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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시간이 만나는 순간 (34)화 (34/139)
  • 34화

    단단한 팔이 안나의 허리에 둘려져 옆구리를 훑어 내렸다. 생각지 못한 곳에 내려앉은 손에 흠칫 놀란 안나가 몸을 움츠리자, 필리프가 느른하게 웃으며 상체를 밀착시켰다.

    “아무래도 너무 마른 것 같은데.”

    “아, 아닙니다.”

    “앞으로는 좀 많이 먹여야 할 것 같아.”

    달아오른 몸의 열기가 순식간에 얼굴로 옮겨진 느낌이었다. 안나의 허리를 지분거리던 손가락이 느릿하게 움직이더니 안나가 입고 있던 드레스 안쪽을 파고들었다. 그녀가 뻣뻣하게 몸을 굳히며 숨을 멈추었다.

    “아, 아니… 거긴…….”

    손가락이 향하는 방향을 눈치챈 안나가 필리프의 가슴을 밀어냈지만, 어느새 허벅지에 안착한 그의 손은 요지부동이었다.

    “자, 잠깐만… 잠시만요.”

    “왜. 싫어?”

    필리프가 안나의 허벅지 안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몽롱한 기분에 말없이 눈을 끔뻑이자 그가 밀착되어 있던 상체를 천천히 떼어 냈다. 단단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온기가 사라지는 느낌이 못내 아쉬웠다.

    결국, 그의 몸이 멀어지기 전 안나가 공중에 두 팔을 들어 그의 어깨를 감쌌다. 이미 새빨개진 얼굴이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지만, 그의 체온이 주는 달콤함과 안정감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하아, 정말이지…….”

    그가 나지막이 웃으며 안나의 허리를 바짝 끌어당겼다. 안나가 그의 어깨 깊숙이 얼굴을 파묻어 달아오른 뺨을 감추었다.

    “잠시.”

    조금의 틈도 없이 맞닿아 있던 상체를 떼어 낸 필리프가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던졌다. 셔츠 단추를 푸는 손가락에 성마름이 섞여 있었다. 숨도 쉬지 못한 채 얼어붙은 안나가 조금씩 드러나는 그의 가슴팍에 시선을 고정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시원하게 뻗은 어깨였다. 넓은 어깨 아래로 탄탄하고 넓은 가슴과 여러 갈래로 길을 낸 것처럼 굴곡이 나 있는 복근이 보였다.

    평소에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운동할 시간도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어쩜 저렇게 몸이 좋을 수가 있지? 그의 몸 구석구석 탄탄하게 들어찬 근육이 놀랍고 신기했다. 그의 가슴팍에서 시선을 떼어내지 못하는데, 그가 안나의 뺨을 감싸 시선을 끌어올렸다.

    “어딜 봐. 내 얼굴을 봐야지.”

    “아… 저기…….”

    그가 고개를 틀어 아프지 않게 안나의 귓불을 깨물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뜨거운 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다시 그의 어깨 위로 팔을 두르며 비벼지는 혀에 제 혀를 얽었다. 고작 술 한 잔을 마셨을 뿐인데, 독주 한 병을 그대로 들이킨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지고 있었다.

    “하아…….”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과 그 모두 알몸이 되어있었다. 필리프가 안나의 몸을 단번에 공중에 들어 올려 침대로 이동했다. 여전히 입술을 단단히 맞물린 상태였다. 맨살이 비벼지는 감각이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순간 차마 표현할 수 없는 긴장감이 몰려들었다.

    “폐, 폐하… 저, 저는…….”

    왈칵 자라난 무서움에 발음이 형편없이 뭉개졌다. 안나의 몸에서 떨림을 느낀 그가 그녀의 몸 곳곳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다정함이 듬뿍 담긴 손길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묵직한 저릿함이 번졌다.

    “하아… 겁낼 것 없어.”

    숨소리가 섞인 그의 목소리가 잔뜩 억눌려 있었다. 괜찮다고, 겁나지 않는다고 대답해 주고 싶었지만, 달아오른 혀가 제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온몸이 그대로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안나가 간신히 필리프와 시선을 맞추며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가 안나의 허벅지 안쪽을 매끄럽게 쓰다듬자, 스르르 벌어져 있던 다리 사이가 바짝 움츠러들었다. 본능적인 긴장감에 온몸이 경직되었지만, 그가 끊임없이 안나의 몸을 쓰다듬으며 몸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단단한 몸이 안나의 몸을 덮어 누르고, 입술이 깊숙이 맞물렸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몸의 근육이 느슨하게 이완되고, 그의 손바닥이 닿는 곳마다 뭉근한 열기가 번지기 시작했다. 수치심과 긴장감이 쾌감으로 변하는 것을 느끼며 안나가 온몸에 힘을 풀었다.

    “하아… 괜찮아……?”

    머릿속의 퓨즈 하나가 나가 버린 것 같았다. 안나가 붉어진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렸지만, 필리프가 그녀의 손목을 혀를 내어 핥아 팔에 힘을 실을 수 없게 했다.

    대답을 들으려 물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안나의 얼굴 곳곳 달큼한 입맞춤을 내린 그가, 땀이 배어 나와 촉촉하게 젖은 그녀의 살결을 깊이 빨아들였다. 온몸 구석구석 그의 혀가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읏…….”

    안나의 두 팔을 들어 올린 그가 제 어깨에 팔을 겹치게 하고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안나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을 바라보는 그의 눈가에 다정한 웃음기가 매달려 있었다.

    “자, 힘 빼고. 그래. 조금만 더.”

    귓가에 흘러드는 목소리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필리프의 어깨에 두르고 있던 팔을 내려 그의 등을 끌어안고,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강하게 끌어안았다.

    “흣!”

    “아아아…….”

    안나와 필리프의 입가에서 동시에 나지막한 신음이 흘렀다. 어마어마한 압박감에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어 입만 뻐끔거리니, 필리프가 움직임을 멈추고 그녀가 제대로 숨을 쉬기를 기다려 주었다.

    “흣, 하아아아…….”

    “이제 괜찮아?”

    차마 그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느릿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안나의 반응을 살폈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 방울이 매달려 있었지만, 고통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으으응…….”

    그녀의 입가에서 흐르는 신음이 미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은 필리프가 바르르 떨리는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쪽. 쪽. 매끄러운 목덜미를 따라 가볍게 입을 맞추다가, 입술을 떼어 내며 목을 깊게 베어 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뽀얀 목덜미에 이를 세우고, 입안의 압력으로 힘있게 빨아당겼다. 목 안쪽의 연한 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자, 잠시만… 천, 천천히…….”

    필리프의 등을 안은 안나의 손끝에 힘이 실렸다. 움직임의 속도를 조절한 필리프가 땀으로 축축해진 안나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더듬더듬 마주 안아오는 손끝이 못 견디게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이젠 어때?”

    귓바퀴를 가볍게 물었다 입술을 떼어 내며 물었다. 예민한 부분에 뜨끈한 숨이 닿자 그녀가 고개를 잔뜩 위로 치켜세웠다.

    “으으응…….”

    솔직한 반응이 달가워 그녀의 정수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넣어 공간을 확보한 필리프가, 이번에는 조금 격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조금씩 움직임에 익숙해진 것인지, 필리프의 허리를 감은 그녀의 손에서 스르르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가에서 흐르는 신음이 꿀처럼 달았다.

    살과 살이 맞닿는 적나라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절박하게 자신의 몸에 매달린 그녀의 몸을 조심스럽게 껴안으며 허리를 힘주어 밀어붙였다. 극에 달한 쾌감에 사지가 떨리고, 절정감이 끝없이 이어졌다.

    “하아…….”

    엉망이 된 호흡을 가라앉히느라 안나가 고개를 돌린 사이 필리프가 느릿하게 그녀의 몸을 빠져나갔다.

    “폐하…….”

    “하아… 내가 말했지. 아직 밤이 길다고.”

    땀과 체액으로 질척한 필리프의 몸이 다시 안나에게로 기울어졌다. 몽실몽실한 여운을 즐기던 안나가 한숨 섞인 웃음을 뱉으며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살짝 열린 커튼 틈으로 어슴푸레한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 * *

    “일어나, 안나. 또 무슨 꿈이라도 꾼 거야?”

    “으음…….”

    마른 입술을 떼어 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안나가 제 얼굴을 내려다보는 마샤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헉, 뭐지? 또 꿈인가?

    “안나, 너 어제 왜 이렇게 늦게 돌아온 거야? 황녀님과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었던 거야?”

    “…어, 그게 아니라…….”

    “어? 근데 이게 뭐야? 너 목에 뭐 벌레에 물린 거야? 엄청 빨간데?”

    아무 생각 없이 목을 쓸어내리던 안나가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니, 꿈이 아니었어. 전부 실제로 일어난 일이야. 어젯밤, 그러니까 필리프와 함께 침실로 향했고 과실주 한 잔을 마셨고, 그리고…….

    “약 발라야 하는 거 아냐?”

    뒤늦게 다리 사이에 묵직한 통증이 찾아들었다. 잠시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얼굴에 몰린 열기를 식히는데, 마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안나?”

    “어? 어, 아, 아니 그러니까… 괘, 괜찮아 마샤. 아, 그런데 어제 내가 없어서 엄청 바빴겠다. 미안해.”

    “아냐. 어차피 황제 폐하 식사 준비를 안 해도 괜찮아서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 그나저나 오늘부터 수확제가 시작되는 거 알지? 우리 빨리 움직여야 해.”

    “응. 빨리 준비할게.”

    어제 하루 마샤를 돕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안나가 빠르게 채비를 시작했다. 아직 제대로 동이 트기도 전인 새벽녘이었지만, 수확제 음식을 나르려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나저나 이거 너무 빨갛잖아.

    거울에 슬쩍 제 모습을 비춰보는데, 붉은 자국이 드레스 목 윗부분으로 훤히 드러나 있었다. 붉은 자국을 손으로 슬슬 쓰다듬다 보니 어젯밤 필리프와의 기억이 자연스레 되살아났다.

    귓가와 목덜미를 적시던 뜨끈한 숨결, 잔잔하게 몸 전체로 퍼지던 열기, 뜨거운 입맞춤 그리고 온몸 가득 생생하게 남아 있는 살결의 감촉까지.

    기억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던 안나가 목에 헝겊을 감아 붉은 자국을 감춰냈다. 눈가를 접어 웃던 필리프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 함께 있었는데, 벌써 그가 보고 싶었다.

    “가자, 안나.”

    “응.”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마샤에게는 꼭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황녀가 황궁을 떠날 때까지는 최대한 몸을 사려야 할 것이라는 필리프의 당부가 떠올라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래. 조금만 참자. 황녀가 황궁을 떠나고 사실을 말해도 늦지는 않을 거야.

    숙소 문을 나서려는데 안나가 두른 앞치마 안쪽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수첩이었다.

    어? 이게 왜 여기 들어있지? 어제 잠깐 확인하고 바로 침대 매트리스 안에 감춰 놓았던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린 안나가 떨어진 수첩을 집어 들어 그대로 앞치마 속에 넣으려는데, 살짝 펼쳐진 수첩 안에 검은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한동안 그 어떤 글자도 새겨져 있지 않던 수첩이었기에, 안나가 황급히 수첩을 열고 내용을 확인했다.

    [달콤한 말과 부드러운 손길에 절대 속아서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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