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148)
  • * * *

    호숫가의 잔잔한 바람이 여름의 후덥지근한 공기를 몰아냈다. 아리아드네와 캐롤린, 유진 세 사람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캐롤린은 오늘의 외유가 만족스러운 듯 시종 즐거운 표정이었다. 즐겁게 재잘거리던 캐롤린이 유진에게 말을 붙였다.

    “영광이라고 해야 할까요?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요? 동시대에 방문자님이 계신 것도 신기한데, 이렇게 함께 자리하게 되다니요.”

    “별로. 영광일 것도 행운일 것도 없지 않나?”

    심드렁한 태도로 대꾸하는 유진을 보고도 캐롤린은 웃는 낯으로 말했다.

    “뵙고 싶던 분을 뵈었으니 행운이죠, 달리 행운인가요.”

    캐롤린이 생긋 웃으며 유진의 말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

    “내가 무슨 광장에 세워진 동상도 아니고.”

    불퉁한 얼굴을 한 남자가 새삼 앳돼 보였다. 아리아드네는 그제야 자신이 남자의 나이 같은 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리아드네는 눈앞의 남자를 꼼꼼히 뜯어보았다. 그에게서는 청년기의 아슬아슬한 불안함과 노년기의 권태로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하지만 얼굴만 두고 보면…….

    “동년배 같기도 하고.”

    “누구랑?”

    남자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나?”

    “스물둘이라며?”

    아리아드네가 자신을 가리키며 말하자 유진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 스물넷이에요.”

    옆에 있던 캐롤린이 거들었으나, 유진은 아리아드네와 캐롤린을 번갈아 보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많이 동안인가 봐.”

    머쓱해진 아리아드네의 말에 유진은 씁쓸한 얼굴로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규격 외니까.”

    자조적인 그 말에 아리아드네도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알려 주지 않는 얼굴까지 캐내어 속에 담을 만한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어색한 공기를 바꿔 보려는 듯 캐롤린이 구불구불한 제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아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 여름은 란데르 해변에 발도 딛지 않은 거 있지.”

    캐롤린 또한 여름이면 란데르의 메르디에스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으나 올해는 그러지 못했다. 아리아드네가 예년보다 란데르에서 체류한 기간이 유독 짧았던 탓이었다.

    “리아, 왜 우리 메로우 봤던 그때 기억나?”

    ‘메로우’라는 단어를 들은 아리아드네가 바라보고 있던 호수에서 눈을 떼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보랏빛으로 반짝이는 눈이 무언가를 알고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그때 정말 너무 놀랐는데…….”

    인어 괴물이라 불리는 마물 ‘메로우’가 란데르 해변에 나타난 것은 아리아드네가 열한 살, 캐롤린이 열세 살이던 해의 일이었다.

    “방문자님께서는 마물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두어 번 정도. 성기사들 말론 내가 본 건 중급 마물과 하급 마물이라더군.”

    유진의 대답은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상급 마물은 보기 힘드니까요.”

    “메로우라는 그 마물은?”

    “상급이지. 란데르 해변에 메로우가 나타났을 때, 이십여 명의 정예병이 투입됐어. 그중 기사는 둘이었고.”

    지옥 같았던 그날의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은빛 비늘을 두르고 사람들을 학살하던 괴물의 모습이.

    그날, 벌벌 떠는 아리아드네를 지켜 주었던 것은 맞잡은 손에서 전해지던 떨림이었다.

    “아마 당신이라면 혼자도 가능하겠지만.”

    집단으로 나타난 상급 마물조차도 개인의 무력으로 제압한 가능한 유일한 인간. 그것이 바로 유진이었다.

    ‘메로우’가 나타났던 란데르 해변에 유진이 있었다면, 아무도 죽지 않았겠지. 아리아드네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은빛으로 반짝이는 호수를 바라보았다.

    그런 아리아드네를 가만히 지켜보던 캐롤린이 섭섭하다는 듯 말했다.

    “이젠 리아와 여름마다 이곳에 오는 것도 힘들겠구나.”

    캐롤린의 말대로 원래라면 아리아드네와 카이엔의 결혼이 내년 초였으니, 올여름은 아리아드네가 메르디에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여름이어야 했다.

    하지만 카이엔과의 결혼이 무로 돌아간 이상 더는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다.

    “결혼 때문이라면 글쎄, 나 파혼하려고.”

    턱을 괸 채로 호수만 뚫어져라 바라보던 아리아드네가 여상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호수의 표면에 포말이 일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래, 그렇구나. 아니, 잠깐. 뭐? 파혼?”

    아리아드네를 따라 고개를 끄덕이던 캐롤린은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캐롤린의 눈은 경악으로 휘둥그레졌다.

    “아니, 리아.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아? 파혼이라고? 카이엔 전하와?”

    “제대로 들은 게 맞아. 내가 다른 사람이랑 약혼한 게 아니니 당연히 1왕자와의 파혼이겠지.”

    아리아드네는 여전히 호수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덤덤하게 말했다. 덤덤한 아리아드네와 달리 캐롤린은 혼란스러운 듯 빠르게 말을 쏟아 냈다.

    “아니, 왜? 란데르에서 소란이 있었단 말은 들었지만……. 사람들 말이 과장된 건 줄 알았어.”

    이윽고 호수에서 시선을 뗀 아리아드네가 우왕좌왕하는 캐롤린을 돌아보았다. 아리아드네의 새파란 눈이 캐롤린을 응시했다.

    “시작이 그랬듯이 끝도 내 마음 때문이야. 1왕자와 결혼하고 싶지 않아졌어.”

    “리아…….”

    염려와 걱정이 묻어나는 얼굴을 한 캐롤린이 아리아드네에게로 손을 뻗었다. 아리아드네는 슬쩍 몸을 물렸다. 캐롤린의 손은 아무것에도 닿지 못하고 멀어졌다.

    “캐롤린, 네 생각은 어때?”

    캐롤린과 카이엔이 벌써 어떤 거래를 주고받았다면, 캐롤린으로선 이 결혼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했다.

    ‘그렇다면 너는 이 파혼을 만류하려 들까?’

    아리아드네는 고개를 돌려 호수에 시선을 고정했다.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튄 물보라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재차 뻗어 온 가느다란 손이 그대로 떨어져 아리아드네의 손을 꽉 쥐었다. 여름이라 맞닿은 손이 절절 끓는 것처럼 뜨거웠다.

    “리아,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구나.”

    평소와 다름없는 다정하고 따스한 봄볕 같은 목소리였다.

    [리아, 왜 여기 있어? 나랑 같이 있어.]

    “요즘 네가 고민이 있을 거라고는 짐작했지만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어.”

    캐롤린의 손이 아리아드네의 손을 쓸어내렸다. 손등을 작게 도닥이는 손길이 지나치게 뜨거웠다.

    아리아드네는 더는 그 손길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캐롤린의 가느다란 손이 떨어져 나갔다.

    “캐롤린, 이 파혼에 리스벨의 후계인 네 판단은 뭐야?”

    자리에 앉은 캐롤린이 아리아드네를 올려다보며 답했다.

    “리아, 네 친구로서 말하자면 난 늘 네 행복을 빌어. 우리에게 결혼이란 것이 아무리 가문의 이익을 위한 거래라 할지라도, 당사자인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면 그 거래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당사자인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그 거래는 실패야. 그러니까 나는 네가 행복한 결정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지지해.”

    [리아, 이제는 내가 지켜 줄게. 파시파에 님 대신 내가 지켜 줄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안심하라는 듯 싱긋 웃음을 지은 캐롤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덧붙였다.

    “그리고 리스벨의 후계인 내 입장이라 해도 다르지 않아.”

    [리아, 우리 공주님. 네가 언제까지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니?]

    캐롤린은 아리아드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을 이었다.

    “우리는 메르디에스의 결정을 지지해. 리스벨의 가장 든든한 방패인 메르디에스의 결정을, 메르디에스의 첫 번째 손인 리스벨은 의심하지 않아.”

    [네가 그리 끔찍이 여기던 그 땅이 불타고, 네 사람들이 죽고, 잘난 네가 이 꼴이 됐지. 내가 원하던 대로.]

    여름의 강렬한 햇살이 호수 표면에 내리꽂혔다. 은색 비늘이 깔린 듯 호수 표면이 어지럽게 빛났다.

    “네가 얼마나 어렵게 결정했을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아. 그러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마.”

    [우둔하고 미련했던 아버지와 나는 달라. 나는, 아버지처럼 그렇게 살지는 않을 거야.]

    “……그래.”

    아무래도 캐롤린은 카이엔처럼 단박에 잘라 낼 순 없었다. 그렇다고 캐롤린의 배신을 아예 없었던 것처럼 지워 낼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내게 널 증명해, 캐롤린. 내가 널 믿어도 되는지 너 스스로 증명해 봐. 지금의 너는 내가 알던 캐롤린 리스벨이라고, 내게 증명해.’

    그때, 아리아드네 뒤로 호수의 물기둥이 치솟아 오르며 은빛 비늘을 두른 괴물이 나타났다.

    란데르 해변의 사람들을 도륙한 인어 괴물, 메로우의 출현이었다.

    “……리아, 뒤, 뒤에.”

    새하얗게 질린 캐롤린은 솟구쳐 오르는 괴물을 보며 간신히 입을 달싹였다.

    뱀장어처럼 미끈한 몸체를 가진 괴물의 상체는 마치 인간의 것처럼 보였고, 유선형의 얼굴은 생선의 대가리와 비슷했다.

    붉은 머리카락을 기괴하게 늘어뜨린 괴물이 포효하며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괴물의 이빨은 초록색이었으며, 상어처럼 크고 날카로운 이빨이 턱의 앞쪽에서부터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호수에서 벗어난 괴물이 머리를 거칠게 흔들며 아리아드네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메로우는 상체에 붙은 두 팔로 땅을 밀며 이동했는데, 땅을 지탱하는 손가락 사이에는 물갈퀴처럼 보이는 투명한 막이 있었다. 괴물은 물갈퀴가 있는 손으로 땅을 밀고 미끄덩한 꼬리를 흔들며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메로우가 가까워질 때마다 비릿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진해졌다. 메로우가 움직일 때마다 퍼지는 비린내는 마치 피비린내 같았다.

    인어 괴물의 사나운 이빨에 팔다리가 뜯기고 목이 잘린 사람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던 란데르 해변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마찬가지로 아리아드네는 목이 잘린 글레나, 혀가 잘린 이블린, 가슴에 칼이 꽂힌 줄리, 독살당한 레너드, 교수대에 목이 걸린 레이먼드, 그들의 죽음도 무엇 하나 잊지 않았다.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한 캐롤린의 배신을 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캐롤린은 여전히 아리아드네가 사랑하던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아리아드네는 제 속의 혼란을 이기지 못하고 레너드에게 물었다.

    ―사업이나 거래라면 손익을 따지면 될 텐데, 사람은,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레너드의 답은 간단했다.

    ―아리아드네, 사람의 마음이란 결국에 행동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사람을 믿어도 될지 혼란스러울 땐,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살펴보렴.

    아리아드네는 그 자리에 서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캐롤린만을 바라보았다. 하얗게 질린 캐롤린은 메로우에게서 달아나려는 듯 뒷걸음질 쳤다.

    ―아리아드네, 의심이든 신뢰든 빨리 정하는 게 좋겠구나. 그 지옥에 널 버려두지 말고. 이미 답은 네 속에 있을 테니까.

    레너드의 말이 옳았다. 자신이 바라는 답은 하나였다. 오늘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일 뿐.

    메로우가 풀밭을 기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리아!”

    캐롤린의 날카로운 부름에 고개를 든 아리아드네 머리 위로 투명한 막에 싸인 메로우의 눈동자가 희번덕이고 있었다.

    “안, 돼…….”

    캐롤린은 고개를 저으며 울먹였다.

    그리고 그때, 희번덕이던 메로우의 눈동자가 아리아드네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아가리를 쩍 벌리며 다가왔다. 메로우의 비릿한 냄새가 훅 가까워졌다.

    쩍 벌린 아가리 내부는 선명한 분홍빛이었다. 아리아드네 눈앞을 가득 채운 붉은 색이 갑자기 까만 것으로 덮였다.

    콰당! 시야가 온통 까맣게 변하더니 등에서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후덥지근한 체온이 아리아드네를 감싸고 맞닿은 피부가 이내 땀과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아니, 불어오던 바람이 일순 멎었다는 게 더 정확할까.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마저 손에 잡힐 듯했다.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공기가 사라진 공간에 갇힌 듯한 기이한 감각이었다.

    그리고 강렬한 소음이 공기를 찢어발길 듯이 사납게 울려 퍼졌다. 강렬한 소음과 함께 멈췄던 공기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아리아드네 시야를 채우고 있던 검은 장막이 실처럼 흔들렸다. 실처럼 흔들리는 검은 장막은 캐롤린의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이었다. 아리아드네를 껴안고 그대로 풀밭을 뒹군 캐롤린의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리아드네가 캐롤린의 머리카락을 걷어 내자, 몸을 한껏 곧추세우고 달려들던 모습 그대로 멈춘 메로우가 보였다. 생선의 눈알처럼 투명한 막에 싸인 메로우의 눈동자가 무언가를 찾듯이 좌우로 움직였다.

    타앙― 탕! 다시 두 번의 소음이 더해지자 메로우의 머리가 터져 나가며 그 속의 내장과 혈액이 그대로 후두둑 떨어졌다.

    역한 비린내와 함께 메로우에게서 떨어진 살점과 불쾌한 액체들이 그대로 캐롤린과 아리아드네 위로 쏟아져 내렸다. 질척한 감촉에 아리아드네를 감싸고 있던 캐롤린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생명을 잃은 메로우의 몸체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풀밭 위로 쓰러지자 캐롤린이 아리아드네를 더 힘껏 껴안았다.

    캐롤린이 아리아드네를 감싸고 있었던 탓에 캐롤린의 온몸은 메로우의 사체 조각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란데르 해변의 그날처럼.

    다행이었다.

    [……리아, 리……아, 괜찮……아?]

    제 목숨보다도 아리아드네의 안위가 걱정이었던 열세 살의 캐롤린과.

    “리아, 다행이야. 다치지 않아서…….”

    지금의 캐롤린이 조금도 다르지 않아서. 아직은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어서.

    ―아리아드네, 의심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믿는 건 아무나 할 수 없지. 무딘 의심보다 얄팍한 신뢰가 더 위험한 법이다.

    레너드의 그 말이 아니더라도, 아리아드네는 또다시 캐롤린을 잃고 싶지 않았다.

    온몸을 덜덜 떨면서도 캐롤린은 아리아드네를 꽉 붙들고 있었다. 한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 아래에서도 서로의 체온이 기꺼웠다.

    풀멘을 쥔 유진이 아리아드네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그대로 호숫가를 떠났다.

    뜨거운 태양 아래, 목숨을 잃은 괴물과 목숨을 던진 캐롤린과 제 목숨을 미끼로 삼은 아리아드네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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