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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별이 뜨는 밤 (2)화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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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매사에 채선을 다하자.

“얼른 가자. 오늘은 마을에도 다녀와야 하니까 꾸물거릴 시간이 없어.”

“……알았어.”

타박타박, 이선의 뒤를 따라 걷던 채선이 음울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고, 마른하늘에서도 날벼락을 맞으며, 두부를 먹다가도 뼈가 나오곤 했다. 

이선과 나란히 걸어도 개똥을 밟는 건 꼭 그녀였고, 같이 약초를 캐다가도 성난 뱀에게 쫓기는 건 늘 채선의 몫이었다.

예전에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 하며 우울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것도 어디 한두 번이라야지. 지금은 그냥 무덤덤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아주 당연한 일상.

슬프구나.

채선이 침울하게 어깨를 늘어뜨리며 이선을 살짝 흘겨봤다.

“옛말에, 태어나서 한 번도 새똥을 맞아본 적 없는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어.”

반대로, 이선은 무척 운이 좋았다. 계란을 깨면 백발백중 쌍란이었고, 만에 하나 엎어지더라도 땅에 떨어진 돈을 주우며 일어났다. 이선이 외출할 때면 오던 비도 뚝 그쳤고, 얼굴까지 아름다워 남몰래 그녀를 흠모하는 사내가 한 수레는 되었다. 

네 운이 모두 내게로 왔나 봐.

언젠가 이선이 반쯤 농담처럼, 또 반쯤은 미안한 마음을 담아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채선은 이선이라도 운이 좋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 모두 운이 나쁜 것보다야 한 사람이라도 좋은 게 낫지 않은가. 그리고 이왕이면 둘 중 운이 나쁜 사람이 저라는 사실 또한 다행이었다.

“다 왔네.”

앞서 걷던 이선이 산자락에 위치한 옹색한 집을 보며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채선도 마지막 걸음을 서둘렀다. 

이선이 툇마루 위에 바구니를 내려두었고, 채선도 어깨에 메고 있던 바구니를 벗었다. 능이버섯 향이 두 사람 주위를 은은하게 떠돌았다. 

“언니 덕분에 능이버섯 군락지를 발견해서 다행이야. 잘 말리면 비싸게 팔 수 있을 거야.”

“내 덕은 무슨. 그냥 운이 좋았던 거지. 길을 잘못 들었는데 마침 거기가 능이버섯 자생지일 줄 누가 알았겠니?”

“응.”

역시 운 좋은 사람은 다르다며, 채선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방 안으로 들어가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나왔다. 삯바느질을 한 옷감이 들어 있는 보따리였다.

툇마루에 앉아 잠시 한숨을 돌리던 이선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마을에 가려고?”

“응. 오늘까지 박씨 아저씨한테 갖다줘야 하잖아.”

“하지만…….”

무슨 말인가 하려던 이선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뒷말을 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선은 그녀가 삼킨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문득, 채선의 눈매가 씁쓸한 빛을 띠었다. 

사실 채선은 산 아랫마을에 가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을 사람들과 만나는 걸 꺼렸다.

채선의 불운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고, 반복되는 불운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녀를 꺼림칙하게 여겼다. 멀리서 그녀의 그림자만 보여도 휑하니 꽁무니를 감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놓고 역신이라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을 채선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아니, 날 선 시선은 누구보다 당사자가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법이다. 

“됐어. 마을에 다녀오는 건 내 일이잖아. 그거 이리 주고 넌 능이버섯이나 잘 말려 놔.”

이선이 빙긋 웃는 얼굴로 두 손을 내밀었다. 채선은 그런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무리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르다고 해도 이선은 채선의 쌍둥이 언니였고, 세상 누구보다 채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싫어.”

“응?”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채선의 모습에 이선이 당황한 표정으로 두 눈을 크게 떴다. 채선의 동그란 눈망울이 아래로 축 처졌다. 그 사이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언니, 아까 산에서 내려오면서 발목 삐끗했잖아. 그런 발로 어떻게 산 아랫마을까지 갔다 온다는 거야. 내가 갈 거야.”

“아…….”

생각지도 못한 채선의 말에 이선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이선이 그런 것처럼 채선 역시 그녀에 대해 세상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진실까지도. 

금세 이선이 입가에 미소가 돌아왔다.

“괜찮아. 네 말대로 그냥 살짝 삐끗한 거야. 마을까지 다녀오는 건 아무 문제없어.”

채선은 시무룩한 눈으로 툇마루에 앉아 있는 자신의 쌍둥이 언니를 내려다보았다. 저보다 겨우 일각 먼저 태어난 이선은 명색이 언니라고 손윗사람 행세를 단단히 했다. 다시 말해, 참는 데 능하다는 뜻이었다.

채선이 다시 한번 고개를 저으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러다 덧나면 어쩌려고 그래? 대수롭지 않다고 방심하다가 더 큰 병이 되는 걸 왜 몰라? 게다가 나도 박씨 아저씨 댁 정도는 다녀올 수 있다고. 박씨 아저씨 집은 마을 끄트머리에 있잖아. 그 정도야 누워서 떡 먹기지.”

“삯을 받으면 약방에 들러서 어머니 약도 사 와야 하는데?”

“아, 맞다. 약방…….”

어깨를 펴고 잘난 체를 하던 채선이 금세 기세를 잃고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그제야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약방의 위치가 떠올랐던 것이다. 

한참 후에야 채선의 잇새로 의기소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약방에도 갈 수…… 있어.”

아마도, 라는 말은 목구멍 너머로 꿀꺽 삼켜 버렸다. 그러나 제가 그랬던 것처럼 이선 역시 그녀가 하지 않은 뒷말을 대번에 눈치챘을 것이다.

“네가 마을에 가면 분명 비가 올 텐데?”

“윽.”

예상치 못한 공격에 채선이 할 말을 잃은 얼굴로 입술을 삐죽였다. 성큼성큼 걸어간 채선이 부엌 입구에 걸어 놓은 우장을 챙겨 들었다.

“나, 나도 알아! 그러잖아도 방금 비옷 챙기려고 했어!”

“아하하.”

이선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찔끔 흐른 눈물을 닦은 그녀가 같은 나이의 동생을 어린아이 보듯 다정하게 쳐다보았다. 

“마을 사람들 눈은 옹이구멍인가 봐. 이렇게 어설프고 귀여운 너를 백안시하다니 말이야. 그래도 걱정하지 마, 채선아. 분명, 머지않아 네 매력에 풍덩 빠져서 허우적거릴 눈 높은 사내가 나타날 테니까. 그땐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내를 꽉 붙잡아야 한다, 알았지?”

“누, 누가 연애 같은 거 할까 봐? 나는 평생 엄마랑 언니랑 같이 살 거라고!”

채선이 목덜미까지 빨개진 얼굴로 왈칵 소리를 질렀다. 

“풉, 푸흐흐.”

웃음을 참으려다 실패한 이선이 채선의 날카로운 눈총을 받고는 휘적휘적 손을 저었다.

“나는 너랑 평생 같이 살 생각 없는데?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가 나타나면 냅다 시집가 버릴 거야.”

“칫, 배신자.”

채선이 이선을 향해 눈을 흘겼다. 이선은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시침을 떼며 부드럽게 웃었다.

“채선아,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했어. 네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들 말 같은 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

“언니는 험담을 안 들어 봐서 몰라. 험담이라는 건 한쪽 귀로 들어와서 계속 뱅글뱅글 맴돌지, 절대 다른 쪽 귀로 빠져나가는 법이 없단 말이야.”

“그럼 마을에는 내가 다녀올까?”

“……아니. 내가 갈래.”

채선이 고집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매서운 험담에 상처받는다 한들 이선보다 중요하지는 않았다.

“못 들은 척 앞만 보고 걸을게.”

“좋아. 씩씩하다, 우리 채선이.”

“내가 뭐 아직도 일곱 살 난 앤 줄 알아? 그 말투는 뭐야?”

“아하하, 미안, 미안.” 

건성으로 사과한 이선이 동그랗게 굽은 눈으로 채선을 보았다.

“채선아, 어머니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던 말 기억해?”

“그럼, 당연하지.”

채선이 그걸 어찌 잊을 수 있겠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한 손을 높이 치켜들고 우렁차게 외쳤다.

“매사에 채선을 다하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잘했다는 듯 이선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박수를 쳤다. 짝짝짝, 여린 손뼉 소리가 채선의 발치를 맴돌았다.

“그럼 나 대신 마을에 좀 다녀와 줄래? 삯바느질 한 돈과 말린 약초를 주면 사흘 치 약은 살 수 있을 거야.”

“맡겨 둬. 언니는 괜히 수선 떨며 움직이지 말고 따뜻한 천으로 발목 찜질이나 하고 있어. 절대 무리하면 안 돼.”

“그보다 빨래 먼저 걷어야겠는걸? 우리 채선이가 장에 가는 걸 보니 분명 장대비가 쏟아질 테니까.”

“언니!”

“아하하. 알았어,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

“응!”

이선에게 눈을 부라리던 채선이 자신만만하게 대문을 나섰다. 그러나 그녀의 자신감이 사라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

“역신이다.”

“아이고, 오늘 하루는 재수가 없으려나 보다.”

“어쩜, 한배에서 나왔는데 제 언니랑 저렇게 다른지 모르겠어. 쯧쯧쯧.”

채선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동네 사람들의 험담이 그림자처럼 졸졸 쫓아왔다. 날카로운 비난은 가장 먼저 귀를 할퀴었고, 그다음으로 심장에 생채기를 냈으며, 마지막으로 정신을 갉아먹었다. 

채선의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었다. 그 순간.

“아, 맞아.”

걸음을 멈춘 채선이 의식적으로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봤다. 두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입술을 앙다물었다.

“언니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라고 했지.”

그녀는 뒤통수를 때리는 말들을 못 들은 척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을 만큼 심장이 쪼그라들었지만, 억지로 어깨를 펴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이 정도는 감수할 만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선이 시큰거리는 발을 끌고 여기까지 와야 했으니 채선에게는 투정도 사치였다.

“자, 사흘 치 약이다.”

약방 주인이 채선에게 새끼줄로 묶은 아홉 첩의 약을 건넸다. 약을 건네던 주인은 채선과 손가락이라도 닿을까 싶어 황급히 손을 거두었다. 

툭.

온전히 채선에게로 건너가지 못한 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큼.”

채선은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바닥에 떨어진 약을 주웠다. 익숙했지만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채선은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약방 주인을 향해 깍듯하게 머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크흠.”

약방 주인이 멋쩍은 표정을 감추려는 듯 또 한 번 헛기침을 했다. 그가 채선을 떠보듯 은근한 목소리를 던졌다.

“그런데 오늘은 왜 이선이가 아니라 네가 왔느냐? 혹 이선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했느냐?”

약방 주인의 물음에 채선은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채선보다 대여섯 살 많은 그는 3대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약방 주인의 손자였다. 재작년 즈음부터 약방 일을 돕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혼자서 가게를 꾸려가는 모양이었다. 

“언니가 발목을 삐끗해서요.”

“뭐? 이선이 발목을 다쳤다고? 이런! 왜 진작 그 이야기부터 하지 않았느냐!”

채선의 말에 두 눈을 홉뜬 약방 주인이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이내 허둥지둥 부산스레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 이선이가, 우리 이선이가!”

잠시 후, 약방 주인이 채선에게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무엇이냐는 듯 채선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뼈를 접질린 데 효과가 좋은 약이다. 하룻밤만 붙여두어라. 내일이면 깨끗하게 나을 것이다.”

“하지만 돈이…….”

“이선이가 아프다는 데 내가 돈을 달라고 하겠느냐? 나는 그렇게 배포 작은 남자가 아니다.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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