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남자와 결혼해
외전. 다른 아이로 태어나 3화
밤새도록 칭얼거린 탓에 삭신이 쑤셨다.
“못 자서 어떡해. 피곤하지?”
아빠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요. 하루 못 잔 건데, 뭐. 그리고 나만 못 잤나? 서후 씨도 계속 우리 아가 안고 있느라고 못 잤잖아.”
아빠는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엄마는 차량 뒷좌석 신생아용 카시트에 누운 나와 함께였다.
와, 예쁜 사람은 피곤해도 예쁘구나!
지난밤 한숨도 못 잤다는 엄마는 다크서클이 턱 밑에서 대롱거리는데도 아름답기만 했다.
그래, 흙수저면 어때? 저런 얼굴을 물려받은 것으로 만족하자!
예쁜 게 다냐고? 예쁜 게 다지!
“오아오.”
“응? 우리 딸 엄마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엄마, X나 예쁘다고요!
옹알이하는 나를 보고, 엄마가 방긋방긋 웃었다.
“우리 딸, 얼른 말하면 좋겠다! 엄마는 우리 딸이 뭐라고 하는지 너무 궁금해!”
엄마가 두 손을 기도하듯 맞잡으며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말이 통하려면 아직 멀었어.”
웃음기 어린 아빠의 목소리에는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다.
우리 아빠는 엄마가 하는 말이면 전부 사랑스럽게 들리나 보다.
“근데 나는 벌써 말이 통하는 것 같은데? 우리 딸 눈빛 또랑또랑한 것 봐! 내가 하는 말 다 알아듣는 것 같아!”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싶었지만, 아직 목도 가누지 못하는 천둥벌거숭이였다.
새벽잠을 설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나는 엄마와 아빠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꾸벅꾸벅 졸았다.
“아이구, 우리 공주님 왔구나!”
그러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을 때, 나는 할아버지로 추정되는 인간의 품에 안겨 있었다.
“아버지! 우리 공주님 깼잖아요!”
“아이고, 미안해요. 내가 우리 공주님을 깨웠나?”
나는 처음 보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멀뚱멀뚱 올려다보았다.
“너희는 올라가서 쉬어. 애는 우리가 봐줄 테니까.”
할머니로 추정되는 인간의 다정하지만 깐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엄마. 나 좀 쉴게요. 배앓이를 하는지 밤새 보채서 한숨도 못 잤어. 우리 민 서방도 같이 못 자고.”
엄마가 앓는 시늉을 하고는 아빠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빠! 어디 가? 나를 이 흉흉한 어르신들한테 남겨 두고 가면 어떡해!
나는 잔뜩 굳은 채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할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자, 우리 공주님! 할아버지 집에 처음 왔으니까, 집 구경을 해야지?”
“이이도 참! 애를 안고 어딜 가시려고요!”
할머니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따라붙으며 누군가를 불렀다.
“구 실장! 구 실장도 같이 와요!”
“네, 사모님.”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집에 실장이 있고, 그 실장이 할머니를 사모님이라고 부르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자, 우리 공주님. 여기가 우리 공주님이 할아버지 집에 놀러 오면 지낼 방이란다. 이건 우리 공주님을 위해서 스웨덴에서 특별히 제작해 온 침대. 그리고 이건 영국에서 온 목마. 이건 프랑스에서 온 순은 딸랑이. 이건 독일에서 온 유모차. 이건 이탈리아에서 온 세발자전거.”
하, 할아버지? 당신 정체가 뭐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꾸몄다는 내 방은 엄마, 아빠 침실의 세 배 크기는 되는 것 같았다.
“우리 공주님 방을 구경했으니까, 이번에는 할아버지 서재를 가볼까?”
“당신 서재는 또 왜 가요?”
할머니가 주책이라며 말리는 듯했지만,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서재는 마법 빗자루를 타고 붕붕 날아다니는 영화 속에 나올 법한 마법 도서관처럼 보였다.
계단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는 것을 보면, 책꽂이가 3층 높이는 되는 것 같았다.
“자, 여기 이 조직도가 보이냐?”
할아버지는 목도 못 가누는 나에게 벽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조직도를 보여주었다.
“할아버지가 은퇴하고 나면, 네 엄마와 아버지가 물려받을 정웅그룹이다!”
말씀 중에 실례합니다만, 할아버지?
우리 엄마, 아빠에게 정웅그룹을 물려주시는 거라면……. 그럼, 할아버지가 정웅그룹 회장님이신가요?
“우아으!”
놀란 나는 옹알이를 터뜨렸다.
“그래, 그래! 그러려무나! 우리 공주님이 원한다면, 여기서 한자리해도 되지!”
그러니까 나의 외할아버지는 재벌이고! 나는 재벌 3세로 다시 태어난 것인가?
와, 서후 삼촌! 어떻게 정웅그룹 회장 딸을 꼬신 거지?
보육원 침대에 누워서 매일 밤 꾸던 꿈이 현실이 되었다!
나에게 재벌 할아버지가 생겼어!
기분이 좋아진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다가 그만 기저귀에 실례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 순간적인 불쾌함에 울음이 터졌다.
“응애애애!”
“회장님, 작은 아가씨 기저귀를 갈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울음을 터뜨린 나를 안고 어쩔 줄 몰라 하던 할아버지는 구 실장이라는 여자에게 나를 냉큼 건네주었다.
구 실장은 나를 안고 아까 할아버지가 내 방이라고 했던 곳으로 향했다.
이 아줌마 기저귀는 갈 줄 아는 거야?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능숙한 솜씨로, 구 실장은 내 기저귀를 쾌적하게 갈아 주었다.
배를 조이는 찍찍이 간격도 매우 적당했다!
“속을 비우셨으니, 배가 고프시죠? 엄마한테 갈까요?”
시도 때도 없이 기저귀를 가는 탓에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픈 나를 안은 구 실장이 엄마, 아빠가 머물고 있다는 침실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왠지 다급하게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였다.
“구 실장입니다. 수유할 때가 되어서요.”
“네, 나가요!”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엄마가 나를 낚아채듯 안았다.
구 실장이 민망한 듯 흠흠, 목을 가다듬고는 침실 문을 닫아 주었다.
왜 민망하실까?
“우리 공주님, 배가 고팠어요?”
엄마의 얼굴이 평소보다 훨씬 붉었다.
그리고 엄마는 상체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았다.
나는 모유가 뽀얗게 맺힌 엄마의 젖을 꿀꺽 물어 삼켰다.
“어휴, 잘 먹네. 우리 딸.”
내가 올 걸 알고 미리 수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걸까?
엄마는 나를 안은 채로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수유 쿠션이 여기 없네.”
자세가 불편하다는 듯이 엄마가 읊조리자, 아빠가 엄마의 등 뒤에서 불쑥 나타났다.
아니, 엄마는 내 수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치자.
근데 왜 아빠도 상의를 탈의한 모습일까?
나는 엄마의 젖을 문 채로 아빠를 흘끗 보았다.
“이렇게 내가 받쳐 안아 주면 어때?”
아빠가 엄마와 나를 한꺼번에 번쩍 안아 들어서는 너른 품으로 당겨 앉혔다.
어휴, 우리 아빠 힘도 좋다!
엄마는 아빠의 가슴에 등을 기대고 앉았고, 아빠는 두꺼운 팔로 엄마의 팔 아래를 받쳐 주었다.
“응, 편한 것 같아.”
엄마가 예쁘게 대답하며 아빠를 돌아보았다.
아빠가 근사한 미소를 머금으며 엄마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나는 젖을 문 채도 두 사람이 모습을 올려다보느라 눈이 사시가 될 것만 같았다.
“으음.”
엄마의 입술을 빨아당기는 아빠의 뺨이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우리 공주님이 다 봐.”
부끄럼을 타는지 엄마가 고개를 슬쩍 돌리고는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모유로 인해 풍만해진 엄마의 가슴이 풍요롭게 넘실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빠의 시선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미치겠네. 왜 이렇게 예뻐.”
아빠가 엄마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중얼거렸다.
아, 못 봐주겠다. 젖이나 빨자.
나는 눈을 질끈 감고는 모유를 흡입하는 데 집중했다.
근데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오기 전에 뭘 하고 있던 걸까?
***
“아, 우리 공주 이름을 아직도 못 정했어?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출생신고도 어서 해야지!”
할아버지가 당장에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야단법석을 피웠다.
“아버지, 그냥 공주로 지을까 봐.”
우리 엄마는 진심이었다.
“우리 공주님 이름으로, 공주 어때요?”
엄마는 예쁘게 웃으며 아빠를 바라보았다.
약 20일 넘게 지켜본 바에 의하면 엄마가 저렇게 물을 때, 아빠는 꼼짝을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당신이 좋으면.”
이것 봐. 아빠는 엄마가 하자는 대로 다 한다니까!
그런데 공주라는 이름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벌 3세로 태어나서 이름이 공주라니! 이렇게 이름을 대충 짓는 게 어딨어?
“다른 건 생각해 둔 거 없어?”
할머니의 물음에 엄마가 예쁘게 웃으며 대답했다.
“실은 할머님이 지어 주신 이름이 있어.”
아마도 민서후의 할머니, 나의 증조할머니를 일컫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났는데, 서후 삼촌 할머니는 몸이 불편하셨었는데?
이제는 괜찮으신 걸까?
그분께서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고 하니, 여러 의문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여기서는 삶이 다르게 진행되는 걸까?
지금 어린 민하나는 보육원에 살고 있는 거 아닌가?
“사돈 어르신이 지어 주신 이름이 뭔데?”
할아버지가 궁금해 죽겠다는 듯이 물었다.
“하나.”
소름!
엄마가 예쁘게 내뱉은 이름은 하나였다.
“하나? 하나, 둘, 셋 할 때 하나?”
심장이 쿵쿵 날뛰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물음에 엄마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한. 아! 우아할 한, 예쁠 아. 우아하고, 예쁜, 한아. 민한아.”
이전 이름과 발음은 비슷하지만, 뜻은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나는 그 이름이 썩 마음에 들었다.
“우우웅!”
마음에 든다는 듯이 옹알이를 했다.
“응, 우리 한아도 이름이 마음에 드는구나!”
재벌 3세로 태어난 나는 민한아로서 우아하고 예쁜 삶을 살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진짜, 민하나는 어떻게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