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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26/89)
  • 다른 남자와 결혼해

    26화

    “흐읏!”

    “서후 씨, 조금만 더.”

    그의 턱을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관능적으로 도드라진 근육 역시 땀에 젖어 흥건했다.

    “하아. 이제 됐어?”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듯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그 모습마저도 지나치게 섹시해서 나는 홀린 듯이 그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아니, 조금만 더!”

    “으읏!”

    그가 신음성을 내지르며 일격을 가했을 때였다.

    “됐다! 빠졌어요!”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하아.”

    그가 한숨을 몰아쉬며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 냈다.

    쪼그리고 앉아서 바비큐 그릴 아래를 살피고 있던 나는 얼른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됐다! 이제 저녁 먹을 수 있겠어요!”

    분명 리조트 컨시어지에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도, 바비큐 그릴의 덮개가 열리지 않아서 애를 먹던 중이었다.

    그냥 직원 불러서 해결하자는데, 민서후는 자기가 해 보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제 여자 앞에서 멋지게 일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겨우 바비큐 그릴 뚜껑 문제였지만, 뭐 아무튼.

    멋진 척하고 싶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다.

    “어휴, 이 땀 좀 봐.”

    나는 그의 곁으로 바짝 다가서서 후드 티셔츠 소맷부리로 젖은 이마를 닦아 주었다.

    그러자 그가 숨을 훅훅 몰아쉬더니, 커다란 손으로 내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의 손에 비해서 한없이 가느다란 손목은 커다란 손에 금세 휘감겼다.

    손목을 잡힘과 동시에 등허리에 그의 팔뚝이 휘감겼다.

    “어맛!”

    나는 놀란 듯 새침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턱을 내린 채 눈을 치뜨자, 그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는가 싶더니 입술이 부드럽게 맞물렸다.

    힘을 쓴 탓인지 평소보다 조금 뜨거운 그의 입술은 지독하게 달았다.

    “으음.”

    내가 고개를 비틀어 입술을 떼자, 그가 지금은 놔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성마르게 달려들었다. 목이 당길 정도로 혀가 빨려 들어갔다. 혓바닥 돌기가 거칠게 비벼질 때마다, 아랫배에서 열기가 치솟았다.

    두 눈이 저절로 감겼다. 머릿속이 몽롱해질 정도로 달콤한 키스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입술이 얼얼하고, 입안이 뻐근해질 정도로 키스를 나누고 나서야. 그는 간신히 나를 놓아주었다.

    “이제, 저녁, 먹어야죠.”

    나는 밥 먹자는 말을 상당히 야한 목소리로 내뱉고 있었다.

    그 덕분에 그의 눈동자는 더욱 매혹적으로 가라앉았다.

    “그래, 먹어야지.”

    지금 이 남자가 잡아먹겠다는 게 꽃등심인지, 아니면 나인지 헷갈린다.

    그는 나를 먹음직스러운 음식 보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관능적인 허기는 간신히 균형을 잡고 있는 내 이성을 자꾸만 뒤흔들었다.

    저녁 식사 따위, 3분 요리로 해결하고 당장 침대로 뛰어들자고 할까.

    나는 우드 슬랩 테이블 위를 가득 채운 식재료를 내려다보며, 급발진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와인도 사 왔는데.”

    그는 지난주에 내가 준비했던 도시락에 보답하고 싶다며, 이번 여행 준비를 혼자 도맡아 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했었다.

    ‘네가 준비해야 할 게 하나 있어.’

    ‘그게 뭔데요?’

    ‘귀하신 몸, 어렵사리 준비해 오신다면 황송할 것 같아.’

    그래서 나는 그의 말마따나 귀하신 몸을 어렵사리 대령했다.

    말 그대로 몸만 왔다는 뜻이다.

    지난 주말, 새벽부터 일어나서 도시락을 쌌던 나에게 보답하고 싶었는지, 그는 온갖 것을 싸들고 왔다.

    “와인 좋죠.”

    “이거 꽤 어렵게 구한 와인이야. 로마네 콩티…….”

    “로마네 콩티요?”

    로마네 콩티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을 생산하는 와인 밭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 병당 경매가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와인은 아버지가 즐겨 수집하는 주종이기도 했다.

    “로마네 콩티 옆집 밭에서 나온 와인이래.”

    그가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능청스럽게 굴었다.

    “부르고뉴 와인인가 봐요? 와! 저 부르고뉴 와인 좋아해요. 보르도 와인보다 부드럽잖아요. 보르도는 물의 왕 같은 느낌이라면, 부르고뉴는 대지의 여신이죠.”

    그가 와인을 따려다가 말고 멈칫했다.

    “와인 따기 무서워지는데?”

    “왜요?”

    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그의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꼭 와인 전문가처럼 말해서. 이거 그렇게 좋은 거 아닌데.”

    와인 전문가나 다름없기는 했다. 이전 생에서 나름 정웅에너지 대표 자리까지 올랐던 나는 각종 모임과 연회를 위해 와인 마스터 클래스까지 수료했었다.

    “그냥 주워들은 거죠. 이 와인에서는 꼭 이슬을 머금은 풀잎에 묻은 흙맛이 느껴져! 이런 거?”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과장된 어조로 떠들어 대자, 그가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코르크 마개를 제거하자, 와인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좋은 게 아니라고 엄살을 피우기는 했으나, 제법 쓸 만한 와인이었다.

    “좀 열어 뒀다가 마시라고 하더라고. 와인을 깨우는 시간이 필요하댔어.”

    “그동안 불붙이고, 고기 구우면 되겠어요!”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연애 초기에는 다들 이러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토치에 불을 댕기던 그가 나를 흘끗 보았다.

    “우리 되게 잘 맞는 거 같지 않아요?”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파랗게 타오른 불꽃이 검은 숯에 닿았다.

    그는 대꾸 없이 참숯을 달구기 시작했다.

    대답이 없는데도 짜증이 나기는커녕, 내 이야기에 묵묵히 귀를 기울여 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씐 거지.

    “같이 있으면요. 너무 행복해요.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마냥 좋을 수가 있는 건지, 너무 신기해요.”

    그가 연한 미소를 머금으며,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댔다.

    나는 입을 꾹 다문 채로 그를 응시했다.

    “그렇게 예쁜 말만 골라서 하면, 내가 고기를 어떻게 구워?”

    “예쁜 말이랑 고기 굽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계속 그렇게 떠들다가……. 저녁도 못 먹고 안으로 끌려 들어가서 밤새 나한테 시달릴 수도 있어. 조심해.”

    건조한 목소리로 건네는 그의 경고는 퍽 야했다.

    “단백질 섭취를 충분히 해야 근육이 힘을 쓰죠.”

    한평생을 남에게 져 주면서 살았더니, 이번 생에서는 한 마디도 지지 않는 게 내 삶의 모토가 된 것일까?

    그가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토치를 사이드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검기만 했던 숯에 붉은색 불기운이 넘실거렸다.

    그릴을 채우고 그 위에 두툼한 꽃등심이 올라갔다.

    치이익, 고기가 익는 소리에 군침이 절로 돌았다.

    “마블링이 예술이다.”

    토치에 불을 당기고 있을 때는 곁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해서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만 했다.

    나는 고기를 굽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뒤에서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불똥 튈 수도 있어. 가서 앉아 있어. 고기 얼른 구워서 가져갈게.”

    “불똥 튄다고 안 죽어요.”

    나는 그의 단단한 등에 옆머리를 기대고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의 심장 소리와 호흡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이렇게 하고 있으면, 손등에 불똥이나 고기 기름 튈 수도 있어.”

    그가 허리를 감은 내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다.”

    나는 그의 청바지 앞주머니 속으로 손을 불쑥 집어넣었다.

    “손 안 보이니까, 괜찮죠?”

    “으흠.”

    그가 대답 대신 심호흡을 내뱉었다.

    청바지가 아까보다 조금 더 팽팽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주머니를 차지한 내 손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나는 그에게는 보이지 않을 음흉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몽롱한 상상에 젖어 갔다.

    “정담은.”

    “으응?”

    꿈꾸는 듯한 목소리로 대꾸하자, 그가 나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너 또 머릿속에 쓰레기가 가득하구나?”

    “아닌데요.”

    나는 건조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다 보이는데?”

    “그럴 리가요.”

    “테라스 유리창에 네 얼굴 다 비쳐.”

    눈을 번쩍 뜨자, 맞은편에 놓인 풀 빌라 테라스 창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변태 같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그의 등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놀라기는. 귀엽게.”

    그가 나를 놀리듯 중얼거리며, 접시 위에 잘 구운 고기와 양송이버섯, 가지, 양파 등을 옮겨 담았다.

    “이제 먹을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마음 같아서는 품에 안은 남자를 덥석 안고 방으로 향하고 싶었으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배 많이 고팠구나?”

    나는 얼굴을 그의 옆구리 쪽으로 밀어 넣으며 울상을 지었다.

    그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앉아서 먹자.”

    그를 안고 있던 팔을 내리는데, 떨어지기 아쉬워서 괜히 시무룩해지려는 순간이었다.

    테이블 위에 고기 접시를 올려 둔 그가 의자에 앉아서는 나를 보며 제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탁탁 쳤다.

    응? 나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뭐 하자는 거냐고 묻듯이 바라보았다.

    “앉으라고.”

    그러니까 무릎 위에 앉아서 밥을 먹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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