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89)
  • 다른 남자와 결혼해

    외전. 다른 아이로 태어나 5화

    “선준이랑 여은이 말이야. 너무 귀여워!”

    엄마가 두 주먹을 불끈 거머쥐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가 그렇게 귀엽다는 거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예비 이모부는 아쉬운 얼굴을 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여자친구와 키스하다가 여자친구 언니에게 걸려서 옴짝달싹 못 하는 신세가 된 처량한 군인, 그게 바로 예비 이모부였다.

    “아까 둘이 키스하다가 나한테 딱 걸렸거든요. 얼굴이 새빨개져서 어쩔 줄을 모르더라고!”

    엄마는 목욕재계한 나를 바운서에 눕히며 예쁘게 웃었다.

    누차 하는 말이지만 우리 엄마는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예쁘게 생겨서 사람을 흐뭇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어?”

    그런 엄마의 미모에 여전히 꼼짝 못 하는 아빠였다.

    “응, 너무 재미있었어!”

    사악하게 웃는 것도 예쁜 엄마의 가느다란 허리를 아빠가 두꺼운 팔로 감싸 안았다.

    “둘이 오랜만에 보는 건데, 그냥 좀 봐주지 그랬어.”

    뒤에서 엄마를 끌어안은 아빠의 입술이 엄마의 뺨을 더듬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그냥 보고 있어요? 시커먼 놈이 내 동생을 집어삼키려고 하는데?”

    어머니……. 지금 시커먼 아빠가 엄마를 집어삼키려고 하는 모습을, 저도 가만히 지켜보고 있습니다만?

    “둘이 오랜만에 만났잖아. 그리고 선준이 성격을 몰라? 걔가 얼마나 책임감 있는 앤지. 시간을 거슬러 왔어도 당신 모른 척 안 하고 챙긴 비서실장이야.”

    이게 또 무슨 소리야?

    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렇기는 하지만……그래도 내 여동생 남자 친구로는 좀 더 지켜봐야죠!”

    “군대 두 번 간 놈이야. 그 정도면 인정해 줘야 해.”

    이모와 예비 이모부의 대화를 지켜본 바, 두 사람은 분명히 동갑내기였다.

    예비 이모부가 군대를 두 번 다녀올 겨를은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군대를 두 번 갔다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이지?

    순간 머릿속에서 섬광이 일었다.

    아까 아빠가 분명히 그랬다.

    예비 이모부가 시간을 거슬러 왔다고!

    그렇다면 예비 이모부도 나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뜻인가? 그걸 엄마, 아빠는 다 알고 있고?

    생후 50일, 인생이 점점 흥미진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서 엄마, 아빠가 서로를 탐하는 시선도 시시각각 흥미진진해졌다.

    “몸은 좀 어때?”

    아빠의 목소리는 마치 타다 남은 재처럼 느껴졌다.

    열기를 머금고 있으나, 후 불면 날아갈 것처럼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뭐 별다를 것 없는데요?”

    하지만 순진한 엄마의 대답은 마냥 해맑기만 했다.

    아빠의 입술이 엄마의 목덜미를 더듬기 시작했다.

    “으응.”

    엄마가 아빠의 거대한 몸을 밀어내기라도 할 것처럼 어깨를 이리저리 들썩거렸다.

    “왜애, 싫어?”

    아빠가 귀엽게 말끝을 늘이는 건 또 처음 본다.

    서후 삼촌, 애교가 제법 느셨어?

    “아니이. 싫은 게 아니라아.”

    엄마의 애교는 생후 50일을 갓 넘긴 나까지 살살 녹일 정도로 달콤했다.

    “그럼, 왜?”

    아빠의 손이 엄마 티셔츠 밑단을 들추기 시작했다.

    “우리 한아, 아직 안 자.”

    두 뺨을 한껏 붉힌 엄마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한아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

    아버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저도 알 거 다 압니다.

    아빠의 손이 엄마의 몸을 타고 점점 위로 올라가는 것을 발견한 나는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이모의 연애는 팝콘을 튀길 수 있는 관전 재미가 있다면, 부모님의 애정행각을 지켜보는 것은 패륜을 동반하는 금단의 영역 같았다.

    나는 불법 사이트에 실수로 접속했다가 화들짝 놀라서 쉴 새 없이 엑스 표를 누르는 심정이었다.

    “이러다 한아 동생 금방 생기겠다.”

    엄마가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2년 이상 터울은 있어야 엄마가 덜 고생스럽지.”

    말은 저렇게 하면서 아빠는 엄마를 더듬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신이시여! 빨리 잠들게 해 주소서!

    나는 보육원에서 외웠던 주기도문을 외우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

    “조금 더 있다가 가면 좋을걸.”

    외할머니는 나를 품에 안은 채로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부엌 공사도 진작 끝났고, 그만 집으로 가야지.”

    엄마는 외할머니의 아쉬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었다.

    “이제 할머님도 집으로 모셔야지.”

    할머님?

    엄마가 말하는 할머님은 아마도 아빠의 할머니, 나의 증조할머니를 일컫는 것일 터.

    “사돈 어르신 건강은 좀 어떠셔?”

    외할머니의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했다.

    “요즘은 정신도 맑으시고 좋으셔. 아까도 통화했는데, 우리 한아 얼른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

    해맑게 대답한 엄마가 욕실에 있는 내 짐을 챙겨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한아야. 우리 예쁜 한아.”

    외할머니가 내 등을 토닥거리며 말을 이었다.

    “네 엄마는 모르나 보다. 이 할미가 사돈 어르신 걱정도 걱정이지만, 그런 어르신 모셔야 하는 딸내미 걱정이 더 크다는 걸 말이야.”

    순간 뜨거운 물기가 울컥 차올랐다.

    “한아야. 우리 예쁜 한아……. 할미 딸이 고생스럽지 않게 우리 한아가 엄마 말 잘 들어야 해요. 잘 먹고, 잘 자고. 보채지 말고. 알았지?”

    외할머니는 마치 경건한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아기인 나를 내려다보며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새삼 우리 예쁜 엄마가 더 귀하게 여겨지는 순간이다.

    엄마는 유복한 환경에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의 내리사랑은 오롯이 나를 향해 있었다.

    이전 삶에서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 살았던 나는 감동에 겨워서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아이구. 우리 한아가 할미 말을 다 알아듣나 보네. 뭐가 이렇게 서러워서 할미 대신 울어 줄까.”

    외할머니는 나를 기특하다는 듯이 다독여 주셨다.

    ‘공부를 아무리 잘하면 뭐 해? 보육원 출신이 뭘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 성적을 보고 중2 담임이 건넸던 말이었다.

    내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다른 평범한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의 칭찬을 받을 수 없었다.

    오히려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냉정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될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저 가만히 외할머니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기특하다는 칭찬을 듣고 있었다.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함이 밀려들었다.

    보육원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누나, 나는 누나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보육원 아이들을 떠올린 순간, 흐릿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갑작스레 뇌리를 스치는 목소리에 마음이 아파진 나는 속절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나를 누나라고 부르는 아이는 대체 누구지?

    왜 기억이 안 나는 건데!

    “엄마, 우리 한아 왜 울어?”

    어디선가 나타난 엄마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아이구, 기저귀가 푹 젖었네.”

    외할머니가 나를 침대 위에 눕히고는 기저귀를 갈기 시작했다.

    “우리 한아 순해서 이 정도 젖은 걸로는 안 우는데.”

    엄마가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했다.

    ‘우리 ○○이는 착해서 이런 걸로는 안 울지?’

    내가 누군가를 향해 말하는 소리가 또다시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분명 보육원에서 함께 지낸 아이 같았다.

    나를 누나라고 부르는 걸 보면, 나보다 어린 남자아이라는 뜻인데?

    이름이 죽어도 생각나지 않아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아구, 우리 한아 배고플 시간 됐네.”

    엄마가 나를 안고 등을 두드려 울음기를 달래고는 젖을 물렸다.

    나는 달콤하고 고소한 젖을 빨아 삼키며 심신의 안정을 되찾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 대체 누굴까?

    나는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채로 잠이 들었다.

    ***

    “할머니! 잘 지내셨어요? 정말 보고 싶었다고요!”

    엄마가 살갑게 애교를 떠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우리 증손주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증손주라는 말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이제껏 엄마 아빠의 가족을 모두 만났지만, 몹시도 궁금했던 증조할머니를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눈앞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티 없이 맑고 검은 눈동자를 마치 내 기저귀 속까지 꿰뚫어 보는 듯 날카로웠다.

    “그럼 빨리 집으로 오시지 그러셨어요.”

    엄마는 시할머니가 어렵지 않은지, 어르신에게 팔짱을 끼며 아양을 떨었다.

    “나도 빨리 오고 싶었지. 허나……. 백일기도를 마치기 전에는…….”

    외가댁은 일요일마다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크리스천이었다. 그런 외조부모 내외가 후원하는 보육원도 교회에서 운영을 맡은 곳이었다.

    증조할머니도 교회에 나가서 기도를 올리신 걸까?

    근데 왜 집에 오지 않으셨지?

    “아가 목이 마르는구나. 물 좀 가져다주겠니?”

    증조할머니께서 엄마에게 부드러운 말투로 물 한 잔을 청하셨다.

    “네, 할머니! 얼른 가져다드릴게요!”

    엄마가 침실 밖으로 나가자, 할머니가 나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아 들었다.

    “결국, 네가 내 증손녀가 되었구나. 살아생전에 내 손주 딸이 되게 해 달라고 그렇게 빌었지? 이제 소원을 이뤘으니, 이번 생은 선한 마음을 먹고 살려무나.”

    나는 휘둥그런 눈으로 증조할머니를 올려다보았다.

    “우아우!”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의미 없는 옹알이가 툭 튀어나왔다.

    증조할머니께서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물으셨다.

    “그 아이가 궁금한 게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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