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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별이 뜨는 밤 (6)화 (6/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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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말만 한 처녀…….

    채선은 남자의 이마에 얹어 두었던 수건을 집었다. 차갑던 물수건은 어느새 미지근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수건을 다시 찬물에 집어넣으며 짧은 한숨을 뱉었다. 찰박찰박, 물소리가 방 안의 침묵을 흐트러뜨렸다. 

    “하아, 하아.”

    남자의 잇새에서는 쉴 새 없이 뜨거운 숨이 비어져 나왔다. 남자는 마치 그 자체로 불덩어리가 된 것 같았다. 죽은 듯이 정신을 잃었던 게 거짓말처럼 밤이 되자마자 온몸에서 열을 뿜어대더니, 급기야 근처에만 가도 홧홧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고열에 시달렸다.

    주르륵.

    수건을 꽉 짠 채선은 그것을 곱게 접어 도로 남자의 이마 위에 얹어 놓았다. 이번에도 차가운 기운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밤새 남자의 몸을 식히느라 쪽잠을 잔 채선이 눈 밑에 그늘을 드리운 채 고개를 들었다.

    밖은 어느새 하얗게 밝아 있었다. 졸음에 겨운 눈으로 멍하니 문을 응시하던 채선이 풋 하고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문밖을 어슬렁거리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한 탓이다.

    ‘당근 먹을래?’

    오늘 아침,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방문 앞만 지키는 흑마가 걱정되어 작년에 수확한 뒤 땅에 묻어두었던 당근을 꺼냈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킁킁 냄새를 맡던 흑마가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입에서 군침이 뚝뚝 떨어졌지만, 흑마는 고고한 표정으로 남자가 있는 방문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네 주인이 어지간히 걱정되나 보구나.”

    히잉.

    마치 채선의 혼잣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흑마가 대꾸를 했다. 

    “걱정 마. 안 잡아먹을 테니까.”

    채선이 나른한 미소를 흘렸다. 

    동물은 싫지 않았다. 사람처럼 대놓고 저를 꺼리지도 않았고, 쏟아붓는 애정만큼 신뢰로 보답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식물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정성을 기울인 만큼 결실을 보여 준다.

    가는 말이 고우나 오는 말이 곱지 않은 것은 오직 사람뿐이었다.

    채선이 씁쓸하게 입맛을 다실 때였다. 별안간 남자가 몸을 뒤척였다. 그의 이마 위에 얹혀 있던 물수건이 베개 위로 떨어졌다. 

    “뜨, 거워.”

    남자의 잇새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채선은 떨어진 수건을 주워 남자의 얼굴과 목덜미를 닦기 시작했다. 이 역시 처음은 아니었다. 남자는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한 번씩 열통을 호소하며 몸을 뒤치곤 했다.

    “하아.”

    그가 연신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남자의 미간이 일그러졌고 입매가 뒤틀렸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올린 남자가 자신의 눈두덩을 매만졌다.

    “뜨거워…….”

    채선은 찬물에 적신 수건을 남자의 눈 위에 올렸다. 찰나의 시원함에 반으로 접혀 있던 남자의 미간이 살짝 펴졌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아직 일렀다. 남자의 몸은 여전히 불덩이 같았고, 남자의 고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채선은 또 다른 수건에 찬물을 적셔 남자의 몸을 닦기 시작했다. 물수건이 지나간 길은 아주 잠깐 열기를 가라앉혔다가 금세 더 큰 화기를 뿜어댔다. 그러나 그녀는 쉬지 않고 남자의 몸을 닦았다. 

    히잉.

    문밖에서 마치 꾸지람 같은 흑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닫힌 방문을 힐긋거린 채선이 의기소침하게 중얼거렸다.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난데없이 상전이 두 명이나 생긴 기분이었다. 

    아이고, 내 팔자야.

    ***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던 채선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엄마?”

    무의식적으로 엄마를 불렀다. 터져 나오는 기침 탓에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건 엄마의 오랜 습관이었다. 채선은 눈을 뜨지 못한 채로 침상 근처에 있는 자리끼를 찾아 손을 더듬거렸다. 

    “!”

    그러다 문득,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섬광처럼 머리를 스쳤다. 아니나 다를까, 마른기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침묵이 사위를 둘러쌌다. 잊고 있던 상실감이 심장을 까맣게 뒤덮었다. 가슴 한구석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죽을 때까지 메꿔지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동공이다.

    “언니…….”

    마치 꿈을 꾸듯 몽롱한 목소리가 이선을 찾았다. 그녀는 이 너른 세상에 단 하나 남은 채선의 가족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선도 더 이상 그녀의 곁에 머물지 못했다. 

    짙은 외로움이 뼈에 사무쳤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한기가 스몄다. 채선은 본능적으로 무릎을 껴안으며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부스럭.

    그때, 바스락거리는 이불 소리가 채선의 의식을 잡아챘다. 점점 또렷해지는 시야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아, 맞다.”

    그제야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생각이 미쳤다. 남자는 꼬박 이틀을 앓았다. 고열과 오한을 반복하며 몇 번이나 저승 문턱을 들락거렸다. 

    금세 숨이 끊어질 것 같던 남자는, 그러나 매번 아슬아슬하게 이승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운이라면 운이었다.

    남자를 간호하는 일은 제법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덕분에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이제 막 엄마의 장례를 마친 채선은 남자를 간호하고 성질 사나운 흑마의 눈치를 살피느라 우울을 곱씹을 겨를이 없었다. 지금처럼 깜빡 잠이 들었을 때가 아니고서는.

    그건 참 고마운 일이었다.

    “어?”

    무의식적으로 물수건을 갈기 위해 손을 뻗던 채선이 일순 움직임을 멈췄다. 삐걱거리는 시선이 남자를 향했다.

    분명 상처가 요에 닿을까 봐 모로 뉘어 두었는데?

    깜빡. 깜빡.

    남자가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정신이……!”

    이윽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선이 참았던 숨을 터뜨리며 남자의 곁으로 바짝 다가가 앉았다. 질문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괜찮으세요? 정신이 좀 드시나요? 여기가 어딘지는 아시겠어요? 아니, 그 전에 본인이 누군지는……?”

    그러나 남자는 채선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눈만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채선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운 빛을 띠었다. 

    “많이…… 아프신가요? 말도 못 할 만큼 많이 아프세요?”

    이윽고 남자의 고개가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감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남자의 눈매가 제법 매서웠다. 저도 모르게 멈칫한 채선은 그런 스스로의 모습이 멋쩍어 코끝을 찡긋거리고 말았다.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으로 채선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길어지는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채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정말 다행이…….”

    “누군가.”

    미처 채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싹둑, 그녀의 말을 잘랐다. 부르튼 입술 사이로 사포처럼 거친 목소리가 비어져 나왔다.

    “들어 본 적 없는 목소린데.”

    잠깐 머뭇거린 채선이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기억 안 나십니까? 정신을 잃은 채로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흑마의 등에 업혀서요.”

    “하.”

    불현듯, 남자의 표정이 스산하게 변했다. 그제야 저간의 일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기억을 곱씹는 남자의 입술 끝에 싸늘한 조소가 걸렸다. 

    채선은 흠칫, 또다시 어깨를 움츠리며 상체를 뒤로 물렸다. 굶주린 맹수와 한 방에 있는 듯한 본능적인 위기감이 심장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어금니를 꽉 깨문 남자가 반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 그놈이.”

    아니, 그것은 혼잣말이라기보다는 효후에 가까웠다. 사냥감의 목을 물어뜯기 전에 내뱉는 맹수의 사나운 으르렁거림.

    “그놈이 감히 내 뒤통수를.”

    거기까지 말하던 남자가 으득, 이를 갈았다. 그러다 문득 미간을 찌푸리며 채선을 돌아보았다. 그의 잇새로 마뜩잖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전에 불부터 밝혀라. 언제까지 캄캄한 곳에서 수다를 떨 것인가.”

    “예?”

    난데없는 남자의 말에 채선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불을…… 밝히라구요?”

    채선의 멍청한 물음에 남자의 미간이 한층 더 좁아졌다. 몸을 뒤척이던 남자는 상처가 벌어졌는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흡, 하고 나지막한 숨을 들이켰다. 

    “빌어먹을.”

    옷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저열한 욕설을 뇌까린 남자가 날카로운 눈매로 채선을 응시했다. 하지만 멍하니 방문을 바라보고 있던 채선은 미처 남자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채선의 눈동자가 서서히 벌어졌다. 

    그녀의 잇새로 망연한 물음이 흘러나왔다.

    “안…… 보이십니까?”

    “안 보이니 불을 밝히라는 것이지, 내가 환한 대낮에 불을 밝히라고 할 천치로 보이더냐.”

    기어코 남자가 혀를 찼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채선이 어지간히 답답한 모양이었다. 남자의 인내심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가 문밖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여봐라, 다른 이를 들라 하라!”

    “……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없다?”

    남자의 입매가 위험하게 뒤틀렸다. 반쯤 생각에 잠긴 채선이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건성으로 대꾸했다.

    “산중에 있는 외딴집인데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이라곤 저 하나뿐입니다. 그러니 달리 시중을 들 만한 이가 없습니다.”

    “말만 한 처녀가 산속 외딴집에서 혼자 산다?”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더 의심스러운 빛을 띠었다. 그러나 채선은 남자의 다른 말에 꽂혀 있었다. 

    “말만 한 처녀…….”

    문밖의 흑마를 힐긋거린 채선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뜨렸다.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었던 탓이다. 생각할수록 칭찬보다는 욕에 가까운 느낌이 들었지만, 어쩌면 기분 탓인지도 모른다. 

    채선이 풀 죽은 얼굴로 뒷말을 덧붙였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닷새 전에 돌아가셨지만요.”

    “……그런가.”

    일순, 남자의 목소리가 난감한 빛을 띤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역시 기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남자가 또 한 번 불쾌하게 혀를 찼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는 대체 몇 번을 말해야 불을 밝힐 것이냐. 산중에 산다더니, 그깟 초 하나 살 돈도 없이 가난한 집이더냐?”

    남자의 말투가 변했다. 격식을 갖춘 하대가 빈정거리는 하대로 바뀌었다. 하지만 채선을 당혹 시킨 것은 그의 말투가 아니었다.

    “가난하긴 가난한데……. 아니, 그보다…….”

    채선은 초췌한 낯빛을 하고 있는 거만한 남자와 그 너머에 있는 방문에 차례로 시선을 주었다. 그녀의 갈색 눈동자가 혼란스러운 빛을 띠었다. 

    방문 너머에서는 한낮의 햇살이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마침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 채선의 입에서 뒤늦은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맙소사!”

    ***

    “정말 의원을 부르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채선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남자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채선은 다시 한번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을 힐긋거렸다. 

    찢기고 헤진 탓에 넝마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색 비단의 고급스러움은 감춰지진 않았다. 은사로 수놓아진 범 문양도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게다가 남자는 하대가 자연스러웠다.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하대를 한다는 건 그만큼 신분이 높다는 의미일 것이다.

    “혹시 이대로 실명이라도 되시면…….”

    채선이 남자의 눈치를 살피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최악의 상황을 떠올린 남자가 무섭도록 싸늘한 표정을 짓더니 한참 만에야 입을 뗐다.

    “검 날에 독이라도 바른 모양이군.”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라는 표정으로 채선이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검에 등을 베었는데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을 이유가 그것 말고는 없었다. 독이 혈류를 타고 올라가 안구에 당도한 것이다.

    “허나.”

    그때, 남자가 입매를 비틀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에 채선은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남자의 입술이 열렸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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