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4> (64/180)

<04>

6월 22일, 09시 17분 28초.

예정된 시간보다 빨리 캄보디아 프놈펜에 도착했다.

하나는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모자를 눌러쓰고 짐 가방을 재정비했다. 캄보디아행 일등석 승객은 그녀 혼자뿐이었다. 승무원들은 하나가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었고, 치안이 좋지 않으니 주의하라며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전 세계를 다녀 본 결과 한국만큼 치안이 좋은 나라는 드물다. 특히 동남아시아 국가를 다닐 땐 애초에 긴장하는 편이 나았다.

“좋은 여행 되십시오. 귀국하실 때 또 뵙기를 바라겠습니다.”

이곳에 발 디딘 이상, 절대 혼자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하나는 걸음을 내디디며 생각했다.

어떠한 정보도, 가설도 없이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서 그녀가 한 일은 간단한 크메르어를 익히는 것과 지도를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지난 새벽 두이가 하려고 했던 말들을 조합해 몇 개의 문장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누…나. …렌티는 …말이야. 안 돼. 절대, 안 돼. 그러니까 …진, 조심해. …죽었 …새끼. …그 …오지 마. 나, 절대 안 죽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아니, 의심하면 할수록 이상한 점만 보였다.

두이는 본인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연락한 게 아니었다. 그 반대다. 사망 소식을 들은 제가 이렇게 찾아 나설 것을 알고 막으려 했다.

왜일까.

어떻게 두이는 동료들이 자신을 사망 처리할 거란 걸 알고 있었을까.

‘이두이…. 정말 너, 해서는 안 될 짓이라도 한 거야?’

그래서 혼자 해결해 보려고 하는 걸까?

마음이 약해지려 한다. 너무 많은 가설이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뻣뻣해진 목덜미를 주무르며 끔찍하게 더운 공기를 들이켰다.

절친이자 목숨 줄을 움켜쥔 최태준조차도 두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모른다.

두이는 태준에게 생존을 알리지 않았고, 제게는 조심하라 경고했다.

‘그럼, 그건 누구의 이름이었을까.’

신호가 좋지 않았기에 정확하게 듣진 못했지만, 분명 외국인의 이름이었다.

그것도 두 명.

하나는 단체 관광객 틈에 섞여 비자 신청까지 마쳤다. 이왕이면 튀지 않는 편이 좋아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생글생글 웃었다.

그러자 여권과 발급 카드를 내어 준 출입국 관리소 직원이 환한 미소로 인사하며 손을 흔든다.

“Have an unforgettable trip.”

잊지 못할 여행이라….

하나는 한숨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돌아섰다.

드디어 캄보디아.

두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

프놈펜 국제공항 2번 게이트 앞.

시간을 확인한 하나의 표정이 굳는다. 9시 30분 하고도 5분이 지나고 있었다.

공항 내부는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엔립으로 떠나려는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종종 한국말이 들리기도 했지만, 그들은 평범한 여행객이었고 국가 정보부 소속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는 커다란 전면 창 너머의 하늘과 도로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여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 전형적인 열대몬순기후 때문인지 에어컨 바람도 눅눅하게 느껴졌다.

한동안 한국에서 너무 편하게 지냈나 보다. 이 정도도 불편하다고 생각하다니.

“하나야, 이하나!”

자신을 부르는 소리의 방향으로 돌아서자, 체크무늬 남방에 반바지를 입고 샌들을 신은 최태준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게 보였다.

“늦어서 미안. 와, 더워. 오는 길에 오토바이랑 접촉사고가 나서. 근데 짐은 이거뿐이야?”

하나는 최태준이 내민 손을 노려보며 직접 캐리어를 끌었다.

“차는?”

너무 태연하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펑펑 울던 사람답지 않게, 손부채질을 하며 반갑게 떠들고 있었다.

“툭툭이 타자. 나 오늘 비번이라 차 없거든.”

주머니에 손을 넣은 태준이 돌아보며 희미하게 웃는다. 조금 전과 달리, 씁쓸한 미소에 깃든 상처와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태준은 능숙하게 기사와 흥정하더니 그녀의 짐을 툭툭에 실었다.

“진짜 올 줄 몰랐는데…. 놀랐지?”

하나는 대답 대신 차에 타자마자 태블릿을 꺼내 구글 지도를 켰다.

“좌표 어디야. 두이… 마지막으로 본 곳.”

아직 툭툭이 출발도 하기 전이었다. 혀를 찬 태준은 그녀가 내민 태블릿 속 지도를 축소했다.

“여기서 북쪽으로 75km. 시엠립 방향이야. 평범한 민가 밀집 지역이었어.”

툭툭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조금이나마 바람이 불었지만, 더운 건 마찬가지였다.

하나는 지도에 표시를 남긴 후 최태준의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무릎 위에 팔꿈치를 댄 태준이 고개를 숙이고는 손을 모아 조물거렸다.

“하나야. 받아들이기 힘든 거 아는데…. 너, 이러면 안 돼.”

“내가 뭘.”

“두이 죽음 파헤치려 하잖아. 그러지 마. 나 곤란해. 응?”

“지금 어디 가는 거야?”

하나는 화제를 바꾸었다. 그러자 마른세수한 태준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문다.

“두이가 지내던 곳. 너, 거기 가고 싶어 할 것 같아서.”

하나는 대답 대신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가방에 넣어 둔 플립폰이 자꾸만 생각났다. 태준을 기다리며 확인해 본 결과, 플립폰은 자동 로밍 장치가 추가된 개조형이었다. 그러니 연락이 온다면, 이번엔 좀 더 길게 통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티 나지 않게 주먹을 말아 쥐곤 고개를 끄덕였다.

높은 습도, 높은 기온. 38도가 넘는 끔찍한 날씨다. 오전에도 이 정도이니, 한낮에는 40도 넘게 올라갈 가능성이 컸다.

“다 왔어. 오토바이 조심해, 소매치기 손목 날아가는 건 안 보고 싶네.”

태준이 농담조로 말했다. 그에 하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준비해 달라고 한 건?”

“어?”

“두이와 관련된 자료, 준비해 달라고 했잖아.”

“이하나.”

“마지막 임무부터 접선한 상대, 이두이가 빼돌린 마약 종류, 자폭 당시 입고 있던 옷이나 신발, 이동 수단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준비 안 했어?”

싸늘한 말투에 최태준이 가뜩이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툭툭에서 내린다. 뒤따라 내린 하나는 자연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태준에게 5달러를 받아 든 기사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는다. 그러더니 다시 무표정이 되어서는 툭툭을 출발시켰다.

“일단 들어가자. 밖에서 얘기하긴 너무 더워.”

하나는 고개를 들어 6층 높이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캄보디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형 아파트였다. 한국의 지방 소도시에 가면 볼 수 있는 60년대쯤 지어진 아파트를 닮은 건물.

하나는 태준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건물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두이의 집은 2층이었다.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문을 열자마자 보인 두 사람의 사진에 울컥 슬픔이 치밀었다. 하나는 신발장 위에 놓인 액자 앞에 섰다.

그것은 함선 위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두이는 해군 정복을, 그녀는 육군 정복을 입고 있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얼마나 잦게 인터넷에 떠돌았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군인 남매인 두 사람의 외모만 보고 축복받은 유전자라 떠들었지만, 둘은 그 말이 가장 싫었다.

먹먹한 표정으로 현관에 서 있는 하나를 돌아본 태준이 커튼을 걷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환한 빛이 밀려들었다. 인상을 찌푸린 그녀는 그제야 집 안으로 들어가 깔끔하게 정리된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이 답네….”

“그 자식 결벽증 환자잖아. 먼지 하나 없이 하고 살았어.”

태준은 하나의 손에 열쇠를 쥐여 주었다. 두이의 집 열쇠였다.

“당분간 여기서 지내. 정리도 해야 할 거고, 마음도…. 그게 낫겠지?”

하나는 집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는 담담히 주방으로 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엔 두이가 좋아하는 맥주와 탄산수, 힘들게 구했을 막걸리와 소주까지 음료만 잔뜩이었다.

‘정말이지 이두이답다.’

만약, 임무 중 사고를 당했다고 하면 믿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두이가 조직을 배신하다 작업을 당했다고?

아직 밝혀진 건 없지만, 두이가 살아 있다는 것만큼은 이들이 모르는 진실이었다.

냉장고 안을 노려보던 하나는 소파에 앉은 태준을 돌아보았다.

그는 자책하듯 양손에 얼굴을 묻은 채였다. 적어도 태준이 제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어쩌면 정말 두이가 죽었다고 믿는 걸지도.

“최태준…. 너 두이가 자살 폭탄을 몸에 둘렀다고 했지.”

하나는 한국어 라벨이 붙은 보리 음료를 꺼냈다.

“…그랬어. 내 눈으로 직접 봤어.”

태준이 양손을 모아 그 끝에 턱을 댔다. 그러곤 그녀를 빤히 올려다보며 두 눈에 힘을 줬다. 태준의 설명이 이어졌다.

“신종 마약인 KA-947A를 쫓던 중이었어. 보통 환각성 물질과는 확실하게 달라. 자칫 잘못했다간 의료용 마약으로 둔갑할 가능성이 높아서 주시하고 있었거든. 근데 입수한 접선지에서 두이를 봤어.”

하나는 계속해 보라며 냉장고에 기대어 고개를 까딱였다.

“무슨 짓을 하느냐고 물었어. 왜 혼자 움직이냐고. 그놈이 독자적으로 수사에 나섰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아니었어. 수사한 게 아니라 유착하고 있었던 거야.”

그렇게 말한 태준이 다시 한숨을 내쉬더니, 목소릴 떨기 시작했다.

“믿기 싫었어. 어떻게든 놈을 설득하려 했고, 두이도 정신 차렸다고 생각했어. 그놈, 착한 놈이고 성실한 놈이니까…. 근데 그게 놈들의 트리거가 된 거 같아. 놈들이 두이 몸에 폭탄을 두르곤 건물 안의 사람들을 내보냈어. 지원이 도착하기도 전, 터져버린 거고.”

당시를 떠올리는지 태준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죽음 자체를 목격한 건 아니다. 태준은 정황상 죽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하나는 음료를 벌컥벌컥 마신 후 가져온 짐 가방을 식탁에 올렸다.

“좋아. 네 말, 믿을게. 그럼 자료 내놔. 날짜, 시간, 수사 기록, 아까 말한 것들 전부.”

입술을 달싹인 태준이 기함하며 벌떡 일어났다.

“국가 기밀문서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나, 유가족이야. 죽음에 대해 알 권리가 있어.”

“하, 미치겠네. 그래도 안 돼. 상부에서 허락 안 떨어졌어. 아직 기밀문서라고!”

가방을 연 하나는 피식 웃으며 안에 든 옷가지를 꺼냈다. 그러곤 노트북을 콘센트에 연결한 뒤, 두이가 쓰던 인터넷 케이블을 찾아냈다.

태준은 하나의 행동에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이하나…. 안 믿는구나? 두이 죽은 거.”

캐리어 맨 아래 깔아 놓았던 파일들을 꺼내기 전, 하나는 망설였다.

두이는 본인의 생존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만약 구조를 요청하는 거였다면 본부로 연락했을 터.

석연치 않다. 불신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태준아, 네 말 믿어. 근데 두이가 죽은 건 내 눈으로 확인할게. 그러니까 자료 가져와. 아니면, 내가 직접 IDC:A에 찾아갈까?”

“조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지 알아? 아무리 너라도 안 되는 건 안 돼!”

사색이 된 태준이 소리쳤다.

하나는 파일을 꺼내는 대신 캐리어를 닫았다. 벽에 붙은 사진들과 메모, 작은 지도 모형을 노려보는 눈빛에 증오가 스며든다.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해? 최태준…. 네가 말하는 그 조직에서 러브콜만 2년 넘게 받았어. 그런데 내가 왜 그 자리를 거절했는지 알아? 두이가 그 일을 하고 싶어 했거든.”

“뭐?”

“한 달 전에도 연락 왔더라. IDC:A에 입사만 해 주면 내가 원하는 자리 주겠다고. 어때. 지금이라도 그렇게 할까? 내가 직접 조직에 들어가서, 네 머리 위에 앉아 줄까?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난 바로 상황 파악될 것 같은데, 너는 안 되나?”

“아, 진짜! 이하나!”

태준이 답답한지 가슴을 두드리며 발을 굴렀다.

제가 조직에 들어간다면 향후 3년간 최태준은 진급하지 못한다. 또한, 이 사건의 책임자로 지목되어 문책을 받겠지.

힘과 권력의 싸움에서 최태준은 절대 자신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러니까 좆되기 싫으면 움직여, 최태준. 세 번은 말 안 해. 두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내 눈으로 확인해. 그러려고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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