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나는 다급히 일어나 키슈에게 말했다.
“부화시킬 수는 있쩌요?”
키슈가 파타슈를 한 번 쳐다보았다가 대답했다.
“파타슈가 마나를 주입했을 때 마나 배열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전례가 없어서 기간은 확실치 않지만, 부화시킬 수는 있을 거예요.”
“…….”
엄마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당기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키슈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예사 물건이 아니라는 것도 확실해요. 평범한 알에 마나를 주입해 봤자 이런 반응은 일어나지 않거든요. 페가수스의 알이 아니라고 해도, 분명 학계에 알려진 바 없는 신수의 알일 겁니다.”
그러자 엄마가 그녀를 마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위험이 동반된다고 해도 페가수스의 부화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엄마가 모를 리 없었다.
키슈가 덧붙였다.
“과정에서도 앞으로 같은 실수는 절대 없을 거라고 맹세하겠습니다.”
“후우, 좋아요. 필요할 때마다 방문해 주세요. 수속은 에이미가 도울 겁니다.”
결국 엄마도 항복했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하지만 크레페, 넌 이분들과 같은 방에 있는 것 금지야.”
“시, 시러요!”
바로 옆에서 브라우니의 탄생을 보고 싶었던 내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나는 마치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으나 엄마는 뒤도 안 돌아보고 접대실을 나갔다.
키슈가 충격받은 나를 위로하듯 토닥였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밖에서 해야겠네요.”
* * *
참으로 강렬한 첫 만남이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 어느덧 여름이 되었지만, 나는 그날 이후 파타슈와 제대로 말을 해보지도 못했다.
그가 워낙 낯가림이 심한 것 같기도 했거니와, 항상 왔다가 알만 보고 돌아가는 패턴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키슈가 말했던 대로 그날 이후 부화 작업이 밖에서 진행됐기 때문에 먼발치에서 모습을 볼 수는 있었지만…….
“그만 좀 오라니까!”
“오빠 보러 오는 거 아니거든?”
나는 어느새 내 지정석이 된 연무장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익숙한 투덜거림에 톡 쏘아주고 다시 연무장 구석을 바라보았다.
카눌레가 손에 든 수건으로 얼굴에 땀을 닦으며 내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키슈와 파타슈가 알을 사이에 놓고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원래 다른 가문의 사람들이 연무장에 들어오는 건 금기였지만, 혹시 또 ‘사고’가 있을까 봐 공터를 내어준 모양이었다.
“대체 뭔데 그래? 진짜 페가수스 알이라도 된대?”
아무래도 카눌레는 아직도 긴가민가한 것 같았다.
나는 문득 그가 당연히 해야 마땅한 말을 안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마법진은 안 보여?”
“뭔 소리야?”
카눌레가 눈살을 찌푸렸다. 더 이상 질문할 것도 없었다.
나는 다시 시선을 내리고 키슈와 파타슈가 있는 쪽을 보았다.
거대한 마법진이 그들의 발밑에 떠올라 있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
재능이라……. 참 달콤한 말이네.
내가 그쪽에 정신이 팔린 사이 카눌레가 쯧, 혀를 차고 말했다.
“저기 저 꼬마가 네 후원을 받을 놈이지? 너 양다리 걸치려고 그러냐? 몽블랑도 모자라서.”
“흥, 나중에 나한테 페가수스 한 번만 태워달라구 징징거리기만 해바!”
“하! 징징 같은 소리 하네!”
카눌레가 코웃음을 치며 다시 검을 들었다. 그리고 보기만 해도 질리는 단순한 동작을 반복했다. 그동안 열심히 수련한 듯 제법 태가 났다.
“끝났쩌요?”
시간이 지나 키슈와 파타슈의 발치에 있던 마법진이 사라진 것을 보고 내가 다가가 물었다.
키슈가 흙먼지가 묻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네. 오늘은 이만큼 하면 될 것 같아요. 근데 매번 딱 맞춰 오시네요?”
키슈가 그렇게 말하며 내게 눈웃음을 지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작은 사고가 있던 그날 이후, 키슈는 나를 마법사의 길로 끌어들이려 안달이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나중에 마법을 배울 생각이긴 했지만, 나는 키슈에게 그런 말까진 하지 않았다. 함부로 그런 말을 하면 당장에 마탑으로 납치당할 것 같아서.
“키… 엄마.”
“그래.”
파타슈가 키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또 이대로 돌아가려는 게 분명했다.
나는 다급히 그들을 불러 세웠다.
“자깜만요. 알 만져바도 돼요?”
키슈가 파타슈를 내려다보았다.
파타슈는 썩 내키지 않는 듯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키슈는 생긋 웃으며 파타슈에게 알을 건네주었다.
“네. 저는 돌아간다고 말씀드리고 올게요. 파타슈, 너도 여기서 기다려.”
“네? 저는…….”
“안 잡아먹어!”
누가 봐도 당황한 듯한 파타슈였지만, 키슈는 그의 등을 떠밀고 해맑게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내성적인 파타슈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건가?
소개팅 자리에서 주선자가 먼저 나가면 이런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비슷한 상황에 처해본 적은 없지만.
“크흠. 그냥 건드려도 갠찬나요?”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물었다.
아무래도 여기는 나의 홈그라운드였고, 내가 파타슈보다 누나였으니 먼저 나서줘야 할 것 같았다.
“…….”
파타슈는 여전히 내가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긴장한 것처럼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타박하지 않고 조용히 그에게 다가가 가만히 손을 뻗었다.
그런데 내가 알에 손을 대기 직전, 갑자기 파타슈가 알을 놓치고 옆으로 콰당 넘어졌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카눌레가 파타슈에게 발차기를 날린 것이다.
나는 화들짝 놀라 옆으로 굴러가는 알을 급하게 잡았다.
“머, 머 하는 거야, 오빠!”
“너야말로 뭐 하는 거야? 형 없다고 바로 남친이나 만들고! 갈레트 형 등쌀에 나 죽는 꼴 보고 싶냐?”
그렇게 말하며 카눌레는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위풍당당한 그의 한쪽 발밑에 파타슈의 엉덩이가 깔려 있었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야 하는 대마법사님에게 이 무슨 결례를!
“도련님!”
어디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던 중에 카눌레의 검술을 봐주고 있던 단장이 달려왔다.
카눌레는 여전히 파타슈 위에 한 발을 올린 채 단장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파타슈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듯하더니, 주변의 공기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자, 자깐만요, 파타…….”
나는 이 느낌을 알고 있었다. 키슈가 마법진을 그리기 직전, 파타슈가 마나를 움직일 때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마법진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악!”
카눌레가 짧은 순간에 뒤로 나동그라졌다.
“오빠, 갠차나?”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나와 단장이 동시에 카눌레를 살폈다. 다행히 뒤로 넘어진 것 말고 다른 상처가 있는 것 같진 않았다.
나는 브라우니의 알을 꽉 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바닥에 엎어져 있던 파타슈가 옷을 털고 일어났다.
“조심하쪄야죠. 한 발로 서 이쯔면 넘어질 쑤도 있짜나요.”
…성깔 있네.
나는 말을 잃고 파타슈를 바라보았다.
“이게 뭔…….”
카눌레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었다. 꼴사납게 나동그라진 꼴이 퍽 우스웠지만 그것을 비웃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얼떨떨하게 일어난 카눌레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고 내게 눈을 흘겼다.
“아무튼 내가 형한테 고자질하기 전에 잘해!”
“대체 멀 고자질한다는 거야…….”
나는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카눌레는 단장과 같이 연무장 가운데로 돌아가고 있었기에 내 혼잣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아, 갠차나요?”
내가 뒤늦게 파타슈에게 물었다.
파타슈는 다시 긴장한 듯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카눌레에게 건방지게 말할 때와는 다른 인격이라도 된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파타슈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가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를 꺼예요? 내가…….”
그러며 파타슈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파타슈 근처의 공기가 뭉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가 뭘 걱정하는지 눈치챘다. 방금 전 자신이 카눌레를 꼴사납게 뒤집어버린 것을 이를까 봐 걱정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내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오빠가 먼저 공격했짜나요.”
파타슈가 안도한 듯 표정을 풀었다. 나는 그의 긴장이 풀린 틈을 타 슬쩍 물어보았다.
“근데 방금 그거 마법이에요? 마법진 가튼 건 안 보였는데.”
“저는 마법진 그릴 쭐 몰라요. 이건 그냥…….”
파타슈가 집게손가락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 끝으로 투명한 기운이 뭉쳤다.
“어, 마나라는 거래요.”
아직 ‘마나’라는 단어도 익숙하지 않은 듯 파타슈가 말했다.
그러고서 손가락을 땅으로 내리자 작은 바람이 분 것처럼 흙먼지가 일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법진도 없이 마나를 다루는 꺼예요?”
“마나가 먼지도 몰랐는데요, 멀.”
파타슈는 칭찬이 익숙하지 않은 듯 민망해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파타슈를 따라 검지를 들고 호잇호잇 바닥을 손가락질했다. 파타슈의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될 리가 없지. 혹시나 했다.
황새를 따라가려다 가랑이 찢어진 뱁새 꼴이 된 내가 헛기침을 했다.
“역시 천재는 다르네여. 그 마나를 알에 넣는 거죠?”
“네에.”
“보여줄 쑤 있어요?”
나는 눈을 반짝이고는 알을 내밀었다.
사실 알이 너무 무거워서 팔을 들어 올리기 힘들었기에 배를 내밀었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파타슈는 조금 머뭇거렸지만 곧 알 위에 손을 올렸다.
“키슈 님이 없으니 제대로 될찌는 모르겠지만…….”
파타슈가 말끝을 흐리고 집중했다. 주변이 순간 고요해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내가 든 알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알이 흔들리고 있는 건지 주변을 둘러싼 아지랑이 같은 기운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건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그때였다.
순간 알의 껍데기가 파타슈의 마나를 반사라도 하듯 기운이 사방으로 퍼졌다.
나는 내 주변에 가득한 기운에 압도되어 비틀했다. 마치 나와 알이 한 고치에 들어간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건 아주 순간이었고, 곧 강렬하게 주변을 감싸고 있던 기운은 알에 흡수되듯 사라졌다.
나는 얼빠진 사람처럼 파타슈를 마주 보았다. 파타슈도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 방금…….”
내가 말을 더듬었다.
파타슈가 헉 소리를 내며 내가 든 알을 가리켰다.
“여기 바요!”
“에?”
쩌적. 툭.
알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껍데기 한 조각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파타슈의 손가락을 따라 알을 내려다보았다.
알의 균열 사이로 빛나는 눈동자가 보였다.
“히익!”
순간 알을 놓칠 뻔했다. 파타슈가 재빨리 나를 도와 알이 떨어지지 않게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