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 (112/180)

<52>

무릎을 꿇은 상태로 앞으로 엎어진 채 엉덩이를 들었다.

양손으로 직접 구멍을 벌리자, 콘돔을 낀 그가 귀두부터 천천히 삽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잘 들어가지 않았다. 너무 흥분한 탓이었다. 끈질기게 죄어드는 내부는 팽팽했고, 발기한 살덩이는 더욱 단단했다.

하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벅찬 숨을 빠르게 몰아쉬었다.

“차라리… 한 번에 넣어.”

상처 입은 이후 조심스럽게 대하는 게 습관이 되어 버린 건지, 그의 손길에서 망설임이 느껴졌다.

하나는 그에 직접 허릴 움직였다. 그러자 그녀의 허릴 누른 그가 욕설을 내뱉더니 단번에 안을 푹 찌르며 들어왔다.

“하악!”

내장이 한 번에 위로 쏠려 올라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하나는 시트를 짚으며 상체를 숙였다. 눈앞이 하얗게 질리고 몸이 덜덜 떨린다. 이 정도로 강한 자극은 처음이었다. 처음과는 또 다른, 차원이 다른 자극에 어처구니없게도 억울함이 밀려들었다.

“씨발…. 아파.”

“아파?”

상체를 굽혀 몸을 붙여 온 그가 탁하게 속삭이더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쪽 손으로 그녀의 골반을 움켜쥔 채, 다른 팔로는 견갑골과 어깨 쪽을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깊게 들어왔다가 쓰윽 빠져나간다. 시트를 밀어내듯 버틴 그녀는 엉덩이만 치켜든 상태로 그를 받아 냈다.

더운 숨결과 미끄러운 혀가 등에 닿는다. 뼈처럼 크고 단단한 성기가 올무처럼 죄어드는 구멍을 무자비하게 쑤셔댔다.

괴롭기만 하던 삽입을 견뎌내자 찾아온 쾌감은 정말이지 끔찍할 정도였다.

“좀, 천천히…! 작정했냐? 나쁜 새끼야.”

“참아.”

치댈 때마다 동그란 엉덩이가 반죽 되듯 흔들리고, 꽃물이 든 듯 붉어진다.

방 안의 공기가 데워져 산소가 부족해진 기분이다. 어쩐지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듯도 했다.

그녀에겐 뚜렷한 향기가 없었다. 이따금 탄약 냄새가 나거나 소독약 냄새가 났다. 간혹 풍기던 샴푸 향은 그의 것과 같았고 그마저도 피 냄새에 지워졌다.

그런데 지금은 이하나의 향기가 무엇인지, 그녀에게서 어떤 향이 나는지 알 수 있었다.

줄리오는 어깨를 움켜쥐었던 손으로 머리카락을 걷곤 가느다란 목덜미를 쓸었다. 그러다가 얇은 피부 아래에서 파닥파닥 뛰어대는 혈관을 지그시 눌렀다.

그녀가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카타르시스일까?

그는 하나의 어깨에 잇자국을 새긴 뒤, 상체를 세워 체액으로 범벅된 자신의 성기를 뺐다. 그러며 다시금 서서히 귀두부터 뿌리까지 그녀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찌걱찌걱, 분홍색 속살이 벌어지며 흉흉한 살덩이를 삼켰다가 뱉어낸다. 그럴 때마다 말간 물이 뚝뚝 흘렀다.

“…지 마.”

작은 중얼거림에 줄리오는 성기를 쑥 빼내곤 하나를 돌려 눕혔다. 그녀의 온몸이 붉다. 흥분 때문인지, 마찰 때문인지. 뜨거운 볕에 달아오른 사람처럼 붉었다.

힘없이 천장을 바라보며 누운 그녀의 다리를 벌려 자리 잡은 그가 턱을 잡은 채 입술을 포갰다. 말랑한 혀를 핥고 휘감자, 옅게 흘러나온 신음에 비정상적인 욕구가 치밀었다.

그것은 결코 순수한 욕구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봐. 못 들었어.”

혀로 핥으며 속삭이니, 두 눈을 나른하게 뜬 그녀가 그의 뒷머리를 헤집으며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천천히 하지 말라고. 할 거면 제대로 해. 감질나니까. 하아….”

그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간다. 맞닿은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더운 숨이 뭉개졌다.

“이래야 이하나 답지.”

그의 성기가 다시 파고든 순간, 그녀의 허리가 휘었다.

배꼽까지 닿는 압박감에 하나는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 두 번째 삽입이건만,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처럼 지끈거렸다.

“하아, 씹…. 날 죽일 셈이군.”

그는 그녀의 입술을 빨며 허릴 움직였다. 치댈 때마다 내벽이 진동해 녹아 버린 젤리가 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근육이 팽팽하게 선 팔에 그녀의 손톱자국이 길게 난다. 줄리오는 음순을 벌려 콩알처럼 부어오른 음핵을 덧그리기 시작했다.

“하, 하지 마!”

“젠장, 좋아? 하, 나도 좋은데?”

“흐읏!”

“예뻐, 이하나.”

그녀의 온몸이 뒤틀리고 전기가 오른 것처럼 멋대로 튀었다. 경련이 일어난 다리가 덜덜 떨려 그를 밀어내고자 몸부림쳤다. 불규칙적인 경련에 놀랐는지, 넋을 놓은 그녀의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진다.

하지만 양쪽 발목을 잡아 어깨에 건 그는 상체를 숙이며 그녀의 몸을 접었다. 더욱 깊숙하게 박힌 성기. 비명을 삼키는 듯한 키스와 함께 격렬한 삽입이 이어진다. 번지점프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아득한 쾌감이 이어져 무섭기까지 했다.

하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곧 망가트릴 것처럼 치받던 그가 겨드랑이에 팔을 넣더니, 그녀를 번쩍 안았다.

둘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의 목덜미를 절박하게 휘감은 그녀가 땀에 젖은 어깨에 이마를 대곤 고개를 젓는다.

“못 해. 하아, 나 환자야. 안 돼. 내가 졌어.”

그러자 이마에 입 맞춘 그가 마른 등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골반을 내렸다.

“더 애원해 보지그래.”

다시 안을 채우는 삽입감에 그녀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린다.

“흐읏…. 사디스트 새끼.”

남자의 입술 새로도 탄식이 흘렀다. 그는 숨을 크게 내쉬더니, 그녀의 머리카락을 걷어 넘겨 주며 눈썹과 눈가에 입 맞췄다. 그러곤 천천히 허릴 움직이게 했다.

미끈거리는 피부와 체온이 가장 완벽하게 맞닿는 체위였다. 하나의 뒷덜미를 움켜쥐어 입술을 포개자, 선뜻 키스하며 신음한 그녀가 못 견디겠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그는 입가에 흐른 타액을 훑고 말랑말랑한 입술을 베어 물듯 깨물었다. 그런 뒤, 몸을 웅크리며 다시 침대 위에 그녀를 눕혔다.

긴 머리카락이 하얀 시트에 무방비하게 흐트러져 그를 유혹했다. 줄리오는 하나의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받친 채 절정을 향해 내달렸다.

“하아, 너무 좋아.”

“좋기만 해?”

“흐으….”

“하나.”

“응?”

“좋기만 하냐고.”

“응. 좋아.”

그녀는 그의 목덜미를 당겨 끌어안곤 손에 힘을 주었다.

차곡차곡 쌓이던 쾌감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시작한다. 임계점을 지난 관계의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

여전히 별도 달도 파도조차도, 제자리에 있었다.

***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음에도 여전히 줄리오 파렌티가 제 안에 있었다.

미친놈.

마치 그날 같았다. 약에 절어 제게 덤벼들었던, 그날.

엎드려 있던 하나는 느리게 움직이는 미끄덩한 감각에 흐느끼며 고개를 틀었다.

“너, 약했어?”

“아니.”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그가 손가락을 빨더니, 상체를 숙이며 엉덩이를 벌렸다.

하나는 순간 긴장했지만 아무 소리 없이 손가락을 받아들였다. 아까는 한 개더니, 이번엔 두 개다.

“그럼 왜 안 싸?”

“기절해서 기억을 못 하는군. 이미 네 번째야.”

“뭐? 미친…. 내가 못 싸게 한 거 몰아서 했어?”

“그렇다고 해 두지.”

“그럼… 지금부터는 당겨서 해?”

“아마도? 한동안은 손대지 못할 테니까.”

한동안은?

까놓고 말해 여기서 헤어지면 끝이다. 그는 이탈리아인이고 자신은 한국인이다. 제가 일을 포기하고 이탈리아로 떠나 그와 함께 지내면 또 모를까, 다시 더블이 될 확률은 없었다. 이 남자와의 평범한 국제 연애는 불가능했다.

“빨고 싶어….”

혼잣말을 중얼거린 그가 불쑥 몸을 빼더니 뒤로 물러난다.

하나는 힘이 빠져 다시 풀썩 엎어졌다. 그러자 아래로 내려간 남자가 그녀의 엉덩이를 잘근잘근 깨물기 시작했다.

이가 닿을 때마다 몸이 저릿저릿해 잠이 달아났다. 하나는 슬쩍 시선을 내려 제 엉덩이를 깨무는 그를 보았다.

“줄리오.”

이름을 부르자 두 눈을 치켜뜬 그가 혀를 내밀어 핥으며 엉덩이를 벌린다. 그 틈새에 얼굴을 묻더니, 젖은 살결을 훑고 빨아들이며 괴롭혔다. 하나는 신음하다가 무릎을 조금 세웠다.

“말해.”

“나, 왜 피했어? 하아….”

“바빴거든.”

“흐음… 삐진 거 아니고?”

“글쎄. 내가 너를 이탈리아로 초대한다면, 너는 선뜻 응할 텐가?”

“아니.”

“그것 봐. 넌 그런 여자야.”

“그래서 공들이지 않겠다고?”

작은 구멍을 파고든 혀가 잘게 떨린다. 그는 손끝으로 도톰한 음핵을 비볐다. 이미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곳은 조금의 자극만으로도 왈칵 액을 흘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허벅지. 경련이 일어난 질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확인한 그가 피식 웃더니 새 콘돔을 씌운 성기를 쓱 밀어 넣는다. 이미 몇 번의 절정을 겪으며 풀려 버린 질 내벽은 단번에 그를 받아들였다.

앞으로 밀려난 그녀가 고개를 틀어 줄리오을 돌아본다.

“하, 따갑고 아파. 쓸렸나 봐….”

“그래, 빨갛군.”

그는 움직이지 않은 채 성기를 무느라 벌어진 구멍 주위를 손가락으로 덧그렸다. 그러다가 뒤로 물러나더니, 이번엔 다른 구멍에 귀두를 댔다.

“그럼… 여기에 넣을까?”

살살 벌어지는 감각에 놀란 그녀의 눈이 커다래졌다.

하나가 재차 고개를 틀자, 상체를 숙인 그가 귓바퀴를 깨물며 속삭인다.

“뭐든 해 보자고 한 건 너야. 평생에 걸쳐 시험해 보고 싶었는데…. 시기를 앞당겼으니, 네 결정을 탓해.”

뭉툭한 귀두가 푹 꽂히자 살이 동그랗게 벌어졌다. 놀란 하나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입만 크게 벌렸다.

대체 이 콘돔은 뭔데 이렇게 미끄러워?

귓가에 닿은 그의 숨이 선득하게 느껴질 때쯤. 하나는 승낙도 거절도 하지 않은 채, 시트를 내려다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울음이 나올 것처럼 몸이 떨린다.

고통 때문에? 사실, 고통만이 전부라고는 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의 쾌감이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버겁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가벼운 호기심과는 결이 다른 무언가였다.

팔꿈치로 버티며 고개를 푹 숙인 그녀의 귓가에 다시금 들러붙은 음성은 천사가 아닌 악마의 것이었다.

“숨 쉬어.”

그러며 한 마디 더 깊게 들어온 성기가 전율에 가까운 통증을 일으킨다.

“아악!”

“쉬이…. 괜찮아.”

분명 찢어졌을 거다. 아니면 뼈가 반으로 갈라졌을지도.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 주먹만 말아 쥔 채 고개를 푹 숙인 그녀의 눈에서 커다란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아프다고…. 나.”

찰나 하나의 귓불을 핥던 그의 몸짓이 멎었다. 그녀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조금씩 안으로 파고들어 오던 그의 성기가 가장 두꺼운 마디에서 밖으로 쑥 빠져나갔다.

“흣!”

순간, 돌려 눕혀진 그녀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갈색 눈동자를 응시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나쁜 새끼야!”

있는 힘껏 가슴팍을 때렸지만,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그녀를 직시했다. 이제는 줄줄 흐르기 시작한 눈물이 턱을 타고 떨어진다.

멍하니 젖은 뺨을 만지던 그가 턱 근육을 질기게 당기더니 힘주어 그녀를 끌어안았다.

급박하게 뛰어대는 심장 박동. 뜨거운 피부와 달콤한 체향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공간을 채운다.

그녀를 있는 힘껏 끌어안은 그가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속삭였다.

“하나…. 네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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