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 (49/180)
  • <49>

    피? 저 남자의 피를 썼다고?

    줄리오는 어안이 벙벙한 듯 빤히 쳐다보는 하나의 입술에 재차 짧은 입맞춤을 했다.

    “못 믿겠나 보지?”

    그의 질문에 그녀가 쇳소릴 내며 말했다.

    “너, 혈액형이 뭔데?”

    신기하게도 목소리가 나온다. 아직 힘들지만,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B형.”

    “정말?”

    그가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으로 문질러 닦아 주며 비스듬히 미소 지었다.

    “그래. 이두이도 B형이었지만, 출혈이 심했거든. 고마운 줄 알아.”

    “줄리오. 한국에 이런 말이 있어. 피를 나눈 형제. 그럼 우리, 형제야?”

    “여자랑은 형제 안 해. 그리고 그런 말은 이탈리아에도 있어.”

    “치사하긴.”

    눈을 흘긴 그녀는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틀었다. 그곳엔 의사와 함께 들어서는 이두이가 있었다.

    하나는 헛웃음을 흘리는 두이에게 손을 뻗었다. 그에 담담히 걸어 들어오던 두이가 천장을 올려다보더니, 숨을 몇 번 고르곤 양손으로 눈두덩을 누른다.

    점점 느려지는 걸음이 그녀를 웃음 짓게 했다.

    “저 울보 새끼.”

    하나의 말에 발끈한 두이는 충혈된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러게 누가 다치래! 내가 오지 말랬지. 분명…!”

    “내가 안 왔으면.”

    “안 왔으면…. 하, 씹…. 하…. 아, 몰라!”

    “미친놈.”

    “그래, 미쳤다. 근데 너만 하겠냐? 저 마피아 새끼는 뭔데? 와, 하다 하다 이젠 마피아까지 꼬셔? 게다가 이 배의 주인은 레드 마피아라며! 너 제정신이냐?”

    “아, 이두이. 진짜 괜히 구하러 왔어. 소리 지르지 마. 머리 울리거든? 소리 지를 거면 좀 꺼져. 시끄러우니까, 닥치고 나가 줄래?”

    “이하나!”

    하나의 양쪽 귀를 막은 건 줄리오였다.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귀를 막은 그가 두이를 돌아보곤 인상을 찌푸린다. 그러자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움켜쥔 두이가 답답하다는 듯 발을 구르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줄리오의 양손을 떼어 냈다.

    “손 떼!”

    “여기 개 한 마리가 늘었군.”

    “내가 이하나한테 함부로 손대지 말랬지.”

    “둘이 사이 안 좋은 거 아니었나?”

    “아니? 사이 존나 좋은데? 이하나, 건드리지 마.”

    두 남자 사이에 낀 하나는 웃겨 죽겠다는 듯 배를 잡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러자 멀찍이 서서 지켜보던 의사가 헛기침하더니, 다가와 두 남자를 슬그머니 떼어 놓는다.

    “두 분, 나가 주세요. 환자분 치료해야 하니까.”

    그러며 소독용 가방을 열자 줄리오와 이두이가 동시에 대답했다.

    “치료해.”

    “하십시오, 치료.”

    하나는 어처구니없어하는 의사의 손등을 톡톡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요. 그냥 치료해 주세요. 옷 벗나요?”

    “예, 상의만요.”

    한숨 쉰 의사가 그녀의 탈의를 돕는다.

    하나는 시트를 걷고 조심조심 앉아 숨을 고른 뒤, 넉넉한 남성용 드레스 셔츠 단추를 풀었다. 누구의 셔츠인지는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늘하늘한 소재의 셔츠가 어깨 뒤로 흘러내리자, 그녀의 몸에 새겨진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옆구리에는 제법 커다란 드레싱 밴드를 댔고, 어깨 뒤쪽 날개뼈 위엔 통풍 밴드가 두툼하게 붙어 있었다. 자잘한 타박상과 자상. 쓸린 상처로 가득한 그녀의 몸.

    창틀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그녀를 응시하는 줄리오의 눈빛이 짙어진다. 소독을 위해 밴드를 벗겨 낼 땐, 그의 손등에 파란 핏줄이 섰다. 줄리오는 상처를 치료하는 내내, 단 한 번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소독약이 닿을 때마다 움찔거리는 미간.

    작은 손으로 움켜쥐는 시트.

    그녀의 이마에서 배어난 땀이 손등으로 떨어진 순간, 그는 결국 걸음을 내디뎠다. 이끌리듯 하나에게 다가가 바닥에 무릎 꿇고 창백한 손등을 감쌌다.

    감겨 있던 그녀의 눈꺼풀이 천천히 들린다. 그러더니 싱겁게 웃으며 손의 방향을 바꾸어 깍지 끼어 잡았다.

    따뜻하다.

    그는 시체처럼 싸늘했던 그녀의 체온을 기억하고 있었다.

    반면, 불처럼 뜨거웠던 그녀도.

    ***

    “줄리오.”

    불현듯 하나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생각에 잠겨 있던 줄리오는 고개를 들었다.

    “왜.”

    “강무진은 어디 있어?”

    다음날, 치료를 마친 의사가 다른 도구를 챙기더니 두이를 앉히곤 상처를 돌보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지 하루가 지났다고 이하나는 제법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중이었다.

    줄리오는 그녀의 양팔에 셔츠를 끼워 준 뒤, 단추를 채우며 대꾸했다.

    “궁금해?”

    “응. 홍콩에 두고 오진 않았을 것 같은데.”

    그는 말없이 셔츠 단추를 채운 후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았다. 무릎과 허리 뒤에 손을 넣어 들자, 자연스럽게 몸에 힘을 빼며 안기는 그녀가 사랑스럽다.

    줄리오는 폭 안겨 오는 하나의 이마에 입 맞추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럼, 간만에 바람이나 쐬러 갈까?”

    ***

    바람 쐬러 가자더니. 거짓말쟁이.

    하나는 창문 하나 없는 선박의 지하 창고, 침대에 묶여 누워 있는 유은성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상처는 제대로 치료한 건지 시트가 깨끗하고 표정 또한 평온하다.

    얼굴 역시 제법 말끔한 게, 어쩐지 저보다 더 덜 다친 것 같아서 억울했다.

    “쟤, 왜 여기 있어?”

    시큰둥한 질문에 줄리오가 유은성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나를 사칭한 죄는 크거든. 법대로 처분할 수는 없지. 쓸모가 많은 놈이야.”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싸지른 것들 직접 처리하게 한 뒤, 죽여야지. 아니면 FBI에게 넘기든가. 그리고 아직 들어야 할 진술이 남아 있거든.”

    “한국으로 보낼 생각은 없는 거야?”

    “글쎄.”

    잠든 유은성을 노려보는 하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친가족한테는 이용만 당했던데….”

    그러자 유은성에게 향하던 줄리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움직인다.

    “동정하는 건가?”

    “응? 음…. 동정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야. 그냥 나랑 비슷한 탄생 설화를 가졌더라고.”

    머쓱한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마른 입술을 축인 그가 고개를 기울이더니 정면 콘솔에 그녀를 앉힌다. 하나는 졸지에 콘솔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대게 되었다.

    정면에 유은성이 누운 침대가 있지만, 줄리오에게 가로막혀 보이지 않았다. 양팔 사이에 그녀를 가둔 그가 눈높이를 맞추더니 가만히 입술을 혀로 할짝대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찾아갔을 때. 저 새끼와 키스하고 있었지, 아마?”

    “어어? 말은 바로 해. 키스 아니야. 저 새끼 혼자 핥은 거야.”

    “너와 섹스하고 싶다고 하던데.”

    “녹음된 거… 한국어 아니었어?”

    “딱히 번역을 의뢰할 필요 없던데. 이두이의 도움이 컸어.”

    “하, 젠장…. 그러게? 하하, 아주 조금 외설적이긴 했어.”

    “그리고 너는 날 버렸고.”

    버렸다는 말에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하나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정말로 줄리오와는 그대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일이 잘 풀린다면, 다시는 보지 않을 거라고.

    다시 만나게 될 때는 제가 많이 위험해졌을 경우뿐이라고.

    한데 결국 위험에 빠졌고, 이렇게 만났다.

    “미안.”

    “정말… 버렸어?”

    어울리지 않게 그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졌다. 하나는 두 눈을 슬그머니 치켜뜨며 턱 끝에 입술을 댔다.

    “그냥, 기억에서 지우면 안 돼?”

    그녀는 손을 아래로 뻗어 단단하게 일어난 성기를 움켜쥐었다. 손바닥으로 문지르는 감각에, 입술을 맞댄 그가 탁하게 웃으며 그녀의 귓속으로 혀를 굴렸다.

    “안 돼. 못 잊어.”

    “쪼잔하긴.”

    귓바퀴에 흩어지는 숨결이 뜨겁다. 하나는 귓불 아래를 혀로 핥으며 내려오는 감각에 상체를 젖히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여기서 할 거야? 저 새끼 보라고?”

    그러자 눈만 돌려 뒤를 본 그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에 무릎 꿇더니 그녀의 다릴 벌렸다.

    “걱정 마.”

    “나 환자거든?”

    “환자니까, 살려는 주겠다고.”

    그러며 셔츠를 조금 걷어 그녀의 속옷 위에 혀를 올린다. 이어 도톰한 둔덕을 혀로 적시더니, 틈새로 밀어 넣었다.

    하나는 벽에 기댄 채 그 감각을 음미했다. 너무 오랜만에 몸에 힘이 들어가서인지, 근육의 결을 따라 전기가 오르는 기분이다.

    그는 속옷을 젖힌 채 물이 흐르는 틈새를 소리 내 핥았다. 단단해진 돌기를 혀끝으로 괴롭히자, 그녀의 엉덩이가 저절로 들썩이며 움직였다.

    하나는 잘게 헐떡이며 신음을 흘렸다. 신기하게도 통증은 없었다. 다만, 죽은 듯 잠든 유은성이 신경 쓰일 뿐이었다.

    그녀는 결국 한쪽 발로 줄리오의 어깨를 밀어냈다. 뒤로 넘어간 그의 입술이 애액에 젖어 번들거린다.

    “저 새끼가 나 봐도 돼?”

    “뭐?”

    “나, 더 하면 쌀 거 같은데. 막 소리 내도 되냐고. 쟤가 들어도 돼?”

    “젠장….”

    두 눈을 깜빡인 그가 어금니를 힘주어 눌러 물더니, 벌떡 일어나 그녀를 안아 들었다.

    “저 새끼를 죽였어야 해.”

    “살려 줬잖아. 고마워.”

    하나는 줄리오의 목덜미를 끌어안은 채 그대로 입술을 빨았다.

    오늘따라 묘하게 고양되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보다 더 흥분되고, 쉽게 젖는….

    그녀의 입술을 깨물어 당긴 그는 창고에서 나오자마자 눈에 보이는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작은 싱글 침대와 테이블, 욕실 하나가 전부인 공간.

    줄리오는 침대 위에 그녀를 눕히더니, 곧장 바지를 내려 흉흉하게 발기한 성기를 꺼냈다. 그러곤 손으로 패팅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그 모습을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응시하다, 검지와 중지로 음순을 벌렸다.

    “딱 한 번만 넣으면 안 돼?”

    그녀의 혀처럼 붉은 속살을 내려다보는 남자의 눈빛이 짐승처럼 사나워진다. 줄리오는 고개를 저으며 상체를 숙였다.

    “안 돼. 너 죽어.”

    그러더니 곧장 혀를 써 그녀의 밑을 빨기 시작했다.

    “그럼, 손가락이라도 넣어줘. 하….”

    하나가 그의 손을 당겼다. 줄리오는 틈새를 길게 핥으며 손가락 두 개를 입에 넣고 빨더니, 움찔거리는 질 안으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터져 나온 신음은 흐느낌에 가까웠다. 줄리오는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그녀의 표정과 몸짓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하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서서히 차오른 흥분에 솔직하게 반응했다.

    “딱 한 번만 넣어줘. 응?”

    “오늘따라 왜 이렇게 보채는 거지?”

    “이럴 때가 있어. 한 달에… 한번. 이틀에서 삼일 정도?”

    “발정이라도 난 건가?”

    “비슷해. 하아, 미치겠다고. 움직이지 말고 그냥 넣기만 하는 것도 안 돼?”

    그는 헛웃음을 흘리며 한쪽 눈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자리 잡았다.

    “죽을 것 같으면 말해.”

    “움직이지만 않으면 돼.”

    “그게 가능하겠어?”

    “넌 가능해.”

    틈새를 적신 애액을 성기에 바르며 문지른 그가 귀두부터 천천히 그녀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하나는 고개를 젖히며 만족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는 반대로 고통에 겨운 침음을 삼켰다.

    “젠장….”

    좁고 따스하며 강하게 죄어 오는 내벽이 그를 미치게 했다.

    그에 더욱 천천히 그녀의 안으로 들어갔다. 한번 끝까지 들어가면, 하나가 허락할 때까지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건 저에게 지옥이나 마찬가지일 터.

    줄리오는 그녀의 음핵을 부드럽게 덧그리며 거대한 성기를 뿌리 끝까지 넣었다.

    안이 꽉 차는 감각에 그녀의 입술이 벌어졌다.

    “흣, 씹…. 미친, 더럽게 커. 하….”

    “좋아?”

    “움직이면 죽어.”

    “빌어먹을.”

    제 것을 오물거리며 삼킨 구멍이 빠듯하게 벌어져 투명한 액을 질금질금 내뱉는다. 그는 더욱 깊게 들어가려는 듯 뭉근하게 비비며 내벽을 흔들었다.

    “아아! 움직이지 말라고!”

    “바랄 걸 바라, 이하나.”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어쩔 줄 몰라 떨리는 뺨과 벌어져 달싹이는 입술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

    이대로 삼켜 버리고 싶은 잔인한 욕망이 들끓는다. 짐승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차라리 삼켜 버리면, 편해질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