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유은성, 이 배신자 새끼.
하나는 어깨를 으쓱 올리더니 문을 닫고 나가 버린 유은성에게 소리 없는 저주를 퍼부었다.
“바람을 피운다니, 웃기지 마. 내가 너야?”
하나는 짐짓 태연히 말하며 줄리오의 손을 떼어 냈다.
반가운 마음과 당혹스러움, 그가 이 사건에 휘말리지 않고 본국으로 떠날 수 있는 시간이 머릿속에 초 단위로 그려진다.
“흠, 그건 또 억울한데?”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하나의 허리를 감싼 그가 몸을 붙여 왔다. 나른하게 내려다보며 미소 짓는 멀끔한 얼굴에 묘하게 부아가 끓어오른다.
“대체 왜 여기 있어? 배에서 작별 인사까지 끝내 놓고…!”
“네가 내게 올 생각이 없어 보여서.”
“뭐?”
“흠…. 또 튀어 버릴 얼굴을 하고 있군.”
순식간에 몸이 번쩍 들렸다. 그녀가 삐딱하게 굴 때마다 줄리오는 이렇게 번쩍 들어 품에 안았다.
하나는 그의 행동에 익숙해진 제가 처음으로 낯설게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목덜미에 팔을 두르고, 어깨에 이마를 붙이며 안도하는 제가.
삐걱거리는 침대 위에 그녀를 눕힌 그가 그대로 하체를 붙이며 제 양팔 사이에 가두었다.
“설마, 도망칠 생각이었나?”
둥근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걷어 넘겨 주는 손길이 다정하다. 하나는 간질거리는 마음에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내가 왜 도망을 쳐. 오히려 네가 도망칠 수 있게 기회를 준 거라고는 생각 안 해? 나, 지금 복잡한 상황이야. 넌 마피아고. 이러다가 너랑 나…. 우리 둘 다 인터폴에 수배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부드럽게 입술 끝을 휘어 올린 그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제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던 것처럼 확신에 차 있기까지 했다.
싸구려 매트리스 안으로 잠겨 들어가는 것만 같다. 제 몸을 누르는 건 그의 눈빛이었고, 실링팬 돌아가는 소음만이 공간을 휘저었다.
“너….”
침묵을 이기지 못한 그녀가 먼저 말문을 열자, 동시에 그가 코끝을 깨물며 나른하게 속삭였다.
“왜 말 안 해? 한국에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지금의 네가 대통령 경호를 할 수 있다고 믿어? 게다가 여행을 한다고? 내가 널 혼자 여행하게 둘 거라 생각했어? 넌 참 똑똑하고 영리한데, 어떤 면으로는 허술해. 게다가 나를 너무 쓰레기로 보는 경향이 있더군.”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사실 모른 척하고 있었다. 줄리오 파렌티는 그만의 방식으로 끝없이 제게 구애하고 있었지만, 자신은 선을 긋고 모른 척했다.
생각에 잠긴 그녀의 눈가에 입술이 눌린다. 이어 혀를 내밀어 작고 푹신한 입술을 핥았다.
“그 여행, 나하고 해.”
숨을 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의 눈썹이 치켜세워진 순간, 삼키듯 입술을 빤 그가 혀를 밀어 넣었다.
입천장을 긁고 빠져나갔다가 섬세하게 밀려드는 감각에 저도 모르게 무릎을 세웠다. 얇은 셔츠 안으로 들어온 손이 속옷을 입지 않은 젖가슴을 부드럽게 움켜쥔다.
그는 더운 날씨에 말랑말랑해진 가슴을 짓궂게 주무르다, 도드라진 유두를 긁었다. 찌릿한 감각과 함께 아랫배와 허리에 힘이 들어가고 절로 허리가 움직였다.
“하아….”
“대답해야지. 네가 좋아하는 현실 직시를 해 보는 게 어때. 넌 어차피 한국에 돌아가지 못해. 혹시 모르지. 이탈리아 영주권과 파렌티의 성을 얻을 즈음엔 한국인들의 머릿속에서 이하나란 이름이 사라질지도.”
“야…. 너 프러포즈가 너무 무매력이야. 협박해?”
“흐음, 나름 고리타분한 영감들과의 전쟁을 불사하겠단 선포를 한 셈인데. 너무하는군. 내가 누구 때문에 목숨 걸고 싸우려는지 몰라 주는 것 같아서 섭섭한데?”
줄리오 파렌티의 암갈색 눈동자가 위험하게 빛났다.
“나는 네게 내 목숨을 맡기는 중이야, 하나.”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두 사람의 숨이 부서져 흩어졌다. 하나는 팔을 잡았던 손을 그의 목덜미에 둘렀다.
다시 입술이 맞붙은 순간, 해일 같은 흥분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졌다.
아직 옷을 입고 있지만, 맞닿은 하체는 이미 절정에 다다른 것처럼 젖어 있었다. 짧은 반바지 솔기를 젖혀 미끄러운 틈새를 문지르는 손길이 평소보다 조급했다.
그는 흠뻑 젖어 야들야들해진 살을 비비며 그녀의 귓불을 깨물었다.
“넣었다간, 내가 가겠군.”
야하게 속삭이는 말에 하나는 허리를 들었다.
“질척해. 벗겨 줘.”
그에 피식 웃은 그가 상체를 웅크려 그녀의 옷 위로 도드라진 유두를 핥았다. 두툼한 혀로 핥듯이 침을 묻힌 뒤, 투명해진 옷 위를 혀끝으로 자극하자 그녀의 숨이 가빠진다.
하나는 그의 결 좋은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넣었다. 두 눈을 치켜뜬 그와 몽롱한 시선을 맞추다, 애타게 만드는 간지러움에 고개를 젖혔다.
집요하게 들러붙어 전신을 탐욕스럽게 핥고 깨문다. 낡아서 헤진 가구들과 빛바랜 벽지. 시야를 가득 채운 초록색과 붉은색, 터키색과 형광 핑크 등 말도 안 되는 색의 충돌 속에서 기이한 전율이 일었다.
하나는 불쑥 찾아온 울렁거림에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셔츠를 거꾸로 벗어 떨어트린 그가 벨트를 풀고 드로어즈 틈으로 성기를 꺼냈다.
선액이 흘러나와 젖은 성기를 문지르며 콘돔을 꺼낸 그가 그녀의 잇새에 비닐을 물려 준다.
“벗겨.”
하나가 떨리는 손으로 비닐을 벗기는 동안, 한쪽 다리를 어깨에 건 그는 상체를 숙여 음부를 빨기 시작했다.
혀끝으로 붙어 있는 틈새를 벌리고 새어 나온 체액을 덧바르듯 핥았다. 도톰하게 부어오른 음핵을 이로 긁자, 끈적하게 신음한 그녀의 발끝이 곱아든다.
“난리가 났군. 음란해, 이하나.”
“그걸 이제 알았어? 빨리 박기나 해.”
“나를 딜도 취급하는 것도 여전하고.”
“살아 있는 딜도 취급하는 건 너밖에 없으니까 걱정 마.”
“빨아 주는 건?”
“빠는 걸 허락 한 사람도 너밖에 없어.”
흥분해 녹아내리기 직전의 얼굴을 하고도 하나는 또렷하게 말했다. 줄리오는 애액으로 번드르르하게 젖은 입가를 문지르며 그녀의 얼굴 앞에 무릎을 세웠다.
배꼽까지 휘어 오른 성기가 새하얀 뺨에 닿는다. 그의 엄지가 입술을 벌려 침범해 이를 벌리게 했다. 그러며 말캉한 혀를 문지르더니, 그 틈새로 귀두를 밀어 넣었다.
침대 헤드에 기대앉은 그녀는 줄리오의 허벅지를 움켜쥔 채 헛구역질을 했다.
탁하게 신음한 그가 흥분에 넋이 나간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눈가를 문지른다. 그러더니 서서히 허리를 움직였다.
빨갛게 충혈된 눈, 젖어 버린 눈시울, 벌어진 작은 입술 사이로 벅차게 드나드는 성기를 보자 때 이른 사정감이 찾아왔다.
당황한 그가 몸을 뒤로 빼려 했지만, 하나는 고개를 비틀어가며 그의 성기를 빨아들였다. 쭙쭙, 소릴 내며 귀두 아래를 핥고 오물거리며 빨아들이자, 그녀의 양 뺨을 감싼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결국, 이마에 핏대를 세운 그가 욕설을 내뱉으며 주먹으로 벽을 쳤다.
“젠장!”
목구멍으로 곧장 넘어간 쓴맛에, 인상을 쓴 그녀가 입을 벌리며 혀우물에 고인 정액을 뱉었다.
“그간 자위도 안 했나 봐? 왜 이렇게 빨리 싸. 너답지 않게.”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반쯤 아래로 늘어진 성기를 핥자, 미간을 구긴 그가 실소했다.
“걱정 마. 지금부터는 네가 그만하라고 해도 멈출 생각 없으니까.”
번뜩이는 암갈색 눈동자가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하나는 침대 헤드에 짓눌린 채 그대로 다리를 벌렸다. 그러자 무릎 꿇은 그가 그녀의 엉덩이를 받치더니, 바지를 젖히며 그대로 파고들었다.
“아! 하아, 잠깐…!”
“빌어먹을….”
몸이 구겨져 움직여지지 않는다. 줄리오는 몇 번 허릴 놀리더니, 하나의 얼굴을 감싼 상태로 강하게 박기 시작했다. 그녀의 다리를 양팔에 걸고 짓누르듯 치받았다.
강한 압박감과 내벽을 긁고 나가는 쾌감에 정신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하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달뜬 숨을 몰아쉬고 격정적인 신음을 토했다.
찌걱찌걱, 유난히 크게 들리는 소리에 귀를 막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마치 씹어 삼켜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나는 줄리오의 눈가를 어루만졌다.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제야 실감이 나서.
이 남자가…. 저와는 피부색부터 머리 색, 성별, 국적, 언어와 살아온 환경, 가치관까지. 그 어느 것 하나도 같지 않은 남자가 제게 진심으로 굴고 있다는 것이 이제야 실감 났다.
벽을 치는 소리와 매트 스프링의 삐걱대는 소리. 간간이 흘러나오는 비명 같은 교성이 실링팬에 휩쓸려 쏟아져 내려온다.
투둑투둑,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젖히자 작은 쪽창 너머. 검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좋아….”
그녀는 한국어로 읊조렸다. 그러자 깊숙하게 박아 넣으며 뭉근하게 문지르던 그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하나는 줄리오의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며 키득 웃었다.
“Mi piaci.” (너를 좋아해.)
그녀의 어설픈 이탈리아어가 귀여웠는지, 키득 웃은 그가 귓가로 입술을 내렸다.
“틀렸어. 네가 할 말은…. ti amo anch’io.” (나도 너를 사랑해.)
“날 바보로 알지?”
“내가? 감히, 어떻게 너를.”
“와, 뻔뻔해.”
헛웃음을 터트리자 아랫배가 조여들어 결국 신음이 흘렀다. 하나는 그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피가 쏠려 붉어진 얼굴로 치받던 그는 절정의 순간, 그녀 대신 침대 프레임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악력에 으스러진 프레임의 파편이 후드득 떨어진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 내 웃어 버렸다.
열어 놓은 창밖에서 불어든 비바람이 더운 열기를 휘감아 빠져나갈 때까지. 서로에게 속해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
“보안 전문가가 필요해.”
하나는 변기 뚜껑을 내린 채 그 위에 앉아 샤워하는 줄리오를 감상했다. 몸 전체에 거품을 낸 그가 샤워기 아래 서서 말을 이어 나간다.
“지금까지는 외주 업체를 고용했지만, 네가 나와 함께 이탈리아로 간다면 그럴 필요가 없지. 아예 회사를 하나 차리는 것도 좋고.”
“흠…. 신분 상승이 과한데?”
“이 정도로는 어림없어.”
얇은 유리 벽 너머, 뿌연 수증기가 가득 찬다. 하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나 참, 그것도 모르고….
혼자 고민했던 날들이 생각나 억울했다. 힌트라도 좀 주지.
“연봉은? 내 몸값 비싸다?”
그녀의 시큰둥한 반응에 수증기가 찬 유리 벽을 손으로 문지른 그가 피식 웃는다.
그의 손길에 얼굴부터 상체, 새벽 내내 자신을 괴롭힌 하체까지 전신이 서서히 드러났다. 목에 맺힌 거품을 쓸어내린 그가 그녀를 빤히 응시하더니 손가락을 까딱한다.
“최소, 네가 손에 쥐었던 최고 금액의 100배. 그 정도는 되지 않겠어?”
“음, 설마 결혼하자고 하는 거야? 그 정도면 누군가의 자산 수준인데?”
그러자 재밌다는 듯 입꼬릴 올린 그가 혀로 입술을 핥더니, 다시금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렇게 홀리곤 어딜 내빼려고. 대답이 듣고 싶어? 그럼 이리와. 이번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실오라기 하나 없이. 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