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4/148)

* * *

누군가 금가루를 흘린 것처럼 공기 중에 황금빛 입자가 떠돌아다녔다. 그것은 물결처럼 잔잔하게 흐르는 곳이 있는가 하면, 또 어디는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쳤다.

엘바에 내린 처음에는 공기가 유난히 반짝인다고 생각했다. 서쪽 숲에서는 낮에 뜨는 반딧불인가 했고, 오래된 신전에서는 황금빛 물속에 잠긴 것만 같았다.

유진은 이 기이한 현상이 제게만 일어난 일임을 알았다. 가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황금빛 입자들이 안내하듯 유진을 이끌었다. 곳곳에 흩어진 황금빛 물결은 도형처럼 문양을 만들어 뱅글뱅글 돌아가는가 하면 자신들끼리 모였다 흩어지고는 했다.

유진은 자연스럽게 이어진 금빛 물결이 무언가에 잘리듯 뚝뚝 끊어진 곳을 향해 무심히 발을 내디뎠다. 그곳에 발을 디딜 때마다 멀미하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이게 전부인가? 생각보다 적은데…….”

유진이 처음 마물을 만난 곳은 발이 푹푹 빠지는 늪지였는데, 그곳에는 ‘히드라’라고 불리는 머리 아홉 달린 뱀 수십 마리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아홉 개의 머리는 모두 생김새가 달랐는데, 인간의 이목구비에 뱀 가죽을 덮어쓴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먼저 아홉의 머리 중에 가장 가까운 머리를 잘라 냈다. 땅에 떨어진 머리는 몸에서 분리되고도 죽지 않고 움직였다. 잘린 머리가 입을 쩍 벌리고는 유진을 삼키려 들었다.

잘린 머리는 몸에 붙어 있을 때보다 행동반경이 넓어져 더 귀찮았다. 하지만 그것도 유진이 아홉 개 중 가장 큰 머리를 자르자 그대로 멈추었다.

늪지에 숨어 있는 수십 마리의 히드라를 죽이고, 자리를 옮긴 유진이 마주한 것은 그나마 익숙한 메로우였다.

“붉은 머리카락에 초록색 이빨이라니. 도무지 좋아할 수가 없는 조합이야.”

마물들은 종 별로 적게는 십여 마리, 많게는 수십 마리씩 모여 있었다. 줄이 끊긴 인형처럼 멍하니 있던 마물들은 그를 발견하고는 광분하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평소보다 훨씬 가뿐한 몸 덕분에 유진은 숨 쉬는 것보다도 가볍게 마물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성인 남자의 두 세배는 훌쩍 넘는 거대 잠자리도, 사람의 얼굴을 한 흡혈 박쥐도, 날개 달린 뱀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또다시 공기를 칼로 자른 것 같은 경계선에 발을 디뎠을 때, 그는 우레 같은 물소리를 들었다. 해안 절벽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 소리였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풍경인데…….’

유진이 해안 폭포에 정신을 빼앗긴 사이에 그의 뒷덜미를 노린 마물이 크게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공기 중의 황금빛 물결이 요동치듯 움직이며 그에게 위험을 알렸다.

그의 목을 노리고 공중에 떠오른 마물과 뒤를 돌아보는 유진 사이에 농도 짙은 황금빛 공기가 소용돌이처럼 휘감겼다.

붉은 사자와 닮은 마물이 입을 벌렸다. 큰 나무를 자르는 톱처럼 거칠고 기괴한 이빨이 세 겹으로 늘어서 있었다.

마물의 입에서는 마치 금관 악기를 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강철처럼 단단해 보이는 꼬리는 그 끝이 잘 갈린 창처럼 날카로웠다.

그것이 어떠한 외관과 힘을 가졌든지 간에 시간은 언제나 유진의 편이었다. 갑자기 뒤틀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물은 멈춘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느릿하게 움직였다.

이제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유진은 눈앞의 마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마물의 얼굴에서 ‘그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만 해도.

* * *

시몬은 아무런 전조도 없이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별안간 나타났다. 그의 소매에 달린 커프스가 유난히 반질반질 윤이 났다.

“엘바의 환영은 마음에 드십니까?”

“환대가 너무 격하네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아리아드네의 덤덤한 대꾸에 약이 오른 듯 시몬이 그녀의 목덜미에 칼날을 바짝 들이대며 지껄였다.

“엘바의 대접이 소홀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다고 했을 때 그만뒀으면 좋았을 텐데요. 부득부득 기어들어 오니 이런 꼴을 당하는 게 아닙니까.”

신전 입구를 지키듯 서 있던 리카르도는 갑자기 나타난 시몬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리카르도가 허리춤에 매달린 칼을 천천히 꺼내 시몬을 향해 겨누었다.

“랭스턴 공작, 메르디에스 공녀에게서 떨어지십시오.”

리카르도의 서늘한 경고에도 시몬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부터 개가 사람 말을 했지?”

리카르도를 조롱한 시몬이 이번에는 아리아드네에게 물었다.

“공녀, 어찌 생각합니까? 교황의 개 따위가 하는 말을 랭스턴 공작인 내가 들어야겠습니까?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이 엘바에서.”

아무래도 시몬 랭스턴은 선대 교황이 몹시 귀애한 데다가 엘바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린 탓에 인성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모양이었다.

“공작께서는 엘바의 주인이신데 공작이 교황의 주구를 따를 필요는 없겠지요.”

아리아드네는 마치 시몬의 말에 동조할 것처럼 서두를 꺼냈다.

“공작이 섬기는 이는 따로 있을 테니까요.”

이어진 아리아드네의 대답에 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시몬의 눈썹이 치켜들렸다.

“케이루스의 주구가 되어 힘들여 기른 마물을 갖다 바치지 않았습니까.”

악동처럼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시몬이 벌게진 얼굴로 노성을 터트렸다.

“감히, 어디서 그따위 건방진 말을! 누가 케이루스의 주구냐. 랭스턴은 황금의 주인만을 받든다. 황금의 주인을 모시는 랭스턴이 한낱 애완동물의 종에 지나지 않는 케이루스에게? 가벼운 입은 언제나 화를 부르는 법이지.”

화로 들끓는 얼굴은 이제야 제 나이처럼 보였다. 한참 덜 자란 아이처럼, 소년처럼 꾸며 낸 시몬의 얼굴이 불쾌했던지라 차라리 이게 나았다.

자신을 무심히 바라보는 눈길에 씩씩대던 시몬이 아리아드네의 목덜미에 들이댄 칼날을 얼굴 쪽으로 옮기며 속삭였다.

“공녀, 그 잘난 입을 다시는 놀리지 못하게 해 드리지요.”

시몬은 아리아드네의 입꼬리를 칼끝으로 꾹 눌렀다. 이쯤이면 겁에 질릴 만도 하건만, 아리아드네는 시몬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한 얼굴로 물었다.

“반 호수에 메로우를 보낸 것도 랭스턴인가? 오래전 이 땅을 떠난 황금의 주인이 시켜서?”

겁 없는 계집은 끝까지 랭스턴을 들먹이며 이죽댔다.

“글쎄, 저승에 가서 메로우에게 물어보시든지.”

이번 건 제법 잘 받아쳤다고 생각한 시몬은 혼자 만족했지만.

“당신이 물어보고 알려 줘.”

아리아드네는 조금도 지지 않으려 들었다.

“뭐라는 거―”

황당한 시몬이 채 말을 마치기도 전이었다. 재빨리 고개를 숙인 아리아드네 위로 퍽, 하며 마치 잘 익은 호박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검은 물체가 날아들었다.

시몬의 얼굴에 날아든 것은 반쯤 녹아내린 뱀의 잘린 머리였다.

슬며시 고개를 든 아리아드네는 무언가를 집어 던진 자세 그대로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는 유진과 마주했다. 유진의 서늘한 잿빛 눈동자가 숨어 있던 불씨를 피우듯 맹렬하게 타올랐다.

아리아드네는 유진의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긴장과 공포로 차갑게 굳었던 온몸에 피가 도는 것을 느꼈다. 살았다는 안도보다 더 큰 전율이 일었다.

언제부터 알았을까. 시몬이 제 목에 칼이 들이댄 순간에도 조금만 버티면 유진이 올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보면서도 유진이 점점 가까워짐을 알 수 있었다.

이 자리의 누구도, 시몬조차 알지 못했던 유진의 등장을 오직 아리아드네만이 알아차렸다. 흥분으로 손끝이 잘게 떨렸다.

그리고 모든 것은 아리아드네의 기대대로였다. 이미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유진은 그렇게 나타났다. 마치 시몬이 나타났을 때처럼.

아니, 시몬과는 좀 달랐다. 유진이 나타나는 순간, 아리아드네는 하늘에 걸려 있던 황금빛 장막이 스르륵 떨어지는 것 같은 환상을 목격했다.

황금빛 장막 너머로 날카로운 칼로 재단된 것 같은, 빽빽한 나무들로 가득한 공간이 어른거렸다.

황금빛 장막 이쪽과 저쪽은 도무지 같은 공간 같지 않았다. 마치 그림의 가운데가 뚝 잘려 나간 듯 이질감이 들었다.

그리고 찬란한 빛이 황금 장막이 되어 흘러내리자 위화감은 사라지고 장막 너머 두 풍경은 하나가 되었다.

지워진 그림의 나머지 부분이 채워지듯 청보랏빛 풀들이 발목 어림에서 흔들리는 들판에는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한 나무들이 들어섰다.

쏴아아―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거센 물줄기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어? 이게 뭐야!”

“아리아드네 님! 무사하셨습니까?”

“리카르도 경!”

“히이익―!”

“랭스턴 공작께서는 왜 마물의 사체를 뒤집어쓰고…….”

그리고 하나가 된 풍경 속에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아니,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황금빛 장막이 사라지며 비로소 드러났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지도 몰랐다.

“히이이익― 힉힉, 이게 뭐야!”

새된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마구잡이로 흔든 시몬이 얼굴에 붙은 뱀 머리 조각들을 떼어 내려 발버둥 쳤다. 시몬은 제 얼굴에 날아든 뱀의 머리에 신경이 쏠려 현재 상황은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질척한 체액과 검붉은 피가 시몬의 금빛 머리에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시몬의 정수리에 반쯤 걸린 뱀의 머리에서는 살점이 뭉텅이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리아드네와 동행한 메르디에스의 기사들과 수행원, 교황의 명을 받은 살리바의 성기사단, 그리고 시몬을 수행한 랭스턴의 사람들까지. 모두가 시몬이 미친 듯이 발광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네년을 마물의 먹이로 주지 못하면 내가―”

뱀의 체액으로 엉망이 된 눈을 벅벅 문지른 시몬이 욕설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었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이, 이럴 수는 없는데……. 엘바에서, 황금의 주인께서 가호를 내린 이 땅에서, 가호를, 황금의 가호를 지켜 온 랭스턴을 이길 사람이 존재할 리가 없는데…….”

시몬은 태엽이 고장 난 오르골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반복했다.

“사람이 아닌가 보지. 언제는 신의 현신이라고 하지 않았나? 신앙심이 부족한 모양이야.”

시몬에게 뱀 머리를 집어 던진 유진이 불쾌한 낯을 구기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던 리카르도가 옆으로 비켜섰다.

유진은 그대로 지나치려다 되돌아와 리카르도와 마주했다. 리카르도와 마주한 유진이 그의 손에 들린 칼을 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못 하고 서 있길래 난 또 땅에 박아 놓은 기념비인 줄 알았지. 가까이서 보니 멀쩡한 것 같군.”

유진의 커다란 손이 검을 쥔 리카르도의 손을 덮었다. 그대로 힘을 주자 날카로운 검날은 검집 안으로 사라졌다. 리카르도의 검은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다시 검집 안으로 회수되었다.

“그렇게 들고만 있을 거면 칼을 뽑을 필요가 없잖아.”

그의 힐책에 수치심과 공포를 느낀 리카르도가 주춤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아리아드네 앞까지 당도한 유진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한 일에는 몸을 좀 사리라고 하고 싶은데, 이 중에 그나마 상황이 돌아가는 걸 파악하고 있는 건 당신뿐이라 이거지.”

이 자리에서 아리아드네만이 그를 알아차렸듯이 오직 유진만이 그녀가 자신을 보았음을 알았다.

기묘한 고양감에 아리아드네는 떨리는 두 손을 꼭 맞잡았다. 그러지 않으면 두 손으로 유진을 껴안기라도 할 것 같았다.

크게 화라도 낼 것처럼 유진의 가슴팍이 한 차례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리아드네를 제 뒤에 숨기듯 가리고 섰다.

별안간 벌어진 상황에 다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마물이 왜 생기는지, 저 새끼가 사람들을 데려다 무슨 짓을 했는지 그 망할 입으로 지껄여 봐.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지.”

유진의 회색빛 눈동자는 깨진 얼음 조각같이 사나웠다. 그런데 그의 서늘한 눈빛이 닿은 것은 시몬이 아니라 리카르도였다.

“왜, 끝까지 그 입을 다물고 싶나 보지?”

유진의 물음에 움찔한 사람은 리카르도만이 아니었다. 교황의 명을 받고 온 성기사 중 몇몇이 눈에 띄게 불안해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을 친 유진이 아무것도 없는 빈손을 바닥을 향해 내리꽂듯 거칠게 휘둘렀다. 그러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피부를 가진 사자의 모습을 한 괴물이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혔다.

“마, 마르티코라스!”

가장 악명 높은 마물 중 하나인 마르티코라스는 건조한 평원에서 주로 발견되는 개체였다. 엘바와 같은 섬에서 마르티코라스가 발견된 적은 없었다.

마물 중에서도 유달리 식인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한 마르티코라스는 한 번 나타났다 하면 일대를 초토화하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사람의 귀와 비슷한 모양인 마르티코라스의 귀가 움찔 움직였다. 이미 적지 않은 외상을 입은 마르티코라스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바닥에 누운 채로 바르르 떨며 잘게 경련했다.

전투 능력을 상실했다 해도 마르티코라스가 지닌 악명에 다들 쉽사리 다가서지 못하며 머뭇거리고 있을 때였다.

내내 공포에 질려 웅크린 채로 사람들의 시선에서 비껴 있던 조셉이 사람들을 헤치고 나섰다.

“마, 마크?”

조셉은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마르티코라스에게 달려들었다. 주위 사람들의 제지에 막힌 조셉이 바둥거리며 벗어나려 했지만 쇠약해진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제 친구란 말입니다. 마크가 왜 저런 모습으로……. 보름 전만 해도 멀쩡했던 마크가 왜!”

조셉은 마치 울부짖는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 목소리를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바닥에 누워 있던 마르티코라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 사람의 귀를 단 붉은 피부의 사자 괴물, 세 겹으로 난 거친 이빨과 강철 같은 꼬리, 울부짖을 때마다 마치 트럼펫 같은 소리를 내는 가장 악명 높은 마물. 어디를 보나 마르티코라스였다.

“마크, 너 마크 맞지?”

조셉의 말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처럼 마르티코라스가 크게 포효했다. 뿌우우 하는 차가운 금속성의 소리가 숲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마르티코라스의 얼굴을 마주한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마르티코라스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엘바에서 실종된 사람들은 마물의 먹이나 사냥감만이 아니었던 거야. 마물의 재료이기도 했던 거지. 내 말이 틀려?”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에 마르티코라스의 등장으로 소란했던 주위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불길한 정적을 깨트린 것은 리카르도였다. 꿀꺽,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가운데 리카르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마물이 왜 생겨나는지, 어떻게 태어나는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이 마물로 변한다는 것은 수많은 가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차라리 리카르도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부정해 줬다면, 그랬다면 이 모든 이야기를 헛소리로 치부해 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미지근한 부정은 인정이나 마찬가지였다.

절망 어린 탄식이 흘러나왔다. 마르티코라스를 경계하듯 칼을 빼 든 사람들이 힘없이 칼을 늘어트렸다.

“오늘부로 그 외 다른 가설들은 모두 사라지겠군. 언제나 진실은 하나이니까.”

적막한 고요 가운데 말을 하는 이도 움직이는 이도 오직 유진뿐이었다. 사람들은 믿고 싶지 않은 진실에서 피할 수도 숨을 수도 없었다.

“지금부터 말하는 건 내 가설일 뿐인데 한번 들어 보겠어?”

리카르도가 입술을 짓씹으며 얼굴을 숙였다.

“성 상티모니아의 근간은 성물과 성력, 성물에 대한 친화력을 성력이라 부르고 숭배하지. 그런데 말이야. 친화력을 가진 인간이 있다면 반발력을 가진 인간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잖아?”

성물에 친화력을 가진 인간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에 친화력을 가진 인간은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고대의 영웅들이 그러했고 신전의 사제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반발력을 가진 인간이 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다.

“성물에 반발력을 가진 인간은 어떻게 될까. 인간을 위협하는 마물이 성물에 대한 반발력으로 변해 버린 인간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성 상티모니아는 어떻게 될까.”

마물은 저마다 하나씩 인간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마르티코라스의 귀와 얼굴이 그러했고, 메로우는 인간의 상체를 지니고 있었다. 인간과 닮은 모습임에도 마물이 인간일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땅의 인간들은 어려서부터 인간을 닮은 이종(異種)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

먼 옛날 이 땅을 지배한 신은 인간의 형상이었으며, 신이 부리는 권속들도 인간의 형상이거나 인간과 닮은 데가 있었다.

꼭 마물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얼굴을 한 물고기나 사람의 손바닥 같은 이파리를 가진 식물처럼 인간을 닮은 생물은 얼마든지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신이 이 땅에 남긴 흔적이라고 여겼다. 마물도 그러한 흔적 중 하나라고.

익숙함은 편견을 낳았고 편견은 진실에서 눈을 돌리게 했다. 유진이 간단하게 도달한 결론은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상식과 사고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다.

유진이 없었다면 같은 것을 보고도 아리아드네는 마물의 정체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신의 성물을 제 몸에 지닌 인간이라서, 파혼의 중재자가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라서, 제 삶의 증거라서. 그런 것들과는 별개로 아리아드네는 ‘유진’이라는 사람이 욕심났다.

“성 상티모니아는 그것을 숨겨 왔고, 저 작자는 그것을 이용해서 마물을 양성했다. 이 가설에 따르면 교황이 좀처럼 엘바를 치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가. 엘바의 비밀은 성 상티모니아의 비밀이기도 하니까.”

유진은 자신의 말이 가설이라고 했지만 이 자리의 누구도 그것을 가설로 여기지 않았다.

“성력에 반발력을 지닌 인간이 어쩌다 불행한 우연으로 마물이 되는 것과 엘바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마물은 무언가 달랐겠지. 아까 네가 지껄인 대로 인간의 이지나 감정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서.”

유진은 두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는 마르티코라스― 아니, 마크를 가리켰다.

사람의 얼굴과 닮은 것은 그 형태뿐, 마크의 얼굴은 사람이라면 응당 지녀야 할 것들이 없었다. 마크의 얼굴을 마주할 때면 무표정한 사람을 볼 때와는 다른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사람들에게는 그 불편함조차도 죄책감이 되었다.

“차라리 괴물이 되는 것보다 못한 상태가 된 거야.”

눈물을 흘리는 마크의 얼굴에서는 괴로움도 슬픔도 원망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뚫린 구멍으로 물이 새는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팔다리가 붙들린 조셉이 사람들을 뿌리치고 아리아드네에게로 기어와 발치에 매달렸다.

“아리아드네 님, 마크를 제발 살려, 살려 주…….”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조셉뿐인 듯 자리에서 일어난 뒤로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마르티코라스의 입에서 뿌우, 하는 트럼펫 소리가 났다.

마크는 조셉에게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뿌, 뿌우, 하는 소리를 계속해서 뱉어 냈다.

처음에는 그저 트럼펫의 소리로만 들렸던 것이 주의 깊게 듣자 사람의 말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트럼펫 소리 사이로 들리는 말을 천천히 따라 했다.

“조……셉, ……를 ……죽, 여.”

그 말을 들은 조셉이 벌떡 일어나 마르티코라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죽……여…….”

아무런 표정 없는 마르티코라스는 계속해서 그 말만을 반복했다. 무너지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조셉은 듣지 않으려는 듯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나, ……죽여.”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채로 흐느끼던 조셉이 헐떡이며 말했다.

“마크를…… 마, 크가 원하는 대로…….”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겠다는 듯이 조셉은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치며 오열했다.

고개를 숙인 리카르도에게로 다가간 유진이 허리춤에 매달린 검집에서 검을 빼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네 손으로 해. 잊지 마. 오늘 네가 죽이는 건 보름 전까지 이곳에서 나와 보겠다고 아등바등 노력하던 사람이었어.”

말을 마친 유진이 리카르도의 등을 떠밀었다. 머뭇거리던 리카르도가 이내 결심을 마친 듯 마르티코라스가 된 마크에게로 다가갔다. 마르티코라스는 강철 같은 꼬리를 휘둘렀지만, 이미 서 있는 것만으로 한계인 듯 꼬리는 힘없이 떨어졌다.

리카르도는 손발이 묶인 포로를 처형할 때처럼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는 마르티코라스의 목덜미에 깊숙이 칼을 찔러 넣었다.

사람이었던 마물을 죽이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심지어 이 칼로 사람을 죽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한 행위가 ‘살인’이라고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이윽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마르티코라스가 쓰러졌다. 마르티코라스의 목에서 쏟아진 피가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이 땅의 사람들에게 마물의 죽음은 늘 다행이고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마크였던 마르티코라스의 죽음만은 차마 기뻐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제 가슴에서 들끓는 슬픔과 분노를 쏟아 낼 대상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시몬이 되었다.

사람들의 사나운 시선에 주춤거리며 물러선 시몬이 랭스턴 기사들을 향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책, 책임은 내가 진다. 엘바를 짓밟은 저 무도한 자들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신의 이름을 칭한 근본도 없는 저 무뢰한도, 교황의 주구들도 모조리, 메르디에스의 장사치들도 전부 다 죽여!”

시몬의 명에 몇몇 랭스턴 기사들이 칼을 든 채로 망설였다. 그러자 시몬은 아리아드네, 유진, 리카르도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셋은 목 하나에 만 골드다.”

보통 왕궁 기사단의 기사가 받는 연봉이 백 골드였다. 평생을 벌어도 만져 보지도 못할 금액에 혹한 기사 몇몇이 슬그머니 칼을 세웠다.

“옳지, 그 밑의 잔챙이들도 목 하나에 백 골드씩 쳐주마. 랭스턴의 기사가 아니라도 좋다. 누구든 내 말만 따르면 금을 주겠다.”

시몬은 벌써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만만했다. 가만히 지켜보던 아리아드네가 손을 들어 시몬을 가리켰다.

“시몬 랭스턴, 그 목에 백만 골드.”

백만 골드라니, 얼마인지 가늠도 되지 않는 액수였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액수에 놀라 다들 눈만 깜박였다.

“메르디에스 앞에서 돈 자랑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자살법이시네요.”

차갑게 벼린 분노가 새파랗게 타올랐다.

아리아드네는 백만 골드가 아니라 시몬 랭스턴의 목에 제가 가진 전 재산도 걸 수 있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악마가 되기를 선택한 자였다.

그제야 아리아드네가 누구인가에 생각이 미친 듯 시몬이 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분한 얼굴을 했다.

조금 전 시몬이 내건 금액에 혹했던 기사들이 가장 앞장서서 시몬을 향해 칼을 겨누었다. 하지만 아직도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시몬 랭스턴이 사람들을 잡아다 마물로 만든 만행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까지 그 죄를 묻지는 않겠다.”

아리아드네가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시몬을 죽인 자에게는 그것이 누구든 반드시 약속한 돈을 주겠다.”

망설임 다음은 욕심이었다. 백만 골드라는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제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흥분에 사람들이 고양되었다.

“하지만 끝까지 시몬의 편에 서는 자에게는 메르디에스의 집념을 보여 주겠다.”

이미 마음을 굳힌 사람들에게 아리아드네의 마지막 말은 레이스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선득한 칼날이 여기저기서 번뜩였다.

“잘, 잘들 생각해 봐. 날 죽여도 백만 골드를 가지는 건 한 사람뿐이지만, 만 골드, 백 골드짜리가 저기 저렇게 널려 있다고.”

이 지경이 되고도 제 목숨을 포기하지 못한 시몬이 주절거렸다.

“내 누이가 실종되었소. 자식 혼사를 열흘 앞둔 아이였소.”

그때, 이 모든 상황을 지켜만 보던 랭스턴의 기사 가운데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우리 아버지도!”

“내 아들도…….”

“윌리엄이 누군지는 알아? 1년 전에 실종된 랭스턴의 기사였어. 네놈이 만 골드가 아니라 억만 골드를 준다 해도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엘바에서 실종된 사람 중 대다수는 이곳 사람들이었다. 가족을, 친구를, 전우를 잃은 사람들은 억눌렀던 분노를 토해 냈다.

매서운 분노에 시몬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절벽 끝까지 몰린 시몬은 벌벌 떨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나, 나를 살려 주면…….”

해안 폭포가 일으키는 물보라에 물안개가 뿌옇게 떠다녔다.

“내 누이를 살려 내면 내 몸뚱이가 넝마가 되어도 공작님을 지켜 드리리다.”

기사가 성큼 다가서자 시몬이 벌벌 떨며 뒤로 물러났다. 이젠 그의 뒤에는 디딜 땅이라곤 한 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 살려 내!”

다시금 다른 기사가 다가서자 시몬은 조금 더 물러났다. 이젠 그의 위치는 벼랑에 발을 반쯤 걸친 채였다.

투두둑, 그의 발에 차인 작은 돌들이 폭포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제발, 살, 살려…….”

하얗게 질린 시몬이 뒤쪽 폭포를 힐끔거리며 애원했다.

“내 손으로 죽인 마물이 얼마인데, 그게 누구일지 어떻게 알아! 내가, 내가 내 친구를 죽였을지도 모르는 거라고!”

그리고, 울분에 찬 기사의 고함과 함께 번뜩이는 칼날이 시몬의 가슴을 갈랐다.

푸욱― 날카로운 칼이 시몬의 가슴 깊이 박혔다. 칼을 맞은 시몬의 입에서 붉은 피가 울컥 터져 나왔다.

“커헉, 커어억.”

비틀대던 시몬이 자신을 찌른 기사의 팔이라도 잡으려 손을 뻗은 순간, 그를 찌른 기사가 칼의 손잡이를 놓쳤다.

“어, 어어어!”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다급히 손을 뻗기도 했다.

균형을 잃고 휘청대던 시몬의 몸이 뒤로 붕 떠올랐다. 투욱, 투투툭― 시몬이 매달려 있던 벼랑 끝이 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탓이었다.

“이, 이렇게 죽을 수는…….”

가슴에 칼이 꽂힌 채로 허우적대던 시몬은 그대로 폭포 아래로 떨어졌다. 소매 끝에 달린 커프스가 반짝 빛을 내며 그는 물보라 사이로 사라졌다.

“그놈을 놓쳤어!”

시몬을 찌른 기사가 제 손을 내려다보더니 탄식하며 무릎을 꿇었다.

“갈기갈기 찢어 죽였어야 했는데!”

“죽은 것은 매한가지이니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못한 것을 억울해할 것 없네.”

누이가 실종되었다고 한 나이 지긋한 기사가 다른 기사들을 달래며 물러났다.

아리아드네는 처음 서쪽 숲에 들어왔을 때의 풍경도, 동굴에서 나온 뒤에 봤던 풍경도 아닌 두 풍경이 합쳐진 새로운 모습의 서쪽 숲을 둘러보았다.

“마치 서로 다른 두 개의 그림을 겹쳐 놓은 것만 같아.”

아리아드네의 말에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는 하나의 공간을 여러 개로 분리한 거에 가깝겠지만.”

밖에서 볼 때와 숲속에서 느낀 규모가 달랐던 것도 그제야 이해가 갔다. 하나의 공간을 여러 개로 쪼갰으니.

“갑자기 나타난 것도 그렇고 시몬은 공간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었나 봐.”

아리아드네는 자유자재로 타인을 이동시키고, 사라졌다 나타나고, 공간을 왜곡한 시몬의 능력을 떠올리며 말했다.

“마물도 그렇게 운반한 걸까?”

메르디에스 영지의 반 호수에 별안간 나타난 메로우나 메르디에스 사냥터에 나타났던 마물들. 그 모두가 시몬의 능력이었을까? 아리아드네의 물음에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시몬의 능력은 서쪽 숲에 국한된 것이었을 가능성이 커. 시몬의 능력이라기보다 랭스턴이 누군가에게 한 자락 얻은 능력이었을 테고.”

아리아드네도 유진의 생각에 동의했다. 메르디에스 상단원들에게 수면제를 먹인 후 서쪽 숲으로 끌어들인 것만 봐도 그랬다.

시몬의 능력이 서쪽 숲에만 국한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방법을 썼겠지.

―엘바에서, 황금의 주인께서 가호를 내린 이 땅에서, 가호를, 황금의 가호를 지켜 온 랭스턴을 이길 사람이 존재할 리가 없는데…….

엘바의 서쪽 숲에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가호를 내린 것은 아마도 이 신전의 주인이겠지.

아리아드네는 오래된 신전을 둘러보았다. 이토록 강대한 힘을 지닌 존재를 모신 곳이라기엔 초라하고 낡은 모습이었다.

이 땅을 떠난 신들은 어디로 갔을까. 시간을 거슬러 온 아리아드네조차도 시간 앞에서는 무력해지곤 했다.

“알버트는, 늦은 걸까…….”

캐롤린에게 데려가겠다고 약속했는데 알버트의 흔적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마물의 먹이가 되었는지, 마물이 되어 죽었는지 그 끝조차도 알 수 없었다.

혼잣말 같은 아리아드네의 질문에 답한 것은 죽은 마르티코라스 옆에 멍하니 앉아 있던 조셉이었다.

“……알버트 기사님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보지 못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리아드네의 표정이 심상찮은 것을 눈치챘는지 조셉은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꺼내 놓았다.

“숲에 갇힌 지 서너 달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오십여 명쯤 되는 수색대가 저 동굴에서 나오셨을 때 이제야 살았구나 했지만, 그분들도 모두…….”

그 뒤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조셉은 유일한 생존자였으니까.

“하지만 그중에 알버트 기사님은 없었습니다. 확실합니다.”

“알버트의 얼굴을 알아?”

“평민이잖습니까. 모를 수가 없지요.”

조셉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평민 기사는 흔치 않다. 같은 평민들 사이에서 유명한 것이 당연했다.

더구나 조셉은 기사가 꿈인 아들을 둔 아버지였다. 그들에게 알버트는 우상이고 희망이었다.

수색대에 포함되었던 알버트가 서쪽 숲에는 없었다면…….

“엘바에 도착한 알버트를 다른 곳으로 옮겼단 말인가? 대체 어디로?”

카이엔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캐롤린과 알버트의 관계를 알고, 일부러 알버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 아니었나?’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알버트는 어디에 있는 거야.”

이번 질문에 답한 것은…….

“그건 제가 알 것 같습니다.”

살리바의 성기사 리카르도였다.

“그곳이 어디인가요?”

아리아드네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쩌면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일레체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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