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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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창고.

일부러 메인 등을 켠 두이는 머리 위, 침대헤드에 양손을 묶인 유은성의 앞에 의자를 당겨 앉았다.

테이블이라고 하기도 뭐한 판자에 녹음 버튼을 누른 휴대전화를 올린 그를 빤히 보던 유은성이 히죽 웃으며 앓는 소릴 냈다.

“이렇게 치료해 주고 식사까지 챙겨 주니 옛날 생각나네.”

유은성이 말한 옛날이란 고작해야 며칠 전, 자신이 그에게 잡혀 반대의 상황에 놓여 있었을 때를 뜻했다.

두이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은성을 노려보며 무감하게 말했다.

“이름.”

“취조해?”

“범죄자를 취조하는 건 당연해. 네 덕에 내가 사망처리 됐으니, 다시 살려야 하지 않겠어?”

유은성은 맞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한 곳만 빙빙 도는 느낌이더군. 홍콩에서 캄보디아까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을 이렇게 며칠째 배회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어. 아직 이하나가 깨어나지 않았든, 내부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든. 아닌가?”

“질문은 내가 해. 이름.”

눈동자를 움직여 이두이의 감정 없는 서늘한 눈을 마주한 유은성이 대답했다.

“에드워드 리우, 유은성. 그리고 강무진.”

“나이.”

“한국 나이 서른하나. 만으로 서른.”

“직업.”

“군인, 마약 딜러, 무운해운 대표이사.”

“국가 정보부 소속 최태준을 압니까.”

“당연히 알지. 내 훌륭한 조력자를 어떻게 잊어.”

조력자란 말에 두이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두이는 포커페이스에 능한 부류가 아니다. 단지 인내심이 강할 뿐.

유은성은 쌍둥이의 다른 점을 발견하곤 입꼬릴 늘였다.

“최태준에 대해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죽었나?”

은성의 질문에 이두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뭐야, 모르는 거야?”

“범죄자의 질문엔 대답하지 않습니다.”

“이두이 수사관님. 지금 이 배는 레드마피아의 배고, 저기 당신을 지키는 새끼는 스테판 쿠즈민. 이하나도 쟤한테는 저격술로 안 돼. 한 수 물러 줘야 할지도 모르는 킬러야. 게다가 지금 네 누나한테 눈 돌아가서 들러붙은 새끼가 누군지 알잖아. 이탈리아 마피아, 파렌티 가문의 카포. 그런데 나한테 범죄자? 이거, 내로남불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두이는 휴대전화의 녹음 버튼을 끄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가정을 하나 해 보자. 너라면 마피아끼리 싸워서 섬 하나가 통째로 날아갔다는 기사에 댓글을 달래, 한국의 국회 의원이 배다른 동생의 이름으로 캄보디아에서 마약 거래 및 살인 청부를 했다는 기사에 댓글을 달래. 비유가 좀 그런가? 아무튼, 너라면 어떤 기사를 정독하겠냐?”

유은성의 말대로 상처 회복을 위해 배는 계속 바다 위를 떠돌았다. 모두 이하나를 위한 줄리오 파렌티의 결정이었다. 유리 페트로프가 어째서 파렌티의 요구를 들어주는 건지 묻자, 스테판은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만 말했다. 그때의 보답을 하는 거라고.

유은성은 아무 말 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있었다.

“유은성, 캄보디아에 도착하면 FBI가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미국으로 데려가려고. 유리 페트로프는 널 원하는 거 같은데, 나는 범죄자들 요구는 들어주지 않을 거거든. 지금 그 새끼들 참아 주는 이유는 오로지 이하나 한 명 때문이고.”

이하나의 눈빛이 열 덩어리라면, 이두이의 눈빛은 눈 덩어리에 가깝다.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쌍둥이.

“네 누나가 들으면 혀를 차겠군. 그까짓 정의 때문에 목숨을 버릴 거냐고 한소리 하겠어.”

“아는 척하지 마. 이하나는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혹시 너, 아니… 우리 수사관님은 한국 가면 시간 좀 있나?”

“네가 여기서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그럼, 내 부탁 두 개만 들어줄래?”

두이는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유은성의 눈빛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말투는 여전히 가벼웠지만, 눈빛엔 기묘한 포기와 투기가 뒤섞여 있었다. 그것이 이상하고 기이했다.

“내가 말해 주는 주소지에 가면, 노인네 한 명이 있을 거야. 새끼들 다 출가하고 청승 떨며 살고 있다더군.”

“강무영 회장 말하는 건가?”

“그래, 그 사람. 그 노인네한테… 나 살아 있다고 한마디만 해 줘.”

“왜, 강무영 회장이 너 살아 있는 거 알면 보석금이라도 내줄까 봐 그래? 웃기지 마. 너는….”

“아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유은성의 주먹이 서서히 말아 쥐어진다. 은성은 힘이 들어간 몸으로 제법 여유롭게 말했다.

“겁먹고 밤잠을 설치도록. 언제 죽을지 모른단 공포에 질려서 내 얼굴 떠올릴 때마다 소변을 지렸으면 좋겠네.”

차갑게 미소지은 은성이 두이를 돌아보더니, 자신의 하반신을 턱 끝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두 번째는… 생리 현상 해결 좀 하자. 화장실을 쓰고 싶은데.”

***

내가 뭘 잘못했나?

하나는 오늘도 어제와 같은 바다를 보며 천천히 스트레칭을 이어 나갔다.

몸은 기계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쓰지 않으면 녹이 슬고 너무 움직이면 부품이 닳아 버린다.

그러니 뭐든 적당히.

지금은 윤활유를 칠 때였다. 잘 먹고 잘 쉬었으니 이제 움직여야지.

사실, 뭐라도 해야 했다. 뭐랄까. 줄리오 파렌티에게 왕따를 당하는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할까?

그 남자, 자꾸만 자신을 피하고 있었다.

애원하게 만들겠다며 들이댈 때는 언제고, 갑자기 왜?

가볍게 휘두른 그녀의 주먹을 스파링처럼 받아낸 두이가 놀란 두 눈을 크게 뜬다.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왜?”

“그러다 상처 덧나. 제발 좀 누워 있어.”

“좀 쑤셔서 안 돼. 근데 넌 맨날 지하 창고에서 뭐해? 유은성이랑 정분 쌓니?”

“정분이 아니라 취조. 할 말이 있는데, 하선하면 나랑 프놈펜에 있는 집으로 가자.”

“네 집으로? 뭐, 그래. 근데 본부에는 언제 알릴 건데.”

“하선하면. 최태준 지금 중환자실에 있다던대.”

“그렇다더라. 엘리오라고, 줄리오 파렌티의 부하가 지켜보는 중이야. 유은성이 킬러 붙였었대.”

“치밀한 새끼.”

둘 중 누구를 향해서 하는 말인지 몰라도, 둘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기에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이야, 정말로 FBI에 넘길 거야? 적어도 한번은 재판에 세워야 하지 않겠어?”

“그만둘 거야. 나도 너랑 청와대 들어갈래.”

“뭐?”

“최태준 혼자 저지를 수 있는 규모가 아니야. 내가 조직을 버리지 않으면, 결국 내 밥그릇 위협당할 거 겁나서 아무것도 못 해. 그러니 그만둘 거야.”

하나는 지쳐 보이는 두이의 머릴 쓰다듬었다. 그러자 머릴 턴 그가 마뜩잖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이탈리아 양아치 새끼는.”

“줄리오? 글쎄. 요즘 나랑 안 놀아 주려고 하더라? 삐졌나?”

“삐져? 왜.”

“카운트 세고 있는 거 걸렸거든.”

“너 한국 가는 거?”

“응.”

“설마, 그 새끼한테 진심이야?”

진심이냐는 질문보다 다른 것에 꽂혔다면 머리가 이상해졌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요 며칠 왕따 당한 것에 대한 화풀이일까.

“이두이. 그 새끼 아니고, 줄리오 파렌티. 너 살려 준 은인한테 동방예의지국의 후예로서 매너는 지키자. 그리고 아무리 너라도 막말은 안 돼. 나만 돼.”

반쯤 고개를 들고 올려다본 이두이의 표정이 가관이다.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분을 참는 게 느껴졌다.

“내 말이 틀렸어?”

“너…. 그래도 걔는 안 돼.”

“뭐?”

“나 국가 정보부 소속이야! 그런데 내 매형이 마피아? 하, 돌겠네.”

“야, 갑자기 너무 급발진하는 거 아니냐? 매형?”

그녀가 두이의 정강이를 툭 걷어찼다.

“하는 짓 보니까, 둘 중 하나는 이민 서류 작성할 판인데 뭐!”

평소 같으면 주먹부터 날려야 했지만 하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냥 던져본 말이었는지, 두이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생각에 빠진 그녀를 끌어 올렸다.

“농담이었어. 한국 가면 떡볶이부터 사 먹을란다. 똑할머니네 가서 욕부터 좀 먹고… 부산 여행 다녀올까? 돼지국밥 못 먹은 지 500년은 된 듯.”

“침 흘러.”

“나도.”

한식을 못 먹은 지 너무 오래된 건지 진짜로 입 안에 침이 잔뜩 고였다.

테라스로 나간 그녀는 갑판 위, 파고라 안으로 들어서는 파렌티 일행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이미 착석한 유리 페트로프의 일행이 있었다. 서류를 든 로마노와 키릴이 있는 것으로 보아 법적인 조율을 위해 모인 자리인 것 같았다.

하나는 담담히 난간 위에 다리를 올리고 스트레칭을 했다. 일부러 다리를 꾹꾹 눌러 펴자, 혀를 찬 두이가 몸이 이게 뭐냐며 허릴 눌러 준다.

고통의 비명을 지른 그녀는 발로 두이를 걷어차 버린 후 난간 끝에 기댔다. 고개를 뒤로 젖혀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자, 찌르는 듯한 태양 빛에 절로 눈이 감긴다. 그런 하나의 허릴 끌어안은 두이가 어깨에 이마를 대더니 중얼거렸다.

“고마워. 살려 줘서. 진짜 보고 싶었어. 진짜… 누나가 보고 싶었어.”

눈을 뜬 하나는 두이의 머릴 툭 쓰다듬었다.

이어 고개를 틀다가 풀 가까이에 서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담뱃불을 붙인 그는 고개를 든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가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었지만, 이번에도 무시당했다.

‘저, 씹….’

왜 저러지, 저게?

진짜… 삐졌나?

***

잠귀가 어둡다는 건 장점과 단점을 골고루 갖추었다.

장점은 피로가 빨리 풀린다는 것, 단점은 잘 때 업어가도 모른다는 것.

두이가 해외 파견된 이후로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한가지 소리에 반응하게끔 훈련했다. 그래야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할 수 있으니까.

그런 그녀의 파블로프 종소리는 휴대전화의 진동이었다.

짤막한 진동에 번쩍 눈을 뜨자, 제일 처음 보인 건 어둠. 그리고 창밖을 수놓은 별 무리였다. 곧이어 익숙한 촉감이 이어졌다.

우묵하게 팬 등줄기를 따라 손가락이 미끄러진다. 건반을 두드리듯 천천히 피부를 어루만진 커다란 손이 상처 주위를 조심스럽게 덧그리다가 앞으로 넘어와 가슴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사이에 말랑말랑한 젖꼭지를 끼워 단단해질 때까지 비트는 손길이 야하다. 하나는 다시 눈을 감은 채 오랜만에 닿은 체온을 만끽했다.

“나 울리러 왔나 보네…?”

그녀의 혼잣말 같은 질문에 뒤통수에 입술을 묻고 있던 그가 피식 웃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더니 머리카락을 걷어내며 흰 목덜미에 이를 세운다.

“네 말대로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12시간 안에 정박지를 정할 거야. 배에서 내린단 소리지.”

하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곤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그렇구나.’라고 읊조리며 몸을 웅크리자, 그의 손가락이 입 안으로 들어왔다. 타액을 묻히고 빠져나간 손가락은 곧장 질 안으로 깊게 들어왔다.

하나는 입술을 벌리며 달뜬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어깨에 입 맞춘 그가 느릿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내벽을 늘린다.

지나치게 조용한 탓에, 찌걱거리는 소리가 평소보다 더 야릇하게 느껴졌다. 유난히 깊숙하게 들어온 손가락이 살덩이를 누르며 깊숙하게 파고든다. 하나는 움찔하며 몸에 힘을 주었다.

“아아….”

“나는 아직 해 보고 싶은 게 많은데, 넌?”

“하아, 나는…. 나도 몇 개 있어.”

“몇 개뿐인가? 아쉽군.”

“변태 새끼. 흐읏, 기분 이상해. 거기… 하아, 누르지 마.”

누르지 말란 말에 그는 더욱 부드럽고 섬세하게 안쪽의 살을 건드렸다. 까끌하면서도 유난히 도톰한 덩어리가 그의 손끝에 걸린다.

그것을 툭툭 건드리자, 그녀의 눈이 번쩍 뜨이더니 숨이 가빠졌다. 하나는 시트를 움켜쥔 상태로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여기군.”

귓가에 스민 뜨거운 숨에 온몸의 솜털이 곤두선다.

얼굴을 뜨겁게 붉힌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움직이고, 다리를 배배 꼬듯 모았다. 물이 줄줄 흐르는 게 느껴질 만큼 젖어갔다.

하나는 결국 엎드린 채 바르작댔다. 그녀의 사타구니 아래, 하얀 시트가 투명하게 젖기 시작한다.

움찔거리며 비비적댈 때마다 안쪽을 건드리는 자극에 미칠 것만 같았다. 그것은 소변을 참는 듯도 했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 근육에 억지로 힘을 주는 듯도 했다.

줄리오는 그녀의 귓바퀴를 잘근잘근 깨물며 위로 올라탔다. 질 안에서 손을 빼자, 고여있던 물이 주르륵 흘러나와 허벅지 안쪽을 흠뻑 적신다.

정신이 나갈 만큼 야한 모습이었다.

줄리오는 하나의 양손을 잡아 스스로 엉덩이를 벌리게 했다. 엉덩이를 살짝 든 채 고개를 튼 그녀의 눈가가 붉다. 실핏줄이 비칠 만큼 투명한 피부엔 봐 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상처가 가득했지만, 그조차도 그를 흥분시키는 데 일조했다.

“옷도 안 벗고 뭐 했어. 하아….”

“벗는 즐거움이 있어야지.”

유난히 싸늘하게 느껴지는 말투에 그녀의 입술 사이로 실소가 새어 나왔다. 기름칠을 한 것처럼 번들거리는 음부에 닿은 남자의 혀. 그는 음핵부터 항문까지 단번에 핥더니 양손으로 엉덩이를 잡고 게걸스럽게 빨기 시작했다.

“읏!”

그녀의 아랫배가 덜덜 떨린다. 뽀얀 엉덩이를 제 타액으로 범벅시킨 뒤에야 만족했는지, 상체를 세운 그가 셔츠를 벗고 벨트를 푼다. 손에 힘이 풀린 그녀가 시트를 짚으려 하자, 손목을 잡아챈 줄리오가 사납게 속삭였다.

“제대로 벌려야지,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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