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8> (128/180)
  • <08>

    6월 23일, 10시 50분 05초.

    최태준은 굳게 닫힌 현관문을 노려보았다. 벨을 두 번이나 눌렀지만, 안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이하나가 소리를 못 들었을 리 없기에 태준은 불안에 휩싸였다.

    ‘혹시, 위험해진 거 아니야?’

    칠이 벗겨진 계단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이자 공기가 금세 텁텁해진다.

    태준은 주머니에 넣어 둔 키를 만지작거렸다. 이것은 비상사태에 대비해 복사해 놓은 집 열쇠였다. 열고 들어갈 수 있으나, 그랬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집 안에 없다면?

    “얘는 대체 어딜 간 거야?”

    최태준은 온갖 가능성을 떠올리며 현관 앞에 주저앉았다.

    이하나가 위험에 처했을 거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하나가 위험해지는 게 아니라, 위험한 상황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컸다.

    PMC 중에서도 로건 발렌타인의 회사는 고위험 임무에 투입되는 것으로 유명했다. 발렌타인 데이의 용병들을 두고 업계에선 ‘밑바닥 인생’이라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연봉을 듣는 순간, 모두가 그 이유를 납득하고 만다.

    그 안에서도 이하나는 로건이 아끼던 정예였다. 지금은 퇴사한 상태지만, 이하나는 언제든 로건의 힘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가진 정보를 탐낸 IDC:A에서 몇 번이나 러브콜을 보냈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그 이유가 이두이 때문이었다니.

    이하나에게 집착했던 선배가 들으면 기가 차 쓰러질 이유였다.

    심지어 그것만이 위협은 아니다. 이하나가 위험한 진짜 이유는 정의롭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도덕적이지 않다는 것과 정의롭지 않다는 건 다른 맥락이다.

    도덕적인 면으로만 보자면 이하나는 제법 괜찮은 사람이다. 하지만 정의를 대입하면 다른 답이 나온다.

    그녀는 악을 처단하는 사람이 아니다. 용병은 선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단지, 민간인을 학살하지 않을 뿐. 그렇다고 킬러라고 할 수도 없다. PMC는 대부분 국가에서 주는 임무에 투입되므로, 반쯤은 나라를 위해 일하는 군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해적에게서 상선을 보호하거나, 해외 사업에 파견된 민간 기업을 경호한다. 또는 분쟁 지역을 방문한 귀빈들의 총알받이가 되기도 했다. 국가 인력을 소모하는 대신 투입되는 대체품. 그것이 그들에 대한 인식이었고, 이하나는 그 정상에 있었다. 원샷원킬이란 말이 이하나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우스갯소리도 나돌았다.

    대체, 이하나는 뭘까.

    이하나에게 한계가 있기는 한가?

    과대평가된 거품 같은 거 아닐까?

    그렇게 하염없이 생각에 빠져있을 때였다. 계단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다소 지친 걸음 소릴 들은 태준은 몸을 일으켰다.

    “어? 최태준.”

    코너를 돌아 나타난 건 이하나였다.

    조깅이라도 한 건지, 목에 타월을 두른 그녀가 땀에 흠뻑 젖은 채 태준을 위아래로 훑는다.

    어처구니없어진 태준은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미쳤어? 지금 조깅이라도 한 거야? 이 더위에?”

    “왜, 안 돼? 답답해서.”

    “여기가 얼마나 위험한데, 그 꼴을 하고 뛰어!”

    “내 꼴이 어떤데. 문제 있어?”

    “허! 야, 이하나. 네가 아무리 잘났어도, 여자야. 보호받아야 한다고!”

    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은 하나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최태준은 레깅스에 딱 붙는 민소매 차림인 그녀를 보며 이마를 짚었다.

    저 차림으로 뛰어다녔다면 분명 여럿의 타깃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니까 무사히 돌아온 거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상황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곧장 냉장고 문을 연 그녀는 차가운 물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하나의 몸은 군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단단했다. 근육이 잘 생기지 않는 체질이라더니, 잔근육으로 덮인 몸은 얼핏 말라보이기까지 했다.

    그녀가 첩보 활동에 주로 투입되었다던 말이 어쩐지 이해가 됐다.

    “사람 붙여 놓을 거야, 너. 안 되겠어. 위험해.”

    “그러든지.”

    “아무튼, 진짜 나랑 같이 안 움직일 거야?”

    “응, 좌표나 줘. 나 혼자 갈 테니까. 너랑 같이 움직여 봤자, 잔소리만 할 텐데 뭐.”

    “내가 무슨 잔소릴 한다고!”

    “지금 네가 하는 짓을 사람들은 잔소리한다고 그래. 그리고 태준아…. 나 지금 천천히 두이 죽음 받아들이는 중이야. 그러니까 나 좀 그냥 둬.”

    하나의 음성이 처연하다.

    그에 태준은 쓰디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너 한국 돌아갈 때까지 내가 케어해. 잔소리 안 할 테니까 나랑 같이 움직이자. 응?”

    “싫어.”

    단박에 싫단 말을 들은 태준의 표정이 굳었다.

    “나, 같이 움직일 사람 있거든.”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용했던 집 안에 살기가 돈다.

    누군가 있다.

    태준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곤 벨트에 걸어 둔 권총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총구가 뒤통수에 닿는 것이 더 빨랐다.

    태준은 양손을 어깨높이로 올린 뒤, 사색이 되어 하나를 노려보았다.

    “이하나…. 뭐 하는 짓이야.”

    하나는 물이 흐른 입가를 닦으며 천천히 태준과 눈을 맞췄다.

    “선택해. 내 조력자가 될지, 누군가의 방조자가 될지.”

    “야!”

    “네가 준 자료 말이야, 빠진 게 너무 많더라고.”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빨리… 이 사람 누구야. 치워, 총. 이러지 마!”

    “태준아, 소리 지르지 마. 귀 아프잖아.”

    “하나야. 왜 이래, 정말. 응? 누군데?”

    “그 보고서만으로 두이를 사망 처리 한 거라면, 정말 실망이야. 어떻게 그 말도 안 되는 보고서를 결재 처리할 수 있지?”

    태준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사실은… 폭탄 조끼를 입은 시체가 발견됐어. 근데 상태가 지나치게 안 좋아. 거의 흔적에 가까운 시체라 검시도 불가능할 지경이었다고. 근데 그 시체가…. 두이 목걸이를 하고 있었어. 그러니 두이라고 특정한 거야.”

    “목걸이라…. 검식이 불가능할 만큼 손상된 시체에서, 목걸이를 발견했다?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믿으라고?”

    “진짜야, 진짜! 그래서 현장에 가 보자고 한 거잖아. 너한테 차마…. 하, 말을 못 했던 거라고! 충격받을까 봐.”

    태준은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처음으로 죽음을 직면한 기분이었다. 제 뒤에 사신을 두고 이하나의 판결을 기다리는.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된 자들의 공포를 고스란히 느꼈다.

    그때 태준을 가만히 응시하던 그녀가 턱에 맺힌 땀을 닦더니,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였다.

    “지금 이시간부로, 최태준. 넌 내 적의 방조자야. 뒤를 쫓는 기색을 보이면, 그땐…. 네 목숨을 의뢰할 거야. 그러니까 나한테서 손 떼. 네 거짓말에 속아 줄 테니까, 상부에 아주 잘 보고해야 할 거야. 이하나는 어제부터 이두이의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보고의 전부. 알았어?”

    태준은 주먹을 말아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살아야 한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벗어난다면….

    퇴로를 찾기 위해 머릴 굴리던 그때, 이하나가 고개를 까딱이는가 싶더니 엄청난 힘이 뒷머릴 가격했다.

    퍽, 소리와 함께 눈이 뒤집힌다.

    태준은 바닥으로 풀썩 쓰러지며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를 언뜻 보았다. 제 뒤통수에 총구를 들이댔던 남자였다.

    이 남자는….

    빌어먹을….

    ***

    집 앞에 세워져 있던 차에 최태준을 태우고 키를 안에 던져 넣은 뒤, 문을 닫았다.

    아마 저녁 즈음 되면 정신을 차리겠지. 머리에 혹 정도는 생기겠지만, 목숨에 지장은 없을 것이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면 되죠?”

    그녀의 질문에 조금 전 태준의 뒷머릴 가격한 남자가 휴대 전화 하나를 내밀었다.

    “내비게이션에 저장해 뒀습니다.”

    남자는 혼혈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동양계 미국인, 또는 이국적으로 생긴 동양인.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가진 남자는 로건이 붙여 준 조력자였다.

    하나는 휴대 전화를 받아 들고 내장된 내비게이션을 실행시켰다.

    이곳에서 50km 떨어진 곳에 목적지 표시가 뜬다.

    “이름이 뭡니까?”

    “다들 리우라고 부릅니다. 원래 유은성인데, 발음을 못 하더라고요.”

    “아, 한국인?”

    “아버지가 한국인입니다.”

    하나는 은성과 악수를 나누었다. 한국의 아이돌을 닮은 외모와 달리 단단한 손. 로건이 강력하게 추천할 만큼 실력 좋은 요원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최태준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잠입 실력도 좋았다.

    그런데 왜 위화감이 들까.

    조금 전, 하나는 로건의 지시에 따라 리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최태준이 방문했고, 문 앞을 지켰다.

    그래서 그녀는 외벽 배관을 타고 1층까지 내려갔다.

    현관 앞에 있는 최태준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요량이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은성의 기척을 느낀 하나는 새삼 감탄했다.

    “메싸는 지금 몸을 사리는 중입니다. 훔친 물건이 줄리오 파렌티의 물건인지 몰랐던 모양입니다.”

    “그럼 위치는요.”

    “아직 알아보는 중입니다. 그러니 연락할 때까지 그곳에 계십시오. 줄리오 파렌티의 전용기가 움직였으니, 그쪽에서도 반응이 있을 겁니다.”

    “마피아 놈들이 먼저 알면 안 돼요. 제가 먼저 알아야 잠입할 수 있어요.”

    “그건 걱정 마세요. 우리 쪽이 유리하니까.”

    “자신만만하네?”

    “자신 있으니까.”

    유은성은 시원하게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한걸음 다가와 상체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조심해요. 그쪽, 보면 볼수록 그 여자랑 닮았어요.”

    “그 여자라니? 누구?”

    “줄리오 파렌티의 정부라고 알려졌던 여잡니다.”

    “과거형이네요?”

    “예. 정확하진 않지만, 러시아 마피아의 아내가 됐단 정보가 있습니다.”

    “하, 레드마피아의? 대단한 여자네.”

    “뭐, 어쨌든…. 검은 머리카락의 동양인은 줄리오 파렌티의 트리거가 될 겁니다. 조심해서 나쁠 거 없으니까…. 알고 계세요.”

    하나는 대수롭지 않게 피식 웃으며 가죽 장갑을 꺼냈다.

    “차라리 저한테 관심 가져주면 고마울 것 같은데요? 이용하기 쉬울 거 아니에요.”

    “이용? 마피아를?”

    “못할 것도 없죠. 마피아는 사람 아닌가?”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 지었다. 그사이 헬멧을 집어 든 그녀가 은성에게 손을 흔든다.

    “그럼, 조만간 다시 만나요. 다음에 볼 땐 식사라도 하면 좋고요.”

    시동이 걸린 바이크에서 흘러나온 요란한 굉음이 바닥으로 내리깔린다. 한가로이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에게 향했다.

    얼굴에서 미소를 지운 은성이 한 걸음 다가선다. 그러곤 바이크 핸들을 쥔 그녀의 손등을 감싸며 상체를 숙였다.

    “이하나 씨, 애인 있어요?”

    그에 황당한 듯 실소한 하나가 한숨을 내쉬더니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있어요, 여기.”

    은성은 소리 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바이크 옆에서 물러났다.

    “대단한 애인이네. 어쨌든 다음엔 술도 한잔합시다. 꼭, 살아남아요.”

    하나의 바이크가 멀어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은성은 차 안에 쓰러진 최태준을 가만히 응시하다, 가까워지는 차 소리를 듣곤 돌아섰다.

    고급 세단 한 대가 멈춰 서더니, 발렌타인 데이의 배지를 단 두 명이 내려 꾸벅 고개를 숙인다.

    “모시러 왔습니다.”

    “재미 좋았는데.”

    “저분은 위험합니다, 미스터 강.”

    은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조금 전 자신을 미스터 강이라고 부른 남자를 스쳐 지나가며 차갑게 경고했다.

    “유은성이라고 했을 텐데요. 리우라고 불러요. 강무진이 아니라.”

    그 서늘한 어투에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미스터 리우.”

    은성은 차에 오르며 이두이의 집을 올려다보았다.

    일이 재밌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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