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74)
  • 1.

    딩동딩동.

    쾅쾅.

    호텔로 그녀를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벨을 울려 댔다.

    고요히 침대 위에서 쉬던 시간이 쾅쾅거리는 소리로 무너졌다. 귀를 막고 몸을 뒤척이며 자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프런트에 연락해서 밖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을 잡아가라고 해야 할 거 같았다.

    시현은 귀를 막았던 손을 내리고 한 달 동안 꺼 둔 핸드폰의 전원을 켰다.

    밤 11시. 조명도 켜지 않아서 캄캄한 객실에서 시간을 확인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시간에 잠든 사람을 생각도 안 하는 건가.

    문제는 자신이 머무는 객실의 초인종을 누구고, 문이 치고 있다는 거다.

    잘못 찾아온 사람인가.

    이 시간에 민폐인 걸 모르나.

    시현은 짜증이 나서 프런트에 연락하기 전에 구시렁거리며 결국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온 지 한 달.

    그녀를 찾아올 사람이 없었다. 꺼졌던 핸드폰이 켜자마자 메시지로 쉴 새 없이 울리는 것을 무시하고 문 앞으로 갔다.

    벨을 누르고 문을 치는 소리는 들리는데 객실 문 렌즈로는 밖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벨이 계속 울려서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뭐지? 누가 장난을 치나.’

    한 달 동안 머물게 된 호텔은 그동안 조용했고 잠깐 나가더라도 지나가는 숙박객조차 보지 못했다.

    일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은 안 보이고 벨을 울리고 객실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데, 덜컥 겁이 났다.

    조심스럽게 몸을 돌리며, 프런트에 연락해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을 치워야 할 거 같았다.

    그때,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절대로 여기에서 들어서는 안 되는 남자의 목소리.

    “문 열어.”

    그녀의 몸을 짓누르는 듯한 한 마디였다.

    시현은 문 앞에서 꼼짝하지 않고 소리를 내지 않으려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를 피해 호텔에 숨어든 지 한 달이 되었다.

    한두 달이면 충분할 거라는 말을 듣고 그가 해외 출장을 떠나는 날, 시현은 흔적을 지우고 잠시 몸을 숨겼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모든 연락을 차단하고 호텔에서 먹고 자면서 시간을 보냈다.

    온전히 문밖에 있는 그를 피해서 숨어든 거였다.

    그런데 지금 문 하나를 두고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벨이 시끄럽게 울렸다.

    한참을 숨죽이고 있었지만, 계속되는 소란에 결국 손을 뻗었다.

    문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걸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 잠긴 문을 열었다.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문이 열리자 거칠게 시현의 어깨를 잡고 밀며 그가 안으로 들어왔다.

    넥타이는 반쯤 풀려 있고 셔츠 단추는 몇 개가 뜯겼는지 보이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조명도 켜지 않아 어두운 호텔 객실 안에서 이상하리만치 시현은 그의 모습이 잘 보였다.

    화가 억누르는 듯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전화는 왜 안 받아? 집에서 네 짐을 빼고 호텔에 왜 있어?”

    “…….”

    “뭔데 갑자기 연락을 차단했냐고 묻잖아!”

    그의 언성이 높아져 시현은 움찔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 입도 벙끗 안 하겠다는 건가?”

    그가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지 않는 시현을 바짝 품으로 끌어당겼다.

    놀라서 밀어 보지만, 꿈쩍도 안 하고 이내 몸을 숙여 시현의 입술을 짓눌렀다.

    굳게 닫혔던 시현의 입술이 단번에 열리고 숨결 스며들며 몸이 떨렸다.

    입술이 떨어졌다.

    정신을 차릴 새가 없는 시현을 침대로 데리고 가면서 조명을 켰다.

    그가 짜증 난다는 듯 말했다.

    “이제 표정이 좀 보이네.”

    시현은 눈을 깜박이며 여전히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침대로 끌려가지 않으려 서서 버텼다.

    그의 말투나 행동은 잔뜩 화가 난 걸 억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 때문에 바로 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이런 짓을 벌여?”

    “…….”

    “이 좁아터진 호텔은 또 뭐야? 무슨 일인지 말해. 이혼 서류만 놓고 가면 다 해결되는 일인가?”

    그가 시현의 팔을 단단히 붙잡고 거칠게 물었다.

    하지만 시현은 그에게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하고픈 말을 삼켜야 했다.

    “전화는 꺼 두고 연락 자체가 안 되던데 무슨 일인지 말 안 할 건가?”

    “할 말 없어요.”

    “일 마치고 당신 찾는데 며칠을 허비한 줄 알아? 나 아주 기분 뭣 같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는 좁은 침대를 보더니, 쯧 혀를 차고는 시현을 잡아끌었다.

    속절없이 끌려간 시현은 조금 전에 일어나서 새하얀 시트가 구겨진 게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는 거 같았다.

    눕지 않으려고 버둥거렸지만, 맹렬히 달려드는 그를 막아 낼 자신이 없었다.

    “읍.”

    숨 쉬는 시간조차 주지 않고 입을 막은 그는 반쯤 풀린 넥타이를 거칠게 잡아 풀었다.

    헐렁한 홈 웨어를 입고 있던 그녀의 치맛자락을 끌어 올리며 다리를 어루만졌다.

    입술이 막혀 숨을 내쉬는 게 버거운데도 시현은 그에게 뜨겁게 반응하고 있었다.

    이혼 합의서를 던져 놓은 것을 잊은 채 시현의 몸은 그를 원하고 있었다.

    “하아…….”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시현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그에게 다시 빨려 들어가듯 입술이 막혔다.

    거칠게 치맛자락을 올리고 더듬는 손길이 이내 부드러워지며 탄탄한 몸이 그녀에게 내려앉았다.

    셔츠를 입고 있어도 군살 하나 없는 그의 몸이 닿자 흥분이 몸을 휘감는 듯했다.

    그에게 빠져드는 순간, 시현은 힘을 내며 간신히 말했다.

    “무진 씨! 하지 마요.”

    좁은 침대가 더더욱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서 멈추게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시현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하지 마요. 이런 거 안 돼요.”

    “그래? 왜 안 되는지 날 이해시켜 봐.”

    “그건…….”

    “이혼 합의서를 집 식탁에 던져 놓았어도 이혼한 게 아니잖아. 남편이 아내하고 잠자리하겠다는데 막을 건가?”

    대답 따위 듣지 않겠다는 듯 그의 입술이 강렬하게 시현의 입술을 삼켰다.

    숨결도 모조리 삼켜 없애 버리려는 듯 무섭고 맹렬히 몰아붙이고 있었다.

    간신히 열린 입술 사이로 시현은 짧은 숨을 내쉬고 있지만, 집요하게 헤집는 그의 입술에 숨을 쉬는 것을 잊었다.

    남편과 아내라는 구실로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면서도 그의 손길을 한없이 부드럽고 다정했다.

    그래서 거부하고 밀어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 몸은 빠져들어 가는 거 같았다.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 남자와 인연을 맺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실수이고 그녀의 잘못이었다.

    그와 헤어지는 조건으로 돈을 받았으니 그만하자고 말해야 했다.

    살면서 돈 때문에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데도 이번처럼 상처가 클 줄 몰랐다.

    아마도 강렬한 그를 사랑하게 되어서 그럴 것이다.

    “앗. 무진 씨…….”

    “딴생각할 틈이 있나 보군.”

    아주 잠깐 그와의 관계를 떠올렸을 뿐인데 예고도 없이 입술을 물어 뜯겼다.

    헐렁한 옷 사이로 파고든 그의 손은 거침없이 자유롭게 움직였다.

    한 달 동안 호텔에 갇혀 머릿속을 비우며 그를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키스에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손길에 몸이 떨려 왔다.

    시현은 입술을 깨물며 더는 그에게 반응하지 않으려 몸부림쳤다.

    하지만 그런 시현의 행동이 그를 자극했는지 만지는 손이 집요해졌다.

    그의 손길에 따라 어느새 입술이 스쳐 시현의 몸은 잔뜩 힘이 들어갔다.

    발끝으로 퍼져 나가는 전율이 시현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이러지 말아요.”

    “입으로 내뱉는 말은 하지 말라면서 몸은 제대로 반응을 보이는데?”

    “그런 거…… 읏.”

    “연락은 안 되고 집에 갔더니 이혼 합의서를 놓고 사라져? 내가 당신을 찾으러 미국에서 시간을 버린 걸 생각하면 죽어도 분이 안 풀리는 정도라고.”

    무진의 거친 말에도 한없이 다정하게 파고드는 그의 손길에 시현의 몸은 타오르고 있었다.

    반응하지 않으려 몸부림을 쳐 봐도 한 달 만에 만난 그에게 몸을 내어 주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며 그가 가기를 바랐지만, 묵직하게 그녀를 짓누르며 밀고 들어오자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앗! 하지 말라고……!”

    “지금 자제하고 있는 거야. 네가 도망쳐서 날 바보로 만든 거 생각하면 이건 약하지.”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소리를 질러도 그는 멈추지 않고 시현을 잠식해 나갔다.

    저절로 그에게 매달려 더운 숨을 내쉬며 시현은 귓가에 들리는 야한 소리에 몸은 더더욱 그에게 밀착되었다.

    “이제 몸 따라 할 마음이 생긴 건가?”

    비아냥거리는 말에 대꾸할 말이 없었다.

    “부부의 회포 좀 풀어 보자고.”

    못된 말과 다르게 그의 숨결이 시현의 귓가를 간질였다.

    그의 입술이 뜨거움을 담은 채 그녀의 목덜미를 쓸고, 열기를 품은 그의 욕망은 질주하기 시작했다.

    시현은 이제 거부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그에게 매달려 뜨거움을 토해 냈다.

    깊숙이 밀어붙이는 그를 밀어내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었다.

    그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버려지기 전에 끝내야 했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것조차 부정하며 떠나려고 했는데, 몸은 그를 반기듯 들썩였다.

    무진의 거칠고 뜨거운 욕망이 시현의 모든 것을 삼키고 마음마저 빼앗아 가고 있었다.

    흔들리는 조명 아래서 마침내 완벽히 하나가 된 그와 그녀.

    시현은 야하고 아릿한 감각을 머금고 들썩이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음란한 소리가 호텔 룸을 가득 메워 가며 그는 더더욱 강렬하고 거칠게 그녀를 밀어붙였다.

    하지 말라는 말이 더는 목에서 나오지 않고 달뜬 신음이 덮어졌다.

    “거봐. 날 밀어내지 못하잖아.”

    “읏.”

    “네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주 마음에 들어. 미치겠어.”

    그는 도망친 그녀를 벌주기라도 하는지 강하게 파고들며 밀어붙이지만 했다.

    한 마리 늑대가 제 것을 찾아 질주하듯 강약 조절 없이 몰아붙이고 있으니 순식간에 절정에 다다랐다.

    시현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조명이 있어도 어두워 그의 표정을 보려고 애썼다.

    “이혼 합의서는 뭐야?”

    그가 움직임을 멈추더니 시현에게 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돈이 좋아서 미리 위자료를 좀 챙겼다고 하면 적당할까.

    사실이니까 말하면 그가 떠날 텐데 입술을 달싹일 뿐 시현은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가 다시 윽박지르며 물었다.

    “이혼 서류는 뭐고 너는 연락 끊고 호텔에 숨어 있는 이유가 뭔지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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