겠어.”
고개를 든 아리아드네가 창문을 열어젖히며 말했다. 차가운 숲속의 밤공기가 가득 밀려들었다.
“정리?”
세찬 바람이 한바탕 휘젓듯 산장 내부를 훑고 지나갔다. 캐롤린은 마구잡이로 날리는 제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았다. 윙윙 울리는 바람 사이로 아리아드네의 대답이 들렸다.
“더는 그 사람과 약혼 관계로 묶여 있기 싫어.”
“리아?”
“나, 파혼할 거야. 지금 당장.”
세찬 바람에 아리아드네의 옅은 금발이 금실처럼 흩날렸다. 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아리아드네의 얼굴이 웃고 있는 것 같았다.
* * *
페렌트의 왕도 릭센.
그중에서도 1왕자 카이엔이 지내는 주각궁은 마치 시퍼런 칼날이 번뜩이는 것처럼 사나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주각궁의 사용인들은 주인의 불편한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시선을 낮추고는 조용히 움직였다.
“그러니까.”
음률을 짚는 것처럼 느릿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창 안으로 쏟아지는 석양이 카이엔의 머리카락을 붉게 물들였다.
“시몬 랭스턴은 그 난장을 쳐 놓고 죽어 버렸고.”
미친놈. 카이엔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머리 한구석이 고장 난 미치광이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머리가 나쁠 줄이야.
엘바의 마물을 잠시 빼돌리자는 카이엔의 제안에 길길이 날뛰길래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유진을 조심하라는 그의 충고도 귓등으로 흘려보낸 것이 분명했다.
엘바를 벗어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인사가 그곳에서만은 자신이 무슨 황금의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굴었다.
카이엔의 웃음소리에 그의 맞은편에 부복(俯伏)한 제프리는 흠칫 몸을 굳혔다. 바닥에 붙인 제프리의 이마에서는 뚝뚝 땀이 흘렀다.
“일레체에서 실패한 것도 모자라 아리아드네에게 모조리 들켜 버렸다, 지금 그 말인가?”
믿을 수 없는 보고였다.
캐롤린 리스벨, 그 패를 손에 쥐자고 대체 얼마나 많은 안배를 했던가. 캐롤린 리스벨의 의심을 사지 않으려고 주위에 온갖 거짓 정보를 뿌리고 스스로 걸려들기를 기다렸다.
누군가 흘린 정보가 아니라 스스로 찾은 정보라 믿게 하려고 얼마나 많은 인력과 돈이 들었는데. 겨우 이만한 일을 꾸미는 데 반년도 훨씬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어떻게 일이 이따위로……. 갑자기 태도가 변한 아리아드네를 시작으로 오랫동안 계획한 모든 일이 어그러지고 있었다.
“분명 계획에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는데, 메르디에스 공녀가 마치 우리의 의도를 죄다 꿰뚫어 본 것처럼 움직―”
크으으윽, 제프리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목구멍 너머로 삼키며 더욱 깊게 몸을 숙였다. 카이엔이 바닥을 짚은 제프리의 손등을 발로 짓이겼다.
“우리라니, 누가 우리냐? 너와 내가 말이냐?”
“실, 실언을 했습니다.”
카이엔은 다시 한번 제프리의 손등을 발끝으로 걷어차고는 탁자 위에 놓인 체인 하나를 손가락에 걸었다. 정교한 세공이 들어간 은색 체인은 검 끝에 다는 장식품이었다.
알버트라는 자가 지니고 있던 것이었다. 얼마나 정성스레 닦았는지 은색 체인은 반짝반짝 윤이 났다.
‘이따위 것.’
카이엔은 무심히 보던 체인 장식을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남은 것들이 죄 못 쓰게 망가졌지 않나. 첫 시도가 성공해야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으니.”
바닥에 내던지고도 탁자 위에는 똑같은 모양의 체인이 하나 더 있었다.
어떻게든 작은 의심의 씨앗만 심을 수 있다면, 그러면 끝나는 일이었다. 한 번 불이 붙은 의심은 스스로 그 몸집을 키울 테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는 끈만 툭 자르면…….
“다 끝나는 일이었는데.”
카이엔은 탁자 위에 놓인 체인을 한 번 더 힐끗 보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만한 미끼가 다시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운 실패였다.
* * *
성 상티모니아의 성도 살리바는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아무리 단단히 입단속을 한다 해도 그만한 사안은 쉽게 덮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들 발소리조차 나지 않도록 조심하는데도 마치 수천 마리의 벌떼가 동시에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 공기가 소란스러웠다.
“보아라. 그리 다 가진 사람은 처음이라 하지 않았니? 하늘마저 그이의 편에 섰구나. 하늘마저 내 편이 아니라니, 신의 대리자라는 위명이 우습기도 하지.”
눈처럼 하얀 도기 욕조에는 붉은 장미가 수면을 뒤덮을 정도로 가득 뿌려져 있었다. 아그네스의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카락이 수면 위에 실처럼 늘어졌다.
아그네스는 느긋한 태도로 도기 욕조에 몸을 담근 채로 파이프를 들었다. 그녀가 은제 파이프를 깊게 빨아들일 때마다 그 끝이 발갛게 빛을 내며 타들어 갔다.
“마물의 흔적만 발견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시몬을 수장(水葬)시키는 것도 모자라 마물의 비밀마저 밝혀낼 줄이야.”
아그네스가 매캐한 연기를 뿜어냈다. 연기는 수증기 사이로 흩어져 모습을 감추었다.
“이 일로 무엇을 요구하리라 보느냐?”
그렇게 말한 아그네스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근처에 있던 사제들이 다가와 아그네스의 몸에 남은 물기를 닦아 냈다.
“죽은 자들에 대한 보상? 모든 정보의 투명한 공개?”
아그네스는 사제들의 시중을 받으며 불빛에 손을 비추어 보았다. 왼손 약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아그네스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저들도 결국 똑같은 선택을 할 게다. 인간의 적은 인간인 법이니까.”
치장을 마친 아그네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까만 머리를 늘어트린 아그네스가 온통 황금으로 가득한 살리바 대신전 한가운데 서자, 마치 금덩어리에 박힌 돌 조각처럼 보였다.
찬란한 황금에 티처럼 섞인 이물질, 탄생 자체가 사제의 부정을 증명하는 증거품이었던 자신과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것이 있을까.
하지만 눈에 거슬리는 것일수록 외면할 수 없는 법이다. 그녀는 성 상티모니아를 스쳐 간 그저 그런 교황 중 하나로 남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아그네스의 걸음은 ‘신에게 가는 문’이라 불리는 곳에서 멈추었다. 눈처럼 하얀 대리석에는 신화 속의 신들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고, 파낸 자리는 모조리 황금을 녹여 채운 화려한 문이었다.
아그네스는 문에 새겨진 신의 형상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광폭하고 자애로우며, 잔인하고 어질며, 악하여 선한 존재.
신의 구원을 믿는 자들은 좀처럼 그 믿음을 버리지 못한다. 원래 믿음이란 다 그런 것이 아닌가. 믿기로 결정하고 믿음의 이유를 만든다. 믿지 못할 이유가 생겼다 해서 믿음을 버린다면, 처음부터 믿음이 없었던 거겠지.
맹목적인 믿음. 그것이야말로 아그네스가 가진 가장 큰 힘이었다. 인간의 적은 언제나 인간이었고,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도 언제나 인간뿐.
“열어라.”
그녀의 가벼운 손짓에 하늘까지 닿을 것처럼 높게 솟은 문이 열렸다.
이 땅을 떠난 신은 결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이 땅의 인간을 구하는 것은 오직 인간뿐. 아그네스는 찬란한 빛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쿵, 육중한 소리를 내며 아그네스 뒤로 ‘신에게 가는 문’이 닫혔다. 아그네스는 이곳에 자신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을 발견하고는 눈가를 찡그렸다.
새하얀 머리가 무색할 정도로 빈틈없는 자세와 화려한 외양은 도저히 예순을 훌쩍 넘긴 노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노인의 얼굴이 아그네스를 발견하고는 분노로 달아올랐다.
“아그네스.”
아직도 그렇게 불러 주는 이가 있다니. 조소를 입가에 건 아그네스가 이 자리를 지키듯 에워싼 이들을 싸늘한 눈으로 훑어보았다.
“누가 죄인을 자리에 앉히라 했나?”
아그네스의 말에 흠칫 놀란 기사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쾅,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난 노인이 형형한 눈빛으로 아그네스를 노려보았다.
“감히, 너 따위가 내 아들을!”
루이제 랭스턴, 랭스턴 대부인으로 불리는 노인은 선대 교황인 테오도로의 공식 정부였다.
루이제보다 더 큰 총애를 받은 여자도 있었고, 루이제보다 더 많은 아이를 낳은 여자도 있었으나, 루이제보다 더 오래 테오도로의 곁을 지킨 여자는 없었다.
루이제는 평생을 교황의 아내로 살았고 교황의 아들을 낳았다. 그녀에게 살리바 대신전은 제집이나 마찬가지였고, 살리바 대신전에서 루이제는 안주인으로 군림했다.
“비록 세상에 둘도 없는 난봉꾼에 천치라 할지라도 그대에겐 랭스턴을 되돌려준 보물일 테지.”
거리낌 없는 하대에 루이제의 얼굴이 분노로 떨렸다.
“하지만 성 상티모니아에서는 씻을 수 없는 대죄를 지은 죄인일 뿐. 이미 죽었다 해도 그 죄를 갚기 어려우니 어찌할까.”
“내 아들은 죽지 않았다! 죽지 않았어! 황금의 가호가 유지되는 엘바에서 랭스턴이 죽는 일 따윈 없다.”
“설사 살았으면 무얼 하나. 죽는 것만도 못한 삶이 될 텐데.”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 터인데. 낮게 속삭인 아그네스가 루이제에게로 다가갔다. 아그네스가 루이제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분노로 이렇듯 몸을 떨면서도 같잖은 말 몇 마디 지껄이는 것 외엔 아무것도 못 하다니.
“그대의 서슬이 무서워 밤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 보니 왜 이리 초라할까.”
아침 햇살같이 빛나던 머리도, 엘바의 바다를 그대로 담은 것 같은 눈동자도 세월 앞에선 도리가 없었다. 태산처럼 강대했던 존재가 어느새 먼지만도 못하게 되었지 않나.
쾅! 조금 전까지 루이제가 앉았던 의자가 아그네스의 발길질에 나동그라졌다.
“랭스턴 대부인께서 노쇠하여 노광(老狂)을 부리시니 바른 자리로 인도해 드려라.”
아그네스의 서슬 퍼런 명령에 성기사들이 재빨리 루이제의 무릎을 꿇렸다. 루이제는 제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그네스가 루이제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오늘 그대는 엘바를 내어놓고 목숨을 구걸하러 오신 겁니다.”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달콤하게 휘어졌다.
신들의 정원에 천 년마다 열린다는 황금 사과를 손에 넣은 심정이 이러할까. 아그네스는 열두 살 아이처럼 흡족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