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페렌트의 수도 릭센은 수도라는 명칭보다 왕도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다섯 가문이 다스리는 영지 한가운데 위치한 릭센은 본디 누구의 땅도 아닌 왕이 거주하는 땅이라는 의미에서 왕도라 불렸으나, 케이루스의 차지가 된 지 이미 오래였다.
릭센의 왕궁, 그중에서도 1왕자 카이엔이 거처하는 주각궁은 한낮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엘바의 일은 어떻게 되었나?”
카이엔의 물음에 그의 수족, 제프리가 납작 엎드려 고했다.
“모든 것은 분부하신 대로 되었습니다.”
제프리의 대답에 카이엔의 갈색 눈동자가 만족스러운 빛을 띠었다. 그의 손에 들린 유리잔 속 호박색 액체가 가볍게 흔들렸다.
“그래? 메르디에스 상단이 가지고 있었던 물건들은?”
“그쪽에서 처분하겠다고 합니다.”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카이엔은 호박색으로 찰랑대는 액체를 느릿하게 들이켰다.
“정말 욕심도 많군. 성직자라는 것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탐욕스러운지.”
독주가 그의 식도를 타고 지나갈 때마다 불로 지지는 듯한 열감이 느껴졌다.
붉디붉은 불, 그것은 케이루스의 상징이자 카이엔의 삶이었다. 모든 것을 태우는 불처럼, 그는 제 앞을 가로막는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라 해도 불태울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자는 일레체로 옮겼고?”
그자만 무사히 제 역할을 해 준다면 단단한 메르디에스에도 균열이 생긴다.
“네. 모두 분부하신 대로 준비가 끝났습니다.”
탕, 빈 유리잔을 탁자 위에 올려 둔 카이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내 사랑스러운 약혼녀만 일레체에 도착하면 막이 올라가겠군.”
카이엔은 곱게 접힌 미색 봉투를 제프리에게 건넸다. 그것을 받아든 제프리가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물러났다.
“아리아드네, 내가 그대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면 그대가 나를 떠나는 일은 없을 텐데…….”
카이엔의 만족스러운 웃음이 깊어졌다.
* * *
손에 들린 얇은 미색 종이가 어쩐지 무겁게 느껴졌다. 아리아드네는 이미 읽고 읽어 외울 지경인 서신을 한참이고 쳐다보다 반으로 접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내용인데, 왜 이렇게 신경에 거슬릴까.
“흐음, 카이엔 전하?”
캐롤린이 아리아드네의 책상에 놓인 봉투를 힐끗 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봉투에 찍힌 케이루스 왕가를 상징하는 한쪽 뿔이 잘린 사슴 문양이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었다.
아리아드네는 과거, 카이엔이 그토록 간단하게 메르디에스와 리뮈르, 소르체를 압도할 수 있었던 것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왕도 릭센과 케이루스에 있는 메르디에스 세작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살펴보고 있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단서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카이엔으로부터 서신 한 통이 도착했다.
“그렇지 뭐.”
아리아드네는 카이엔이 보낸 서신을 다시 봉투에 담아 시녀 줄리에게 건넸다. 줄리가 제 손에 들린 봉투를 잠시 노려보더니 아리아드네를 향해서 방실 웃고는 방에서 물러났다.
아리아드네는 그런 줄리가 어이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 헛웃음을 지었다.
“이만하면 메르디에스의 공적(公敵) 아니야?”
캐롤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란데르에서 그 사달이 일어난 뒤로 메르디에스에서 카이엔의 평판은 끝을 모르고 떨어졌다.
아리아드네가 어깨를 으쓱하며 캐롤린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넌 옷이 왜 그래?”
캐롤린은 아무런 장식이 없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이 시기 캐롤린과 가까운 이의 죽음이 있었던가. 아리아드네는 자신이 놓친 것이 있나 되짚어 보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아, 아버지 대신 장례식에 좀 다녀오느라고.”
“누구?”
아리아드네의 물음에 캐롤린은 한참을 망설이다 말했다.
“……보로스 자작.”
툭 하고 꺼내 놓은 캐롤린의 대답에 마음이 심란해진 건 아리아드네였다.
“보로스 자작? 제레미, 제레미 보로스 말이야?”
“응.”
“……왜 나는, 몰랐지? 아무 소식도 못 들었는데?”
보로스 자작가는 캐롤린의 아버지인 커티스의 외가 쪽 방계 가문이었다. 보로스 자작인 제레미가 작위를 승계받기 전, 리스벨에 반년 정도 머문 적이 있어 캐롤린은 물론이고 아리아드네와도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그런 제레미의 사망 소식을 과거에도 지금도 전혀 몰랐다니.
“갑작스럽게 그렇게 되는 바람에 가족과 가까운 친지끼리만 서둘러 장례를 치렀어.”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그러고 보니 언젠가 제레미의 사촌이 작위를 이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그때도 제레미가 죽었다는 말은 전혀 듣지 못했다. 왜 이렇게까지…….
“……자살이야?”
아리아드네는 제 입에서 나온 말을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자살이 아니고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불멸의 영혼을 가진 인간이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다. 프레모 대륙의 사람들은 자살한 인간의 영혼은 결코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믿었다.
“그 제레미가?”
제레미는 유쾌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저렇게 착해 빠져서 어디서 사기나 당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울 정도로. 그런 제레미가 자살이라니. 아리아드네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캐롤린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을 때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제레미가 정말로 자살했구나, 그 사실이 온몸을 묵직하게 눌렀다.
“제레미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인데 날씨가 너무 좋잖아. 그래서 문득 보고 싶어졌어. 생전 제레미가 제일 좋아했던 사람이.”
캐롤린은 담담한 얼굴로 아리아드네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마음 한쪽이 시큰거렸다.
“부담 주려고 한 말 아니야. 그냥, 그냥…….”
잠시 숨을 멈춘 캐롤린이 손가락으로 찻잔의 테두리를 덧그렸다.
“네가 파혼하겠다고 안 했으면 널 보러 올 생각도 못 했을 거야.”
아, 그래서 과거에는 제레미의 죽음을 끝까지 몰랐던 거구나. 아리아드네는 시큰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꾹 눌렀다.
카이엔과의 교제를 막 시작한 가을이었다. 제레미가 작위 승계를 위해 영지로 돌아간다며 인사를 하러 왔다.
[이 말만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여느 때처럼 장난 가득한 표정으로 불쑥 내뱉은 말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진지한 고백이었다.
[그런 얼굴을 하실까 봐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제 마음에 부담을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 마음은 제 몫이니까요. 그러니 부디 행복하시길. 멀리에서도 늘 당신의 행복을 빌겠습니다.]
끝까지 상큼한 얼굴로 자신이 할 말만 냉큼 마치고 뒤돌아선 그날이 제레미와의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
“난 그런 말 안 믿어. 제레미는, 제레미는 꼭…….”
아리아드네의 바람대로 제레미의 영혼이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고 구원받는다 하더라도, 다정한 얼굴로 웃던 그는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도…….
“행복해질 거야.”
그렇게 믿고 싶었다. 비록 이것이 산 자의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응, 그럴 거야.”
캐롤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카이엔 전하께서는 뭐래?”
묵직한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캐롤린이 가벼운 목소리로 물었다.
“지난 일을 사과하고 싶으니 일레체로 방문해 달라고.”
“안 갈 거지?”
“뭐, 그렇지.”
“나 일레체는 안 가 봤는데……. 일레체 특산주가 그렇게 맛있다면서! 좀 아깝다.”
찻잔을 든 캐롤린이 한쪽 눈을 살짝 찡그리며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깟 술이 아쉬울 리 없으니, 캐롤린의 저 말은 아리아드네의 부담을 덜어 주려는 것에 불과했다.
일레체는 왕도 릭센의 북서쪽에 있는 케이루스 영지의 상업 도시였다. 일레체는 성 상티모니아의 성도 살리바와 케이루스의 경계에 자리한 도시로 살리바와 페렌트 교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카이엔은 일레체에서 만나 란데르에서 있었던 일을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의논하자는 말과 함께. 마치 파혼에 동의라도 해 줄 듯한 뉘앙스였다.
‘파혼을 미끼로 불러들여서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 보려는 거겠지.’
그의 속내야 뻔하다면 뻔한 것인데 어쩐지 다른 의도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일레체라…….’
그러고 보니 과거에도 비슷한 시기에 일레체에서 카이엔과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카이엔과 일레체에서 보냈던 것이 보름 정도였던가. 뒤의 닷새 정도는 캐롤린도 함께였다.
아리아드네는 쓸 만한 것이 없나 제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달리 떠오르는 건 없었다.
그저 평소처럼 카이엔과 느긋한 시간을 보냈을 뿐이었다. 카이엔에게는 메르디에스 우방인 스테이와 셸란을 소개해 줬고, 아리아드네는 카이엔의 오른팔인 레비에 후작을 소개받았다.
‘왜 하필 일레체지? 그때도, 지금도.’
일레체는 케이루스의 유명한 상업 도시이니 그곳으로 초대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무언가가 더 있었던 건 아닐까. 그저 평범하게 넘겼던 일상 가운데 악의로 가득한 함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왜 그렇게 심각해? 안 간다면서.”
“……저쪽에서 파혼을 미끼로 던지니까.”
“방문자님이 안 도와주신대?”
캐롤린의 물음에 아리아드네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찻잔을 놓칠 뻔했다.
―나를, 내 시간을 돌려준 게 당신이었어?
자신을 찾아왔던 그 그림자가 차라리 제 망상이었으면 했다.
시간을 돌린 것이 정말 누군가의 의지였다면 제 의지였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그 대가로 자신의 영혼을 내놓겠다고. 시간을 돌리는 일에는 그만한 대가가 필요할 테니까.
하지만 그것이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었다면? 생각만으로도 무거워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 그림자는 정말 유진이었을까?
과거, 유진이 ‘무량의 돌’을 보기 위해 메르디에스에 머문 기간은 고작해야 3개월 정도였다. 둘 사이에 특별한 어떤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나를 위해 그런 대단한 일을 할 사이는 아니었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시간을 되돌리다니, 그런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유진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자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
‘세계의 시간을 되돌리다니 감히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신의 현신이라 불리는, 성 상티모니아 최고의 성물을 품에 안은, 이계의 방문자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온종일 그 생각만으로 머리가 가득했다.
‘정말 그 그림자가 유진이었다면, 그는 왜 나를 도와줬을까.’
그리고 그 끝은 항상.
‘혹시, 나를 많이 좋아했나?’
이런 식이었다.
아리아드네는 이런 결론에 도달한 스스로가 부끄러우면서도 도무지 이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것 말고는 말이 안 되잖아!’
또다시 같은 결론에 도달하자 온몸이 간지럽고 얼굴이 화끈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좋아했으면 어쩔 거야. 그래서 유진이랑 잘해 보려고?’
“아니!”
더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아리아드네가 제 마음을 다잡으려 버럭 외쳤다.
“……도와주신대? 그럼 다행이고.”
맞은편의 캐롤린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라니 그것 참으로 다행입니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노신사가 캐롤린을 거들었다.
“폴? 언제 왔어?”
메르디에스의 총관 폴이었다.
“조금 전에 왔습니다만.”
“기억 안 나? 네가 들어오라고 했잖아.”
폴과 캐롤린의 연이은 대답에 머쓱해진 아리아드네가 검지로 코끝을 슬쩍 만지며 자리에 앉았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무엇에 몰입했던가를 떠올리자 정말 고개라도 처박고 숨고 싶었다.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대체.’
고개를 숙인 채 심호흡을 하자 그나마 정신이 돌아왔다. 그럭저럭 마음을 정리한 아리아드네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폴이 캐롤린을 힐끗 보더니 간략하게 용건을 말했다.
“엘바에서 실종된 사람들의 소식이 전해지는 대로 알려 달라 하셨잖습니까. 그 건입니다.”
랭스턴 공국의 엘바에서 실종된 메르디에스 상단원들. 아리아드네는 제 기억이 도움이 될까 하여 주기적으로 관련 정보를 보고받고 있었다.
“캐롤린은 괜찮아. 어차피 수색을 지휘하는 것도 리스벨 백작이신걸.”
아리아드네의 허락에 폴은 선선한 태도로 고했다.
“실종자 일부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엘바 남쪽 해변에 시신 다섯 구가 떠내려왔다고 합니다.”
과거보다 닷새 정도 이른 발견이었다. 아리아드네가 슬쩍 흘린 말로 수색 범위를 확대한 결과였다.
“그래, 해변에서 발견되었다니 인근 해역 조류를 조사해 보면 곧 다른 사람들도 찾을 수 있겠지.”
기껏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시신을 좀 더 일찍 찾도록 돕는 것뿐이라니 가슴이 갑갑해졌다.
“네, 그렇지 않아도 리스벨 백작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세한 건 아버지께 들을게. 고마워.”
고개를 숙인 폴이 방을 나가려는 찰나였다.
“기사는, 함께 간 기사도 발견되었나요?”
하얗게 질린 캐롤린이 울 것 같은 얼굴로 폴에게 물었다. 아리아드네 쪽을 힐끗 확인한 폴이 입을 열었다.
“신원이 확인된 사람 중에 기사는 아직 없으나, 발견된 시신 중에 신원을 파악하지 못한 시신이 한 구 있다고 들었습니다.”
폴의 대답을 들은 캐롤린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탁자 위에 엎어지듯 무너졌다. 쓰러진 찻잔에서 흘러나온 찻물이 캐롤린의 머리카락을 적셨다.
아리아드네는 캐롤린에게 다가가려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폴을 돌아보았다.
“나가 봐, 폴. 아무도 들이지 말고. 아, 그리고 당부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부탁해. 오늘 일은 못 본 것으로 해 줘.”
폴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제 뜻을 전하고는 방을 나갔다. 아리아드네는 쓰러져 숨도 쉬지 못하고 헐떡이는 캐롤린에게 다가갔다.
상냥하고 아름다운 캐롤린. 캐롤린은 누구에게나 쉽게 호감을 샀지만, 정작 캐롤린이 누군가와 진심으로 교류하는 일은 드물었다.
캐롤린은 늘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쉽게 마음을 열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특별하게 여기는 일도 없었다.
이성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캐롤린은 자신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있는 사람과는 가벼운 만남조차 피했다. 아리아드네는 그것이 젖먹이 딸을 두고 이혼한 생모 때문이라고만 여겼다.
아리아드네가 무너진 캐롤린을 일으켰다. 보랏빛 눈동자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리아, 나, 나 어떡해.”
아리아드네조차 몰랐다.
“그 사람, 그 사람이 죽었으면, 나는…… 나, 어떡해.”
캐롤린이 몰래 가슴에 품은 누군가가 있었을 거라고는.
“캐롤린, 내가 누구를 살려야 해?”
아리아드네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연심. 오랫동안 비밀을 품어 온 보랏빛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나, 나 혼자 좋아했어. 그 사람은 아니야. 그 사람은…… 아무 잘못도 안 했어.”
사랑이 죄가 되는 관계일까?
“알겠어. 아무것도 추궁하지 않을게. 약속해. 그러니까 말해 봐.”
아리아드네는 상단을 호위하기 위해, 혹은 추가로 지원 나갔던 기사들의 면면을 떠올렸다.
“……알버트, 알버트가, 알버트의 소식을 알 수가 없어.”
알버트? 아리아드네가 메르디에스의 모든 기사들을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캐롤린과 교분이 있을 만한 기사라면…….
“캐롤린! 너 설마…….”
캐롤린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 사람이 평민이라서, 고아라서, 그런 것들은 내게 그 사람을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지 못했어.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게 그 사람에게 해가 될까 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어. 그 사람도 몰라. 그냥 나 혼자, 나 혼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어.”
아리아드네는 그제야 리스벨 백작이 아낀다고 하던 평민 기사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