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3> (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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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하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뜨며 숨을 가다듬었다.

“구라치지 마…. 개새끼야.”

습관처럼 욕설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러자 잠시 침묵하던 상대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발밑이 흔들리고 눈앞이 순식간에 뿌예졌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머릿속은 멍했고, 눈물은 속절없이 떨어졌다.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건만, 후드득 떨어져 운동화 코를 적셨다.

“아니야…. 아니라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나는 결국 스르륵 주저앉았다. 그 모습에 놀란 전유철과 형사들이 뛰어나와 그녀를 부축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소리가 웅웅거리며 이명처럼 울렸다. 그녀 대신 전화를 받은 유철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리더니, 이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는 듣도 보도 못한 욕설을 내뱉으며 상대에게 분풀이를 해댔다.

하나는 그 모습마저도 꿈같다고 생각했다.

잘 짜인. 아니, 조악하기 그지없는 연극판에 뜬금없이 세워진 거라고. 그러므로, 현실일 리 없다고.

“이하나, 일어나. 일어나! 어서!”

유철이 거칠게 팔을 잡아끈다.

새빨갛게 충혈된 그녀의 눈이 일그러졌다.

“정신 차려, 새끼야!”

“두이…. 죽었을 리 없어요. 선배, 선배도 알잖아요. 말 좀 해봐요, 네? 두이, 죽을 애 아니잖아요!”

발악 같은 외침에 유철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두이가 왜 죽어. 그러니까 일단 진정하고 차근차근 알아보자. 응? 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이하나! 정신 차리라고!”

죽음은 질리도록 경험했다.

고작 100M 옆에서 폭탄이 터진 적도 있고, 건물이 무너진 적도 있었다. 눈앞에서 동료의 머리통이 날아가는 것도 세 번이나 목격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죽음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절대적인 비극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는 건 다르다.

사랑하는 사람. 지구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이자, 유일하게 목숨을 내놓을 만큼 소중한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할 고통을 수반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고통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흐으윽…. 으아아아!”

***

새벽이다.

시간의 흐름조차 느끼지 못한 채, 멍하니 두이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생의 첫울음을 터트렸던 여인숙과는 차원이 다른 안락한 우리 집.

그래, 이곳은 우리 집이었다.

곰팡이 얼룩으로 가득했던 보육원도 아니고, 결로가 생겨 항상 젖어 있던 반지하도 아니었다.

지은 지 10년이 채 되지 않은 서울의 아파트. 남향이라 볕이 골고루 드는 데다가 벽지도, 가구도…. 모두 새것처럼 깨끗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악착같이 얻어낸 공간이자 안식처가 바로 이 집이었다.

그런데 네가 없으면, 이곳은 우리 집이 아니다.

우리라는 단어를 더는 쓸 수 없었다.

하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또다시 오열했다. 몸속 수분이 고갈되는 느낌이 들었지만, 차라리 그게 나았다.

“흐으윽….”

주먹으로 침대 시트를 있는 힘껏 내리쳐 보았으나, 나아지는 건 없었다.

현실이 아니다. 마치 미지의 세계에 홀로 뚝 떨어져 버린 기분이었다. 팔다리를 잘린 것처럼, 의지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나는 축축해진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악을 썼다. 그러곤 얼굴에 피가 쏠리고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들 때까지 미친 듯이 소리쳤다.

“왜 죽어! 왜! 네가 왜 죽냐고, 왜!”

죽으면 안 되잖아…. 나 두고 가면 안 되잖아. 늙어 죽을 때까지 보란 듯 행복하게 살자고 했잖아…. 나 이제 어떻게 하라고….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

우우웅-.

오열하며 몸을 떨던 그녀의 눈꺼풀이 들린다.

어디선가 희미한 진동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침대 아래 떨어트린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하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모두가 잠든 새벽,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던 집 안에 울린 낯선 진동 소리가 그녀를 시궁창에서 끌어 올렸다.

‘대체 어디서….’

두이의 방은 침대와 컴퓨터 책상. 그리고 옷을 걸어 둔 행거가 전부였다.

서랍이라고는 컴퓨터 책상 아래 인터넷으로 2만 원 주고 구매한 철제 캐비닛 하나뿐.

하지만 소리는 캐비닛에서 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감각을 청각에 집중한 그녀가 천천히 방 안을 걸었다.

‘침대인가…?’

높은 확률로 프레임 아래. 매트리스와 가까운 곳에서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침대를 노려보던 하나는 단번에 매트리스를 들어 올렸다. 먼지를 일으키며 들린 매트리스를 세워 벽에 기댄 뒤, 프레임 하단으로 손을 넣었다.

‘분명 헤드 쪽이었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당장 진동의 정체를 확인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것은 본능과도 같아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프레임 하단을 더듬던 그녀의 손끝에 닿은 전선.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소름이 전신으로 번졌다. 하나는 신중하게 전선을 따라 손을 움직였다.

지이잉-.

잠시 멈추었던 진동이 다시 울린다. 하나는 순간 진동을 일으키는 기계를 움켜쥐었다.

급격하게 치밀어 오른 긴장감에 몸이 벌벌 떨린다.

그녀가 찾아낸 건, 2G폰이라 불리는 CDMA 단말기였다. 현재는 서비스가 종료되어 민간인들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으나, 이두이는 민간인이 아니다.

국가 안보 정보부 소속, 해외 범죄 수사팀의 에이스. 표면적으로는 해외 마약 범죄 수사를 지휘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정확하게 어떤 임무를 주로 맡는지 밝혀진 건 없었다.

비밀이 많다는 건, 숨겨놓은 것도 많다는 뜻.

하나는 발신자 표시가 뜨지 않은 휴대 전화를 노려보다 플립을 열었다.

00:01

00:02

00:03

[…누나!]

3초 만에 듣게 된 두이의 목소리에 하나는 참았던 숨과 함께 탄식을 내뱉었다.

“두이야…. 이두이? 너 어디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너 지금…!”

신호의 감도가 좋지 않다. 일반적인 통신기기를 이용해 연락한 게 아니란 뜻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누…나. …렌티는 …말이야. 안 돼. 절대, 안 돼. 그러니까 …진, 조심해. …죽었 …새끼. …그 …오지 마. 나, 절대 안 죽어.]

“두이야. 자꾸 말이 끊어져. 다시 얘기해 봐. 너 지금 어디야. 좌표만 말해. 힌트가 될 만한 것이라도!”

[씨발, 안….]

본능적으로 통신이 두절될 거란 걸 예감했다. 조급해진 그녀는 사색이 되어 말을 이어 나갔다.

“두이야, 끊지 마. 두이야! 그냥 말하지 말고 끊지도 마. 내가 직접 좌표 추적을…!”

하지만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마치, 창고의 물건이 쏟아지는 것처럼 사방에서 울렸던 파열음.

하나는 반쯤 넋이 나간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머리 위로 찬물이 쏟아지는 기분이다.

두이의 상관은 분명 사망했다고 말했다. 그것도 임무 중 사망했으니 장례를 준비하라고.

하지만 지금 제가 귀신과 통화한 것이 아니라면, 두이는 살아 있다.

그것도… 모두가 죽었다고 믿는 상황에, 홀로 어딘가에….

몸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만 같다. 머리털이 쭈뼛 서고 전신의 세포가 미쳐 날뛴다.

하나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침대를 들어내 충전 케이블을 챙겼다.

두이가 살아 있다.

두이가, 내 목숨 같은 존재가 살아 있다.

죽지 않았다.

입술이 바들바들 떨리고 약이라도 한 것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어댔다.

제 휴대 전화로 연락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추적과 도청이 불가능한 기기로 연락을 해 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신 차려 이하나. 진짜 정신 차려.’

하나는 욕실로 뛰어들어 가 찬물로 세수했다. 얼음장 같은 물에 얼굴을 담근 채 두 눈을 깜빡였다.

숨을 참아 과부하가 걸린 머릴 식혔다. 세면대를 움켜쥔 손이 하얗게 질린다. 하지만 행복해서…. 급격하게 찾아온 안도감에 다리의 힘이 풀릴 것 같았다.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몰아쉰 그녀는 거울을 노려보며 사태 파악을 시작했다.

이두이는 살아 있다.

조직에선 이두이를 사망처리 하려 한다.

은폐. 또는 오해.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었으며,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신은? 어째서 시신에 대해 묻지 않았지?

그제야 하나는 제가 놓친 오류들을 되짚으며 주먹으로 대리석 벽을 후려쳤다.

“개새끼들….”

이두이는 현재 궁지에 몰렸다. 높은 확률로 몸담은 조직에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뜻.

거울을 노려보는 까만 눈동자에 살기가 들어찬다. 유난히 창백한 피부 때문에 머리카락이 더욱 까맣고 짙어 보였다.

욕실을 나선 그녀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붙박이장을 열어 20인치 캐리어를 꺼내곤 빠르고 정확하게 물건을 담기 시작했다. 옷가지와 속옷은 최소한으로. 태블릿과 노트북, 휴대 전화 충전기, 책장 맨 아래에 꽂혀 있던 아카이브 파일 몇 개를 챙겨 넣었다.

그러고는 곧장 사이트에 접속해, 캄보디아행 항공권을 끊었다.

최단거리 5시간 30분.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한 일등석 티켓을 끊은 뒤, 여권과 신분증을 챙기기까지 걸린 시간은 17분.

두이는 죽지 않았다.

미친 사람처럼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짐을 챙긴 하나는 망설임 없이 집을 나섰다.

해 뜨기 직전, 여명에 물든 하늘이 묘하게 서늘한 색을 띤다.

엉망이었던 머릿속이 정리되고 있었다. 빠르게 뛰던 심장 박동도 잦아들었고, 오로지 두이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이 강박처럼 떠오른다.

그녀는 택시를 기다리며 최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태준은 두이의 가장 친한 동료로, 현재 함께 임무에 투입되었다.

그러니 만약 두이에게 일이 생겼다면 최태준이 제일 먼저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한데 태준에게도 일이 생긴 거라면….

걱정을 이어 나가던 그때, 통화가 연결되었다.

[흐윽…. 하나야.]

씨발, 울지 마.

“나 지금 가.”

[뭐? 어딜….]

얼마나 운 건지, 최태준의 목소린 완전히 갈라져 듣기 힘든 지경이었다.

“시신은.”

[…흑. 시, 시신…. 흐으으….]

“최태준…. 울고 싶은 건 나야. 그러니까 대답이나 똑바로 해. 두이 시신, 어디 있어.”

[없어. 못 찾았어. 폭탄이 터졌단 말이야. 그것도 두이 몸에…. 자살폭탄…. 그러니까… 하나야. 내 말 잘 들어. 너무 충격받지 말고, 끝까지 들어줘.]

벌써부터 들어주기 힘들었다.

자살폭탄? 웃기지 마.

조금 전, 두이와 통화했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참아냈다.

하나는 험악한 눈빛으로 하나둘 꺼지는 가로등을 노려보았다.

[두이가…. 흑, 그러니까…. 두이가 물건을 빼돌린 모양이야.]

“물건? 무슨 물건….”

[약을 빼돌렸어. 돈이 필요했나 봐. 근데, 그 물건이 하필… 마피아 물건이었어.]

“그래서….”

[작업당한 거 같아. 알잖아. 마피아 새끼들 시체처리 개같이 하는 거. 그래서 시신을 찾을 수가 없었어.]

하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캐리어 손잡이를 움켜쥔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짓씹은 입술에서 피가 배어 나왔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최태준…. 왜 연락 안 했어? 바로 했어야지, 왜!”

[찾고 싶었어! 어떻게든…. 어떻게든, 훼손된 일부라도! 근데…. 근데 위에선 이미 사망처리 해 버렸다더라. 흑…. 이두이, 이 미친놈…! 왜, 왜!]

택시가 도착했다.

하나는 숨을 크게 들이켠 뒤, 문을 열고 뒷좌석에 올라탔다.

“시차 두 시간이야. 5시 50분 비행기로 출발하면, 그쪽 시간으로 9시 20분 도착해. 그러니까 시간 맞춰 프놈펜 공항 메인 출구에서 대기해.”

[너 진심이야? 지금 온다고?]

“그래, 지금. 시신 못 찾았다며. 두이 시신은 내가 찾아. 그리고… 나 아직 유가족으로 가는 거 아니야.”

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을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나이 지긋한 택시 기사가 돌아보며 ‘인천공항으로 가면 될까요?’라고 묻는다.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지금부터 움직여. 하나도 빠짐없이, 준비해.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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