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화 (72/89)

다른 남자와 결혼해

외전. 다른 아이로 태어나 4화

“네가 내 조카구나!”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었던 이모가 외가로 들이닥쳤다.

예쁜 얼굴이었지만 엄마만큼 우아한 기품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또 엄마 곁에 착 달라붙어서 ‘언니, 언니!’ 하며 아양을 떠는 모습이 귀엽기는 했지만,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는 아기라고! 먹고 자는 게 내 일상이라고!

나의 평온한 일상을 방해하는 악당, 나의 하나뿐인 이모는 하나뿐인 조카인 나에게 완전히 빠져 버렸다.

“와, 아기가 어쩜 이렇게 예쁠 수가 있지?”

나를 보는 사람마다 예쁘다는 소리를 늘어놓는 것을 보면, 나는 정말로 피곤할 정도로 예쁘게 생겼나 보다.

나의 이모는 나와 사랑에 빠지다 못 해서 나와 단둘이 있을 때, 비밀을 하나씩 털어놓길 시작했다.

“한아야, 잘 들어. 사랑은 참 우스워.”

우리 귀엽고 시끄러운 이모님께서 연애 이야기를 하려나 보다.

알다시피 나는 열다섯에 죽었다.

이성에 눈을 뜰 시기, 세상에서 남과 여의 관계가 가장 심오하고 중요한 과제처럼 여겨지기 시작할 때에 죽은 것이다.

나는 나름 진지하게 이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절대로 군대 가는 놈하고는 연애하는 게 아냐! 알겠지? 이놈이 나를 진짜로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나를 그저 사회에 남겨둔 보험 취급하는 건지 헷갈리거든?”

여기서 보험의 정의에 관해 심도 깊은 고찰을 하는 것은 집어치우도록 하자.

우리 이모가 다 설명해 줄 거다.

“외박이나 휴가를 나올 때마다 나를 찾는 건 좋다? 근데 내가 필요한 순간에는 곁에 없잖아!”

언젠가 이전 삶의 나를 버린 엄마가 한 말이 있다.

‘지긋지긋한 인간! 꼭 필요할 때는 없지! 남편이나 TV리모컨이나 찾으면 없어!’

첫 번째 엄마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내 분유 통을 집어 던졌었다.

“군대에 있는 걔가 힘든 만큼, 밖에 있는 나도 힘들다고. 근데 세상에서 본인이 제일 힘든 줄 알고 있다니까? 내가 힘든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이런다?”

아무래도 이모의 남자 친구는 철이 덜 든 모양이다.

“나 진짜 밖에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군대만 아니면 진짜! 이러는데, 내가 뭐라고 해?”

쯧쯧, 이모도 재벌 집에서 귀하게 자란 막내 딸 티를 내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모 남자 친구는 그보다 더한 강적인가 보다.

“우아우!”

이모나, 남자 친구나.

혀를 끌끌 차 주고 싶었지만, 자기 감정에 취한 이모는 나의 옹알이를 제멋대로 해석했다.

“그래도 내가 이해해야 한다고? 너 예쁘면 다야? 이모 편 안 들어줄 거야?”

나를 번쩍 안아 든 이모는 조그맣고 귀여운 품에 나를 안아 들고는 속삭였다.

“이모 남자 친구 이번 주말에 휴가 나오거든? 우리 한아 자랑하고 싶은데. 히잉.”

남의 연애사를 듣다 보면 당사자가 몹시도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모의 남자 친구가 대체 어떻게 생긴 놈일지 궁금해졌다.

보통의 아기라면 낮과 밤이 어떻게 바뀌는지 모를 테지만, 나는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주말이 당도한 것이다!

이모의 남자 친구라는 귀한 분의 정체를 살필 수 있는 주말!

먹고, 자고, 싸는 게 일과의 전부인 나에게 새로운 인물의 등장은 흥미진진한 옹알이거리였다.

“한아야, 이모 남자 친구 만나고 올게! 우리 한아, 엄마 말 잘 듣고 있어!”

이모가 나를 침대에 내려놓으려는 순간이었다.

“응애애애앵!”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 한아 왜 울어?”

이모의 옆에 서 있던 엄마가 나를 얼른 안아 들었다.

나는 개의치 않고 울어 젖혔다.

“응애애앵! 응애! 으응애!”

엄마가 어쩔 줄 모르고 진땀을 흘렸다. 아직 산욕기인 엄마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언니 내가 안아 볼게.”

착한 이모가 나를 얼른 품에 안았다.

“아오오.”

나는 울음을 뚝 그치고는 이모에게 아양을 떨었다.

“우리 한아가 사람을 알아보네! 이모가 그렇게 좋아!”

“우우!”

이모 말고, 이모 남자 친구가 궁금해!

내 옹알이에 이모가 귀엽게 웃어 보였다.

“자, 우리 한아! 엄마랑 잘 놀고 있…….”

이모가 나를 엄마의 품에 안겨 주려는 순간, 나는 또다시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아기는 참 편리한 인간이다.

울려고 마음을 먹으면 금세 눈물이 터져 나온다.

“아구구! 우리 한아가 왜 그럴까.”

결국, 이모는 나를 품에서 떼 놓지 못하고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떡하지? 조카가 내 손을 탔나 봐. 내가 내려놓으려고 하면 울어. 우리 언니도 너무 힘들어하고……”

나의 하나뿐인 이모님, 어서 본론을 꺼내시죠?

“엄마, 아빠는 남해로 라운딩 가셔서 내일 저녁에나 집에 오실 거고…… 집에는 언니랑 형부만 있는데…… 네가 여기로 올래?”

앗싸라비야, 콜럼비야!

이모가 남자 친구에게 어렵사리 꺼낸 말을 들은 나는 신이 나서 발장구를 쳐 댔다.

엄마가 신생아 오감 발달에 좋다고 발밑에 놓아 준 어부프라이스 아기 체육관에서 이제는 질릴 대로 질려 버린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응, 집 앞에 오면 전화해……. 우리 조카? 뭘 아는 건지, 내 얼굴 보면서 웃고 있어…… 얘가 뭘 진짜 알겠어? 그냥 이모가 떠드니까 신기해서 쳐다보는 거겠지.”

안타깝게도 이모는 나의 음흉한 웃음을 순수하게만 해석했다.

아, 궁금해! 우리 예비 이모부 어떤 새끼…… 아니 어떤 분일지 너무 궁금해!

아직 이성보다 본능에 충실한 내가 엄마 젖을 한바탕 빨고, 낮잠에 들었을 무렵이었다.

“와! 진짜 작다!”

낯설고도 흥미로운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쉿! 조용히 해! 한아 깨겠어!”

이모가 목소리를 낮추며 중얼거렸다.

나는 이미 잠에서 깬 상태였지만, 예의상 실눈을 뜨고 두 사람의 염병 천병 연애질을 감상해 보기로 했다.

“너무 예쁘게 생겼어. 속눈썹 진짜 길다! 자는 모습이 꼭 천사 같은데?”

이모부 합격!

내가 잠든 줄 알고 목소리를 낮춘 채로 주접을 떠는 이모부는 매우 귀여웠다.

서후 삼촌 아니 우리 아빠가 아이돌 비주얼 센터를 씹어 드실 상이라면, 나의 예비 이모부는 몸을 몹시 잘 쓸 것 같은 메인 댄서처럼 보였다.

군대에서 생활 근육을 키운 탓인지, 20대 초반의 예비 이모부는 굉장히 건장한 몸을 가진 남자였다.

물론 몸으로만 놓고 보면 우리 아빠를 따라올 자가 없지만……. 아빠 몸을 가지고 신생아 딸이 현란하게 칭찬하는 건 꼴사나우니까, 여기까지 해 두기로 하자.

아무튼, 예비 이모부는 바람직한 외형을 소유한 남자였다.

“우리 언니를 많이 닮은 것 같아. 언니가 워낙 예쁘잖아.”

우리 이모가 세상 여우 짓을 하고 앉았다.

저 말에는 ‘언니보다 네가 훨씬 예뻐!’ 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자, 여기서 우리 예비 이모부의 센스를 지켜보도록 하자.

팝콘 맛 모유 준비되었는가!

“맞아. 담은 누나가 워낙 예쁘기는 해.”

워어후…….

착하고 솔직하기는 한데……. 안타깝게도 진짜 착하고 솔직하기만 한 남자다.

대체 눈치는 얻다 팔아먹은 거야?

나는 실눈을 뜬 채로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이모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이모, 이 새끼 아닌 것 같아.

옹알이를 하려던 순간이었다.

“그치만 네가 낳은 아기는 한아보다 더 예쁠 것 같아. 네가 담은 누나보다 훨씬 예쁘니까.”

우리 예비 이모부 폭스, 그 자체!

이모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다른 데로 피했다.

“우리 한아보다 예쁜 아기가 세상에 어딨냐?”

허이구. 놀고들 있다!

나는 시니컬한 미소를 삼키며 이모와 예비 이모부를 올려다보았다.

예비 이모부가 이모의 목덜미를 커다란 손으로 부드럽게 움켜잡았다.

저기요, 모유맛 팝콘은 아직인가요?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발장구를 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 순간 신생아 장난감에서 요란스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면 분위기를 와장창 깰지도 모른다!

이모가 여린 손으로 예비 이모부의 옷깃을 움켜잡는가 싶더니, 두 사람의 얼굴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콧구멍이 벌름거리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의 입술이 이모의 입술을 부드럽게 집어삼켰다.

호우! 엄마, 아빠의 애정행각을 지켜보는 것은 마치 패륜처럼 느껴졌었다.

분위기가 미묘해지려는 순간에는 마지못해 눈을 감아야만 했었다.

하지만 이모와 예비 이모부의 키스는 세상 흥미진진했다.

커다란 손이 이모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주물렀다.

이모의 고개가 옆으로 한껏 기울었다.

“으음.”

이모가 앓는 소리를 내자, 예비 이모부가 기다렸다는든 듯이 덥석 덤벼들었다.

저러다 잡아먹겠다.

나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사람의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선준이 저녁 먹고 갈 거지?”

아, 어머니! 눈치 좀!

엄마가 침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고, 두 사람은 언제 서로를 잡아먹을 것처럼 엉겨붙어 있었냐는 듯이 멀어졌다.

“으응! 선준아, 너 오늘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고 갈 예정이니?”

이모가 세상 어색한 말투로 물었고.

“으응. 저녁을 주신다면 감사히 먹고 가야지.”

예비 이모부도 손발이 오그라들 말투도 대꾸했다.

어머니, 이 분위기 어쩔 겁니까? 책임져요!

시선을 흘끗 돌린 곳에서 나의 어머니 정담은 여사가 사악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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