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앞을 보지 못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너였나 보군.
남자가 왼쪽으로 몸을 틀더니 다시 한 발을 내밀었다.
“눈이 안 보인다고 해서 언제까지 누워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 아닌가.”
“아, 예. 그렇군요.”
아무래도 남자는 방 안의 구조를 파악하는 중인가 보다.
채선은 남자가 부딪힌 기둥의 뾰족한 모서리를 바라보았다. 손재주 없는 아빠가 손수 지은 집은 조악했다. 마감이 제대로 되지 않아 불쑥 튀어나온 모서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키가 작고 눈이 보이는 채선에게는 어떤 장애도 아니었지만 남자에게는 달랐다.
그가 한쪽 팔을 반쯤 편 채 방어적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채선은 남자가 또다시 기둥에 부딪힐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그가 아무리 제게 떨어진 불운 덩어리라 해도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결국 물그릇을 내려놓은 채선이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머쓱하게 손을 내밀었다.
“잡으세요.”
남자는 미심쩍은 눈으로 채선이 내민 손을 쳐다보았다. 남자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정확한 시선이었다. 채선의 손가락이 수줍은 듯 살짝 굽었다.
“하. 고작 서너 걸음밖에 안 되는 이깟 방 가지고 네 도움을 받으라?”
날 뭘로 보고, 라는 말이 들린 것 같았지만 그 역시 기분 탓인지도 모른다. 채선이 남자의 손을 답삭 붙잡았다. 더러운 것을 만진 듯 남자의 미간이 불쾌하게 일그러졌다.
“코딱지만 한 방이라 더 위험합니다. 아버지께서 머리 위로는 제대로 마감을 하지 않으셨거든요. 다행히 집안에 아버지보다 키가 큰 사람이 없어 이제까지는 별일이 없었지만, 왠지 오늘부터는 별일이 생길 것 같아서요. 상처가 벌어지지 않도록 천천히 걷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채선이 먼저 한 발을 뗐다. 남자가 마지못한 듯 따라왔다.
맞닿은 손바닥은 의외로 딱딱했고, 살포시 닿은 손가락은 생각보다 거칠었다. 무심코 시선을 내리던 채선의 눈에 굳은살 박인 커다란 손이 들어왔다. 그것이 몹시 예상 밖이라 채선은 남자의 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일단 침상 앞으로 가라.”
“예? 아, 예.”
퍼뜩 정신을 차린 채선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남자가 채선의 걸음에 집중했다. 맞잡은 손은 여전히 성겼지만, 그 사이로 서로의 온기가 전해졌다.
“여기가 침상입니다. 반걸음 뒤에 침상이 있으니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여기서 곧장 방문으로 가라.”
“예. ……손을 뻗어 보십시오. 거기가 방문입니다.”
“고작 세 걸음이군.”
“……죄송합니다.”
남자는 채선의 손을 잡고 방 안을 동서남북으로 가로질렀다. 그것만으로도 구조를 익힌 듯 그의 걸음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한 걸음 앞, 이마 근처에 기둥이 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채선이 사내의 손을 힘주어 당기며 말했다. 슬쩍, 눈썹을 밀어 올린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오른손을 들어 기둥의 위치를 확인했다.
두 사람의 연습은 툇마루를 거쳐 마당으로까지 이어졌다. 채선은 남자의 동물적인 감각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조심스러운 걸음은 처음 한 번뿐이었다. 두 번째엔 느긋함이 깃들었고 세 번째에는 확신에 찼다.
“마당으로 내려설 것입니다. 단차를 조심하십시오. 예, 잘하셨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잘했다고 것이냐. 건방지게.”
“예, 죄송합니다.”
확실히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었다. 못된 말도 몇 번 듣다 보니 흔한 안부 인사처럼 익숙해졌다. 건성으로 사과한 채선이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마당입니다. 어느 방향으로 갈까요?”
“일단 여기서 곧장 대문으로 가라.”
남자는 항상 퇴로를 먼저 확인했다. 그 역시 삶의 단편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채선은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그녀가 힐긋, 남자를 곁눈질했다.
그는 채선이 마을에서 본 어떤 남자들과도 달랐다.
각진 턱과 떡 벌어진 어깨, 채선보다 머리 두 개는 큼직한 장신은 일필휘지로 그려낸 듯 사내다웠고, 짙은 눈썹과 긴 눈, 적당한 콧날과 입술은 세필로 그려낸 듯 섬세했다. 습관처럼 잡힌 미간의 주름이 그림에 깊이를 더했다.
“바닥이 고르지 않으니 발밑을 조심하십시오.”
“그런데 말이다.”
문득, 남자가 입을 열었다. 미간의 주름이 조금 더 짙어졌다. 남자의 발밑을 살피며 걷던 채선이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예. 그저께 밤에 비가 내려서 아직 마당 여기저기에 웅덩이가 고여 있습니다. 한 발만 왼쪽으로 내디디십시오.”
남자는 채선의 차분한 대꾸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면서도 채선이 말한 대로 살짝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낮게 혀를 찼다. 남자의 잇새로 무심한 목소리가 비어져 나왔다.
“그런데 말이다.”
“예.”
“이상하단 말이지.”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어째서 침상이 아니라 바닥에 누워 있었느냐 하는 것.”
“아.”
채선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뒤늦게 멈춰 선 남자가 한 걸음 앞에서 그녀를 돌아봤다.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던 채선이 머쓱하게 웃으며 남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두 사람은 다시 발을 맞추어 걷기 시작했다.
“여기가 대문입니다. 사실 거창하게 대문이라고 부를 만한 건 없지만요. 그래도 산짐승이 들어오지 못하게 허리 정도 되는 돌담을 쌓고, 문이라 부를 만한 것을 달아 두었습니다. 한 번 만져보시겠습니까?”
“마당이 고작해야 열한 걸음이군.”
“코딱지만 한 집이라 죄송합니다. 그리고 바닥에 뉘었던 건 제힘으로 침상까지 들어 올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어디로 갈까요?”
“일단 왼쪽으로.”
“예. 왼쪽에는 부엌과 창고가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말씀하십시오.”
“검 상을 입은 건 등인데 뒤통수며 이마에 혹이 나 있더란 말이지.”
우뚝.
채선이 다시 걸음을 멈췄다. 남자와 맞잡은 손에서 슬며시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입꼬리에 맺힌 웃음이 어색하게 굳었다. 동그란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채선은 남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단 하나, 그가 썩 좋은 성격이 아니란 것만은 알고 있었다. 그를 옮기다 여기저기 부딪힌 것을 알게 되면 분명 그냥 넘어가지 않을 터였다. 되로 받으면 말로 갚는 것이 남자의 지론이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목격자는 말 한 마리뿐이었다.
남자가 채선을 따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느릿한 동작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그의 시선이 정확하게 채선을 응시했다. 채선은 이럴 때마다 그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게 거짓말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긴. 나한테 거짓말을 한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어?
남자가 제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채선은 슬그머니 그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그녀의 잇새로 짐짓 태연함을 가장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음……. 혹시 칼에 등을 벨 때 뒤통수도 얻어맞으신 건 아닐까요?”
“그런 기억은 없다.”
남자가 채선의 말을 단칼에 부정했다.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듯한 단호함에 채선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그럼…… 풍오의 등에 실려 이곳으로 오는 동안 다치신 건……?”
“말 등 위에서 무엇에 뒤통수를 다쳤다는 것이냐.”
“음……. 이를테면 떨어지는 열매에 맞았다든가, 아니면 하늘을 날던 새가 머리 위로 고꾸라졌다든가……?”
“하.”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인가.”
그 말에 채선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남자를 마주 보았다. 소질 없는 거짓말을 하느라 진땀을 뻘뻘 흘리던 그녀가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채선의 고개가 모로 기울었다.
“왜 말인 안 됩니까? 저한테는 꽤 자주 일어나는 일인데요?”
별안간 남자의 손을 힘주어 당긴 채선이 그것을 자신의 뒤통수로 가져갔다.
“뭐 하는 짓인가.”
남자의 목소리에 불쾌함이 섞였다. 하지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데 매몰된 채선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의 태도가 사뭇 당당했다.
“혹이 만져지시나요?”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손끝에 볼록한 혹 한 덩이가 걸리긴 했다. 남자의 손을 아래로 내린 채선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제 아침에 물을 길러 냇가에 갔는데, 저를 보고 놀라서 달아나던 노루의 뒷발에 차인 돌멩이가 제 정수리를 때렸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요. 그러니 떨어지는 열매에 맞는다든가, 나는 새가 곤두박질치는 일이라고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흠.”
남자는 어딘가 꺼림칙한 기색을 떨치지 못했다. 하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지 마뜩잖은 기색으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심 안도한 채선이 그런 그와 나란히 발을 맞추었다.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은 말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두 사람의 발소리와 간간이 들리는 조심하란 채선의 당부가 나른한 적막을 깼을 따름이었다. 따스한 봄 햇살이 두 사람의 어깨 위로 무작스럽게 쏟아졌다.
“손 씻을 물을 가져와라.”
집 안의 구조를 모두 파악한 남자가 채선의 손을 놓으며 두 손을 탁탁 털었다. 마치 더러운 걸 만졌다는 그 태도에 채선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하지만 천성이 남에게 모질지 못한 그녀였다.
결국 체념의 한숨을 흘린 채선이 터벅터벅, 부엌으로 걸어갔다.
“……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그런 그녀의 등 뒤로 남자의 시선이 쫓아왔다. 빛 한 점 없는 새카만 시선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눈동자가 채선의 흔적을 끈질기게 더듬었다.
잠시 후, 넓적한 옹기그릇을 든 채선이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옹기 안에 든 물이 찰랑거리며 춤을 추었다.
“어……?”
남자의 표정은 여전히 서늘했다. 늑장을 부렸다간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았다. 남자의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은 듯 보였고, 채선의 마음은 괜스레 급해졌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이 되는 것은 오로지 남자의 삐뚠 성정 때문이었다.
채선이 막 섬돌 위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여기, 물…….”
퍽.
쨍그랑.
“으악!”
“…….”
발을 헛디딘 채선이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본능적으로 바닥을 짚느라 들고 있던 옹기는 휙 하고 내던졌다. 그것은 수없이 넘어지고 깨지는 동안 채선이 터득한 최선의 방어였다. 무엇보다 다치지 않은 것이 가장 중요했다.
허공을 날아간 옹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죄, 죄송합니다. 아으으.”
채선이 무릎을 문지르며 쭈뼛쭈뼛 일어섰다. 졸지에 물벼락을 뒤집어쓴 남자가 말없이 싸늘하게 채선을 노려보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정확하고 살벌한 시선이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너였나 보군.”
“!”
그 목소리는 마치 깊은 우물 안에서 울려 퍼지듯 낮고 음산했다. 일순, 채선은 저승사자를 눈앞에서 마주한 양 그 자리에서 하얗게 굳어 버리고 말았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있던 남자는 당장이라도 채선의 명을 거둬갈 것처럼 스산한 기운을 내뿜었다.
멍하게 서 있는 그녀의 귓가로 남자의 서슬 퍼런 목소리가 채찍처럼 날아왔다.
“뭘 꾸물거리는 것인가. 내가 고뿔이라도 걸려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아? 앗, 예? 아닙니다. 지금 당장 닦을 것을 가져오겠습니다.”
채선이 다급하게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곧이어 우당탕 쿵쾅, 요란한 소리가 한낮의 고요를 깨웠다.
“으악!”
채선의 비명이 또 한 번 울려 퍼졌다. 지붕 위에 앉아 있던 참새가 놀라 도망을 갔고, 남자의 미간이 한층 더 좁아졌다. 그의 잇새로 혀 차는 소리가 비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