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개의 별이 뜨는 밤 (4)화 (4/131)
  • 16643784873956.jpg

    4

    이선이는 네가 없으면…….

    언니라 부르라는 어미의 당부도 잊고 채선이 그녀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채선의 눈썹이 일그러졌고 숨이 거칠어졌다. 하지만 이선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야.”

    “기회? 무슨 기회?”

    “그럼 나보고 죽을 때까지 이 적막한 산속에서 처박혀서 살라는 말이야?”

    “언니…….”

    이선의 쌀쌀맞은 대꾸에 채선은 망연자실한 얼굴을 했다. 이선의 잇새로 칼처럼 단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차피 나이가 들면 사라질 미모인데,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게 뭐가 나쁘니? 네 말마따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하의 광무대군이야. 그 궁에 들어가기만 하면 평생 손에 쥐어보지 못한 권력과 부가 절로 따라올 거라고. 그런데 넝쿨째 굴러들어온 호박을 내 발로 차 버리란 말이야? 그럴 순 없지.”

    “하지만…….”

    채선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은 입 안에서만 맴돌 뿐 쉽사리 입술을 비집고 나오지 못했다. 이선은 이미 결심을 굳힌 듯 보였다. 그녀가 흐트러짐 없는 표정으로 채선을 응시했다. 

    채선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젓다가 기어이 참았던 말을 터뜨렸다.

    “아니야, 안 돼! 광무대군에게 부인이 몇 명이나 있는 줄 알아? 설령 그분이 지금은 언니에게 푹 빠져 있다고 해. 그 마음이 언제까지 가는데? 광무대군의 마음이 변하면 언니는 어떻게 될 것 같으냔 말이야. 날고 기는 여인들 틈에서 무탈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러지 말고 차라리 약방 주인에게…….”

    “약방 주인이라니.”

    이선이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녀가 곧게 뻗은 눈썹을 찌푸리며 채선을 노려보았다.

    “코딱지만 한 마을 약방 주인에 만족하라고? 그럴 거였으면 진작 아무 남자나 잡아서 시집을 갔겠지. 그자가 신분이 높기를 하니, 아니면 돈이 썩어 넘칠 정도로 많기를 하니? 그것도 아니면 잘생기기나 했니? 게다가 그자는.”

    잠깐 말을 멈춘 이선이 지금까지의 단호한 태도와 달리 한풀 수그러든 기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네게 함부로 대하잖아. 누가 모를 줄 알고? 그런 자는 한 수레를 가져다준다고 해도 싫단 말이야.”

    “언니…….”

    “그리고 네 말처럼 설령 광무대군의 마음이 변한다고 해도.”

    이선이 다시 한번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표정이 차갑게 일변했다. 채선은 저도 모르게 움찔 어깨를 떨었다. 이선의 눈동자에 이채가 번득였다고 생각한 순간, 그녀의 잇새로 조소가 비어져 나왔다.

    “죽는 날까지 뒷방에 처박혀 지낸다고 해도, 그래도 말이야, 채선아.”

    이선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까만 눈동자로 채선을 직시했다. 

    “지금보다는 낫지 않겠니? 약초를 캐러 험한 산길을 오를 필요도 없고,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하느라 손이 부르틀 필요도 없고, 졸린 눈 비비며 삯바느질을 하느라 바늘에 손가락이 찔릴 필요도 없고. 적어도 지금보다는 편하겠지.”

    “내가 할게!”

    채선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자신의 두 손으로 이선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기분 탓인지 제 손이 덜덜 떨리는 것 같았다.

    “언니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약초를 캐는 것도, 얼음물에서 하는 빨래도, 삯바느질도 다 내가 할게. 언니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돼. 그러니까!”

    “채선아.”

    “응? 왜?”

    이선의 담담한 부름에 채선이 하던 말을 멈추고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불길한 예감이 뱀처럼 스멀스멀, 발밑을 기어 다녔다. 그리고 채선은 안 좋은 예감일수록 적중률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선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속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네가 뭐라고 하든 난 이미 마음을 정했어. 그곳이 얼마나 치열한 곳이든 이 구질구질한 집구석보다는 낫지 않겠니?” 

    “언니.”

    “그들이 사흘 뒤에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어. 그 전까지 정리할 게 있으면 정리해 두라고 하더구나. 그러니 나는 이만 가서 짐이나 챙겨야겠다. 뭐, 이 집에서 가져갈 짐 같은 게 있다면 말이지만.”

    반쯤 자조 섞인 말을 던진 이선이 할 말은 그것으로 끝이라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채선은 방문이 닫히고 나서야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채선의 눈동자에 금세 닭똥 같은 눈물이 차올랐다.

    “누가 모를 줄 알아…….” 

    아무도 없는 방 안에 채선의 고요한 혼잣말만이 주인을 찾지 못하고 맥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기어코 채선의 눈물샘이 터졌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랑 엄마 때문이잖아. 엄마 약값 때문에 언니가 팔려 가는 거잖아…….”

    죄책감에 짓눌린 채선은 날이 저물고 방 안이 어두컴컴해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은 오직 어둠뿐이었다. 

    ***

    채선은 제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거기 있었다. 바닥을 짐작할 수 없는 계곡은 마치 검은 아가리를 벌린 괴물처럼 보였다. 단숨에 채선을 집어삼킬 것 같은 괴물.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다. 흰색 치마가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나부꼈다. 흩날리는 치맛자락을 따라 시야가 하얘졌다가 까매지기를 반복했다. 

    표정 없는 얼굴이 무심한 듯 절벽 아래를 응시했다. 휘잉, 휭, 거센 바람이 소용돌이를 그리며 용솟음쳤다. 

    한 발.

    한 발만 내디디면 벼랑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거리, 단 한 걸음.

    죽고 싶은 건 아니었다. 자신의 분신과 같던 이선이 떠나고,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지내던 엄마마저 세상을 등졌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저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서 끝없이 후회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엄마…….”

    살짝 입술을 달싹였을 뿐인데 기다렸다는 듯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뜨거운 궤적이 채 마르기도 전에 새로운 눈물이 그 흔적을 덮었다. 

    채선은 작은 흐느낌도 없이 고요한 울음을 터뜨렸다. 사흘 내도록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는데, 여태 남아 있는 눈물이 있다는 게 마냥 신기했다.

    “엄마, 미안해요.”

    채선은 검은 공동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손님 하나 없는 초라한 장례였다. 죽은 이를 안타까워하는 이도, 남은 이를 위로하는 이도 없는 쓸쓸한 초상이었다. 

    “이선이가…… 언니가 있었다면 달랐을 텐데. 마지막 가는 길, 외롭지 않게 배웅했을 텐데…… 정말 미안해요, 엄마.”

    쓴 풀을 베어 문 것 같은 목소리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불현듯, 커다란 상실감이 그녀를 집어삼켰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것 같은 막막함과 쓰라릴 정도로 아픈 고독함이 그녀를 휘감았다.

    “언니가 안 왔다고 너무 원망하지는 마요. 그래도 언니 덕분에 약값 걱정 안 하고, 간간이 고깃국까지 먹을 수 있었으니까. 아마 올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언니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어야 할 텐데.”

    채선은 아득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곳을 떠나던 이선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깨끗하게 빨아 입은 저고리와 치마는 낡고 남루했지만, 이선의 미모는 조금도 빛이 바래지 않았다. 차마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던 채선은 광무대군의 사람들이 도착하기 직전, 약초 바구니를 매고 산을 올랐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고급스러운 가마가 산길을 오르는 게 보였다. 행렬은 채선의 예상보다 훨씬 더 화려했다. 

    말을 탄 이들이 선두에 섰고, 그 뒤로 가마 끄는 하인과 이선의 수발을 들 하녀가 일렬로 쭉 줄이어 올라오고 있었다. 검을 찬 무사들도 언뜻언뜻 그녀의 시야를 파고들었다.

    채선은 오래된 은행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서 자신의 집을 내려다보았다. 마당으로 내려선 이선이 하녀의 안내를 따라 가마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가마에 몸을 싣기 직전, 이선이 그 자리에서 주위를 둘러봤다. 마치 채선을 찾는 것처럼.

    채선은 서둘러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이윽고 이선이 가마에 올랐고, 멈췄던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채선은 어금니를 꽉 깨물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이선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가지 말라며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니…….”

    울컥, 치솟아 오르는 감정을 삼키려는 듯 채선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선명하게 눈앞을 물들이던 이선의 잔상이 사라지고 초췌한 어미의 얼굴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어미가 채선의 손을 잡았다. 

    “채선아.”

    바싹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은 희미한 온기조차 없어 채선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었다. 순식간에 차오른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채선의 속눈썹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엄마. 조금만 버텨 보세요. 언니한테 사람을 보냈으니까…… 언니 얼굴은 보셔야죠. 아마 지금쯤이면 산기슭을 올라오고 있을걸요? 그러니까 조금만, 응.”

    “채선아.”

    “엄마.”

    자신의 목소리가 덜덜 떨린다는 걸 눈치챈 채선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왠지 울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 울음을 터뜨리면 불길한 상상이 현실이 될 것만 같았다. 이선에게 이곳을 떠나겠다는 말을 들었던 그 날처럼.

    채선은 떨림을 멈추려는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미가 손가락에 힘을 주어 채선의 손을 맞잡았다. 어린아이만큼이나 약한 힘이었다. 

    어미의 잇새로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채선은 눈물을 글썽이며 작디작은 그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이선이를, 잘 부탁한다. 너보다…… 쿨럭, 쿨럭, 이선이가 걱정이구나.”

    “언니는 잘 먹고 잘사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마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벌써 광무대군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대요. 그러니 언니 걱정은 마요. 그보다 엄마나…….”

    “그게 아니란다.”

    엄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것 같았다. 실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지만 미약하게 까딱거리는 고갯짓을 보고 그런 게 아닐까, 짐작했다.

    “이선이는 네가 없으면…….”

    거기서 잠깐 말을 끊은 엄마가 힘없이 늘어진 손을 품속으로 가져갔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팔을 따라 채선의 눈동자가 덩달아 흔들렸다. 

    잠시 후, 어미가 다시 채선의 손을 잡았다. 손바닥에 와 닿는 딱딱한 느낌에 그녀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노리개.

    그것은 모란 문양의 은패 아래 붉은 술이 달려 있는 노리개였다. 

    일순, 채선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것은 제 어미가 지니고 있기에는 지나치게 고급스러운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장신구에 문외한인 채선이 보기에도 모란을 조각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게 뭐예요?”

    채선의 물음이 어미를 향한 바로 그 순간. 

    툭. 

    마지막 힘을 다한 듯 어미의 고개가 힘없이 떨어졌다. 

    “엄…… 마?”

    채선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어미의 어깨를 흔들었다. 뼈밖에 남지 않은 가냘픈 몸이 맥없이 흔들렸다.

    “엄마.”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끼이잉, 낯선 이명이 귓속을 가득 채웠다. 퍼석퍼석한 손이 채선의 손아귀에서 스르르 빠져나갔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채선의 잇새에서 송곳처럼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엄마아아!”

    까악.

    어디선가 까마귀가 날아올랐다.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채선이 감은 눈을 천천히 떴다. 눈앞에는 여전히 푸른 하늘과 까마득한 벼랑이 놓여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