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 (132/180)
  • <12>

    “시신은 어떻게 할까요.”

    경찰의 질문에 유은성은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건넸다.

    “치워요. 어차피 범죄자들이니, 적당히 공으로 돌리면 되겠네요.”

    달러를 받은 경찰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그러더니 이내 헛기침을 하며 짐짓 모자란다는 듯 두 눈을 빛낸다. 은성은 남은 지폐를 모두 꺼내 주었다.

    ‘쓰레기 새끼들.’

    어차피 코카인 트레일러와 무기들은 줄리오 파렌티가 회수한 뒤였다. 남은 건 시체가 되어 버린 메싸의 패거리들. 썸낭이나 얀이라 불리던 놈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바닥을 굴렀다.

    은성은 그중에서도 제일 멀리 도망가다 머리가 꿰뚫린 메싸의 시신 쪽으로 향했다.

    진흙에 얼굴을 처박고 죽어 버린 놈을 발로 걷어차 뒤집은 후 품을 뒤져 휴대 전화를 찾아냈다.

    놈의 지문으로 잠금을 풀고 내부 저장 장치를 초기화한 그는 다시금 휴대 전화를 메싸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곤 그대로 총을 갈겼다.

    탕, 탕, 탕!

    휴대 전화를 관통한 총알이 심장에 박힌다. 사후경직이 일어나기 전이라 울컥울컥 피가 솟았다.

    유은성은 마치 감정을 거세당한 사람 같았다. 피가 튄 뺨을 가죽 장갑 낀 손으로 닦아낸 그가 돌아섰다. 차분한 표정을 한 그의 앞에, 새파랗게 질린 남자가 다가왔다.

    “강무진 씨…. 어떻게 된 겁니까?”

    “늦었네요, 최태준 씨.”

    태준은 구역질이 나서 입을 틀어막고 돌아섰다.

    이정도면 대학살 수준이었다. 아무리 범죄자라지만, 40명 전원 사망이라니.

    태준은 태연하게 걸음을 내딛는 유은성을 따라 움직였다. 그는 시신들을 밟고 지나가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유은성. 아니, 강무진.

    나이 30대 초반, 신흥 재벌로 혜성처럼 등장한 강무진은 순식간에 동남아시아 마약 시장을 점령했다. 하지만 강무진에 대한 건 별로 알려진 게 없었다. 그저 뜬소문처럼 떠도는 이야기뿐.

    미국과 러시아에 본거지를 둔 조직의 보스란 소문도 있고, 한국의 재벌 3세란 소리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그가 거대 자본을 이용해 이쪽 길로 빠져들었다는 소문이 가장 유력했다.

    최태준은 어째서 강무진이 이하나의 집에 나타났는지. 왜 자신을 공격했고, 어떤 이유로 그녀와 함께 움직였는지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강무진은 이하나와 엮이면 안 된다. 아니, 마주쳐서조차 안 되는 인물이었다. 혹시라도 이하나가 강무진에 대해 눈치채는 일이 생긴다면….

    태준은 목이 서걱 잘려 나가는 듯한 서늘함에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들자 멀리 검정 레인지로버가 세워진 게 보인다. 무진은 그 뒤편에 자리한 작은 오두막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강무진 씨!”

    다급해진 태준이 허둥지둥 따라붙자, 문을 열고 들어간 무진이 돌아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 얘기 안 했습니까.”

    “예?”

    “이두이 씨, 쌍둥이였다는 거.”

    태준은 가죽 장갑을 벗는 무진을 보며 멍하니 입을 벌렸다. 강무진은 싱크대에서 손을 닦은 뒤, 오두막 안을 천천히 거닐었다. 조금 전까지 살육의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차분한 표정이었다.

    가만히 테이블 표면을 어루만지더니, 옷장을 연다. 그 안에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곤 침대 위에 앉아 온기를 가늠하듯 손바닥을 댔다.

    태준은 답답한 마음을 억눌렀다. 채근하고 싶지만, 심기를 건드려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강무진은 미친놈이다. 이하나도 미쳤지만, 그의 기준에서 이하나는 강무진에 비해 지극히 정상인 사람이었다.

    한데 살육을 즐기는 사이코패스는 또 아니다. 소시오패스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그는 몹시 똑똑했고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했다.

    “이하나, 정보가 필요해요.”

    강무진이 베개를 들어 코를 묻는다. 그러곤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더니 피식 웃었다. 태준은 머릿속이 하얘지는 걸 느끼며 머리를 저었다.

    “강무진 씨라고 해도, 안 됩니다. 이하나는….”

    “정말, 용병입니까.”

    “예, 용병입니다. 한때 용병이었고… 지금은 그냥 평범한 시민입니다. 아시다시피 두이의 쌍둥이 누나입니다. 게다가 이두이가 살아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로….”

    말을 하던 태준은 피식거리는 무진의 반응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혹시… 이두이, 살아 있습니까?”

    무진은 흘러내린 앞머릴 쓸어 넘기며 침대 헤드에 비스듬히 기댔다. 그러곤 휴식이라도 취하듯 양손을 가슴 위에 올리더니 고개를 틀었다.

    “그게, 왜 궁금하지?”

    태준은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에 혀를 찬 무진이 다리를 꼬더니 들으라는 듯 중얼거린다.

    “그나저나… 이제 줄리오 파렌티의 이름은 못 쓰겠네요.”

    “가, 강무진 씨.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예? 두, 두이가 왜 살아 있어요!”

    버럭 소리친 태준은 고개를 든 순간, 시커먼 총구를 마주했다. 침대에 누운 채 자신을 조준한 강무진의 서늘한 얼굴을 본 태준은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최태준 씨, 쓸모 있게 굴어요. 내가 먼저 버리기 전에.”

    미친 새끼다.

    태준은 주먹을 말아 쥐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몸을 일으킨 강무진이 갑자기 셔츠를 벗더니, 욕실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음엔 이하나의 정보를 기대하죠.”

    “강무진 씨, 그건 정말….”

    “일단 나는 좀 씻을 테니, 돌아가요. 조만간 배 위에서 봅시다.”

    “배라뇨?”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묻자 무진이 귀찮다는 투로 대답했다.

    “로맨틱한 재회가 될 것 같은데요.”

    “지, 진짜 이하나한테 관심이라도 생기신 겁니까? 걔한테요?”

    “예쁘잖아요.”

    미친…. 욕이 절로 새어 나왔다. 태준의 입술이 바르르 떨린다.

    그사이 끼익 소릴 내며 욕실 문이 닫히더니, 이어 물소리가 들려왔다.

    이두이가… 살아 있다니.

    태준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좆됐다.’

    ***

    “날 도와줘. 그럼… 당신 사칭한 놈, 잡아 줄게.”

    하나는 총을 들지 않은 손으로 줄리오의 뒷머릴 움켜쥐었다. 키가 큰 탓에 뒤로 젖혀지진 않았지만, 입술이 닿는 걸 막긴 충분했다.

    입맛을 다신 미친놈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의 제안에 답했다.

    “글쎄…. 메싸란 놈이 현장에서 죽어 버렸어. 그것도 저격용 총에 맞고. 날 사칭한 놈이 누군지 정중하게 묻고 싶었는데 말이야.”

    메싸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다더니…. 유은성은 복수에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하나는 그의 말을 부정하듯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날 도와주면, 자연스럽게 사칭범을 찾을 수 있어. 내 동생이… 당신 사칭한 놈을 쫓고 있던 것 같거든.”

    “동생?”

    두이를 떠올리자 저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도드라진다. 줄리오는 제 머리채를 당기는 힘에 기분 나쁜 표정으로 턱을 들었다.

    “소문에 줄리오 파렌티에게 제거당한 한국 정보부 요원이 있다는데…. 그게 내 동생이야.”

    “나한테 제거당했다면, 사망했다는 거 아닌가?”

    “아니, 살아 있어. 그래서 당신을 만나러 온 거야…. 확인이 필요해서.”

    “정말로 죽였나 싶었나?”

    “죽이지… 않았을 것 같아서.”

    그는 하나의 눈에서 코, 입술 가장자리 즈음으로 시선을 옮겼다. 피가 배어난 입술이 도톰하게 부어 있다. 줄리오는 생채기가 난 입가를 엄지로 문지르다가 그대로 쑥 집어넣었다.

    그녀는 두 눈을 번뜩이며 치켜떴다. 혀를 누르듯 파고들어 치아를 어루만지던 그가 엄지를 빼더니 검지와 중지를 밀어 넣었다.

    하나는 오심이 일어나는 걸 꾹 참으며 입을 벌린 채 그를 노려보았다. 줄리오는 하나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제 손가락에 타액을 묻혔다.

    그는 즐거워 보였다.

    미친, 사디스트.

    구역질이 날 때마다 눈물이 맺힌다. 그녀의 이가 서서히 닫히자, 미간을 좁힌 그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로 내걸 빨려면, 더 벌려야 할 거야. 익숙해 져야지.”

    소름 끼치도록 나른한 말투에 발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입 안에 고인 침이 뚝뚝 떨어졌다. 줄리오는 자신을 조준한 총을 툭 건드렸다.

    “치워.”

    하나는 천천히 양손을 어깨 위로 들곤 탄창을 뽑았다.

    바닥으로 탁, 떨어진 탄창에서 탄환이 빠져나와 하수구 방향으로 구른다. 한마디로, 휴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걸 밝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결정은 줄리오 파렌티만 하면 될 터.

    “동생을 꽤 아끼나 보군.”

    하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말을 해 봤자 혀가 눌려 이상한 신음만 나올 게 분명했다.

    그녀가 모았던 다릴 벌리자 발끝에 닿은 탄환이 굴러간다.

    그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탄환에 고정된 순간, 하나는 손가락을 콱 깨물었다.

    “젠장!”

    “이 새끼가, 더럽게!”

    그녀는 줄리오의 뒷머릴 움켜쥔 그대로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소릴 내며 꽂힌 주먹에 그의 입술이 터졌다. 머리가 잡혀 피할 수 없었기에 타격이 더 클 터.

    얼얼한 주먹을 턴 그녀는 퉤, 하고 침을 뱉으며 사납게 중얼거렸다.

    “팬티 하나 뺏어 입기 더럽게 힘드네. 안 입어, 너나 입어.”

    그러곤 바닥에 떨어트린 셔츠를 걸치곤 그대로 욕실을 나섰다.

    하지만 단추도 잠그지 않은 그녀를 기다리는 건, 수십 개의 총구였다.

    “치사한 새끼들….”

    하나는 양손을 머리 뒤로 넘겨 깍지 끼웠다.

    이젠 진짜 항복이었다. 어차피 줄리오 파렌티의 관심을 끌기 위해 벌인 일이었으니 충분했다.

    함부로 죽이지 못한다. 분명, 쓸모를 느꼈을 테니까.

    태연히 항복한 그녀의 태도에 로렌조가 흥분해 소리치려 할 때였다.

    맞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나온 줄리오가 머리 위로 올린 그녀의 손에 검정 팬티를 쥐여 주었다. 그러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곁을 스쳐 지나갔다.

    경악한 하나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고개를 틀었다.

    창피하지도 않은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맞은편 소파에 앉은 줄리오. 그가 자신의 부하들을 둘러보더니 나직하게 지시했다.

    “브리오니 매장부터 찾아.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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