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 (42/180)
  • <42>

    해와 바람 이야기를 아는가?

    해와 바람이 내기를 했다. 그것은 어느 나그네의 외투를 누가 먼저 벗기느냐에 관한 내기였고, 일종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바람은 맹렬하게 나그네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나그네는 외투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며 바람에 맞섰고, 해는 안온함과 따뜻함을 이용해 나그네 스스로 외투를 벗게 했다.

    다들 강압적인 태도와 회유적 태도에 빗대어 교훈을 주려 했지만, 하나가 얻은 교훈은 좀 달랐다.

    태양은 나그네를 포기하게 만들었고 바람은 나그네를 치열하게 만들었다. 바람이야말로 살아가는 동안 가장 필요한 원동력이다.

    그것이 그녀가 정의 내린 해와 바람의 내기에 결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남자는 내게 해일까, 바람일까.

    나를 포기하게 만들려는 걸까, 치열해지도록 자극하는 걸까.

    “뭘…. 네가 뭘 알아?”

    하나는 저를 안은 팔을 풀곤 몸을 돌려 줄리오와 마주 섰다.

    “뭘 아느냐고, 파렌티.”

    “간단해. 모든 것이 계획대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화가 나는 이유. 그리고 네가 날 보면서 웃는 게 가끔 싫을 때가 있어.”

    “네가 화나는 게 나 때문이다, 이거야?”

    “그렇다면?”

    “그거 위험한데?”

    “왜 그렇게 생각하지?”

    “네가 나한테 바라는 게 생겼다는 거잖아.”

    한쪽 눈썹을 비스듬히 올린 그가 입술을 늘어뜨리며 웃는다. 그 가식 없는 미소에 하나는 가슴 안쪽이 욱신거렸다.

    “키스해도 될까?”

    그답지 않게 허락을 구하며 그녀의 허리를 감싼다. 하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돼.”

    “왜지?”

    “지금 이 시간부로 너랑은 키스 안 할 거야. 의미 부여하기 시작하는 거 싫어. 착각하지 마, 파렌티. 나는 네가 원하는 거, 못 줘.”

    눈을 내리깔아 저를 내려다보는 다정한 눈빛을 마주하자 욱신거리는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기분이 이상하다.

    바람이었던 남자가 해가 되려 하고 있었다.

    줄리오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입술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왜 갑자기 태도가 바뀐 건지 몰라도, 하나는 싫었다.

    가슴이 두근거려 터질듯한. 이 낯간지럽고 어디론가 숨고 싶은 기분은 그녀가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네가 못 주겠다면, 내가 뺏는 수밖에.”

    숨이 가까워진다. 키스의 해석은 자유였고, 하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바닥에 네 개의 손톱자국이 강하게 새겨진다.

    처음으로 그의 몸에 상처를 내는 대신, 자신을 상처 냈다. 이 남자가 제 태양이 되겠다면 스스로 바람이 되는 수밖에.

    마음을 굳힌 하나는 스르륵 눈을 감으며 팔에 힘을 풀어 줄리오의 목덜미에 둘렀다. 그러자 번쩍 안아 든 그가 혀를 빨고 입술을 뭉개며 그녀를 유리 벽으로 밀어붙였다.

    허릴 감느라 벌어진 다리 사이에 그의 성기가 들러붙었다. 얇은 레깅스를 찢을 듯 파고드는 묵직한 감각.

    하지만 더 이상의 진도는 나가지 않았다. 욕심껏 입 안을 헤집던 그가 이에 눌려 피가 배어난 그녀의 입술을 핥으며 천천히 물러났다.

    “좋은데?”

    “장난해?”

    “이제 그만 자. 그 새끼 잡으러 가려면, 체력을 아껴야 하지 않겠어?”

    하나는 유리 벽에 기댄 채로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다.

    저게 사람을 갖고 노는 것도 아니고….

    그녀는 느긋하고 태연하게 물러서는 줄리오에게로 성큼 다가가 멱살을 잡았다.

    입술을 가까이하며 까치발을 들자 그의 눈빛이 살짝 흔들린다.

    “안 속아, 이 딜레탕트 새끼야. 그냥 평소처럼 해. 수집품처럼 대하라고…. 갑자기 사랑에 빠진 척 연기하지 마.”

    ***

    이마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인 로건은 기절한 이두이를 보며 머릿속에 찬물을 끼얹은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오슬로는 갈비뼈가 부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FBI 요원은 눈과 입이 막힌 채 창고에 갇혀 있었다.

    ‘이렇게까지 미친놈이었나? 대체 뭐 하는 놈이지?’

    로건은 분명 제가 모르는 강무진의 다른 모습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보통 인물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마치 안전장치가 사라져 버린 기폭제가 된 것처럼 구는 것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때 수갑이 채워진 채 침대에 누워 기절해 있던 이두이가 천천히 눈을 뜨는 게 보였다.

    강무진은 이두이만 따로 침실로 옮겨 침대 위에 묶어 두었다. 기절한 상태로 의사를 불러 치료하는 것까지, 누군가의 행동을 똑같이 모방했다.

    로건은 매직미러 너머의 이두이를 관찰했다. 이하나를 닮아 검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흰 피부에 팔다리가 길고 눈매도 길었다. 이하나의 분위기가 외모와 반대라면, 이두이는 분위기가 외모를 따라갔다.

    더 어둡고 날 선. 웃을 땐 한없이 선해 보이면서도, 임무에 투입될 땐 오슬로도 그를 꺼릴 만큼 강인한 구석이 있는 남자다.

    그런 이두이가 지금 저렇게 묶여 있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로건은 소름 돋은 자신의 피부를 쓸어내리며, 매직미러를 응시하는 이두와 시선을 맞췄다. 한쪽 얼굴이 심각하게 다쳐 퉁퉁 부은 상태였지만, 나머지 얼굴만으로도 값을 다해낸다.

    ‘줄리오 파렌티는 이두이를, 강무진은 이하나를… 데려오라고?’

    다수의 고객을 상대해 왔지만, 이렇게 겹친 경우는 처음이다.

    간단히 생각하면 이두이와 이하나를 체인지 하면 될 일이다. 이하나를 강무진에게 데려다 놓고, 이두이를 줄리오 파렌티에게 보내면 끝.

    체스 말을 움직이듯 쉬운 답이나, 그것은 엄연히 상상 속에서나 이루어질 해피한 결말이었다.

    로건은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한걸음 물러났다. 부목을 댄 팔을 내려다보던 이두이가 수갑이 채워져 침대 프레임에 묶인 손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러곤 다시 발등에 꽂힌 링거로….

    그러더니 코웃음을 쳤다.

    손을 망가트려서라도 수갑을 빼 버릴 줄 알았건만, 이두이는 다시 몸을 누이곤 눈을 감았다. 마치 링거의 수액이 끝까지 들어가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팔다리를 뻗은 채 고른 숨을 몰아쉰다.

    ‘에이씨….’

    로건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 모습을 어디에서 보았는지, 누구를 닮았는지 기억해냈다.

    쌍둥이는 예상외의 모습까지 닮는다더니.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이두이는 이하나의 복제품처럼 바뀌어 있었다.

    그때였다. 방문이 열리더니 유은성이 들어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3피스 슈트로 감싼 유은성은 이두이가 누워 있는 침대 옆으로 의자를 당겨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그러곤 이두이를 감시하듯 집요하게 응시했다.

    이두이가 깨어 있는 상황이니, 마음먹기만 한다면 유은성의 목을 조를 수도 있다. 물론, 유은성이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겠지만….

    하지만 이두이는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이두이를 관찰하던 유은성이 일어나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그러곤 이두이의 턱을 잡아 좌우로 돌려 상처의 경중을 확인했다.

    로건은 뒤늦게 품에서 울리는 것이 자신의 휴대전화라는 걸 깨달았다. 발신자 역시 유은성이다.

    “예, 미스터 강.”

    전화를 받자 이두이가 누워 있는 침대 끝에 걸터앉은 은성이 매직미러를 노려보며 본인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발렌타인 데이에 임무를 드리죠. 이하나를 구출하세요. 마피아에게 붙들린 민간인 구출 작전입니다. 재밌겠죠?]

    ***

    여명이 밝아온다.

    침실에도 푸릇한 빛이 서서히 밀려들었다. 하나는 땀에 젖어 미끄러운 남자의 가슴팍을 힘없이 밀어냈다. 그러자 빠져나가 줄 거라고 생각했던 육중한 성기가 더욱 깊게 쑤시고 들어왔다.

    “씹…. 넌 한계가 없어?”

    벌써 몇 번을 쌌더라….

    고개를 젖힌 그녀는 성기가 쑤시고 들어올 때마다 배꼽 위쪽이 뻐근하게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속이 울렁거리고 토악질이 나올 것도 같았다.

    “그러게 내 고삐를 왜 풀어.”

    피식 웃은 그가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려는 듯 상체를 숙였다. 하지만 하나는 고개를 돌려 피해 버렸다. 그에 줄리오는 익숙하다는 듯 뺨에 입 맞추곤 허리를 세웠다.

    그는 눈을 내리떠 성기를 집어삼키는 구멍을 응시했다. 좁은 구멍을 빠듯하게 벌려 들어갔다가 나올 때마다 선홍색 속살이 성기에 찐득하게 들러붙어 벌름거렸다.

    그녀의 몸은 이성을 잃을 정도로 야했다. 온몸을 샅샅이 핥고 깨물어 엉망으로 만들고 싶을 만큼 난폭한 본능을 자극했다.

    치받는 속도를 올리자 말간 체액이 튀어 오르고, 그녀의 입술은 점점 더 벌어졌다. 전신의 감각이 바늘 끝처럼 예민해진 것과 별개로, 머릿속은 몽롱했다.

    쥐어짜는 듯한 쾌감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전신을 관통했다. 그는 하나의 얼굴 옆을 짚으며 몸을 깊게 묻었다. 힘줄과 핏줄이 곤두선 팔 근육이 경련한다. 시트에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을 움켜쥔 그는 천천히 배와 가슴, 전신을 그녀의 위에 눌렀다.

    “내 몸이 마음에 드나 보지?”

    팔과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에 기분 좋은 소름이 돋는다.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듯 묻자, 두 눈을 부릅뜬 이하나가 손톱을 세웠다.

    “그래. 네 몸만 마음에 들어. 됐냐?”

    “그나마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다니, 다행이군.”

    줄리오는 하나의 턱을 잡아 자신을 보게 했다. 끔찍하게 아름다운 눈동자를 마주하자 또 흥분이 차오른다. 움직이지 않아도 사정할 것처럼 그녀의 안에서 다시 단단해졌다. 그러자 경악에 찬 눈으로 아래를 흘끔 본 그녀가 주먹을 말아 쥔다.

    줄리오는 제 얼굴에 주먹이 날아들 걸 생각하며 상체를 세웠다. 하지만 이하나는 머리맡의 시계를 한번 보더니, 마른 입술을 혀로 핥으며 말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나, 오늘 무조건 두이 구할 거야. 그러니까 너도 마피아의 명예를 걸고 약속 지켜.”

    “그러지.”

    “설마, 오늘이 마지막이라서 비아그라 같은 거 먹은 건 아니지?”

    괴상한 말을 들은 것처럼 눈썹을 치켜세우자, 마른침을 삼킨 그녀가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더니 그의 목을 조이며 단번에 자세를 바꿨다.

    줄리오는 땀에 전 채로 양팔을 벌려 대자로 누웠다. 목을 조르는 그녀를 직시하며 나른하게 웃었다.

    콘돔이 벗겨지려 한다. 꽉 채워진 정액이 기둥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에 엉덩이를 들어 성기를 빼낸 그녀가 콘돔을 벗긴다. 그러더니 음부에 성기를 문지르며 자위하듯 허릴 움직였다.

    부드러운 살이 흉흉하게 일어선 기둥에 비벼진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손을 뒤로 뻗어 고환을 움켜쥐는 간지러움에 정액이 줄줄 흘러나왔지만, 기세는 누그러들지 않았다.

    이를 꽉 눌러 문 그가 결국 그녀의 뒷머릴 잡아챘다.

    상체를 세우는 그와 피하려는 그녀가 엉켰다. 하지만 결국 그가 이겼다. 입술이 포개지는 순간, 가슴 방향으로 튀어 버린 정액이 그녀의 턱 끝에 매달려 길게 늘어졌다.

    키스하면서도 이하나는 욕을 했다.

    ‘빌어먹을 개자식’이란 욕설이 이토록 달콤하게 들릴 줄은 몰랐다.

    정말로, 정신이 어떻게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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