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7화 (217/218)
  • 특별 외전 9화

    * * *

    드르르륵.

    마가렛은 급하게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몸을 기울였다.

    “재빠른 나이젤이 줄행랑치기 전에 들킬 때도 있네?”

    그리고 고개를 돌린 마가렛.

    아니, 나이젤이 발견한 건 장총을 자신에게 들이댄 레티시아였다.

    그리고 그런 레티시아의 뒤에는 세드릭이 묵묵히 서있었다.

    “정정할게. 1인 3역이 아니라, 4역이다.”

    “…….”

    “이번엔 이름이 네 개나 되네. 허드렛일 하녀 미사, 호위 기사 빈스. 그리고…… 내 신입 몸단 장 시녀 마가렛. 하지만 그 정체는, 탈옥수 나이젤.”

    레티시아가 부드럽게 말했다. 마가렛, 아니 나이젤의 얼굴에 간사한 미소가 걸렸다.

    나이젤은 턱 아래 손을 댔다. 그리고 부욱, 하는 소리와 함께 가면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드러난 얼굴은 꿈속에서와 똑같은, 지명 수배 중인 나이젤이었다.

    “하, 이렇게 빨리 간파당할 줄 이야.”

    “그런 대사 너무 뻔하지 않아?”

    레티시아가 말했다.

    “어떻게 날 알아봤지?”

    나이젤이 비릿하게 말했다.

    “콘단의 무덤이 발견되었다면 욕심 많은 네가 가만히 있을까? 콘단의 무덤에서 찾아낸 무기들로 내게 복수하려고 했겠지.”

    “역시 잘난 공녀님은 다르시군, 하!”

    나이젤이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콘단 무덤의 유산 소유권은 내게 있어. 나 만이 시벨의 제자란 말이야.”

    “그래.”

    레티시아가 장총을 들이댄 채 무심하게 말했다.

    “……뭐?”

    “너 다 가지라고. 콘단의 무덤에서 가져가는 게 가능하다면.”

    “지금 이게, 망할 년. 너 나 놀리는 거야‘?”

    나이젤은 금세 천박한 말투로 변모하여 말했다.

    “역시 넌 나보다 머리가 나빠.”

    레티시아는 혀를 찼다.

    “말했잖아? ‘콘단의 무덤에서 가져가는 게 가능하다면.’”

    “…….”

    그 순간이었다.

    나이젤의 표정에 ‘설마’라고 생각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바보 같긴.”

    레티시아가 말했다.

    “함정을 판 건 네가 아니라.”

    달각.

    레티시아는 마탄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나야.”

    “…….”

    “정말 콘단의 무덤이 발견된 줄 알았어?”

    레티시아는 싱긋, 미소 지었다.

    “당연히 널 잡기 위한 함정이었지. 발견된 콘단의 무덤은 가짜야.”

    ‘그래. 이건 모두 나이젤을 잡기 위해 낸 함정.’

    아주 오래전 발견된 고대식 무덤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특별할 것은 없는 곳이 라 이내 제대로 된 발굴도 없이 묻혀 버리고 만 곳이 있다.

    레티시아는 정보 길드의 키옌을 통해 공들여 ‘소문’을 준비했다.

    바로 한 야산에서 ‘고대 백마법사 콘단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었다.

    ‘그리고 나이젤이 그런 소문을 덥석 물지 않을 리가 없지.’

    그 작전은 지금 생각해 보면 단 한마디로…….

    ‘퍼펙트.’

    나이젤이 이렇게 덥석 걸려들었 으니 말이다.

    “야수를 잡을 땐 덫을 쳐라. 시벨의 가르침이지. 우리 둘의 공통점은 같은 사람에게 ‘범죄’를 배웠다는 거잖아?”

    레티시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너 따위는 시벨의 제자가 아니야! 이 썩을 년. 쓰레기 같은 년! 배신자!”

    “응응, 그래. 네 말이 맞아.”

    레티시아가 말했다.

    “난 시벨 따위 아무래도 좋고 그런 범죄자의 후계자는 되고 싶지 ‘않지만’.”

    “…….”

    “이걸 어쩌나? 넌 애제자가 되지 않는 게 아니라 ‘될 수가’ 없네. 아무리 생각해도 시벨은 널 예뻐하지 않았거든.”

    레티시아는 말했다.

    나이젤의 얼굴에 끔찍한 분노가 드러났다.

    “쯧."

    레티시아가 혀를 찼다.

    “하지만 하나는 칭찬해. 내게 청동 구슬을 보내고, 말도 안 되는 사연을 적은 편지를 보낸 것. 어휴, 나도 소름이 오싹한 귀신 이야기였다니까. 무덤 안에서 귀신들에게 술을 대접받은 사연이라니.”

    ‘그래. 내게 청동 구슬과 사연을 담은 편지를 보낸 건 나이젤이었어.’

    당연히 그 사연은 싹 다 거짓말 이었다. ₩

    레티시아는 덧붙였다.

    “너의 기절 투혼 연기 하나는 볼만했어.”

    “하- 망할 년.”

    그때 나이젤이 충격에서 회복한 듯 겨우 다시 입가에 미소를 걸었

    다.

    “얼굴이 엉망이 되고도 웃을 수 있나 보자.”

    그러고는 나이젤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움직였다.

    “바알!”

    레티시아가 말했다.

    펑! 하녀들의 방에 미리 설치된 소형 폭탄이 터졌다.

    “두고 보자. 반드시 언젠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근자근 밟아주마.”

    그리고 나이젤이 고양이처럼 미끄러지는 동작으로 창문 아래로 몸을 던졌다.

    “콜록, 콜록!”

    레티시아는 바닥에 웅크려 있던 몸을 일으켰다.

    세드릭은 그런 레티시아를 온몸으로 감싸고 있었다.

    “괜찮아요, 레티시아?”

    “네. 그보다 다른 다친 사람은 없나 확인해야겠어요.”

    레티시아가 손가락을 튕기자 바알이 주변을 돌았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나 봐요.”

    레티시아는 한숨을 쉬고 창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창문 밖의 광경을 본 레티시아의 입가에 자연스레 빙그레, 미소가 걸렸다.

    * * *

    “허억, 허억.”

    나이젤은 숨을 몰아쉬며 뛰었다. 그 순간이었다.

    “윽!”

    나이젤의 발목을 잡아챈 건 반 투명한 촉수 같은 것이었다.

    바닥에 엎어진 나이젤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런 나이젤의 눈앞에 들어온 건, 검은 부츠. 그리고 새까만 옷을 입은, 꼭 닮은 얼굴의 두 사내였다.

    그들은 나이젤을 해괴한 짐승 보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중 보다 어린 사내, 제이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로바스.”

    제이드가 말했다.

    나이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제이드의 눈에는 상반신이 인간이고 하반신이 말인 마신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포박해.”

    쉬익!

    “읍읍!”

    나이젤의 온몸을 오로바스의 몸에서 뻗어져 나간 마기의 촉수가 꽁꽁 묶었다.

    “아빠, 제이드!”

    레티시아가 그들에게 뛰어갔다

    “때맞춰 잘 오셨어요!”

    세드릭이 레티시아를 따라 천천히 걸어왔다.

    “공작님.”

    칼렌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들을 순서대로 훑어보았다.

    “이게 무슨 일이냐?”

    “그냥요.”

    레티시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평소 같은 우리 집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죠.”

    “부정할 순 없지만.”

    칼렌이 손짓했다.

    뒤늦게 다가온 시온이 발버둥치는 나이젤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늘 그렇듯 사고 친 것에 대한 잔소리는 기대해라.”

    “네에.”

    레티시아는 고개를 숙였다.

    “뭐 해? 체포해.”

    칼렌이 세드릭에게 눈짓했다. 세드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꾸만 집 안에서 누굴 체포할 일이 생기는 군요.”

    “그게 우리 공작 가문이죠.”

    제이드가 나른하게 말했다.

    “두고 보자. 반드시 탈옥해서 돌아와 주마! 널 납치해서 내가 지금껏 죽인 그 누구보다 끔찍하게 고문해 주겠다. 널 고문할 방법을 삼천 개도 넘게 생각해 뒀다!”

    나이젤은 세드릭에게 끌려가면서 마지막까지 레티시아를 욕해 댔다.

    “입 막아.”

    제이드가 눈짓했다.

    “아니에요, 그냥 두세요.”

    레티시아가 말했다.

    “나이젤이 워낙 성질이 보통이 아닌데, 이렇게라도 한풀이를 하게 해 줘야죠.”

    “레티시아, 귀가 썩어요.”

    세드릭이 말했다.

    레티시아는 세드릭의 충고에도 그냥 여유 있는 표정을 지을 뿐 이었다.

    “이런 구도, 이제 너무 뻔하고 익숙하지 않아? 이런 걸 데자뷔 라고 하던가?”

    레티시아가 말했다.

    나이젤은 이를 으득 갈았다.

    “어쩌지, 난 클리셰는 싫어하는데. 이런 클리셰라면 환영하고 싶네.”

    “이 개 같은 년!”

    나이젤이 레티시아에게 덤벼들 려고 했다.

    “이번엔 정말 기가 막혔어.”

    레티시아가 나이젤을 향해 말했다.

    “내 소중한 사람인, 세드릭을

    이용해 날 심문하려 하다니. 아무리 꿈속에서의 일이지만.”

    하, 벌레 하나도 못 죽일 것 같은 천사 같은 세드릭을 그런 식으로 날조해?

    레티시아는 그런 눈빛으로 나이 젤을 쏘아보았다.

    “수많은 살인을 한 너한테 이런 설교를 하는 것도 웃기지만, 남의 소중한 사람을 건드리는 건 너치고도 양심이 없다. 나이젤, 쓰레기에게도 상도덕이 있다고 시벨이 가르쳐 주지 않았니?”

    “흥! 이제 보니 이 인형 같은 네 남자 친구 놈 때문에 화가 났 군, 안 그래?”

    그때 나이젤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걸렸다.

    “세드릭을 그런 식으로 날조하 다니, 그건 나도 좀 충격이었거

    “퉤! 날조 같은 소리 하네.”

    나이젤이 침을 뱉더니 말했다.

    “네가 환상 속에서 본 고문실은 내가 널 그 안에서라도 고문하기 위해 준비한 거다! 하지만 저 금발 인형 놈이 멋대로 널 쫓아 내 환상 속에 들어오며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지.”

    “……그랬다고?”

    레티시아는 눈을 깜빡이며 세드릭을 보았다.

    세드릭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차라리 난 그놈을 이용 해 널 압박하는 세계를 만들어 냈지. 하지만 말이지…….”

    “…….”

    “나도 인간성을 날조할 능력은 없거든. 또라이들끼리 잘 살아 봐라, 미친 연놈들!”

    “뭐라는 거야?”

    레티시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세드릭이 손짓하자 그가 데려온 기사들이 나이젤의 입을 막았다.

    “한 번만 더 지껄이면 혀를 잘 라야겠어요. 지명수배 중인 무기 징역 죄수를 처벌하는 것, 그건 합법이 거든.”

    그리고 세드릭은 나이젤을 마차 안에 처넣었다.

    “출발해.”

    그렇게 그녀를 실은 마차가 떠 났다.

    ‘응, 사건은 일단락 났네.’

    레티시아는 그렇게 안도했다. 하지만 쉴 틈도 없이 칼렌에게 불려가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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