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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별이 뜨는 밤 (10)화 (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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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이름이 무엇인가.

    남자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채선은 개의치 않았다. 혼자서 떠드는 것도 이제는 퍽 익숙해졌다. 

    그는 고요한 침묵을 좋아했지만, 채선은 암흑 속에 있는 남자가 적막에 휩싸이지 않기를 바랐다. 그건 너무 고독하고 외로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채선은 호미질을 하며 말을 이었다.

    “텃밭에 산도라지를 심었거든요. 꽃자루가 벌써 동그랗게 여물었습니다. 도라지꽃을 보신 적 있으세요? 보라색 꽃이 아주 어여쁘답니다. 아름다운 꽃으로 눈을 즐겁게 해주는데 뿌리까지 약용으로 쓰인다니, 얼마나 고마운 식물인지 몰라요. 그래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바로 이 도라지꽃이에요.”

    “너는 말이 많아서 탈이다.”

    남자가 기어코 혀를 찼다. 하지만 채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수다를 늘어놓았다. 

    “날이 풀리니 산도라지뿐 아니라 잡초도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어서요. 이때 잡초를 잘 뽑아주어야 도라지 뿌리가 영양분을 많이 흡수한답니다. 그래야 나중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실한 도라지를 수확할 수 있지요. 그 김에 물도 좀 주고, 거름도 좀 주고…… 그러는 중입니다.”

    어디선가 휘파람새가 지저귀었고, 채선의 조용한 목소리가 노랫말처럼 가볍게 흩날렸다.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자신의 말 같은 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쯤 다시금 남자의 입술이 열렸다.

    “그런데.”

    “예?”

    채선은 남자의 입에서 “그런데.”라는 말이 나오면 괜스레 머리털이 쭈뼛 섰다. 호미질을 하며 힐끔힐끔 남자의 눈치를 살피자, 그가 무심하게 입술을 달싹이는 모습이 보였다.

    “방금 산도라지라고 하지 않았나.”

    “예, 맞아요. 산도라지.”

    채선이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건 아닌 모양이었다. 남자의 오른쪽 눈썹이 스윽 밀려 올라갔다. 

    그가 미심쩍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산도라지라면 산에서 자생하는 도라지를 일컫는 말인데, 산도라지를 텃밭에서 키운다?” 

    그 말에 채선이 뜨끔한 표정으로 호미질을 멈췄다.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 많던 참새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간간이 나뭇잎을 흔들던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에야 채선은 다시 호미질을 하며 짐짓 대수롭지 않은 척 말을 이었다.

    “마, 말씀드렸잖아요. 이 집은 산중에 있다고. 그러니까 집 안에 심었다고 해도 산도라지가 맞아요.”

    “흠. 약초를 캐서 생계를 유지한다고 했던가?”

    “……예.”

    남자의 한쪽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그가 그 어느 때보다 유쾌한 표정을 지었다.

    “호오. 그러니까 집에서 키운 도라지를 산도라지라고 속여서 판다는 뜻이로군.”

    반대로 채선의 어깨는 점점 움츠러들었다. 덩달아 그녀의 목소리도 작아졌다. 

    “아니, 그러니까 이것도 산도라지가 맞는데……. 저는 그냥 도라지가 자라는 데 살짝 도움만 줄 뿐인데…….”

    “잡초를 뽑고, 물을 주면서?”

    “……예.”

    “사람이 키운 도라지와 산도라지는 제법 가격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가?”

    “……정확히 알고 계시네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남자가 잠깐 틈을 두었다. 채선의 긴장된 시선이 슬그머니 남자를 향했다. 그가 한쪽 입꼬리를 당긴 채로 쐐기를 박았다.

    “사기꾼이로군.”

    “사기꾼이 아니라…… 여기가 산속이니까 정말로 산도라지가 맞는데…….”

    채선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남자의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갔다. 남자는 이제껏 그녀가 본 모습 중 가장 기분이 좋아 보였다. 참으로 고약한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채선은 입술을 삐죽이며 휙 하고 등을 돌렸다. 신경질적으로 호미를 내리쳤다. 

    캥.

    호미가 땅속에 박힌 돌멩이를 때렸다. 남자를 둘러싼 분위기가 조금 더 느슨해졌다. 

    “어쩐지 여자 혼자 산중에 사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 사기꾼이었어.”

    캥.

    “내 말에 불만이 있나.”

    “……아닙니다.”

    캥.

    “아닌데, 어찌하여 호미질 소리가 그리 사나운가.”

    딱.

    “으악!”

    “무슨 일이냐.”

    남자가 대뜸 눈살을 찌푸렸다.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은 채선이 벌겋게 달아오른 이마를 문지르며 울상을 지었다.

    “이제는 귀까지 멀었더냐.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는가.”

    쯧, 혀를 찬 남자가 채선의 대답을 재촉했다. 그는 어느새 툇마루에서 일어나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찔끔, 흘러나온 눈물을 닦은 채선이 남자를 돌아보며 소심하게 대꾸했다.

    “호미에 비껴 맞은 돌멩이가 튀어 올라 이마를 때리는 바람에…….”

    “너는 도대체.”

    거기서 말을 멈춘 남자가 짧게 숨을 삼켰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그가 못마땅한 듯 혀를 차며 걸음을 돌렸다. 그러다 문득,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채선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남자의 그 말에 채선은 또 한 번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사기꾼에 이어 이번에는 무엇이 등장할까, 시무룩한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흙바닥을 헤맸다. 

    정말로 산도라지 맞는데, 언니가 분명 산도라지라고 했는데, 채선의 억울한 혼잣말은 차마 입술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혀끝에서만 뱅뱅 맴돌았다.

    그런 채선의 머리 위로 남자의 묵직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이름이 무엇인가.”

    “……예?”

    일순, 채선이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하니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남자가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너는 어찌 된 게 한 번에 말을 알아듣는 법이 없는가. 아니면 산중에 혼자 사는 말만 한 처녀는 이름도 없는 것인가.”

    “아…….”

    그의 신랄한 조소에 채선은 저도 모르게 짧은 탄식을 터뜨리고 말았다. 밭은 숨을 내뱉던 채선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나서야 억눌린 목소리를 토해냈다.

    “채선입니다. ……심채선.”

    그와 동시에 예고도 없이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채선은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려는 홧홧한 덩어리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 꿀꺽, 그녀의 목울대가 크게 일렁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당혹스러운 빛을 띠었다. 

    그러다 다음 순간,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아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이제는 더 이상 불러 줄 사람이 없는 이름이라는 생각도. 

    자신의 분신과도 같던 이선은 그녀의 곁에 없었고, 간간이 제 이름을 불러 주던 어미도 세상을 떠났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녀는 ‘심채선’이 아니라 오로지 ‘역신’이었다. 불행을 가져오는 액의 신, 역신.

    “…….”

    채선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젖은 숨이 가쁜 파동을 그리며 흩어졌다.

    심장이 쿵쿵 요동을 쳤다. 그것이 오랜만에 불린 이름에 대한 반가움인지, 더 이상 불릴 일 없는 이름에 대한 아쉬움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뜨거운 눈물이 소리도 없이 뚝뚝 떨어졌을 따름이다. 발밑의 흙이 까맣게 젖었다. 

    채선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비어져 나오는 눈물을 밀어 넣느라 분주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남자가 한층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는가?”

    “……아닙니다.” 

    채선은 짐짓 태연하게 대답했다. 남자가 저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고개까지 가로저었다.

    “우는군.”

    남자가 다시 한번 단정적으로 말했다. 채선도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어째서 우는가?”

    남자의 목소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빛을 띠었다. 그는 방금 전 두 사람이 나누었던 대화를 반추하듯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한참 만에야 답을 찾은 그가 “그렇군.” 하며 입매를 찌푸렸다.

    “내게 이름을 알려주는 게 싫었던 게로군.”

    “아닙니다!”

    채선이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두 손도 휘휘 내저었다. 남자를 담은 눈동자가 당혹스럽게 일렁거렸다. 그녀의 과한 부정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찌푸린 입매를 펴지 않았다.

    다음 순간, 그가 툭 하고 던지듯이 말했다. 

    “익제.”

    “……예?”

    밑도 끝도 없는 그의 말에 채선이 멍한 얼굴로 반문했다. 남자는 그것도 재깍 못 알아듣느냐는 듯 짧게 혀를 차더니 이윽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의 입매는 여전히 못마땅한 기색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내 이름 말이다.”

    “아…….”

    “울 정도로 알려주기 싫은 이름을 억지로 말해 주었으니, 내 이름도 가르쳐 주어야 서로 간에 공평하지 않겠는가.”

    “진짜로 그런 게 아닌데…….”

    채선은 반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객쩍은 표정으로 애꿎은 호미를 휘둘렀다. 캥캥, 호미가 돌멩이를 두드렸다. 그러다 일순, 하던 일을 멈추고 입 속으로 남자의 이름을 굴려보았다.

    익제.

    “이름값 한번 비싸군.”

    남자가 들으라는 듯 반쯤 혼잣말로 빈정거렸다. 

    채선은 그 말을 듣지 못한 척 열심히 호미질만 했다. 잡초 뿌리를 캐 손으로 쑥 뽑아내고 흙을 다졌다. 하지만 잡초를 모조리 뽑아도 며칠 후면 또 다른 잡초들이 새파란 머리를 들이밀 것이다.

    그것은 채선의 가슴 속에 깔린 ‘기대’와 비슷했다. 더 이상 사람들의 호의 따위 기대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며칠 후면 까맣게 잊은 채 또다시 기대하고 만다. 

    문득, 호미질을 멈춘 채선이 돌아서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곧장 툇마루로 걸어간 남자가 조금 전 그 자리에 도로 앉았다. 누런 약초 천이 다시금 대문을 향했다.

    불현듯, 그의 입술이 달싹이는가 싶었다. 

    채선.

    남자가 소리 없이 채선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와 동시에 채선의 눈이 크게 뜨였다. 가장 안쪽에 꾹꾹 눌러 두었던 기대가 빼꼼, 고개를 내미는 게 느껴졌다. 그것은 ‘역신’이 아니라 ‘채선’으로 불리고 싶은, 도라지꽃만큼이나 소박한 기대였다.

    채선의 눈동자가 속절없이 흔들렸다. 그녀는 익제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삼키려는 듯 입술을 깨무는 순간, 익제의 잇새로 오만한 목소리가 비어져 나왔다.

    “네가 함부로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아니다. 네가 알고 싶다 하여 알 수 있는 이름도 아니다. 그러니 너는 내 이름을 알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예.”

    발아하던 기대가 툭 튀어나온 한숨과 함께 푹 꺾였다. 설레설레 고개를 흔든 채선이 다시 호미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지. 내 주제에 무슨. 

    ***

    “너는 어찌 한시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는가.”

    익제의 핀잔에 채선이 하던 일을 멈추고 허리를 폈다. 옅은 땀방울이 그녀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또 가짜 산도라지를 돌보는 중인가?”

    “가짜 산도라지 아니거든요…….”

    의기소침한 채선의 대꾸에 익제는 흥 하고 콧방귀만 뀌었다.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던 그녀가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입을 열었다.

    “좀 전에 뒤뜰에서 캔 나물을 볕에 말리는 중입니다.”

    “방금 전까지는 바느질하고 있지 않았던가.”

    “……이불에서 땀 냄새가 난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익제는 한 치의 거리낌도 없는 당당한 얼굴로 채선을 마주 보았다. 어깨를 움츠린 채선이 소심하게 덧붙였다. 

    “새벽부터 홑청을 뜯어 빨래를 했으니, 다시 바느질해 놔야 오늘 밤에 덮고 주무시지요. 그래도 볕이 좋아 반나절 만에 말라서 다행입니다.”

    “하루 종일 빨빨거리며 잘도 움직이는군.”

    그게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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