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5> (65/180)
  • <05>

    6월 22일 13시 56분 00초.

    잠시 밖으로 나갔던 태준이 음식을 포장해 돌아왔다. 메뉴는 향신료를 빼고 조리한 닭볶음과 고슬고슬하게 지어 만든 달걀 밥이었다.

    “일단 먹어. 자료는… 곧 보내줄게. 근데, 진짜 난 모르는 일이야. 위에서 알면 나 완전 큰일 나. 알지?”

    “그래. 고마워.”

    하나는 받아 든 포장 음식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식욕이 돋을 리 없다. 기내에서도 어떻게든 음식을 먹어보려 했지만, 결국 모두 게워낸 탓에 속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 음식도 다 식을 때까지 건드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나야.”

    “응.”

    “두이…. 나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희망 고문해?”

    “그런 거 아니야. 그냥, 그렇다고…. 필요한 건 뭐든 도울게. 난 조직에 묶여 있어서 사실 움직이기 겁나. 그래, 무서워. 그러니까…. 네가 해 줘. 만약 두이가 살아 있다면, 네가 찾아줘.”

    태준은 말 없는 하나의 얼굴을 심기일전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밥은 꼭 먹어 보라고 말한 후 돌아갔다.

    찾아온 적막은 생각보다 위험했다.

    하나는 서둘러 플립폰을 충전기에 연결한 뒤, 전원을 확인했다. 배터리 양도, 신호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한국보다 신호가 더욱 잘 구축되어 있었다.

    그러다 부러 TV를 켰다. 볼륨을 높이곤 침착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두이는 성격상 흐트러지는 걸 싫어했다. 전반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 것 같아도 몇몇 곳에서 오류가 드러났다.

    가장 큰 오류는 냉장고 안에 든 음료의 방향.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긴 했지만, 라벨이 각기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급히 채워 넣었거나, 다른 사람이 정리했다는 뜻. 게다가 행거에 걸린 옷걸이 방향 또한 달랐다. 그것도 단 두 개만.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이두이의 강박증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나는 볼륨을 더 높인 뒤, 집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두이라면,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있을 것이다. 지금 제게 가장 필요한 것이.

    집을 샅샅이 뒤진 하나는 소파 아래, 침대 헤드 옆면, 싱크대 첫 번째 서랍 내부 윗면에서 글록과 리볼버를 발견했다.

    모두 조립되어있는 상태로, 탄환은 재밌게도 오븐 안에 들어 있었다.

    음식이라고는 라면도 끓일 줄 모르는 이두이의 집에 오븐이라니. 노력은 가상했으나, 아직 멀었다. 이두이는.

    “분명 더 있을 텐데….”

    뭔가가 더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하나는 모자를 눌러쓰곤 커튼을 닫아 버렸다. 좁은 틈 너머, 담배를 비벼 끄고 툭툭에 올라타는 태준이 보인다.

    아직 최태준의 말을 모두 믿을 순 없었다. 증인은 최태준 한 명뿐. 그러니 그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했다.

    집 안을 뒤지던 그녀는 급격하게 밀려든 피로감에 잠시 침대 위에 누웠다. 단정하게 정리된 터라 오랫동안 귀가하지 않은 티가 났다.

    한쪽 팔을 이마에 올린 채 멍하니 두 눈을 깜빡이던 때였다. 유난히 하얀 천장과 침대 옆에 놓인 조명이 눈에 들어왔다.

    문제는 그녀도 익히 알고 있는 물건이라는 것.

    램프의 전원 스위치를 건들기 전, 하나는 숨을 고르며 침실 전체를 둘러보았다.

    두꺼운 암막 커튼. 하얀 천장. 그리고 미니 프로젝터.

    심장이 빠르게 뛰어대기 시작했다.

    침대 옆 스탠드 갓 안에는 전구 대신 미니 프로젝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갓으로 덮어놓았으니, 이대로 켠다면 평범한 조명처럼 보일 것이다.

    하나는 램프의 위치를 조금 앞으로 이동시킨 뒤 스위치를 눌렀다.

    팟, 하며 켜진 빛이 천장에 뿌려진다.

    하얀 천장을 스크린 삼아 펼쳐진 건, 이두이가 이곳에서 진행하고 있던 수사의 기록물들이었다.

    “하… 미친놈.”

    쫓고 있던 범죄자들의 사진, 혹은 가상 몽타주와 함께 개인적으로 알아본 기록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펼쳐졌다.

    스위치를 누를 때마다 넘어가는 화면. 일종의 PPT로, 이두이는 잠들기 전에 항상 이런 식으로 자료를 확인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방법은 PMC에서 일하던 시절 그녀가 알려 준 것이기도 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사건의 개요를 전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 이것은 첩보 임무 중 거주지를 자주 옮길 때나 미디어 활용이 어려울 때 쓰는 방식이었다.

    빨간 선으로 그어진 카르텔의 관계도를 보는데, 헛웃음과 함께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최태준의 말대로 두이는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과 러시아 레드마피아 조직을 쫓고 있었다.

    하지만 범죄를 밝힌다기보다는 그들의 행보를 추적하는 느낌이 많이 드는 자료다.

    1년 6개월 전, 뉴욕 한복판에서 일어난 종합병원 폭탄 테러. 그것은 거대 마약 카르텔의 세력 싸움이었다고 한다. 이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 KING이라 불리던 데이비드 메이어를 사살했다.

    FBI의 게빈 스미스는 그 일로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되었으나, 공을 인정받아 현재….

    “퇴직?”

    그런 게빈 스미스 사진과 이름 옆, 세 명의 사진이 눈에 띈다. 정확하게는 허스키 사진이 붙은 유리 페트로프와 GQ 잡지 사진을 오려 붙인 듯한 줄리오 파렌티가 주인공이었다.

    둘 다 마피아였으나 한쪽은 러시아. 또 한쪽은 이탈리아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 본다 해도 의아하고 괴상한 관계도.

    FBI, 마피아. 그리고 한국인이라니.

    두 눈을 가늘게 뜬 그녀는 나머지 한 명의 이름에 시선을 고정했다.

    ‘강무진. 누구지?’

    가장 최신 자료인 듯 보이지만, 강무진에 관한 내용은 전무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강무진은 줄리오 파렌티와 붉은 선으로 묶여 있었다.

    카르텔이 형성되었거나 상호 협력 관계라는 뜻일 터.

    딩동-.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는 초인종 소리에 놀라 화면을 끈 뒤 침실을 나섰다. 조금 전 찾아 둔 글록을 들고 현관으로 다가가 작은 렌즈 너머의 방문객을 확인했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렌즈에 대고 서류 봉투를 흔든다. 그러곤 어눌한 영어로 말했다.

    “미스터 최, 심부름.”

    ***

    그녀는 자신의 노트북에 USB를 꽂았다.

    최태준이 보낸 자료는 모두 종이에 출력한 사본이었지만, CCTV 영상만큼은 USB로 보내 왔다.

    이어폰을 착용한 그녀는 식탁에 앉아 포장된 음식들을 꺼냈다. 아직 따뜻한 음식들을 보자 다행히 없던 식욕이 살아났다.

    CCTV 영상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들의 조합이었다. 원본이 아닌 조합본으로, 중요 단서가 될 장면만 자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러니 더더욱 의문을 품을 수밖에.

    그녀는 곧바로 최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본은?”

    [원본은 못 구해. 너한테 사망했다는 연락을 했을 정도면, 이미 충분한 조사를 마쳤다는 거야. 더 건드리지 못하게 봉인됐다고.]

    “그럼 보내온 자료들은 수정된 부분이 없나?”

    [의심은! 내가 대체 왜 수정본을 보내겠어.]

    “기분 나빴다면 미안. 밥, 맛이 괜찮네. 고마워.”

    그에 한숨 쉰 태준이 말을 이었다.

    [내일 아침에 차 보낼게. 사고 현장에 가볼 거지?]

    하나는 밥알을 오물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여전히 최태준에 대한 평가는 반반이다. 조력자나 누군가의 방조자. 어느 쪽인지는 판단 불가였다.

    아직까지는.

    “일단 자료부터 확인할게. 사고 현장 좌표만 보내 놔. 나 혼자 움직일 테니까.”

    [치안이 얼마나 안 좋은데, 거길 너 혼자…. 하, 아니다. 네가 이하나라는 걸 잠깐 까먹었다. 미안.]

    하나는 피식 웃으며 두이가 나오는 장면에서 재생을 멈추었다.

    “그럼 또 연락할게. 고맙다.”

    [너 온 거, 이미 상부에서도 알 거야.]

    “그렇겠지.”

    [그러니까 조심해. 괜히 들쑤신다고 생각하는 꼰대들도 있을 테니까.]

    “그래, 알았어.”

    [두이…. 살아 있다고 믿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거야?]

    “감이야. 쌍둥이잖아, 우리. 그냥 그래. 확인만 하려는 거야. 그래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알았다. 일단 푹 자.]

    통화를 마친 그녀는 노트북 화면을 노려보며 꾸역꾸역 음식을 위장으로 밀어 넣었다.

    다 토해 내는 한이 있더라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움직일 수 있다. 에너지가 있어야 살아 있는 두이를 만날 수 있었다.

    영상 속 이두이는 폐허가 된 건물로 들어서고 있었다. 평범한 셔츠에 바지, 안경까지 쓴 그는 흔한 유학생처럼 보였다. 남자치고 피부가 흰 편이어서인지 여행객으로 보이기도 했다.

    차량 쪽을 한번 돌아본 뒤, 고개를 끄덕이는 이두이.

    두이가 건물로 들어가고 1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누군가 밖으로 나온다. 이어 건물 뒤로 걸어가는 게 보였다.

    상처를 입은 건지, 파란색 야구 모자를 눌러쓴 남자의 걸음걸이가 조금 거슬렸다. 그러곤 최태준의 말대로 폭탄 조끼를 걸친 두이가 양손을 머리에 올린 채 등장했다. 마치 이두이를 인질로 잡고 있다는 걸 보여 주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두이는 한 번도 카메라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은가? 분명 처음엔 눈을 맞춘 뒤 들어가 놓고…. 아니, 어쩌면 일행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최태준을 위험에 끌어들이지 않으려는 거였을지도.

    그녀는 화면 전체를 머릿속에 하나의 프레임으로 기억했다.

    두이는 혼자였다. 정확하게는 건물 서쪽을 노려보며 입술을 움직였으나, 거리가 멀어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입 모양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정식 임무였다면 교전을 벌이거나 본부에 도움을 요청했겠지. 또는 두이가 인질이 되어 정보를 요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두이가 안으로 들어간 후 화면 속 건물이 폭발했다. 전소될 때까지 건물에서 나온 사람은 0명.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들려온 건 최태준의 비명 같은 외침뿐이다.

    하나는 영상을 멈춘 채 일어났다. 그러곤 램프에 숨겨져 있던 빔을 꺼내 식탁 맞은편 벽에 쏘았다.

    새빨간 선으로 이어진 관계도 속 인물들. 이미 죽어 버린 데이비드 메이어와 실종 상태로 바뀐 유리 페트로프를 제외하면, 용의 선상엔 줄리오 파렌티와 강무진만 남았다.

    “강무진은 자료 부족이고…. 줄리오 파렌티, 30대 중후반. 시칠리아 마피아의 카포.”

    거대한 자본을 기반으로 설립된 세계적인 호텔 체인과 F1팀인 teonimo의 대표이며 사업가. 파렌티 가문을 위해 일하고 가톨릭 신자이며 마약과 무기를 유통한다.

    1년 6개월 전 일어난 테러 역시 그가 주도했다는 의견이 분분했으나, FBI는 줄리오 파렌티를 용의 선상에 올리지 않았다.

    왜일까.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줄리오 파렌티는 거물이었다. 만약 최태준이 보낸 자료에 쓰여 있는 대로 두이가 그와 접촉했고, 그 과정에 문제가 생긴 거라면…. 그래서 사망으로 위장해야 할 경우가 생겼다면, 그것은….

    배신, 뿐이다.

    “씨발….”

    하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꽉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러니 상부에서 지원 명령이 내려오지 않는 거겠지.

    이러니….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남은 음식을 쓰레기통에 쏟아 버린 뒤, 번호 하나를 찾아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다신 연락 안 하려고 했는데….’

    짜증스러운 마음으로 통화가 연결되길 기다리며, 충전 중인 플립폰을 노려보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급격하게 이두이가 원망스러워졌다.

    곧 통화가 연결되더니 수화기 너머에서 부드러운 영국식 억양을 가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야,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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