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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별이 뜨는 밤 (11)화 (1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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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자신의 불행이
    미치지 않는 사람.

    채선은 혀끝에서 대롱거리는 말을 삼키며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나물이 겹치지 않도록 하나씩 따로 떼어 놓으며 앞뒤로 뒤적거렸다. 햇살이 좋아 며칠이면 바짝 마를 성싶었다.

    무슨 반찬을 할까.

    채선이 나물을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데, 익제의 빈정거림이 그녀의 뒤통수를 때렸다.

    “하긴. 가난한 집이니 당연한가.”

    얌전히 듣고 있던 가난한 채선의 마음이 상했다. 원래 예쁜 사람에게 못생겼다고 하면 짓궂은 농담이지만, 못생긴 이에게 못생겼다고 말하면 날카로운 비수가 되는 법이다. 

    남자의 가난 타령은 궁핍한 채선의 마음에 한 줄기 긴 상처를 남겼다.

    익제는 그런 줄도 모르고 오만하게 말을 이었다. 그의 한쪽 입술이 비죽 올라갔다.

    “걱정 마라. 내가 돌아가면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을 섭섭하지 않게 치를 것이다. 그럼 마을에 집 한 채 정도는 구할 수 있겠지.”

    어떠냐. 고마운가? 그럼 납작 엎드려 절이라도 하거라. 흔쾌히 받아줄 터이니.

    속내가 빤히 읽히는 표정으로 익제가 거드름을 피웠다. 그러나 채선은 음울한 기색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그녀의 잇새로 시무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괜찮습니다.”

    “괜찮다?”

    익제가 입매를 찌푸리며 채선을 응시했다. 아마도 그것은 그가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었던 듯 익제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었다. 

    “필요 없다?”

    그가 다시 한번 혼잣말을 읊조렸다. 그의 기색이 설핏 미심쩍은 빛을 띠었다. 채선은 조금 더 깊숙하게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저는 이곳이 좋습니다.”

    “인적 하나 없는 이곳이 좋다? 밤에는 산짐승이 어슬렁거리고, 낮에도 인적 하나 없는 이곳이?”

    “……예. 저는 마을로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흠.”

    못마땅하게 침음을 흘린 익제가 “당최 가난한 사람의 심정은 알 수가 없군.”이라며 혼잣말을 했다. 그는 말없이 채선을 응시했다. 두 눈은 여전히 약초 천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가 채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으악!”

    채선이 당황한 기색으로 비명을 터뜨렸다. 익제가 대뜸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채선에게로 한 걸음 다가섰다. 

    “무슨 일인가?”

    “으으, 말린 나물 위에 새가 똥을 쌌습니다.”

    “하.”

    기어코 익제의 잇새에서 실소가 터졌다. 그는 혀를 차면서도 곧장 채선의 곁으로 다가왔다. 채선이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허공에 손을 저었다.

    “으악! 저 녀석이 도망가지도 않고 또 똥을 쌉니다! 안 돼, 저리 가! 저리 가라고!”

    깍깍.

    물까치는 그런 채선을 조롱이라도 하듯 훌쩍 날아올랐다. 채선의 머리 위에서 뱅글뱅글 맴을 돌던 물까치가 찍 하고 똥을 갈겼다. 깍깍, 신이 난 울음소리가 마치 사람의 웃음소리처럼 들렸다. 

    “흐으으…….”

    채선이 정수리를 움켜쥐며 울상을 지었다. 이번에는 반쯤 울음 섞인 목소리가 비어져 나왔다.

    “제 머리 위에도 똥을 쌌습니다.”

    잠시 걸음을 멈춘 익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천에 가려진 눈이 무언가를 가늠하듯 창공을 더듬었다. 다음 순간, 그가 조용히 허리를 굽히더니 신발 밑에 깔린 돌멩이 하나를 주웠다. 익제의 손목이 가볍게 공기를 갈랐다.

    퍽.

    꿱!

    “으아아악!”

    정통으로 돌멩이에 맞은 물까치가 곧장 바닥으로 추락했다. 채선이 입가를 가리며 새된 비명을 질렀다. 

    “으아, 이를 어째!”

    한달음에 물까치에게 달려간 그녀는 꿈틀거리는 날갯짓을 보고서야 가까스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익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입매를 비틀었다.

    “왜 놀라는가. 그 새 때문에 짜증이 났던 게 아닌가.”

    “예? 아니, 맞긴 맞…… 아니, 그게 아니라.”

    횡설수설하던 채선이 잠깐 말을 멈추고 익제를 쳐다보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정확히 새를 맞췄다는 사실에 놀라야 할까, 아니면 살아 있는 새를 떨궈놓고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야 할까. 

    채선은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하아…….”

    결국 어깨를 떨군 그녀가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물까치를 감싼 채선이 나지막하게 대꾸했다.

    “화가 나긴 했지만, 그 정도로 화가 났던 건 아니에요.”

    “하.”

    익제가 차가운 조소를 흘렸다. 그의 입매가 비틀렸다. 고맙다고 절은 하지 못할망정 도와준 사람을 냉혈한으로 만드는 그녀의 작태가 괘씸했던 탓이다.

    왠지 한 입으로 두말한 것 같은 꺼림칙한 기분에 채선이 변명처럼 덧붙였다.

    “새똥을 맞은 머리야 감으면 되고, 더러워진 나물도 버리면 되고. 아깝긴 하지만 새를 다치게 할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어차피 저는 이런 일에 익숙해서……. 이런 식으로 새가 제 머리에 똥을 쌀 때마다 때려죽였다면, 아마 이 산에는 산새가 한 마리도 살지 않았을 겁니다.”

    “하.”

    저런 등신을 보았나, 라는 말을 삼킨 익제가 또 한 번 못마땅한 표정으로 채선을 쏘아보았다. 

    분명 얼굴의 반은 천으로 가려져 있는데 그의 속내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보인다고 생각하며, 채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빌어먹을 정도로 가난한 주제에 오늘 먹을 양식보다 이름 없는 산새 한 마리가 더 중하다?”

    익제가 나직하게 뇌까렸다. 차가운 목소리는 일견 실망스러움을 품고 있었다. 천 너머의 눈동자가 그녀의 위선을 꿰뚫어 볼 것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그가 막 걸음을 돌리려는 그 순간.

    “…… 까동이요.”

    “무어라?”

    채선의 시무룩한 대꾸에 그가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어깨를 움츠린 채선이 손안의 물까치를 보듬으며 대꾸했다. 

    “제가 방금 까동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이름 없는 산새가 아닙니다.”

    “하.”

    저런 등신을 보았나.

    익제의 소리 없는 혼잣말이 또다시 귓가에서 쟁쟁하게 울렸다. 채선은 한층 더 의기소침하게 고개를 숙였다.

    “되었다. 말을 말자.”

    기어코 익제가 먼저 등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채선의 손바닥 안에서 죽은 체를 하고 있던 물까치가 꼼지락거리더니 이내 창공 위로 날아올랐다. 똥 한 번 잘못 쌌다가 죽을 뻔한 물까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리 도망쳤다.

    “이런 일이 자주 있다고 하였나?”

    툇마루에 엉덩이를 걸친 익제가 빈정거리듯이 물었다. 채선은 새똥이 묻은 나물을 골라내며 “예에.” 하고 음울하게 대답했다. 그녀가 머리에 새똥을 맞는 일은 삼시 세끼 밥을 먹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었다.

    “하긴.”

    익제가 입매를 꾹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는 노루 뒷발에 차인 돌멩이에 맞아 볼록, 혹이 부풀어 올랐던 채선의 정수리를 떠올리는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면, 호미질을 하다 튀어 오른 돌멩이에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지던 그녀의 모습을 되짚는 것일 수도 있었다. 혹은, 제 발에 엉켜 고꾸라지며 남자에게 물벼락을 선사했던 날을 기억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짚이는 게 너무 많았다. 채선의 눈매가 점점 아래로 처졌다. 그녀의 잇새로 소심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제가 원래 운이 좀…… 없습니다.”

    ‘좀’이라는 단어에 평소 있는 듯 없는 듯하던 양심이 뜨끔하며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채선은 두 눈을 딱 감고 모른 척했다. 그러다 결국 제 발 저린 도둑처럼 이실직고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싫어합니다. 제 불행이 옮을까 봐요. 하, 하지만 걱정 마세요. 익제님께는 제 불운이 옮지 않도록……!”

    “하.”

    익제가 다시 한번 싸늘한 조소를 흘렸다. 

    채선의 심장이 덜커덕, 큰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손끝이 차게 식었다. 그 역시 마을 사람들처럼 저를 역신으로 대할까 봐 겁이 났다. 

    어째서인지 그만큼은 자신을 오롯이 채선으로 봐주길 바랐다. 그가 아니면, 이제 더 이상 그 누구도 저를 ‘심채선’으로 기억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익제의 입술에 꽂혔다. 비틀린 입술이 서서히 벌어지고, 그 사이로 무감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불운이 내게 옮는다?”

    채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흡.”

    저도 모르게 가쁜 숨을 삼킨 채선이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꺾였다고 생각했던 기대는 그녀가 모르는 사이 착실하게 싹을 틔웠던 모양이다. 또다시 무너진 기대 속에서 절망이 피어났다.

    그 순간.

    “그러니까 너 때문에 내가 어떻게 된다?”

    익제의 입술이 점점 더 비스듬해졌다. 

    채선은 영문을 알 수 없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잇새로 신랄한 실소가 비어져 나왔다. 어이가 없다는 듯 한동안 비식거리던 그가 이내 오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다.”

    “……예?”

    “고작 너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몸이 아니라는 말이다.”

    “!”

    일순, 채선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녀는 마치 허를 찔린 사람 같았다. 혹은, 부지불식간에 머리를 얻어맞은 사람 같기도 했다. 

    무표정하던 얼굴에 서서히 놀라움이 깃들었다. 그녀는 참았던 숨을 터뜨리며 두 손을 떨구었다. 

    익제가 던진 말은 흡사 커다란 북소리처럼 그녀의 안을 둔중하게 울렸다. 느릿하게 파동 하던 말들이 날카로운 소용돌이가 되어 그녀를 헤집었다.

    자신의 불행 따위가 어찌할 수 없는 사람.

    자신의 불행이 미치지 않는 사람.

    “아…….”

    채선의 잇새에서 나직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자잘한 바람이 뺨을 훑었고, 흔들리는 나뭇잎이 몸을 부대끼며 소낙비 소리를 냈다. 구름의 그림자가 발밑을 덮었고, 멀리서 물까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채선은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어쩌면 죽는 날까지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남자의 오만함에 구원받은 이 순간을.

    “우는가?”

    “……예?”

    익제가 미간을 좁힌 채 미심쩍은 투로 물었다. 그 말에 채선이 금세 놀란 토끼 눈을 했다. 그녀는 소리 내어 흐느끼지도 않았고, 어깨를 들썩이지도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고, 서럽지도 않았다. 그러니 그녀가 울 리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두 뺨은 젖어 있었다. 뜨거운 눈물이 그녀의 뺨을 따라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아닙니다.”

    채선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손끝으로 조용히 눈물을 거두었다. 하지만 익제의 찌푸려진 입매는 펴지지 않았다. 그가 신랄하게 읊조렸다.

    “나를 속일 셈이군.”

    “아닙니다.”

    “내가 그리 만만히 보이던가. 아니면,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우스운가.”

    “……그럴 리가요.”

    단 한 번도 만만한 적이 없었던 남자다. 단 한 번도 우스운 적이 없었던 남자다. 채선이 억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 헛웃음을 흘린 익제가 들으라는 듯 반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무슨 말만 하면 울음을 터뜨리니, 내가 시정잡배가 된 기분이군. 아주 신선해.”

    “……죄송합니다.”

    채선이 면목 없다는 듯 시선을 떨구었다. 

    이상했다. 남자가 톡 하고 건드릴 때마다 팍하고 터지는 게. 그녀의 여린 봉오리는 마치 잘 익은 봉선화 열매처럼 남자의 대수롭지 않은 말 한마디에도 속절없이 벌어지곤 했다. 

    “죄송하면 아까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해 봐라.”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은 익제가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아까 하던 이야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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