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 (143/180)
  • <23>

    Part 03. 이하나

    어둠이 내려앉은 새벽, 은성은 눈을 떴다.

    푹 잠들었던 건지 몸이 나른하다.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던 그는 마지막 기억을 떠올리곤 욕지거릴 읊조렸다.

    “개새끼….”

    그러며 마른세수를 하는데 팔에 꽂힌 링거 바늘이 보였다. 하지만 다른 때와 달리, 몸에 꽂힌 약을 보고도 놀라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그래, 하나. 이하나….

    제 침대 옆에 비스듬히 기대어 잠든 여자의 머리가 보인다. 바닥에 앉아 무릎을 모은 채 눈을 감은 모습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은성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헐렁한 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여자의 모습이 더욱 선명해졌다.

    무방비 상태의 이하나는 오랜만이다. 살짝 웨이브 진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린 모습. 마른 몸은 그녀가 특수 요원이었다곤 생각할 수 없게 했다.

    가만히 얼굴을 더듬어 본 그는 눈썹 끝에 붙은 두툼한 반창고를 만지작거리며 기절하기 직전을 상기했다.

    줄리오 파렌티가 다짜고짜 찾아와 공격한 이유는 이하나와의 관계 때문이다. 자신은 이하나가 마치 제 연인인 양 말했고, 그는 믿었다. 그 거짓말이 줄리오 파렌티를 이토록 화나게 할 줄이야.

    그렇다는 건 줄리오 파렌티의 약점이 늘어났다는 뜻. 그리고 이하나가 그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했다.

    제가 아는 줄리오 파렌티는 잔인한 소시오패스였다. 지독한 여성 편력을 가진 데다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에 망설임이 없는. 하지만 이젠 변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이전에 사랑했던 여자 때문인 걸까? 그 여자를 포기한 찰나, 닮은 이하나가 나타나 멱살을 쥐고 흔드는 거라면….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손으로?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이용해서?’

    은성의 서늘한 눈빛이 느릿하게 이하나를 향해 움직였다. 하지만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마른세수를 했다.

    ‘빌어먹을….’

    머릴 쓰다듬으면 여자는 깰 것이다. 본능적으로 제 손을 쳐내거나 공격을 해 오겠지.

    재밌는 일이었다. 잠든 여자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거라곤 상상해본 적 없었다.

    소독약 냄새 사이로 켜켜이 스며든 여자의 샴푸 향이 짙다.

    적요가 내려앉은 새벽. 아직 동이 트려면 멀었는지 정원의 가로등 불빛도 꺼지지 않았다.

    ‘뭐, 이대로도 나쁘지 않으니….’

    은성은 다시 침대에 누워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방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들어왔다.

    혹 자신을 해치러 온 상대인가 싶어 귀를 기울이자, 작게 혀를 차는 남자의 소리가 들린다.

    “이럴 줄 알았지.”

    중얼거린 사람은 줄리오 파렌티였다.

    다가온 남자는 자신은 안중에도 없이 여자의 무릎과 허리 뒤로 팔을 넣었다. 그러곤 천천히 안아 들었다.

    은성은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잠에서 깼는지 움찔 놀란 그녀가 안아 든 상대를 확인하더니, 피식 웃으며 다시 눈을 감는다.

    “방으로 데려가. 다른 데로 새면 죽어….”

    잠에 취해 꽉 잠긴 목소리. 줄리오는 그대로 그녀를 안고 돌아섰다. 은성은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나를 안아 든 줄리오가 방에서 나간 뒤에야 다시 일어났다. 힘껏 움켜쥔 주먹이 부어있다. 그는 서로가 약점이 되는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결국, 파멸만 남게 되는 결말을.

    꽉 깨문 어금니에 턱 근육이 단단하게 경직된다. 그러다 이내 허탈한 웃음과 함께 풀어졌다.

    “미쳤네….”

    ***

    타인의 품은 오랜만이다.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할 만큼, 누군가에게 안기는 건 낯설었다.

    어쩌면 태초에 품을 느껴본 적 없기에. 처음 맡은 냄새가 어미의 젖내가 아닌, 눅눅한 벽지에 찌든 담배 냄새이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그만큼 가까이서 맡는 사람의 살 내음은 그녀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하나는 제 몸을 꽉 끌어안은 남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혹, 외로운 개새끼의 애착 인형이라도 된 걸까 싶어서.

    “너… 섰어.”

    허벅지 사이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이물감에 짜증을 섞어 중얼거리자, 더욱 몸을 붙인 남자가 속삭였다.

    “좋은 아침.”

    “그래, 날씨가 참 좋긴 한데…. 그쪽이 왜 여기 있어?”

    하나는 줄리오의 가슴팍을 밀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손이 들어갈 틈도 없이 끌어안아 버린 탓에 고개를 치켜든 게 전부였다.

    “문이 잠겼거든.”

    말도 안 되는 헛소릴 지껄인 남자의 입술이 호선을 그린다.

    “너, 다리가 세 갠 거 같아. 아무리 봐도.”

    “사람 다리가 세 개라고?”

    “어… 너는 세 개야.”

    한국식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자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하나는 큭큭거리며 몸을 비틀었다.

    “이제 좀 놔 봐. 피 안 통해.”

    “으음….”

    하지만 그는 놓아주기는커녕, 아예 허벅지 사이에 가는 다리를 끼워 넣었다.

    이상했다. 고압적인 말을 하지도, 제 몸 어딘가를 강제로 압박하지도 않는 줄리오는.

    혹시 밤에 약이라도 한 건 아닌가 의심스러워진 그녀가 물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유순하게 굴어? 여자들까지 불러 즐겼으면서, 아직도 못 풀었어?”

    “여자? 아아…. 그래, 바빴거든.”

    “음… 내가 아는 사실이랑 다른데? 나, 로렌조한테 다 들었어. 하렘을 건설하셨다며?”

    “멋대로 생각해. 아무에게도 못 풀었다는 건 사실이니까.”

    줄리오는 그녀의 겨드랑이를 잡은 채 단번에 위로 올라탔다.

    왜인지 시트에 짓눌리는 느낌이 아찔했다. 밀어내고 싶지 않은 낯선 기분에 이상한 표정을 지었는지, 가만히 얼굴을 살피던 그의 눈이 가늘어진다.

    그러다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부드럽고 축축한 혀가 피부를 핥는다.

    남자는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자위하듯, 그녀의 몸에 드로어즈 안에 갇힌 성기를 마찰했다.

    뭉툭하고 거대한 덩어리가 맨살을 쓸 때마다 오싹오싹한 소름이 돋는다. 순간,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통증. 이를 세워 긁은 그가 턱에 입 맞추며 올라와 귓불을 깨물었다.

    그녀는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 남자가 원하는 것을 줄 것인지, 아니면 지금처럼 밀어낼 것인지.

    다리를 벌리는 건 어렵지 않다. 성적 취향이 독특하다면 맞춰 주면 될 일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제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휘둘려 줄 생각이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에게 약한 마피아. 사랑했던 주인에게 버려진 개. 그렇다면, 그 여자 대신이 되어 준다면…. 주인처럼 손 내민다면….

    목숨 바쳐 내 동생 찾는 거, 도와줄래?

    하나는 고개를 젖히며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젖어가고 있었다. 삽입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스치는 것뿐이건만, 점점 숨이 찬다. 원치 않게 흥분하고 있었다.

    정수리 위를 감싸며 제 몸에 밀착한 그가 탁해진 음성으로 속삭인다.

    “왜 반항하지 않지? 이쯤 되면… 내 몸 어딘가를 부러트렸어야 정상 아닌가?”

    웃음이 섞인 음성에 그녀는 지지 않고 여유로운 척했다.

    “말했잖아. 나는 아무나 목 안 졸라. 네가 날 죽이려 하지 않으면, 나 역시 널 죽이지 않아. 파렌티.”

    지긋이 응시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사막을 떠도는 나비의 날갯짓 같은 충동이 인다. 생경하면서도 납득하기 힘든 얄팍한 충동이었다.

    부드러운 입술에 조심스레 입 맞춘 그의 표정이 일순 일그러진다. 줄리오는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드로어즈 안으로 넣었다. 탄력 있는 고무처럼 단단한 성기가 닿았다.

    “잡아.”

    씹어 삼키는 듯한 속삭임은 애원조에 가까웠다.

    하나는 한 손에 잡히지 않는 성기를 힘주어 움켜쥐었다. 그에 작게 탄식한 그가 허리를 움직이자, 울퉁불퉁한 성기가 그녀의 손바닥에 비벼졌다.

    선단에서 새어 나온 액체가 윤활제가 되어 마찰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아래가 젖어가는 느낌에 하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당장에라도 박고 싸고 싶지만, 콘돔이 없어서 참는 거야. 게다가 난 다른데 박는 걸 더 좋아하기도 하고.”

    그의 손이 허릴 타고 내려가 엉덩이를 움켜쥔다.

    “그냥 이 정도로 만족해. 이런 거에 박히면 난 분명 망가질 거야.”

    “시험해볼래? 망가지는지, 아니면 끝내주게 좋은지.”

    하나는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단호한 거절에 웃음을 터트린 그가 신음을 흘리며 그녀의 셔츠를 걷었다.

    속옷 위로 볼록 솟아오른 젖가슴을 어루만지다, 상체를 숙여 천 안에 숨은 젖꼭지를 핥는다. 금세 빳빳해진 정점을 이로 긁고 깨물며 비비는 속도를 빠르게 했다.

    그녀의 손바닥에 성기를 비비다가도, 그는 실수처럼 가랑이 사이를 푹 찔렀다. 그럴 때마다 아랫배가 조여들고 입술 새로 더운 숨이 터져 나온다.

    줄리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드로어즈를 벗었다. 그러더니 좀 더 위로 올라와 그녀의 얼굴 앞에 성기를 가져다 댔다.

    조금 전까지 손바닥에 밀착해 있던 성기가 뺨에 닿는 바람에 하나의 고개가 더욱 뒤로 젖혀졌다.

    “걱정 마. 입에 꽂아 넣진 않을 테니까.”

    피식 웃은 그는 흥분으로 벌게진 얼굴을 하곤 침을 모아 성기에 흘렸다. 그러더니 패팅을 하듯 두꺼운 성기를 위아래로 훑었다.

    남자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비릿한 선단이 입술을 찌른다. 하나는 제 눈앞에서 움직이는 성기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두툼한 분홍색 덩어리가 휘어진 채 말간 물을 뚝뚝 흘렸다.

    이건 간사하면서도 약아빠진 허락이자 연기다. 이 남자의 도움이 필요했고 경계를 풀길 바랐다. 이왕이면 제 뜻대로 움직여 주길 원하기도 했다.

    좆을 비비든 입에 물리든. 제 몸을 탐해도 좋으니, 이왕이면 대가는 확실하게 받고 싶었다.

    눈을 치켜뜬 하나는 흥분한 남자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그 역시 그녀를 내려다보며 이마에 핏대를 세웠다. 당장 사정할 것 같은 표정을 하고도, 한참을 비볐다.

    “하!”

    비리고 진득한 정액이 뿜어진 건 순식간이었다. 턱과 입술, 얼굴에 튄 하얀 정액이 몽글몽글하게 덩어리져 흐른다. 연유처럼 끈적하고 연한 크림색을 띠었지만, 맛은 텁텁하고 별로였다.

    하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제 얼굴에 튄 정액을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그러곤 그것을 무심히 응시하다가 줄리오의 복부에 쓱 문질렀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상체를 세워 그의 가슴팍과 팔 같은 곳에 얼굴을 문지르자, 다시 발기해 버린 성기가 그녀의 가슴을 때린다.

    하나는 황당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뒷머리를 잡은 손아귀에 실리는 힘. 그의 눈빛이 통제를 잃은 욕망으로 일렁거렸다. 그에 하나는 제 머리채를 잡은 손을 툭툭 건드리며 불그스름한 입술을 벌렸다.

    “박고 싶으면 박아 봐. 빨아 줄지, 좆을 잘라 버릴지는… 내 기분에 따라 다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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