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 (146/180)

<26>

[태준 씨, 정말로 한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포장 음식을 받아 든 태준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머릴 긁적였다.

“몸이 너무 안 좋아요. 한국에 돌아가서 제대로 된 검사를 받아 봐야겠어요. 상부 보고는 제가 하겠습니다.”

[몸이 안 좋다니 어쩔 수 없지만, 이두이 씨도 그렇게 된 마당에…. 좀 당황스럽네요.]

“죄송합니다, 팀장님. 근데 이러다 제 명에 못 살겠습니다.”

[일단 귀국 날짜 나올 때까지 푹 쉬어요. 위에서 지시 내려오면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예예.”

가게를 나선 태준의 곁으로 현지인인 경호원 세 명 다가선다. 이들은 살인과 폭력 전과 7범 이상의 범죄자들이었다. 언제 총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태준은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숙소를 향해 걸었다.

거구의 경호원을 세 명이나 거느리고도 태준은 열흘 내내 한숨도 자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누군가가 자신을 해치러 올 것 같았다. 이하나의 얼굴이 가장 잦게 보였고 그 다음은 강무진. 그리고 죽었다고 믿었던 이두이의 얼굴도 보였다.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사직서 내야지.’

보호 받지 못하는 타국에선 최대한 자국의 힘을 빌려야 한다. 이곳에서 사직서를 내고 잠적하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곧장 제3국으로 출국하면 이하나도 찾지 못하겠지. 아무리 그녀가 능력이 좋기로서니, 많은 돈이 들어가는 정보 앞에선 약해질 것이다.

게다가 이두이를 찾는다는 건, 강무진과 맞붙게 된다는 뜻.

‘강무진이 과연 이하나를 살려둘까?’

그 남자가 마음에 든다고 했던 건 분명 매력적인 사냥감이라는 뜻일 테다.

태준은 애써 합리화하며 걱정을 떨쳐 내려 애썼다.

숙소 앞엔 평소와 다르지 않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들이 오토바이 같은 것에 늘어져 잠을 청하거나 담배를 피운다.

밤이 되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에어컨이 있어도 전기가 부족하니, 가전제품은 무용지물.

태준은 경호원들에게 숙소 앞을 지키라고 지시한 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물론 밤새 이 앞을 지킬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일일이 확인해 볼 수도 없는 노릇.

창문을 열지 않아 퀴퀴한 집 안에 포장해 온 음식 냄새가 확 번진다.

그는 티브이를 튼 후, 작은 식탁에 앉아 봉지에 든 음식들을 꺼냈다. 이곳에서 가져갈 것은 작은 캐리어 하나뿐이었다.

본부에서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 짐을 싸 놓은 태준은 현관 옆에 덩그러니 놓인 캐리어를 보며 음식을 씹었다.

그래도 얼마 전 입금된 돈이 제법 많은 편이라 한동안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다크웹을 통해 일부 빼돌린 약을 팔아 코인도 챙겼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도박도 끊게 만들었다. 목숨 걸고 일해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살기에, 인생은 너무나 길고 사방엔 돈 될 것들이 넘쳐난다.

태준은 어쩐지 조금 전 떠올린 생각이 멋쩍어 코를 훌쩍였다.

“맛있니?”

그러다 이곳에서 들려선 안 될 목소리에 놀라 숟가락을 떨어트렸다.

“맛있냐고, 최태준.”

환청이 아니다. 태준은 식탁 아래 붙여 놓은 총을 쥐기 위해 천천히 손을 넣었다.

“이거 찾나 봐?”

긴장해 정면만 바라보는 태준의 오른손 옆으로 총 한 자루가 툭 던져졌다. 그가 식탁 아래 붙여 놓았던 총이 확실했다.

태준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양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하나의 총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하, 하나야….”

“왜 긴장해. 너, 뭐 잘못했어? 잘못은 내가 하지 않았나? 그날… 네 뒤통수쳤잖아, 내가.”

“그, 그럴 수도 있지! 두이, 살아 있다고 믿으니까. 너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보고 안 했구나. 너희 조직에서 전혀 모르더라.”

태준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야, 나한테 왜 이래. 응? 우리 말로 하자.”

“지금 말로 하는 중인데?”

“그러니까 하나야….”

“태준아, 나한테 왜 거짓말했어?”

이하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다정한 말투에 태준은 숨을 쉴 수 없었다.

상상만 했던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하나는 과연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그녀가 말하는 거짓이란 무엇일까.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다고 그래. 나한테 왜 이래, 하나야. 응?”

어떻게든 경호원들에게 알려야 한다.

태준의 눈동자는 계속해서 현관 쪽으로 향했고, 하나의 기척은 그의 뒤를 맴돌았다.

“줄리오 파렌티, 아니었잖아.”

심장이 쿵 떨어졌다. 암흑을 마주한 것처럼 눈앞이 아득해진다. 이어, 서늘한 총구가 뒤통수에 닿았다.

헛바람을 들이켠 태준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이하나! 이러면 안 되지!”

“그건 내가 할 말이야. 걱정 마…. 나, 너 죽이러 온 거 아니야. 물어볼 게 있어서 온 거지. 그러니까 솔직하게 대답하면, 나 너 살려 줄 거야.”

“난 지금까지 사실만 말했어. 응?”

“그날 두이가 만난 사람, 줄리오 파렌티 아니지.”

“뭐?”

“사칭도 아니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줄리오 파렌티가 아니라니? 네가 그걸 어떻게 확신해?”

말리면 안 된다. 절대, 말리면 안 된다.

한마디라도 잘못 뱉는 날엔 죽는다, 최태준.

“강무진이잖아. 무운해운의 대표 이사.”

태준은 천천히 돌아섰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몹시도 놀란 표정으로 총을 겨눈 하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누구…라고? 강무진?”

“연기하지 마. 안 어울려.”

“연기 아니야! 너, 강무진이 누군지 알아?”

검은 모자에 검은 레깅스, 셔츠도 검은색. 하물며 검정 마스크까지 쓴 그녀였다.

그 안으로 빛나는 검은 눈동자에 서서히 살기가 차오른다.

“두이, 네가 배신했지.”

끝이다.

이하나의 말은 확신에 가까웠다. 태준은 애써 혼란스럽다는 듯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그러곤 방 안을 미친 듯이 돌며 현관 방향을 향해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배신하지 않았어! 두이가 우릴 배신한 거야! 이하나, 대체 나한테 왜 이래? 나는 네 편인데, 나한테 왜…!”

고래고래 소리치던 태준의 얼굴 앞으로 총알이 스친다. 숨 한 번만 잘못 쉬었어도 코가 사라졌을 거리였다.

어느새 소음기를 장착한 그녀가 우묵하게 팬 앞머릴 눌렀다.

“도망쳐, 너.”

태준은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닌지 귀를 의심했다.

찰나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하나는 다급히 뛰어들어 오는 덩치들을 보며 태준에게 재차 말했다.

“도망치라고. 대신… 내 손에 잡히면 죽을 거야. 태준아, 나한테 잡히지 마.”

총을 든 그녀에게 함부로 다가서지 못한 덩치들이 욕설을 내뱉으며 주변을 에워싼다.

태준은 고민했다. 여기서 도망치면 죄를 인정하는 것이고, 도망치지 않으려면 경호원들을 고용한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아악!’

이하나는 이미 답을 내리고 찾아온 거다.

두 눈을 좌우로 굴리던 태준이 도망을 선택한 건, 눈빛을 잘못 읽은 덩치들이 총을 든 그녀에게 달려들 때였다. 그것도 이하나의 앞에서 총까지 꺼내 들고 말이다.

그들은 지옥으로 직행했다. 소음기를 장착한 그녀의 총에서 쏘아진 총알은 고스란히 놈들의 어깨와 팔. 그리고 허벅지를 관통했다.

무장한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였으나, 이하나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최태준은 창문을 열고 3층에서 뛰어내려 맨발로 주차장까지 내달렸다. 목숨처럼 몸에 지녔던 자동차 키가 신의 한 수였다.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차장에 도착한 태준은 발이 미끄러져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무릎이 까지고 접질린 발목에서 찌릿한 통증이 일었다.

“어이, 어이. 괜찮수?”

만신창이가 된 태준이 몸을 일으키려는데,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치는가 싶더니 덩치 큰 백인이 다가왔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접근하는 모든 사람이 위험인물이라 태준은 허둥지둥 일어나 차 문을 열었다. 덩치 큰 백인은 어깨를 으쓱 올리더니 검정 SUV에 기대어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곤 자신의 집 방향을 올려보며 욕을 했다.

‘이탈리아어다.’

등골이 오싹해진 그는 도망치듯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일단 움직일 수 있는 곳까지 도망쳐야 한다. 어쩌면 조직의 본부가 가장 안전할지도 모르는 일.

태준은 목적지를 정하곤 정신없이 가속페달을 밟았다.

***

로렌조는 다시 한번 시간을 확인했다.

집 안으로 이하나가 들어간 지 10분이 지났다. 게다가 지금 막 그녀가 말한 인상착의의 인물이 주차장을 나서, 엘리오가 따라붙었다.

하나는 놈이 사라지고 5분 안에 제가 내려오지 않으면, 꼭 올라와 자신을 말리라고 당부했다.

‘잠깐 외출하게 해 달라더니, 사람 하나 조지러 온 건가.’

담배를 비벼끈 로렌조는 긴장을 숨기기 위해 어깨를 털곤 어지간히 귀찮다는 표정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마피아의 등장에 경계하는 시선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일부는 슬금슬금 일어나 자릴 피하기도 했다.

그렇게 낡아 빠진 계단을 오르는데, 진득한 피 냄새가 났다.

“시뇨리나는 미쳤어.”

이종 격투기 선수로 활약했던 자신을 제압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이하나가 발렌타인 데이의 One이라는 걸 알게 된 뒤로, 패거리 중 몇몇은 그녀의 팬을 자처하기까지 했다.

3층에 다다른 로렌조는 손수건을 꺼내 코와 입을 가렸다. 피에 익숙하지만, 기호에 맞진 않았다.

‘하긴… 피 냄새를 좋아하면 그건 진정한 사이코패스겠지.’

잠금장치가 고장 나 너덜너덜해진 현관문을 열자, 피를 흘리며 꿈틀대는 세 명의 거구들 사이로 하나가 보였다.

총 든 손을 축 늘어트린 채 감정이 거세된 눈빛으로 죽기 직전인 이들을 노려보던 그녀가 본능적으로 로렌조를 겨눈다.

“어이! 나야, 나!”

검은 옷에 검은 모자와 마스크를 써서, 보이는 건 탁한 눈동자뿐이었다. 로렌조는 뜨거운 피가 냉각되는 느낌을 받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런 눈빛을 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 동류끼리는 서로를 알아본다더니. 그래서 줄리오가 처음부터 이하나에게 끌렸던 건가?

다가오는 로렌조를 무심하게 응시하던 그녀의 눈동자가 초점을 찾는다. 하나는 총 든 손을 툭 떨어트리곤 마스크를 내렸다.

“늦었잖아.”

로렌조를 본 그녀의 눈이 젖어 든다. 로렌조는 답답함과 당혹스러움을 동시에 느끼며 하나의 앞에 섰다. 그러곤 상체를 숙여 혹 생채기라도 나진 않았는지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다행히 몸에 묻은 피는 모두 쓰러진 놈들의 것이다. 가죽 장갑을 낀 덕에 손도 무사했다.

“쥐어팬 사람이 왜 울어.”

로렌조는 재킷을 벗어 하나의 어깨에 덮었다. 그러자 콧물을 훌쩍인 그녀가 짜증스럽게 읊조린다.

“더워, 새끼야.”

“원래 다 이렇게 하는 거야.”

“놈은?”

“엘리오가.”

고개를 끄덕인 하나는 손등으로 젖은 눈두덩을 눌렀다.

“어쨌든 무사하니 됐어. 뭐, 다칠 거란 걱정은 하지도 않았지만.”

“빈말이라도 너 다칠까 봐 마음 졸였다곤 못해?”

“네가 다치면 마음 졸이는 거로 안 끝나. 아마 내 팔 하나 내어 줘야 할지도.”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있어, 그런 게.”

귀찮은 걸 맡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로렌조는 하나를 다독이며 어서 이곳에서 나가자고 어르고 달랬다.

사람 족치는 건 괴물이나 다름없으면서. 뭐가 그리 서러운지 훌쩍이는 모습을 보자 이상하게 애가 탄다.

이 여자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감당해야 할 일들이 그를 숨 막히게 했다.

“어이, 시뇨리나. 부탁인데… 제발 그 눈이라도 어떻게 해. 별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못 가라앉히나?”

로렌조를 어처구니없다는 듯 째려본 그녀가 놈들을 무심하게 훑고는 걸음을 내디딘다.

이어진 ‘너희가 먼저 쐈어.’라는 말에, 로렌조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하나가 다쳤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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