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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별이 뜨는 밤 (51)화 (5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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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왕, 아니면 반역자.

“…….”

“그것이 누구든, 설령 그 사람이 나라 하여도, 그대는 어느 순간이고 그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오. 내가 그대를 귀하게 여기듯이, 그대 역시 그리 여기셔야 하오. 내 말 알아듣겠소?”

“……예.”

채선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익제보다 그녀를 더 우선으로 두라, 그것은 말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하찮은 산골 처자였고, 그는 고귀한 신분이었으니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익제가 한참이나 위에 있는 것이 당연했다. 아마 지나가는 사람들을 아무나 잡고 물어봐도 모두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게다가 채선은 이미 그를 지키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익제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스스로를 지키라고 하였다.

나를 지키는 건 어떻게 하는 거더라.

한 번도 본인을 위해 살아보지 않은 채선이 난감한 표정으로 식탁만 내려다보았다. 

그 사이, 익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다 마침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다정하게 속삭였다.

“출발 준비는 다 되어 가오?”

마치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것 같은 그의 태도에 채선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두 눈만 크게 깜빡였다. 그러다 행여 또다시 그의 심기가 상할까, 서둘러 입을 열었다.

“예. 준비는 모두 끝내 두었습니다.”

“잘했소. 도성엔 곧 폭풍이 몰아칠 것 같으니 이럴 때는 피해 있는 게 상책이지.”

익제의 혼잣말에 채선이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태풍이 몰려왔습니다. 한 번은 지붕이 날아갈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말에 익제가 눈매를 구부리며 물었다. 자신이 말한 태풍은 그 뜻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어찌 되었소?”

“종일 지붕을 잡고 있었습니다.”

“오호, 지붕을 잡고 있었다? 어떻게?” 

“정말로 지붕이 날아갈 것처럼 들썩거려서 언니와 함께 새끼줄을 지붕에 던져…….”

익제는 조곤조곤 이어지는 채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식사를 재개했다. 

봄날의 춘풍처럼 누그러진 그의 모습에 그제야 송하가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짝 조여들었던 심장이 간신히 제자리를 찾았다. 

손등으로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던 송하가 문득,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익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불현듯, 자신의 주인이 정말로 자애롭고 다정한 사람일까, 하는 본질적인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두 손을 양옆으로 벌리며 커다란 바람을 표현하던 채선이 그대로 식탁을 엎어 버렸기 때문이다.

“…….”

송하가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깨진 접시와 음식들을 정리했다. 보지 않아도 정수리에 닿는 채선의 시무룩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래서 송하는 저도 모르게 자그마한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다음번에는 내가 식탁을 잡고 있어야겠군.”

익제의 짓궂은 농에 채선이 울상을 지으며 “죄송합니다.” 하고 어깨를 떨구었다.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

“어찌 될 것 같은가?”

광무대군의 물음에 달지가 생쥐 같은 미소를 지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구름이 손에 닿을 듯 낮게 깔린 탓에 밤하늘의 별들은 죄다 그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그는 눈을 감고도 별의 움직임을 그릴 수 있었다. 달지가 광무대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광무대군은 벽 뒤에 앉아 저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 결코 창가에는 앉지 않았다. 

그리고 달지는 광무대군의 그런 신중한 면을 좋아했다. 적어도 자신의 말이 갑자기 죽어 사라지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장기 말이라고 생각하던 자가 오히려 그를 장기 말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는 대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달지는 치밀어 오르는 웃음을 삼키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은원군은 크게 걱정하실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그의 별이 약해지고 있으니 더 이상은 대군의 앞날에 위협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말에 광무대군이 애써 흡족한 표정을 감추었다. “흠.”하는 침음을 흘린 그가 짐짓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가? 하긴, 내일부터 여름이 끝나는 시기까지 도성을 떠나 있는다고 하더군. 흉인의 별에 홀려 정신을 못 차리는 모양일세.”

“예. 다행한 일입니다.” 

잠깐 생각에 잠긴 얼굴로 침묵하던 광무대군이 이내 달지를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그가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럴 게 아니라, 이참에 은원군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은 어떻겠나? 잘만 하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에 달지가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누군가의 아래에 있을 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왕, 아니면 반역자. 그것이 그가 타고난 운명입니다. 설령 그를 품는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뒤통수를 맞을 것입니다.”

“알겠네. 자네가 그리 말한다면야.”

광무대군은 달지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어쩌면 그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그 말을 믿을지 모른다.

달지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광무대군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대신, 인애대군을 경계하셔야겠습니다. 요즘 부쩍 그분의 힘이 강해지고 있는 듯싶습니다.”

“둘째 형님이?”

그렇게 중얼거리던 광무대군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렇군.” 하고 중얼거렸다. 

“근래 들어 사람들을 집으로 부른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사냥이며 잔치며 워낙 유흥을 좋아하는 분이라 그것이 딱히 특별한 일은 아니나…… 그래,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그나저나.”

거기서 잠깐 말을 끊은 광무대군이 달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가 이제까지와는 달리 제법 가벼운 어투로 물었다.

“오늘은 어느 부인의 침소에서 잠드는 것이 좋겠는가?”

“여섯 번째 부인이 어떠신가 싶습니다.”

“귀인의 별.”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날아온 즉답에 광무대군이 조용히 혼잣말을 읊조렸다. 달지가 고개를 조아리며 덧붙였다. 

“예. 결전의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 만큼 귀인의 별을 가까이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흐음.”

요즘은 매일같이 그녀의 침소를 찾고 있었다. 다른 부인들의 입에서 스멀스멀 불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광무대군은 긴 속눈썹 아래 우수 어린 눈을 하고 있는 이선을 떠올렸다. 귀인의 별이 아니라 해도 하루가 멀다고 찾을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기는 했다. 

그런데 저를 황제로 만들어 줄 여인이라고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겠는가. 문자 그대로 금상첨화였다.

“좋다.”

광무대군이 막 자리에서 일어설 때였다.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하인들을 모두 물렸던 터라 광무대군의 표정이 대번에 날카로워졌다. 그가 신경질적인 어조로 물었다.

“누구냐?”

“주군. 접니다.”

그제야 광무대군이 한결 누그러진 투로 “들라.”고 명했다.

방문이 열렸다. 그 사이로 흑색 옷을 걸친 사내가 나타났다. 마치 밤처럼 새카만 사내였다. 목덜미에 있는 흉터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를 빤히 쳐다보던 달지가 광무대군을 향해 예를 표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그럴 것 없다. 내 자네에게 무엇을 숨길 것인가. 심관, 말하라.”

마지막 말은 흑색 옷을 입은 사내, 심관을 향한 것이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광무대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표정 없는 얼굴이 유난히 서늘했다.

“효명 모친의 집에서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하여, 그곳에 머물던 우리 쪽 사람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

“무어라?”

광무대군의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그가 사뭇 심각한 눈으로 심관을 바라보았다.

“혹, 은원군이 눈치를 챈 것인가?”

“그건 아닌 듯싶습니다. 우리가 붙여둔 병사뿐 아니라 인질이었던 효명의 모친까지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게다가 재가 된 집을 살펴보았는데 불은 부엌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방화가 아니라 실화인 것 같습니다.”

“그런가?”

광무대군은 기본적으로 의심이 많은 성격이었다. 그는 사내의 단언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의혹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가 다시 한번 다짐을 받듯 물었다.

“두 사람 모두 시체로 발견된 게 확실한가? 불에 탄 시체라면 얼굴을 확인할 수도 없을 터인데.”

“일전에 한 번, 그녀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녀의 키와 체구, 모든 것이 사체와 완벽히 일치하였습니다.”

“그렇군.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제야 광무대군이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의자에 느긋하게 등을 기대던 그가 문득 생각이 난 듯이 “효명은?” 하고 물었다. 

심관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어떤 흔적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이미 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꼬리가 잡히지 않을 순 없습니다. 관군도 이미 수사를 종료하였습니다.”

“잘되었군. 계륵 같던 두 사람이 따로 손쓸 필요도 없이 모두 알아서 죽어주었으니 말이야. 아……! 혹, 이것도 귀인의 별 덕분인가.”

광무대군이 흡족한 표정으로 달지를 돌아보았다. 

그가 싱긋, 입꼬리를 당기며 “모든 것이 광무대군의 덕입니다.” 하고 아첨을 늘어놓았다. 달지가 웃을 때마다 커다란 앞니 두 개가 번득였다. 

심관은 달지가 그곳에 없는 사람인 양 오직 광무대군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광무대군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자신의 뺨을 쓸었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리고 있었다. 세상이 마치 그를 황제로 만들기 위해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인애대군께서 습격을 받으셨답니다.”

“습격?”

하지만 그것은 그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소식이었다. 광무대군이 의자에서 등을 떼며 큰소리로 되물었다. 

달지 역시 두 눈을 크게 뜨다가 별 하나 없는 검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도 낮게 깔린 구름들이 그 뒤의 별을 모조리 감추고 있었다. 

“어떤 습격인가? 자세히 말하라.”

“저녁나절, 인애대군이 궁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리 위를 지나고 있는데 화살 하나가 날아왔답니다. 화살은 그가 타고 있던 말의 목을 관통하였고, 말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습니다. 그 탓에 낙마한 인애대군이 강 아래로 떨어질 뻔하였으나 뒤따르던 하인들 덕분에 가까스로 참사는 면했다고 합니다.”

“활을 쏜 자는?”

희미하게 눈살을 찌푸린 광무대군이 조급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심관의 뒷말을 재촉했다.

“호위들이 즉각 추격을 시작한 탓에 더 이상 공격을 감행하지 못하고 그대로 도주를 하였다고 합니다.”

“잡지는 못하였고?”

“예.”

대체 누구의 소행일까, 생각에 잠긴 얼굴로 허공을 보던 광무대군이 일말의 기대가 깃든 표정으로 심관을 응시했다. 

일이 잘 풀려도 이렇게까지 잘 풀릴 수가 있나, 이것은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 아닌가. 

히죽거리던 광무대군이 별안간 목소리를 낮추었다.

“형님은?”

“넘어지면서 다리를 다치기는 하였지만, 다른 상처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가.”

광무대군이 사뭇 아쉬운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찼다. 이참에 둘째 형님이 명을 달리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나씩 움직이기 시작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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