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화 (53/89)
  • 다른 남자와 결혼해

    53화

    누가 들어오기라도 할까 봐 바짝 긴장했는지 달아나려는 혀를 얽고 빨아 당겼다.

    “으음.”

    가쁜 숨결 사이로 안쓰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까처럼 목덜미를 천천히 주무르자, 그녀의 자그마한 손이 드레스 셔츠 소맷부리를 움켜잡았다.

    파르르 전해지는 떨림 때문에 가슴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감았던 눈을 살짝 떠서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속눈썹과 열기에 휩쓸려 모인 미간, 붉어진 뺨이 전부 사랑스럽다.

    스킨십에 열중하는 그녀의 모습은 눈을 떼기 힘들 정도다.

    정담은이 언제 가장 사랑스럽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내게 몸을 내맡기는 순간이라고 답할 것이다.

    무방비하게 입을 벌리고 혀를 움직이며 남편의 입술을 빨아 삼키는 데 온 정신이 팔린 모습.

    그녀의 아쉬움을 저울질하듯 불시에 입술을 뗐다.

    소맷부리를 잡은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부족한 듯 허공에 입술을 뻐끔거리다가, 이내 눈을 뜨는 아내를 당장 테이블 위에 밀어 눕히지 않기 위해 손끝에 바짝 힘을 주었다.

    “오늘 저녁은 밖에서 먹고 들어갈까?”

    분위기를 환기하듯 건넨 질문에 그녀는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로 아내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내가 문밖을 한번 흘끗 보고는 열기의 잔해가 남아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안 가요?”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뜨며 대답했다.

    “지금은 못 가.”

    그녀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물었다.

    “왜요?”

    아기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호기심을 드러내는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반쯤 섰거든. 못 움직여. 다 티 날걸. 알잖아. 크기가 어떤지.”

    그녀가 입을 쩍 벌렸다가, 얼른 다물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거기 앉아서 애국가라도 부르세요. 민서후 본부장님.”

    자리로 돌아간 그녀는 애써 이쪽을 보지 않으려고 PC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았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해야겠다, 오늘은.”

    호기심 덩어리 정담은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뭘 하겠다는 거예요, 오늘?”

    나는 검지를 들어서 아래쪽을 가리켰다.

    그녀가 체통을 지키라는 듯이 눈살을 한번 찌푸리고는 태블릿 PC를 집어 들었다.

    이제 좀 안정이 된 것 같으니.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용 데스크 앞으로 다가갔다.

    “도면 거꾸로 보고 계시네요, 이사님. 옥상을 땅에 처박는 거로 설계 변경하시게요?”

    그녀가 으흐흠, 하고 목을 가다듬으며 태블릿 PC 화면을 조정했다.

    “수고하세요.”

    점잖은 인사를 건네고 집무실을 유유히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결혼 전에는 안 그러더니 왜 저렇게 엉큼해졌대.”

    다시 말하지만 나도 ‘귀’라는 신체기관이 있는 사람이다.

    문고리를 잡아당기려다가 말고 멈춰 서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싫다고?”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빠르게 내젓는다.

    깜찍하기는.

    “근데 오늘 저녁은 어디서 먹으려고요?”

    “오늘 저녁은.”

    뜸을 들이자, 그녀가 궁금하다는 듯이 눈썹을 치떴다.

    “룸서비스.”

    입을 쩍 벌린 그녀가 얼른 가라며 손을 흔들어댔다.

    하여간 귀여워서.

    호텔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당겨 안았다.

    실크 블라우스와 자카드 스커트가 손바닥에 매혹적으로 쓸렸다.

    “저녁으로 룸서비스라니.”

    그녀가 입술을 샐쭉 내밀며 중얼거렸다.

    객실 예약을 하면서 미리 룸서비스도 주문해 놓은 상태였다.

    아내의 몸을 탐할 시간은 충분했다.

    음식을 향한 허기보다 아내를 향한 갈증이 더 극악했다.

    입술을 내려 오동통한 아랫입술을 쭉 한번 빨았다.

    “흐음.”

    그저 입술이 가볍게 빨렸을 뿐인데, 짐작 가능한 쾌락을 그리며 흥분한 그녀는 신음을 참지 못했다.

    “이런 거……. 이런 게 필요했거든.”

    하얀 목덜미로 입술을 옮겨 붙이자, 그녀가 고개를 젖히며 물었다.

    “어떤 거요?”

    보드라운 살결을 치아를 세워 살짝 깨물고는 혀로 할짝거렸다.

    “흐읏.”

    “그거.”

    “으응?”

    “네 신음 소리.”

    그녀가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머릿속이 쓰레기장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본인은 필터 없이 자주 떠들어 놓고선.

    야한 말을 건넬 때마다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인다.

    “집에서는 침대 위에 누워서 앙알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으니까.”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다가, 나중에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끙끙 앓는 모습도 자극적이기는 했다.

    하지만 손길이 닿고,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오롯이 반응하는 그녀는 사람을 미치게 했다.

    스커트 지퍼를 끌어 내리자, 그녀가 작은 손으로 드레스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내렸다.

    “욕실로 갈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여자를 안고 욕실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이미 몸 상태는 곱게 샤워만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 아래 서서 거품으로 그녀의 살갗을 휘감았다.

    부드러운 몸에 매끄러운 거품을 문지르는 동안 손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그녀의 뒤에 딱 붙어서서 매혹적인 몸을 끌어안았다.

    그녀는 남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더운 숨을 몰아쉬었다.

    달콤한 숨결을 들이마시며 입을 맞추려는 순간 피임 도구를 깜빡한 게 생각났다.

    “어떡하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자, 그녀가 원망하듯 나를 돌아보았다.

    “왜요? 갑자기?”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자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걸 깜빡했는데.”

    이제껏 단 한 번도 피임을 잊었던 적이 없었다.

    퇴근길에 급하게 객실을 예약하고 이동하느라 가장 중요한 걸 깜빡했다.

    그녀가 감정을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으며 돌아섰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만두려고?”

    눈꼬리를 늘어뜨리며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데, 미칠 노릇이다.

    “아이는 싫다며.”

    “그게 아니라.”

    그녀가 입술을 짓씹으며 우물쭈물했다. 갑자기 울상이다.

    “왜 그러는데? 응?”

    “아이가 생기면 낳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고. 근데 아이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잠시 멍한 기분이 되어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결혼 전 빈혈 때문에 여러 번 쓰러졌던 그녀였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임신이 되지 않을까 봐 혼자 걱정하고 있었나 보다.

    그것도 모르고, 장인어른이 손주를 바라신다는 말을 했으니.

    “순리대로 하면 돼.”

    눈물을 쏟으려는 그녀의 뺨을 두 손으로 소중히 감쌌다.

    “아이가 생기면 낳아서 건강하게 키우면 되는 거고. 아이가 생기지 않아도, 우리 둘이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면 돼.”

    눈가를 가득 메우고 있던 눈물이 쪼르륵 흘러내렸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몸을 당겨 안았다.

    그녀는 작은 손으로 팔뚝을 붙들고는 조금 우는 듯했다.

    “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앞으로는 혼자 고민하지 말고. 나한테 말해 줘.”

    심장 근처에 옆머리를 기댄 그녀가 조용히 속삭였다.

    “나도 아이 갖고 싶어요.”

    고개를 내려 그녀의 젖은 이마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

    “내가 잘 해야겠네?”

    그녀가 나에게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굴었다.

    “왜 이럴까. 정담은답지 않게.”

    울음기가 남아 있는 그녀의 입술을 조심스럽게 머금었다.

    목덜미를 끌어안는 작은 손이 여전히 떨렸다.

    비누 거품은 물기에 휩쓸려 내려간 지 오래였다.

    커다란 배스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싸고는 번쩍 안아 들었다.

    아까부터 유독 말수가 적어진 그녀가 조용히 내 목을 끌어안았다.

    폭신한 침대에 수건으로 싼 그녀를 살포시 눕혔다.

    그녀를 겁나게 하는 우려가 오롯이 나에게 이르기를.

    그래서 언제나처럼 예쁜 미소만 머금으며 행복할 수 있기를.

    누군가의 행복을 간절히 바랐던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고단한 삶 속에서 다른 이의 행복을 빌어 주는 일은 사치였음에도. 

    그녀를 내 곁에 두지 못한다고 해도, 행복을 빌어 주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곁에서 행복하기를 바란다.

    따뜻한 물기에 젖었던 몸은 보드랍게 달아올라 있었다.

    소복하게 솟아오른 가슴께에 경건하게 입을 맞추었다.

    “하아.”

    그녀가 더운 숨을 터뜨렸다. 작은 손이 젖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넘기는 손길에서 애틋함이 느껴졌다.

    머리를 어루만지는 그녀의 손을 붙잡아서 손바닥에도 입을 맞췄다.

    손가락을 하나하나 얽어서 손깍지를 끼며 침대에 내리누르듯 했다.

    가슴이 오르내리도록 크게 숨을 들이켜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몸을 밀어붙였다.

    “흐읏.”

    참을 수 없는 신음이 잇새로 터져 나왔다.

    마치 처음 그녀를 안을 때처럼 걷잡을 수 없는 매혹이 전신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으응.”

    앓는 소리를 내는 그녀의 표정도 평소보다 훨씬 벅차올라 있었다.

    붉게 달아오른 뺨에 쉴 새 없이 입을 맞추며 천천히 움직였다.

    속도를 제어하는 게 어려울 만큼 자극이 거셌다.

    “하으으, 서후 씨.”

    손을 결박당한 탓에 등허리를 들썩거리는 그녀의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응.”

    대꾸는 했지만, 정신이 점점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격하게 터지는 숨결에 듣기 좋은 신음이 섞였다.

    깍지 꼈던 손가락을 풀고 들썩이는 등허리 아래로 팔을 집어넣었다.

    빈틈없이 꽉 끌어안은 채로 가쁜 숨을 토해 냈다.

    태어나 처음 느껴 보는 환희 속에서도, 아내의 행복만을 바라는 남자가 된 기분은 꽤 만족스러웠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