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 (116/180)
  • <56>

    태준은 쪽지를 받아들자마자 안에 적힌 것들을 읽고 외우기 시작했다.

    심장이 벌렁벌렁, 식은땀이 줄줄 난다.

    그것은 말 그대로 강무호에게 이하나가 듣고자 하는 3가지의 답이었다. 물론, 정해진 답.

    똑똑-.

    노크 소리에 흠칫 놀라 고개를 드니, 이하나는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태준은 베개 아래 쪽지를 숨긴 뒤 TV 채널을 돌렸다.

    똑똑-.

    대답을 들은 후에야 들어올 작정인지, 재차 이어진 노크. 태준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꾸했다.

    “누구세요.”

    콜록대며 기침까지 한 최태준은 서서히 열리는 병실 문 너머에 서 있는 강무호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등산용 모자를 푹 눌러쓴 강무호가 싱긋 웃더니 병상 가까이 다가왔다. 태준은 놀란 듯 눈만 크게 뜨곤 강무호를 바라보았다.

    “이거, 생각보다 부상이 심하신데요?”

    “강 의원님….”

    “어이구, 말조심하셔야지. 이거, 이거. 머리에 총을 맞으셨나.”

    덩치들을 입구에 세워 둔 강무호가 의자를 꺼내 앉는다. 제법 친근한 얼굴로 웃고 있지만, 상대는 강무호다. 몇 개의 가면을 가졌는지 모를 의뭉스러운 작자.

    태준은 입구에 서 있는 놈들의 무장 상태를 확인한 뒤, 머뭇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의원님 덕분에 머리 빼고 온몸이 다 쑤셔졌습니다.”

    “허허. 그게 어찌 나 때문이지? 자네, 말이 심하군.”

    “물건이 줄리오 파렌티와 연관되어 있다고 언질만 주셨어도, 이런 일 없었을 겁니다. 원망스럽습니다, 의원님.”

    “쯧, 그게 누구야. 줄리오 파렌티?”

    “의원님! 의원님께서 엮으라고 하셨던….”

    “처음 들어봅니다. 나는, 그 이름.”

    최태준의 말을 단호하게 자른 강무호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훑었다. 태준은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요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헛것이 보이기도 하고, 막 그래요.”

    “그러게 약을 끊으라니까. 쯧….

    “그나저나 뉴스 봤습니다. 강무진 시신이라도 찾으러 오셨다고….”

    “바다에 빠져 죽은 새끼를 내가 왜.”

    “그래도….”

    “그 새끼 안 죽었으면 내가 죽였을 겁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놈은 가짜거든. 어디서 굴러먹다 기어들어 왔는지도 모를 가짜. 멍청하게, 머리 색만 같다고 다 강씨 집안 핏줄인 줄 알아? 병신같은 새끼.”

    ‘마피아랑 엮으랬다고 곧이곧대로 들어? 썩을.’이라며 사납게 중얼거리던 강무호는 최태준의 멍한 눈빛을 보며 헛기침했다.

    “어쨌든 듣자 하니… 자네 친구가 살아 있다며.”

    두이의 얘기다.

    태준은 천천히 시선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들었다. 환한 빛이 들이치는 병실. 표표하게 떠다니는 먼지와 유난히 건조하게 느껴지는 낯빛에서 흙냄새가 난다.

    “이두이…. 찾으러 오신 거였습니까?”

    “해외 파견 업무는 위험하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확인하러 온 것뿐이야.”

    “이두이가 살아 있긴 하지만, 어디 있는지는 모릅니다.”

    “허허, 거짓말하지 마. 네 놈이 날 여기로 불렀잖아. 최태준, 이 버러지 같은 새끼!”

    “예?”

    “당장 말해! 이두이, 어디 있어! 그리고 발칙하게 증거를 남겨? 네놈들이 내 돈 받아먹고 감히 어디에 내 이름을 남겨!”

    악귀처럼 소리친 강무호가 벌떡 일어나 최태준의 목을 조였다. 뒤로 넘어간 의자에서 우당탕 소리가 난다.

    태준은 발버둥 치며 간신히 강무호의 손을 떼어 냈다.

    “의원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어떻게 의원님께 연락을 합니까!”

    “허, 거짓부렁까지? 감히 날 협박해놓고, 뭐라?”

    “의원님!”

    강무호는 씩씩거리며 허리에 손을 얹더니, 입구를 지키던 덩치 중 하나에게 손을 까딱였다.

    “저놈 잡아.”

    덩치는 짧고 딱딱한 영어도 곧잘 알아듣곤 순식간에 태준의 목을 팔로 감았다.

    강무호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힘에 목이 졸린 태준은 비명을 지르며 반항했다. 그러나 자주 지나가던 간호사마저도 문을 열고 안부를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미친놈이, 죽을 거면 혼자 곱게 갈 것이지.”

    가방에서 가죽 케이스를 꺼낸 강무호가 씨근덕거리며 지퍼를 연다. 그 안에는 주사기 두 개와 몇 개의 바이알이 들어 있었다.

    순간, 죽음의 공포가 태준을 찾아왔다.

    “의, 의원님….”

    “네놈들이 선을 넘은 걸 탓해.”

    “의원님!”

    “그러게 적당히 까불었어야지. 어디 더러운 약쟁이 새끼들이 내 앞길을 막으려 들어?”

    “야이, 씨벌! 강무호!”

    비명과도 같은 욕설에 코웃음 친 강무호는 주사기 안에 약물을 주입한 뒤, 태준의 팔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어차피 네놈도 한국 와 봤자 감방 행이야. 내가 너 한국 땅 밟게 둘 줄 알았어? 거기서 시끄럽게 죽나, 여기서 죽나 매한가지니 조용히 가. 사망 위로금은 두둑하게 챙겨서 네 어머니한테 보내 놓을 테니, 너무 원망하지 말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부들부들 떨던 태준은 결국, 최후의 보루로 남겨 뒀던 이름을 고래고래 외쳤다.

    “이하나! 씨발, 하라는 거 다 할 테니까 이제 좀 살려주라! 하나야!”

    그에 강무호의 눈썹이 삐딱하게 올라간다.

    “이건 또 무슨 개 소리야? 죽기 전에 애인 이름이라도 불러?”

    “미친 새끼야, 넌 뒤졌어! 개새끼! 그딴 짓을 한 너 같은 새끼가 국회 의원이라니! 개탄스럽고 목에서 피가 난다, 씨발넘아!”

    “허, 미친놈일세? 그래, 애인 이름 부르면서 가면 좋지. 외롭지 않게 같이 보내 주면 더 좋으련만.”

    그때였다.

    태준의 목을 조르고 있던 덩치의 무릎이 순간 확 꺾이더니 발목에서 피가 튀었다.

    “아아악!”

    이어 총을 꺼내 들던 또 다른 덩치에게 반대편에서 날아든 총알이 박혔다. 무릎이 꺾여 넘어지면서도 총을 놓지 않던 놈은 결국 손목에도 총알이 박힌 뒤에야 까무룩 기절했다.

    “뭐, 뭐야!”

    강무호는 사색이 되어 사위를 둘러보다 두 눈을 험악하게 떴다. 그러며 뒷주머니에 채워 둔 리볼버를 꺼내 최태준을 겨눈 채 소리쳤다.

    “누구야! 어떤 새끼야!”

    침을 질질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던 태준이 총구를 노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나 죽여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텐데. 인질이 잘못됐잖아요. 씹….”

    “누, 누구냐니까!”

    “아까 말했는데, 못 들으셨어요? 이하나라고.”

    “이하나…?”

    탕!

    짧은 총성과 함께 강무호가 눌러쓰고 있던 등산용 모자가 벗겨지며 허공으로 떠오른다.

    마치 슬로모션의 한 장면처럼, 강무호는 떨어지는 자신의 모자와 챙에 생긴 구멍을 보며 입술을 떨었다.

    “이, 이게 대체….”

    죽음의 공포에 전염된 듯 몸을 떠는 강무호.

    “강무호 의원님, 전에도 느낀 거지만 화면빨 죽이시네요.”

    짓궂은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반짝이는 빛이 강무호의 눈동자를 찌르듯 파고든다. 그에 강무호는 주춤거리며 벽에 기댔다.

    “누구야, 너! 한국인이야?”

    “내 국적이 중요해? 그쪽의 본성이 전 세계에 송출되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뭐?”

    “영상 수위가 높아서 언제 폭파될지 모르지만, 어쩌나…? 지금 이거, 야당 총수 아줌마도 접속해서 보고 계시는 거 같은데. 손 좀 흔들어 줘.”

    “야!”

    겁도 없이 뛰어드는 강무호를 향해 하나는 총을 겨누었다. 여전히 창틀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지만, 완벽한 균형감 때문인지 조금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Ciao. 강무호 씨.”

    달콤하게 속삭인 하나는 강무호의 어깻죽지 방향으로 총구를 내렸다. 날아간 총알이 강무호의 어깨를 통과해 벽에 박힌다.

    “현지 마약 거래법 위반, 살인 미수, 살인 청부 및 증거인멸 시도. 당신의 죄목이 끝도 없어서 입이 아플 지경인데, 어쩌지? 그냥 죽을래? 여기서?”

    그 선득한 살기에 강무호의 바짓가랑이가 젖어 들기 시작했다. 고작 이 정도로?

    하나는 황당함에 웃었다. 지금껏 유은성의 보호 아래 더러운 꼴을 보지 않고 살아온 티가 났다.

    그래 놓고 쓸모를 다한 개는 버리겠다고?

    그녀는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은 강무호의 주위로 계속해서 총알을 난사했다.

    “으아아악! 그만, 그만!”

    그러자 비명을 지른 강무호가 양손으로 머리통을 감쌌다.

    하나는 차갑게 경고했다.

    “튀어, 도망쳐. 놀아 줄 테니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옇게 질린 강무호가 바닥을 기어 도망치기 시작한다.

    “어어, 저 새끼 튀잖아! 안 잡아? 야!”

    “너는 좀 닥쳐, 최태준.”

    이두이의 싸늘한 읊조림과 동시에, 최태준의 얼굴에 돌 같은 주먹이 박혔다.

    퍽 소릴 내며 돌아간 얼굴. 가뜩이나 숨만 쉬고 있던 최태준은 이제 피까지 질질 흘리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두이를 올려다보았다.

    “두, 두이야.”

    “너 같은 새끼를 내가 친구라고…. 하, 빌어먹을.”

    “미안해! 미안해, 두이야! 내가, 내가 죽을죄를 지었다. 내가 죽일 놈이야!”

    태준은 두이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질 것처럼 납작 엎드려 엉엉 울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나가는 강무호를 확인한 하나는 숨이 붙어 있는 덩치들을 대충 발로 밀어낸 후 두이에게 다가갔다.

    “영상 송출했으니 한국에서 무슨 움직임이 있겠지. 그리고 강무호는…. 다른 새끼가 처리할 거야. 우리가 할 일은 여기까지고. 이제 그만 가자.”

    재차 당기는 힘에, 태준의 멱살을 거머쥔 두이가 이를 갈았다.

    “최태준. 너, 죽지 말고 살아 있어. 죗값 다 치르고 감방에서 나오면… 그때 내가 죽여 줄게.”

    서슬 퍼런 경고에 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오열했다.

    하나는 두이의 뺨에 묻은 피를 닦아 준 뒤, 당당히 병실 문을 젖혔다. 이토록 큰 소란에도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들 태연하다.

    실시간으로 촬영한 영상은 모 인플루언서의 계정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300만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한 사람답게 영상의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했고, 반응 역시 즉각적이었다.

    강무호의 숨통을 끊는 건, 강무진. 아니, 유은성이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두이가 탈출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유은성을 탈출시켰다는 걸 하나는 알고 있었다.

    “유은성이 곧바로 강무호를 칠까?”

    “그 새끼, 변태야. 절대 한 방에 안 죽여. 아마 자기가 살아 있다는 걸 알리겠지. 그러곤 조금씩 조금씩 숨통을 조여가다, 절정에 달했을 때 칼을 꽂을 거야.”

    “너, 유은성에 대해 좀 잘 안다? 질투 나게.”

    “하…. 나만 하겠어? 마피아 새끼가 어딜 감히.”

    “야, 왜 이래. 내가 좋다는데.”

    “이하나. 나야, 줄리오야.”

    “뭐?”

    “나야, 줄리오야!”

    헛웃음을 터트린 하나는 두이의 머리통을 세게 후려친 뒤 손을 털었다.

    “가족이랑은 섹스 안 하잖아, 새끼야. 니 취향인 여자 찾아. 너 좋다는 여자가 널렸는데, 뭐가 문제야?”

    “안 예뻐. 아무도 안 예뻐. 됐냐? 눈에 들어오는 애가 한 명도 없어. 됐냐고!”

    “너… 내가 듣고도 안 믿었었는데. 설마, 진짜 동정이야?”

    “야!”

    하나는 혀를 날름 내민 후 짓궂은 표정으로 도망쳤다.

    성큼성큼 병원 복도를 가로질러 1층까지 내려간 두 사람은 멀리, 뒷바퀴를 짓치며 달려 나가는 차 한 대를 발견했다.

    강무호다. 꽁지 빠지게 달아나는 모습이 퍽 볼만했다. 하나와 두이는 곧장 바이크를 세워 둔 곳으로 향했다.

    “로건에게 연락 왔어. 네 집, 윤 부장이 뒤집었대. 그러니까 들르지 말고 곧장 공항으로 가. 증거는… 알지?”

    “이하나, 너는.”

    “최태준이 내 이름을 워낙 고래고래 외치셔서. 한국 상황 봐서 입국해야 하지 않겠어?”

    “설마, 줄리오한테 갈 거야?”

    “오늘은 아니야. 사고 치자마자 거기로 도망치면, 걔 출국 못 해.”

    “이하나.”

    “이두이, 너랑 나는 달라. 넌 네 인생 살아. 나는 내 인생 살 테니까. 대신, 억울하게만 살지 말자. 너 먼저 가. 금방 따라갈게.”

    하나는 바이크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자 팔을 잡은 두이가 그녀를 와락 끌어안는다.

    쌍둥이지만, 큰 누나 같은 이하나. 한 배에서 태어났으나 조금도 같지 않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몸 같은 존재.

    그녀를 안은 두이의 눈가가 시큰하게 젖어 든다.

    “그냥 그 새끼한테 가. 너 위험해지는 거 싫어. 누나, 좀 떳떳하게 살지 않으면 어때.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지금은 그저, 행복하게 살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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