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저기, 크렘 님?”
“선생님! 제게도 질문이 있습니다!”
내가 말을 붙이자마자 크렘이 선생님을 불렀다.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나와의 대화를 피하고 싶다는 태도였다.
그야 내 손이 스치기만 해도 눈이 빨갛게 변할 테니, 그걸 숨기고 싶어서 저러는 거라면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저도요!”
나는 질세라 두 팔을 높이 들었다.
나와 크렘의 러브 콜을 동시에 받은 선생님이 눈을 껌뻑거렸다.
“질문이 있다고요?”
에클레어와의 용건을 마친 선생님이 나와 크렘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먼저 선생님을 부른 건 크렘이었기에 나는 그쪽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크렘이 불편해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헛기침을 했다.
“크흠. 저, 기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사?
나는 크렘의 질문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당장 생각해 봐도 원작 『하루만 못생기고 싶다』의 크렘은 검술과 별 연이 없었다. 검을 쥐어본 적도 없을 것 같은 고운 손의 소유자라는 묘사도 있었으니까.
아니, 나와의 대화를 피하기 위해 아무 질문이나 꺼낸 걸지도.
뒤늦게 그런 가능성을 떠올리며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선생님조차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 커스터드 학교는 커스터드 영지에 있는 사립학교로서, 물론 커스터드 자작가의 소유였다.
그러니 크렘, 풀네임 크렘 브륄레 커스터드는 선생님에게 아마 이사장의 조카 정도 되는 지위일 것이다.
당연히 크렘이나 그의 가족과도 면식이 있을 법했다.
그런데도 이런 태도라면 역시, 크렘이 검술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는 뜻이겠지.
“기사가 되려는 겁니까?”
역시나 선생님은 그렇게 말문을 뗐다.
훅 들어온 반문에 크렘이 반응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괜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한 듯 곧바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커스터드 검술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게 좋겠죠. 거기서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의 실력이면 황실 기사단이나 제국 기사단에 들어가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황실 기사단은 아펠을 포함한 황족의 호위를, 제국 기사단은 아빠가 있는 변방 주변에서 국경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기사단을 말하는 것이었다.
어느 쪽이든 나와 관련 있는 기사단이었기에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실제로 얼마 전에 어린 나이로 대회 우승을 차지한 오크로시카 후작가의 영식을 황실 기사단에서 눈여겨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선생님이 마저 설명했다. 어딘가 들어본 듯한 성씨인 것 같아서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크로시카 후작가요?”
“예. 지금 4학년에 재학 중인 크바스 님 말입니다.”
괜히 물어봤군.
듣고 싶지 않았던 이름을 듣고 찜찜해져 입맛을 다셨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크렘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기사 작위는요?”
“그 정도쯤이야 기사 수련회에 나갈 수 있을 정도라면 괜찮을 겁니다. 조건이 되면 수련회 참가 신청서를 써보세요. 검술 대회 1회전 통과 경력이 있어야 합니다.”
“…….”
크렘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표정이 침울한 것이, 아무래도 진심으로 기사를 노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는 대답해 줘서 감사하다며 예를 표하고 도로 수련용 허수아비 앞에 섰다.
나는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사정은 모르겠지만 더 이상 말을 걸기 힘든 분위기였다.
“크레페 님은 무슨 질문입니까?”
“네?! 아, 아니…….”
예상치 못한 물음에 몸을 파드닥거렸다.
나는 그냥 쉬는 시간이고 수업 시간이고 할 것 없이 날 피하고 있는 크렘에게 말을 붙여보고 싶었던 것뿐이니까.
그때 내 품에 넣어둔 손수건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걸 주워 들다가 문득 생각이 나 물었다.
“검술 대회에서 마법 물품을 사용할 수 있나요?”
“아, 마법 물품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미리 신청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신청서를 작성한 사람끼리 대전을 하죠. 토너먼트에서 마법 물품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과 만나게 되면 시합 전에 물품 사용을 허용할 것인지 불허할 것인지 추첨을 하고요.”
마법을 사용해 검술 시합을 하는 게 가능하다는 말이렷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마른침이 넘어갔다.
나는 검술에 집중하고 있는 크렘을 쳐다보며 손수건을 꽉 쥐었다.
쉬는 시간에도, 수업 시간에도 날 피한다면 다른 접점을 노려보는 수밖에.
* * *
“검술 대회에 나가겠다고? 네가?”
“응!”
그러잖아도 심각하던 에클레어의 표정이 한 층더 괴상해졌다.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하고서 책상에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책들을 둘러보았다.
에클레어는 나를 차마 말리지도, 응원하지도 못하고 어리벙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그냥 출전에 의의를 두려는 거니까.”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카눌레라면 누가 걱정 같은 걸 했겠느냐며 펄쩍 뛰었겠지만 에클레어는 그보다 침착했다.
“네가 출전을? 왜? 무슨 의의?”
그녀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 보여서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절대 못 할 거라고 으스대는 것과는 다른 얄미움이었다.
아니, 날 걱정해서 그러는 거겠지.
나는 그녀의 반응을 좋게 생각하려 애쓰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냥 이것저것 경험해 보면 좋잖아. 어차피 시합 때 마법 물품을 쓸 수도 있다고 하고…….”
“너네 집에 돈 많아?”
이 발언은 또 뭐냐.
순간 비꼬는 건가 싶어서 울컥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표정은 진지하면서도 순수했다.
하긴 공작가에 비교하면 우리 백작가는 중산층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비꼬는 것 같진 않았기에 한 번 더 참기로 했다.
“마탑에서 배운 게 있으니 직접 만들어보려구.”
“중간고사는? 포기했어?”
“…….”
악의 없는 공격이라는 게 이런 걸까.
연속된 반문에 드디어 말문이 막혔다.
내 입장에서야 성적에 대해 별걱정이 없었지만, 사정을 모르는 에클레어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할 의문이었다.
우선 검술 대회보다 중간고사 일정이 먼저 있었으니까.
당장 내 책상 위에 펼쳐진 책들 중에서도 시험공부에 대한 내용보다 마법진에 대한 내용이 훨씬 많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지.
“검술은 왜 배우려고 하는 건데? 선생님도 힘들면 몇 년 후에 배우라고 그러셨잖아.”
에클레어의 끊임없는 질문에 나는 입술을 비죽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에클레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혼자 머리를 굴렸다. 아무래도 에클레어는 내 사정을 모르는 척 넘어가 줄 만한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
결국 한숨을 내쉰 내가 입을 열었다.
“카눌레 오빠가 검술 잘한다고 뻐기는 것 좀 그만 보고 싶어서. 눈 색 얘기 때문에 크렘 님이랑 어색해진 것도 좀 풀면 좋겠고, 아빠랑 엄마, 두 분 다 검술을 잘했으니까 나도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구.”
사실 제일 중요한 이유는 크렘이 이번 검술 대회에 참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지만, 나는 어떻게든 에클레어가 납득할 만한 이야기를 갖다 붙이며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았다.
게다가 경험상 그녀는 내가 엄마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약해지곤 했다. 이렇게 말해 두면 더 이상 내 말에 꼬투리를 잡진 않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에클레어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크렘한테 반했어?”
“…….”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거지?
순간 벙찌는 기분에 입술을 뻐끔거렸다.
* * *
“그럼 대회 참가 희망자만 남고 나머지 분들은 돌아가 주십시오.”
접수처에서 대회 신청서를 작성하는 날이었다.
나는 수면 부족으로 뻐근해진 눈을 비비며 운동장 구석에 나가섰다.
“…다 죽어가네.”
에클레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밤새 계산과 자수 따위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 모습을 제일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괜찮아?”
그녀가 턱짓으로 내 손을 가리켰다.
나는 아펠에게서 받은 팔찌를 덮을 겸 손수건을 손목에 묶어놨는데, 아무래도 마법진을 완성했냐는 의미로 물어본 것 같았다.
“응. 헤헤, 보여줄까?”
나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왼쪽 손목의 손수건을 오른손으로 덮어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젤라토가 만들어줬던 손수건은 무슨 마법을 쓰든지 효율이 별로 좋지 않았다.
에클레어를 밀쳐내려던 것이 휴대용 선풍기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그친 게 그 예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 손수건은,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선언한 그날부터 매달려 오늘 완성한 2호 마법진이었다.
잠시 기다리자 찌뿌둥했던 몸을 감싸고 있던 마나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물론 겉보기로는 달라진 게 없었기에 에클레어는 고개만 갸우뚱하고 말았다.
나는 그 무덤덤한 반응에 오히려 다음 상황이 더 기대됐다.
놀라게 해줘야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무릎을 굽혔다. 나도 이렇게 테스트를 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대로 뛰어오르면 얼마나 높이 점프할 수 있을까?
1미터? 2미터?
하지만 내가 한 마리 참치처럼 파득거리려는 순간, 에클레어가 내 손목을 낚아챘다.
“보여주긴 뭘 보여줘! 상처가 괜찮냐고!”
“아.”
무릎을 다 펴기도 전에 에클레어 쪽으로 휙 끌려갔다.
내가 얼떨떨해하는 사이, 그녀는 바늘에 찔린 자국이 남은 내 손끝을 이리저리 살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가만히 놔둘 수가 없다. 너 맨날 늦게 자고 그러면 키 안 커!”
그런 반응은 내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대놓고 절친 노릇을 하기에는 다소 민망하기도 했고, 은근히 데면데면하기도 했기에 나는 멀뚱히 눈만 깜빡이다가 물었다.
“걱정해 주는 거야?”
“그럼 안 돼? 키도 작달막한 애가 맨날 잠도 안 자고 있는데.”
에클레어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눈매는 사나웠고 도자기 같은 피부는 차갑게 보였지만, 그건 원작에서 읽었던 것처럼 표독스러운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고, 고마워.”
바지 자락을 움켜쥐며 대답했다.
“다음 분! 신청서 작성해 주세요!”
타이밍 좋게 접수처의 선생님이 손을 흔들었다.
선생님이 말하는 다음 사람은 나였다. 에클레어가 내 등을 떠밀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크렘이랑 잘해 봐.”
“아니, 크렘 님은……!”
“다음 분!”
나는 차마 말을 맺지 못하고 접수처에 가서 섰다. 그리고 신청서를 작성하는 동안 복잡한 기분에 휩싸였다.
내가 크렘을 좋아하는 걸로 오해를 받은 것보다, 에클레어가 나와 크렘의 사이를 응원해 주고 있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원작 『하루만 못생기고 싶다』에서 크레페가 처음 이겨내야 하는 악역, 에클레르 오 바니유는 다른 조연과 눈이 맞아 그와 결혼하며 퇴장한다.
바로 크렘 브륄레 커스터드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