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74)
  • 61.

    결혼한 줄 모르고, 혹은 이혼했다는 말만 전해 듣고 자신에게 들러붙거나 이용하려는 인간이 넘치는 정글 같은 곳.

    며느리에 관해 욕심을 부려도 그건 어머니의 몫이었다.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은 재산이 상당해도 결혼은 그의 권리였다.

    백야 그룹을 위해 뭐든 할 수 있지만, 자기 삶을 내던지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랑만 갈구하는 자신이 변절자처럼 보이는 괴이한 세상이었다.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지저분한 말로 옭아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진실만이 있다는 걸 정작 그녀는 모르는 듯했다.

    그는 그녀를 떨리는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려.”

    “무진 씨도 그런걸요.”

    그녀를 뜨겁게 바라보았다.

    긴 머리카락이 흐트러졌지만, 그것이 유혹하는 몸짓 같았다.

    멈추지 않아.

    침실은 금세 달뜬 신음만 차올랐다.

    내쉬는 숨결이 탁해지고 끈적였다.

    그의 움직임이 거세지자 시현의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 침실 안을 울리기 시작했다.

    절정에 도달한 듯 전율하며,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듯 질주하고 있었다.

    귓불을 깨물며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숨이 차올라 고개를 내저어도 봐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 그는 달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매번 귀엽게 반응하니까 미치겠다.”

    몇 번을 구름 위로 몰아가는지 붕 뜬 기분에 온몸이 흐느적거렸다.

    뜨겁게 탐하는 그에게 매달리는 시현.

    그는 시현을 처음 갖는 것처럼, 오늘이 그녀와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을 나누는 남자처럼 광기 서린 소유욕을 드러냈다.

    수줍어하는 시현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울어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축 늘어진 강아지처럼 누워 있는 그녀는 그가 몸을 닦아 주는데도 거부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짜릿한 전율에 몸에서 에너지가 전부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원초적인 감각에 헤어 나오지 못했다.

    “아직 안 끝났어. 지금은 쉬는 타임이지.”

    대꾸할 여력이 없는 소심하게 고개를 내저어 보지만, 시현은 다시 폭풍 속에 갇혔다.

    멈추지 않는 자극과 전율에 정신을 잃을 거 같았고 몸을 움직일 기력이 한 톨도 남지 않았다.

    그는 옆으로 누워 시현의 열기를 식혀 주었다.

    감각에 빠진 시현의 표정은 자신만 알고 싶었다.

    그는 시현에게 갈증을 느끼는 것은 몸뿐만 아니라 사랑이 가득한 마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를 탐한다고 해소되는 갈증이 아님을 알기에 더욱더 거칠게 몰아 붙었다.

    그는 시현을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 

    다음 날.

    “뭐 좀 먹어야지?”

    “쉬고 싶어요. 몸살이 난 거 같아요.”

    잠을 재우는가 싶었는데 새벽에 깨서 다시 격한 몸짓에 빠졌다. 환희를 몇 번을 느꼈는지 후유증으로 몸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아침은 가볍게 과일 먹는 거 좋아하지? 빵도 구워 줄까?”

    “없는 미팅 일정을 만들어서 오후에 출근하다가 박 실장이 알면 어쩌려고 그래요?”

    “일 얘기는 나중에. 아침 준비할 테니 쉬고 있어.”

    시현은 무진의 커다란 티셔츠를 입고 침대에 누워 있으려니 그의 스케줄이 꼬일까 봐 몹시 신경 쓰였다.

    하지만 근육통을 앓는 듯 조금만 움직여도 으드득 몸에서 소리가 날 거 같았다.

    몸을 일으켜 침대 헤드에 등을 대고 앉았다.

    잠시 후 무진이 쟁반에 먹을 것을 준비해서 가져왔다.

    오렌지, 딸기, 멜론을 담고 노릇노릇 구워진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우유도 곁들었다.

    침대에 앉아 있는 시현 앞에 내려놓았다.

    “뭐부터 먹을래? 딸기?”

    “…….”

    “이런 호사 아무 때나 누리는 거 아니야. 먹여 줄 테니까 골라 봐.”

    괜찮다며 입을 다물고 고개를 내저었지만, 그는 진짜 먹여 줄 생각인지 포크로 딸기를 찍어 그녀의 입술에 톡톡 가져다 댔다.

    “잘 먹어야 일하지. 안 그래, 이 비서?”

    “일 얘기는 나중에 하자면서 여기서 말…….”

    입에 쏙 딸기가 들어왔다.

    지난밤 뜨거웠던 그의 침실.

    몸이 욱신거리고 힘든데 엄청 좋았기에 토를 달지 않고 주는 걸 먹었다.

    목이 쉰 듯 정신없이 소리를 내지른 게 생각나서 창피하고 얼굴이 딸기처럼 붉어지고 있었다.

    “키스해 봐.”

    “뭐라고요?”

    “내가 덮치면 오늘은 출근하지 못해. 네가 먼저 키스하면 오후에는…….”

    “알았어요.”

    쟁반을 사이에 두고 조심스레 몸을 내밀어 그에게 다가갔다.

    눈을 감고 가만히 그녀의 키스를 기다리는 그의 뺨도 어쩐지 발그레 물들어 가는 듯했다.

    침대에 손을 짚고 앉아 그녀의 키스를 기다리는 그는 살랑살랑 머리카락이 뺨에 닿자 입꼬리를 올렸다.

    시현은 그에게 다가가 가볍게 키스했다.

    키득거리며 과일을 하나씩 입에 넣어 주고 베이글을 한 입 베어 물고 먹으면 우유를 건네고,

    가볍게 과일과 빵을 먹고는 그가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씻겨 줄게.”

    “됐어요.”

    “힘들잖아. 걷는 것도.”

    “씻겨 준다고 또…… 그러면 정말 힘들고, 출근해야 하는데.”

    “안 그럴게. 정말 씻겨만 줄게.”

    시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무진을 바라보았다. 눈치를 살피며 그가 긍정의 표현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나직이 말했다.

    “욕실에 데려다만 줘요.”

    시현은 욕실까지 걸어갈 힘이 없었다.

    아침을 과일과 베이글로 든든하게 먹었지만 이대로 몸을 맡겼다가 출근은커녕 집에도 못 갈 거 같았다.

    “씻겨만 줄게. 여기저기 만지지 않고, 오케이?”

    망설이는 시현의 대답은 듣지 않았다.

    무진이 시현을 번쩍 안아 올려서 욕조에 몸을 담그기까지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머리를 감겨 주니까 나른해져서 꾸벅꾸벅 졸면서 시현은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박 실장한테 연락해서 무진의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정말 씻고만 나온 시현은 욕실 앞에서 멋쩍게 웃었다.

    회사에서는 바삐 일하고, 퇴근해서는 데이트하듯 밥 먹고 부부의 은밀한 밤을 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할 때 무조건 받아 주며 욕망만 채우는 게 아니었다.

    결혼한 상태로 끈끈한 정을 나누는 걸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다.

    관계의 정의를 따지지 않고 상사와 비서, 혼인 중이라는 것도 입 밖으로 내지 않으며 시현과 무진의 거리는 점점 좁아졌다.

    신혼을 만끽하려는 듯 함께하는 즐거움을 다시 찾아가고 있었다.

    ***

    TS 투자 자산 운용사 사장실.

    무진은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고 있는 홍선우 실장을 만나고 있었다.

    “이시현 씨와 인사 나누었습니까?”

    “네. 박 실장이 내년부터 일하는 거라고 말했더니 이시현 씨가 많이 아쉬워하더군요.”

    “박 실장이 백야 그룹 쪽 일을 도맡아서 외부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럴 겁니다.”

    경호업체 보고는 제때 받는 무진에게 홍선우 실장은 도청 장치에 관한 불편한 얘기를 하려고 눈치를 살폈다.

    짧은 기간에 수많은 사람을 동원해서 얻은 결과였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튀어나온 상황이어서 신경이 쓰였다.

    도청 장치에 이어서 이시현을 집요하게 괴롭힌 인물이 무진에게 막대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줄줄이 이어진 관계성을 말하려니 홍선우 실장은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도청 장치에서 저장 파일을 가져간 사람을 쫓는데 예상하지 못한 게 드러났습니다.”

    “직접 보고하겠다는 이유입니까?”

    홍선우 실장의 말에 무진이 되물었다.

    “이시현 씨 주변에 백야 그룹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백야 그룹?”

    “네. 화란 백화점 강복희 사장님의 비서하고 같이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어르신 외에 다른 의도를 가지고 이시현 씨를 미행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게임을 하다가 돈을 받고 꽃바구니를 보내던 최문규 외에 또 뭐가 있다는 건가?

    명백한 증거가 있어도 법의 테두리를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영악한 자가 있을 줄 알았지만 한 명이 아니라니.

    무진은 으스스 소름이 돋았다.

    시현한테 붙어 있는 감시자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할머니가 그렇게까지 해서 얻을 게 뭐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홍선우 실장의 미묘한 말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할머니 말고 다른 사람이라니? 시현의 어머니를 말하는 걸까.

    무진은 백혜련을 위험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시현에게 또다시 접근하면 백혜련의 남편을 찾아갈 생각이었으니까.

    그런데 홍선우의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이 왜 거슬리지.

    “누굽니까? 설마 어머니 쪽입니까? 할머니 말고?”

    “여사님은 아니고, 어르신이 전부 휘어잡고 있었습니다. 진보라 본부장부터 얼마 전까지 비서였던 장소연, 백혜련까지.”

    “남자들은 뭡니까?”

    “장소연하고 한 팀으로 사기를 치는 김기태라는 인간입니다. 김기태가 온라인에서 불특정한 사람을 모집에서 망신을 준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전부 할머니하고 연관이 있다는 겁니까? 정말 할머니가?”

    “광범위하게 매수된 것으로 보입니다. 강복희 사장님께서 어르신의 자금 흐름을 알아봐 주셨습니다. 이시현 씨를 고립시키고 쫓아내려고 한 것 같습니다.”

    화들짝 놀란 무진이 책상을 내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안절부절못하며 사무실을 서성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몇 안 되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진보라의 이름이 홍선우 실장 입에서 나온 것도 환장할 노릇이었다.

    고모가 할머니의 자금 흐름까지 알아봐 줬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보고하세요. 화를 누르고 들을 테니까.”

    씩씩대는 무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홍선우 실장은 물을 한잔 마시며 말을 이었다.

    “이시현 씨 집에 들어간 흔적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피스텔 주변과 엘리베이터에서 김기태가 어슬렁거리는 게 찍혔습니다.”

    “…….”

    “장소연은 원래 돈 많은 남자한테 접근해서 불륜을 미끼로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입니다. 사장님께 접근 못 하고 김기태가 이시현 씨한테 접근했다고 보입니다.”

    무진은 끊지 않고 듣고 있으니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장소연이라는 이름을 시현에게 듣고도 별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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